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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5: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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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 29
구원받은 자의 생활
로마서 5 : 9 - 11
서 론 :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 편에서 귀중한 대가를 치른 결과에서 온 것입니다. 그 아들의 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으며 우리의 의나 구원이나 소망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된 그리스도인들의 구원함을 얻은 이후의 생활에 대하여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말씀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란 표현이 계속적으로 세 번씩이나 나타나 있음을 보게 됩니다. 9절에서 “그로 말미암아” 10절에서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11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말함으로써 이 모든 일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1. 그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게 된 의에 대하여 로마서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죄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의는 순전히 은혜임을 밝히면서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으로 얻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그 믿음자체에 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가 그 근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의는 그리스도의 피가 그 발생의 근원입니다. 그리스 도의 피에는 사죄의 은총이 있습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9:22). 죄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망은 곧 피 흘림을 말합니다. 그러나 죄인의 피 흘림으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죄 없는 자의 피 흘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을 따라 짐승으로써 피 흘림의 제물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짐승의 피 흘림은 하나님의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피 흘리심임이 증거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피 흘리심으로써 정결함을 얻은 것입니다(히9:14, 22 ; 마26:28).
(2) 그리스도의 피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를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사죄뿐 아니라 우리에게 깨끗함을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요일 1:7-9). 그리스도의 피는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고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며 우리로 그리스도안에서 율법의 의를 이루는 일에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였습니다.
(3) 의롭다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지니고 있는 의는 “얻을 것이라”가 아닙니다. “얻을 수 있다”가 아닙니다. “얻었느니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 과거적인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일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이루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소유는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하실 일에 대한 소망으로 가질 수 있을 것이다”가 아닙니다. 이미 다 이루어 놓으신 그 의를 이미 소유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얻었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공로를 보시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셨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부담이 없습니다. 넉넉히 소유할 수 있고 넉넉히 이길 수 있으며 넉넉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소유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소유로 주셨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2.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결과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결과에 대하여 세 가지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란 것이고 둘은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이요 세 번째는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죽기 이전에는 모든 인류가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는 말은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그리스도안에 거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원수는 하나님이 진노아래 있게 됩니다. 진노란 말은 다시는 노여움에서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격노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인내하심의 한계를 넘은 노여움이십니다(벧후3:8,9). 하나님은 이 노여움으로 인류를 심판하십니다.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히9:27). 이 심판은 사람이 죽은 후에 누구나 면할 수 없는 영적인 심판입니다(녹16:19-31). 그리고 이 같은 하나님의 진노는 인류의 종말에 흰 보좌심판대 앞에서 모든 인류에게 일시에 벌어질 것입니다(계20:12-15).
(3)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사죄는 또한 하나님과의 화목과도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일은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었는데 그리스도의 피로 그 죄가 용서받았다면 하나님과의 화목은 자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은 또한 화목제물로서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골1:20). 그러면 하나님과의 화목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났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원수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의 기업의 후사가 되었다고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은 인간의 최대의 영광입니다.
(4) 다음에 바울은 하나님과 화목된 자의 당연한 결과로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된 자의 구원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3. 화목된 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
하나님과 화목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즐거워한다는 말은 ‘카우카오마이’로 자랑한다. 뽐낸다는 뜻입니다.
진노에서 벗어났으니 두려워 할 필요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죄책에 눌려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을 얻었은즉 담대함으로 소망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같은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확실하고 영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느냐”고 말했습니다(롬8:35).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신 데 누가 정죄하겠느냐”고 했습니다(롬8:33).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느냐고 했습니다(롬8:31).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했습니다(롬8:32).
결 론 : 그러므로 오직 즐거워하는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즐거움이 없는 생활은 아직 은혜가운데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여 즐거워하는 생활가운데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 화목된 이 한가지 사실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우리의 생애는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환난 중에도, 고난 중에도, 핍박 중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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