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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6:3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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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류공석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
원칙이 있는 삶 1
마태복음 6:31-34
2007. 6. 2.(토) 텔아비브 욥바 교회
밀가루를 싣고 빵 공장에 가는 트럭과 시멘트를 싣고 벽돌 공장에 가는 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에 멈췄습니다. 트럭 운전수는 화장실에 갔다와서 트럭을 탔는데 그만 서로 바꿔 타고 말았습니다. 두 운전수는 똑같이 ‘알게 뭐야’라고 생각하며 차를 몰아 목적지에 갔습니다. 시멘트를 실은 트럭은 빵 공장으로, 밀가루를 실은 트럭은 벽돌 공장으로 간 것이지요. 그리고 공장 기술자도 ‘알게 뭐야’하면서 빵 반죽에다 시멘트를 쏟아 붓고, 벽돌 반죽에다 밀가루를 쏟아 부었습니다. 거기서 나온 빵이 가정에 배달되고 벽돌은 집 짓는 곳에 옮겨졌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그 빵을 먹다가 이빨이 다친 채 배를 움켜쥐어야 했고 밀가루가 썩인 벽돌로 지은 집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현주 선생님의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알게 뭐야?’하는 무책임하고 원칙 없는 우리 사회의 한단면을 풍자한 동화입니다.
. 사람이 사는 공동체에는 어떤 원칙들이 있습니다. 지켜야 될 것들이 있고 해서는 않될 것들이 있습니다. 법도 한 원칙입니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때때로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반칙으로 가득찬 사회가 되고 모든 가치나 질서가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 교회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켜야할 원칙이 있습니다. 삶의 원칙들이 있습니다. 그 원칙을 지켜야만 우리는 성도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원칙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계명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이 속해 있는 산상수훈은 천국백성들의 대헌장이요 삶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중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6장을 중심으로 볼 것인데, 이것을 몇개로 나누어서 두 주 동안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천국백성의 삶의 원칙 첫 번째는, 주인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재물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앞선 6:24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재물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맘모나스’인데, 이는 아람어 명사 "맘몬"을 헬라어로 표기한 것입니다. 맘몬이란 단어는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외경이나 탈무드, 랍비문서 등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맘몬"이란 단어는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 ‘아만’(אמן)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봅니다. 우리가 쓰는 히브리어 "아멘"과 같은 어근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 '아만'이란 단어의 의미는 '신뢰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 유래된 맘몬이란 말도 그런 의미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맘모나스, 맘몬은 신의 이름입니다. 재물의 신입니다. 그래서 King James 영어성경의 경우는 '하나님과 재물'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과 맘몬'이라고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이러한 의미들로 본다면 24절에서 재물로 번역한 맘모나스, 혹은 맘몬이란 단어는 '인간이 신뢰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인간을 지켜주고 보호해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예요. 그래서 그것이 인간에게는 신과 같은 위치가 될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재물이라는 겁니다. 재물은 단순히 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때 재물은 자신을 지켜주고 자기에게 힘을 주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 재물을 모으기 위해 안깐힘을 다합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재물을 모으는데 죄를 짓는 것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은 재물을 가지고 행복해하고, 그것이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합니다. 곧 재물이 신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너나 하나님 믿어라. 나는 돈을 믿겠다." 돈과 재물을 신처럼 숭배하는 것을 뭐라고 그래요? 배금주의, 영어로 mammonism입니다. 맘몬에서 나온 말입니다.
돈을 포함해서 재물은요, 신적인 힘이 있습니다. 즉,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요. 유혹하고 눈이 멀게 하는 힘이 있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가고, 자신을 섬기고 자신만을 따르게 하는 힘이 있어요. 재물 자체가 우상화되고 신격화되기 쉽고 그런 힘이 있어요. 왜요? 사람들의 심성 때문에 그래요.
사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창조되었어요. 사람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되요. 대표적인 것이 무엇이예요. 종교예요. 이념이예요.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어요? 재물이예요. 돈이예요. 재물이나 돈이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무신론자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역시 그 어떤 무언가가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요.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입니다. 부패한 존재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을 싫어해요. 그래서 다른 어떤 것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제일 좋고 쉬운 것이 뭐예요? 재물이예요.
실제로 사람들의 사회에서 재물이 가지고 있는 파워는 큽니다. 돈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뭐예요. '무전유죄, 유전무죄' 빈인빅 부익부 사회가 될수록 돈의 파워는 더 강해집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돈에다 모든 가치를 부여하게 됩니다. 돈이 있어야 사람 구실한다, 돈이 있어야 무시 당하지 않는다, 돈이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돈이 있어야 잘 사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오직 부자가 되기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우리는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봅니다. 재물에 눌려 사는 사람들도 많고 재물의 노예가 된 사람들도 많이 봅니다. 그들의 오직 한가지 꿈은 돈이예요. 돈이 최고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보다 귀한 것이 돈이예요. 그래서 돈을 위해서 사람을 속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예요. 돈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 아니예요. 돈을 위해서 사람을 팔 수 있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어요. 그것이 바로 돈이예요. 맘몬이예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눈을 어둡게 하는 신이예요. 그것이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되어버렸어요.
우리 크리스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맘몬주의에서 자유롭질 못해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지만, 돈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요. 양다리 걸치고 있어요. 주일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평일에는 돈이 하나님이예요.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돈에 마음을 빼앗기면 돈이 주인이 될 수 있어요.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돈과 하나님이 동시에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이예요.
그런데 사람은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어요. 왜냐하면, 종은 주인에게 전적으로 마음을 다해서 충성해야 하는데, 그것을 두 주인에게 할 수 없다는 것이예요. 한쪽에 충실하면 한쪽은 소홀하게 되요. 그건 당연한 이치예요. 두 주인을 섬기는 종은 없어요.
세상과 하나님이 동시에 주인이 되면 사람은 누구에게 더 충성하게 될까요? 재물과 하나님이 동시에 주인이 되면 사람은 누구에게 더 충성하게 될까요? 쾌락과 하나님이 동시에 주인이 되면 사람은 누구에게 더 충성하게 될까요? 세상이에요. 재물이예요. 쾌락이예요. 인간의 본성이 자동적으로 그것을 향하게 되어있어요. 하나님께 소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예요.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하나님께 죄짓게 되어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누가 주인이냐하는 겁니다. 그걸 분명히 하라는 겁니다. 갈멜산에 가면 엘리야 기념수도원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있었던 사건을 우리는 압니다. 흔히 850:1의 싸움이라고 하지요. 엘리야가 그곳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해서 이긴 사건으로 열왕기상 1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기도할 때마다 숨이 막히는 전율을 느껴요. 그러면서 동시에 엘리야 시대의 영적 상태가 지금 우리 사회의 영적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낍니다. 엘리야가 함께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묻지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
그렇게 물으면서 결단을 촉구합니다. 세상과 하나님, 재물과 하나님, 내게 복을 준다고 섬기는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더 이상 양다리 걸치지 말고 선택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뭐라고 해요?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왕상 18:21하)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엘리야가 선택을 촉구하고 결단을 요청하는데 마음은 여전히 바알에게, 세상과 물질에 빼앗겨 있다는 겁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가나안 족속도 아니고, 블레셋 족속도 아니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에게 이 질문한 것 아닙니다. 명색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엘리야가 한 질문이고, 이 질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기가 찰 노릇입니다. 죄짓은 것이 많아서 차마 할 말이 없어서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예요. 이미 마음이 빼았겨 버렸어요. 그리고 여전히 바알이 하나님 같고, 물질이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아요.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정작 그들이 마음을 두고 있는 곳은 재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모습에서도 보인다는 겁니다. 말은 하나님 믿는다고 하는데, 실제의 삶에서는 물질이 하나님 노릇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양다리 걸치고 있어요. 기가 찰 노릇이예요.
하나님과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동시에 주인으로 섬길 수는 없어요. 그것이 우상이든, 재물이든, 세상이든 쾌락이든,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순수하고 전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믿음입니다. 돈이 필요없다고 하시는 것 아니예요. 재물을 다 버리라는 것 아니예요. 세상 살아가는데 돈 필요한 것 아세요. 재물도 필요하다는 것 아세요.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자리를 대신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합시다. 나를 지켜주는 것은 돈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재물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입으로만 아니라 진심으로 고백해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예요. 사람에게 재물을 주시기도 하시고 취하시는 분이 누구예요? 하나님이셔요. 사람을 지켜주시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세요. 믿습니까?
어느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재물은 은사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라는 겁니다. 보통 재물을 뭐로 생각해요?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하는 것이 뭐예요? 물질의 축복을 달라고 합니다. 물질의 축복을 달라고 부흥회 때마다, 기도원에서 두 손 들고 부르짖습니다. 좋아요. 물질의 복 받는 것 좋아요. 그런데 왜가 없어요. 목적이 없이 구해요. 무엇 때문에, 왜 물질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궁색해요. 그저 물질이 많아져서 좋은 집에서 잘 살고 싶다는 것뿐이예요.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하고 안 믿는 사람하고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아무 차이 없어요. 절에서 복달라고 불공 드리는 거나, 교회나 기도원에서 복달라고 부르짖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어요? 아무 차이 없어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은데 여전히 그 마음에는 물질이 자리 잡고 있어요.
물질이 축복이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아세요? 복은 예수 믿으면 다 받아야 되는 것이예요. 예수 믿으면 구원 받아요, 영생을 약속받아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요, 예전에 알지 못했던 참된 기쁨과 평화를 얻어요. 이것이 뭐예요? 복입니다. 이런 복은 예수 믿으면 누구나 받아요.
그런데 은사는 달라요. 은사는 말 그대로 선물이예요. 하나님께서 필요한 이에게, 혹은 당신의 뜻에 따라 주시는 것이 은사입니다. 어떤 이는 방언을 하고 어떤 이는 하지 못합니다. 은사예요. 어떤 이는 미술에 재능이 있어요. 은사입니다. 제가 목사가 된 것, 뭐예요. 은사입니다. 모든 이에게 다 주시는 것은 복이고 필요한 이에게 주는 것이 은사라는 말입니다.
물질이 복이라면 예수 믿으면 다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떻습니까? 다 부자됩니까? 예수 믿으면 부자 되는 경우 많아요. 그러나 다는 아니예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럼 부자는 복 받은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은 복 받지 않은 사람입니까? 아니예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큰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물질은 은사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은사도 넓은 의미에서는 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구별할 필요가 있어요. 은사가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에게 주시는 것이라면, 곧 물질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주시는 것이라는 뜻말입니다. 맡기실만하다고 생각되면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은사예요.
만약에 물질을 제대로 맡아서 관리할만한 준비가 안되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물질을 주셨어요. 부자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어요. 물질의 노예가 되고 물질 때문에 죄 짓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그 물질은 복일까요 아닐까요? 복 아니예요. 처음에는 복이지만 결론적으로는 화가 되어버렸어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재물 보다는 재물을 맡아서 관리할 준비가 되어 있냐는 겁니다. 그 준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분명한 주인으로 충성하는 믿음이예요. 그리고 성경적인 재물관을 가져야 합니다. 재물에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다스리고 관리하고 사용할 줄 아는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더 중요해요.
그러므로 돈 때문에 주눅들지 말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부자인데 나는 가난하다고 한탄하거나 열등감 갖지 말라는 겁니다. 공연한 박탈감 갖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준비되어 있으면, 그리고 맡기실만한 하면 재물 주실 겁니다. '이 친구에게 재물을 줘도 재물에 마음 빼앗길 친구는 아니다. 그리고 이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 하나라와 영광을 위해 쓸 것이다' 싶으시면 반드시 주실 겁니다. 재물은 은사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돈이 필요합니다. 재물이 필요합니다. 그 자체가 힘이 있고 우리 사회가 맘몬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세상에서 살면서 순수한 믿음과 바른 재물관을 갖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섬기는 깨끗한 믿음이고, 재물을 바르게 보고 다스릴 줄 아는 성경적인 재물관입니다.
성경적인 재물관의 핵심은 모든 재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고, 그러므로 재물을 잘 관리해야 하고, 잘 써야하고, 나아가 재물은 결코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재물을 잘 관리하고 물질에 노예가 되지 않는 방법인지 아세요?
첫째는 자족할 줄 아는 겁니다. 자족의 다른 말은 물질에 대한 탐욕을 버리라는 겁니다. 돈을 바닷물과 같아서 가져도 가져도 끝이 없고 목마릅니다. 돈을 열심히 버는 것과 탐욕은 틀려요. 돈에 대한 탐욕이 생기면 사람 이상해져요. 그런 사람 많이 보잖아요? 자족의 다른 말은 감사입니다. 내게 일용한 양식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청빈입니다. 청빈은 소유를 다 버리고 가난한게 사는 무소유를 말하는 것 아닙니다. 물론 무소유의 삶을 사는 이들도 있지요. 그것은 특별한 경우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청빈은 그런 무소유가 아니라, 쉽게 말하면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내 소유가 월 300만원이예요. 그런데 240만원 정도로 살아요. 소득의 20%, 그러니까 60만원만큼 불편하게 사는 것이예요. 다 누리고 살아도 되는데,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절제를 하는 것입니다.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것을 상대적 청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60만원만큼 불편하게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섬김을 위한 십일조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는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하는 것입니다. 내 소득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신앙의 고백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모두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못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는 사람은 즐거이 드릴 수 있어요. 십일조가 어려울 수 있어요. 그것이 커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십일조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확인이예요.
제가 부목사로 섬길 때 제가 섬기던 교회가 천명이 넘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교역자 사례가 적었던 곳입니다. 교회에서 주는 사례 가지고 한달을 버티기가 힘들만큼 적었어요. 그 적은 사례에서 십일조 드리죠, 감사헌금 드리죠, 주일 헌금 드리죠, 때때로 절기 헌금 드리죠, 나중에는 건축헌금까지. 그렇게 헌금으로 떼어지는 비율이 적게는 30%, 많을 때는 절반이었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커보이더라고요. 저나 아내나 헌금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많지 않은 사례에서 헌금의 비율이 커지니까 기쁨이 반감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날 아내가 교인들에게서 받는 것들을 적기 시작했어요. 교인들이 과일 등을 선물로 주실 때도 있고 설이나 추석 때는 이것저것 선물을 주실 때가 있는데, 그러한 것들을 다 돈으로 계산해봤어요. 이유는 그것들까지도 헌금으로 바치기 위해서랍니다. 지금도 적지 않은 비중이 헌금으로 드려지는데, 선물 등으로 받는 것도 다 계산해서 선물로 드리려고 적는 것이랍니다. 그 말을 하는데, 아내가 예뻐 보이더라고요.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내가 기록을 해보니까 적은 금액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회개했어요. 그리고 교인들이 선물로 주신 것까지 돈으로 계산해서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헌금이 늘어난 것인데, 그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감사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채워주시는 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이 생기더라고요.
십일조 하십시오. 청년들도 하세요. 수입이 적더라도 하시고, 물질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도 하세요. 그것 때문에 시험에 들 것 같아도 하세요.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하고, 하나님이 물질을 주셨다는 고백이고,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이라는 고백이며, 동시에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물질에 눌리지 않고 살겠다는 확인이예요.
저는 헌금에 대해 말하는 것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십일조만큼은 강조해요. 그것은 신앙고백이고 삶에 대한 고백이기 때문에 그래요. 십분의 일이 우리의 삶에 당장 부족함으로, 어려움으로, 아쉬움으로 올 것 같지만, 실제 살아보면 결코 그렇지 않아요. 저는 한번도 십일조 때문에 삶에 어려움 겪은 적 없어요. 왠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도 있지만, 저 스스로 더 알뜰하게 살아요. 물질을 더 잘 관리하게 되요.
소득이 많아지면 하겠다고 마시고, 적을 때부터 하세요. 소득이 적을 때 못하는 사람은 많아져도 못해요. 어린 자녀들에게도 십일조 만큼은 가르쳐야 합니다. 용돈의 십일조를 드리는 훈련이 아이들에게 헌금 훈련이며 동시에 바른 물질관을 키워주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섬김의 십일조를 하십시오. 꼭 10%을 말하는 것은 아니예요. 덜 할 수도 있고 더 할 수도 있어요. 그 액수는 어떠하더라도 우리의 소득 가운데 다른 이들을 섬기는데 사용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득이 다른 이들을 섬기고 도와줄 수 있는 곳에 쓰인다면 그것만큼 보람있는 것이 없지요. 저는 섬김의 십일조가 있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돈이 있는데, 그 100%를 자기만을 위해서 쓰는 사람은 부자인 것 같지만 부자 아니예요. 그리고 만족도 없고 기쁨도 없어요. 그러나 섬김의 십일조가 있는 사람은 그만큼 부자가 되요. 돈은 줄어서 불편한데 마음은 부자예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십니까?
저는 평생 살면서 섬김의 십일조가 제 삶에 끊어지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목사로서 제가 넉넉하게 살기는 어렵겠지만 부자로는 살고 싶어요. 마음이 부자이면 부자예요. 그래서 저는 부자 목사가 되고싶어요.
여러분들도 부자 성도들이 되세요.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모두에게 물질의 은사를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올바르고 성경적인 물질관을 가진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깨끗하고 정직하고 땀에 젖은 수입이 있기를 바랍니다. 물질이 아무리 많아져도 항상 하나님만이 주인되심을 고백하고 즐거이 드리는 십일조가 있고,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는 십일조가 있어 부자가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사는 세상 좀 더 아름다워지고 살만해지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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