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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6:3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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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류공석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
원칙이 있는 삶 2
마태복음 6:31-34
2007. 6. 9.(토) 텔아비브 욥바 교회
나이가 들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 나 치매인가봐." 그런데 20대도 치매가 있는 것 아세요.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있더군요. 신조어인데, 디지털 기기들이 발달하고 또 그것들을 사용하면서 생긴 현상이랍니다. 쉽게 말하면,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과 계산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이 바로 디지털 치매랍니다. 그 원인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을 휴대폰, 컴퓨터, PDA등을 이용해 기억해내면서 생긴 것이고, 디지털 기기를 많이 사용하는 젊은층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인 이유는, 핸드폰을 너무 익숙하게 사용하다 보니까 전화번호를 다 입력해놓고 단축키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죠. 그래서 굳이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예요. 외우는 전화번호가 집과 친한 친구 정도로 몇 개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심한 경우에도 집 전화번호도 외우지 못한다는 겁니다. 1번만 누르면 되거든. 그리고 노래방에서도 노래방 기기 없이는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노래방 기기에서 자막이 나오니까, 노래 가사를 외울 필요가 없는데, 대신 노래방 자막이 없으면 끝까지 외워서 부를 노래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자신이 디지털 치매 증상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답니다. 일본의 어느 연구소에서 제시한 것인데, 해당되는 항목이 많은 경우 디지털 치매 증상이 있다는 겁니다.
1. 휴대폰을 가져오지 않은 날에 친구전화번호보다 단축키번호가 먼저 생각난다.
2. 노래방 기기에서 나오는 가사 없이는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몇 개 없다.
3.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는 집과 가족이 전부이다.
4. 친구와의 대화 중 80%는 이메일로 한다.
5. 암산한 값을 확신하지 못해 계산기로 다시 검산하곤 한다.
6. 전날 먹은 식사 메뉴가 생각나지 않는다.
7. 신용카드 계산서에 서명할 때 외에는 거의 손으로 글씨를 쓰지 않으며,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보다 휴대폰 문자메세지나 키보드 입력이 더 편하다.
8. 처음 만났다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은 전에 만났던 사람이었던 적이 있다.
9. "왜 같은 얘기 자꾸 하느냐"는 지적을 받거나 두 번씩 물어보는 경우가 잦다.
10. 지도보다 휴대폰 자동 길 안내 장치나 자동차 네비게이션 덕을 많이 본다.
이중에서 절반 이상이 해당되면 ‘디지털 치매’에 해당한답니다. 혹시 우리 중에 해당되는 분들은 없으신지...?
그런면에서 이스라엘이 좋은 것 같아요. 이스라엘은 한국처럼 디지털이나 IT분야가 발달된 곳이 아니라 디지털 치매의 위험에 덜 노출이 된 것 같고, 청년들이 있는 키부츠의 경우 인터넷 환경이 좋질 않아서 거의 포기하고 살기도 하지요. 그래서 교회만 오면 청년들이 인터넷 하느라 바쁘지요? 일주일 동안 확인 못한 메일 봐야지, 싸이 미니 홈피 확인해야지...
디지털 치매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성도들에게도 치매 증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어서는 안될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잊고 사는 것, 그것이 곧 치매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어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등등.
이런 것들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사실인데, 종종 보면 잊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구원파라는 이단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파고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죠? 당신 구원받았냐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고 하면 언제, 몇월 몇일 몇시에 어디에서 받았냐는 겁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 주저하면 바로 그러죠. 구원받았는데 왜 그 날짜와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구원받은 것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세요. 몇월 몇일 몇시에 구원받았다는 확신과 기억이 있어야 구원받은 겁니까? 아니예요. 구원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예요. 어떤 사람들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 매맞은 사람. 매맞고 돌아온 사람들은 그 날짜 기억해요. 영접기도를 한 사람들의 경우도 기억할 수 있어요. 그런데 모태신앙이거나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한 사람들은 그거 기억 못해요. 어려서부터 교회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이 들어왔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언제쯤으로 알지 몇월 몇일 몇시라고 기억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구원은 나의 확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고백에 있는 겁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요. 구원파에 혹 하는 겁니다. 종말론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께서 분명 말씀하셨거든요. 재림의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고, 심지어 예수님 자신도 모른다고... 그것은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라고, 그것 알려고 하지 말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다 잊어버리고, 누가 말세에 대한 예언을 한다, 언제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허황된 말에 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잘 배우고, 잘 기억하며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설렁설렁, 대충대충 신앙생활하면 안돼요. 정확하게 배워야하고, 정확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 많이 읽고, 큐티도 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설교도 잘 듣고, 그리고 잘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 치매에 걸립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말씀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마태복음 6:33입니다. 한번 외워볼까요? 적어도 교회를 어느 정도 다녔고 신앙생활을 조금 한 사람이라면 이 말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말씀을 기억하며 사는가? 하면 생각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정말 이 말씀 기억하며 이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떠한 경우에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6:33의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는 우선 순위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생활의 염려에 대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우선 순위에 관한 것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먼저"라는 말을 쓰셨어요.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첫번째로, 최우선적으로"라는 뜻입니다. 우선순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우선순위가 있는데, 가장 최우선으로 두고 구해야하고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우선 순위라는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예요. 그것들도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앞서 구해야할 것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의식주 문제지요.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떨때는 먹는 것이 곧 사는 것이란 생각까지 듭니다. 지금도 그러한데 예수님 당시의 일반 민중들의 삶은 더욱 힘들었습니다. 그들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은 빵이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의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섯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명을 먹이신 일이 있는데, 그때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예수님을 우리의 임금으로 삼자는 겁니다(요 6:15).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하신 분을 우리의 임금으로 삼기만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날마다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생각에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고자 했던 겁니다. 예수님을 통해 얻는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유업보다는 여전히 땅에서 필요한 빵이 그들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였다는 겁니다.
사실 그러한 당시의 사람들에게 "너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빵이 아니다. 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먼저 구하라."라고 하신 것은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이방인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구약성경을 통해서 빵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실생활에서 어떠했어요. 다 잊어버리고 이방인들과 똑같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영적 치매에 걸렸던 겁니다.
그런 그들에게 "아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지 너희 하나님의 선민들이 구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유대인들은 화들짝 정신이 들었을 겁니다. "맞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야. 먹고 사는 것이 다가 아니야.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야." 제 정신 들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그것만이 가장 중요한 지 알고 구하는 것은 이방인들,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것들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길 구하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야할 삶의 원칙입니다. 아무리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해도 우리의 우선순위는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 예를 들까요? 주일 성수 이야기를 해 봅시다. 예전의 목사님들은 교인들에게 주일 성수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하셨어요.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하고 선행을 하는 일로만 보내야 한다. 주일을 안지키는 것은 날 도둑놈이다. 주일에는 가게문 닫고, 장사하지 마라." 그랬단 말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주일성수에 대해 강조하시는 목사님들이 드물어요. 왠지 아세요? 교인들이 싫어한답니다. 그런 이야기하면 교인들이 삐져서 교회 안나온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현대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부득이 주일에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직종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위한 예배를 따로 드리는 교회도 있어요.
주일 성수해야 합니다. 주일은 말 그대로 주님의 날이예요.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그 날이 주님의 날이심을 인정한다는 것이고, 더불어 나머지 6일도 하나님의 날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우리가 기도하지요. 이 예배의 은혜 가지고, 오늘 받은 말씀을 가지고 한 주간 동안 살게 해달라고... 무슨 의미입니까? 일주일 내내 하나님의 말씀 기억하면서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 이루며 살아가게 해달라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주일 성수는 곧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주일 하루 돈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 예배하는 것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1920년대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육상선수로 에릭 리델이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불의 마차’라는 영화가 있지요? 198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에릭 리델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1924년 올림픽 육상경기에 출전하여 결승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미 예선에서 신기록을 수립한 바 있는 유력한 우승후보였습니다. 그런데 결승전이 주일이었습니다. 문제는 결승전에 참여를 하면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솔직히. 운동선수의 최고의 영광이 올림픽 출전이고, 금메달 아닙니까?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승전에 참여할 겁니다. 그런데, 에릭 리델은 코치와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승전 경기를 포기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엄청 비난을 받았지요. 그러나 그는 떳떳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런 결단과 원칙있는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적당히 타협하며 신앙생활했던 사람들이 그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던 겁니다.
그후 그는 평생을 중국 선교에 힘쓰다가 중국 현지에서 선교사로서 생을 마쳤습니다. 영화 ‘불의 마차’의 마지막 장면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나 사상가는 아니지만 신앙의 원칙을 지킨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산 사람이다.”
어찌보면 바보같고 원칙주의자같고 융통성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는 분명한 신앙의 원칙이 있었고 우선순위가 확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쉽게 합리화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원칙도 우선순위도 없이 너무 영리하게 행하는 우리에 비하면 말입니다.
저는 이런 우선순위가 우리에게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 바보같을지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는 우직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고집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최우선순위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 아닙니까? 결국은요, 우선순위가 분명하고 원칙이 있는 사람들이 영향력을 끼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되는 겁니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이것이 확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는 무슨 보상이 주어집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모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는 것들, 그것들을 주신다는 겁니다. 덤으로 말입니다. 보너스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먹고 사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본질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본질이고 이 우선적인 가치를 붙잡고 구하는 삶을 살면 먹고 사는 문제는 부차적으로 따라가는 축복이라는 겁니다.
똑같이 직장을 다니고 똑 같이 일을 하는데, 목표하는 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돈 벌어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사람은 원하는 대로 돈을 잘 벌면 행복한데, 그 이상은 없어요. 그것이 다 입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낙심하고 돈에 얽매이고 눌려 삽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삶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돈을 잘 벌어도 감사하고 그렇지 못해도 그것에 눌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채워주셔요. 말씀 그대로 이 모든 것을 더해주셔요.
예를 들어볼까요? 뭐, 멀리서 찾을 것도 없어요. 우리 교회에 계셔요. 우리끼리니까 실명을 거론하겠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들 가정이예요. 먼저 김진국 집사님, 김집사님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신앙간증을 들어보세요. 직장을 다니고 열심히 일하지만 항상 관심은 하나님의 뜻이예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본인이 그래요. 하나님이 그냥 복을 주신답니다. 하는 일마다 쉽게 풀린다는 겁니다. 설사 안풀려도 풀릴 줄 믿으니까 마음이 편하다는 겁니다.
정황일 집사님, 정 집사님 부부는 평신도 선교사로 이스라엘에 오신 분들입니다. 신혼초에 아무 것도 없이 유대인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이스라엘에 왔습니다. 마당히 거처할 곳이 없으니까 키부츠에 들어갔는데, 기혼자는 안되기에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키부츠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얼마나 보고 싶었겠어요. 그런데 송집사님이 키부츠에 있는 중에 큰 아들 시온이를 낳으셨어요. 정집사님은 해산한 아내와 아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요. 제가 격은 것은 아니라 다는 이해 못하지만 이스라엘에 온 처음에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 두분을 보면 얼마나 밝고 맑으신지 몰라요. 얼굴에서 생활의 염려가 없어요. 지금도 어려움은 있지만 항상 우선순위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삶입니다. 심방했을 때도 기도제목은 내 안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우리들을 통해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그 거룩하신 뜻을 이루는 것, 이것이었어요. 그냥 체면상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것을 원하시는 분들이셔요. 그리고 초기에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들 다 채워주셨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류성훈 선교사님, 이 분이 한의사잖아요. 한국에 있을 때 한의원을 몇년 운영했었는데, 돈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그것 다 그만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이스라엘에 왔어요. 온누리 교회 파송 선교사지만, 그 후원이 얼마 안되요. 자칫 생활의 염려에 빠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분들의 관심은 유대인 선교였어요. 그래서 지난 몇년 동안 마약중독자를 사역하는 메시아닉 유대인들과 같이 동역하고, 자기 집을 예배처로 제공해주고 밥까지 해주고 그런 힘든 사역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심방을 가보니까 집이 더 좋아졌어요. 그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집인데 거기에서 살고 있어요. 물론 집이 곧 축복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보면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은 덤으로 주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또 예를 들까요? 저예요. 사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제 짧은 인생에서 마태복음 6:33의 말씀이 틀린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청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제가 말씀처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았을 때는 한번도 밥 굶은 적 없었어요. 늘 채워주셨어요. 반면에 이 말씀 깜박 잊고 살았을 때는, 물론 그때도 하나님께서 굶기신 적은 없지만, 제 삶 가운데 어려움들이 생기는 것을 보았어요.
하나 더 이야기를 할까요? 다 아시는 것처럼 우리 교회가 선교센타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우선은 청년들의 주말 숙소로 사용되고, 그곳은 단순히 숙소만이 아닌 청년들을 신앙적으로 훈련시키고, 나아가 유대인과 아랍인 선교의 중심지, 센터가 되는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집을 구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래서 찾다가 찾다가 결국은 찾았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계약을 했고, 어제 청년들이 그곳에서 밥도 해먹고 잠도 잤지요. 자매들 숙소까지 구하려고 했는데, 아직 마땅한 곳이 없어서 계속 구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교회 재정 형편상 선교센타와 자매들 숙소까지 감당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적은 액수가 아니예요. 솔직히 말하면 좀 버거운 액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교센터를 구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청년들에게 숙소를 얻어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가 청년들을 상대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 아니거든요. 청년들을 섬기고, 청년들을 신앙적으로 훈련시키고 성장시키는 것, 그래서 청년들이 하나님과 좀 더 가까와지고, 청년들이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비전을 발견하는 것, 그럴 수 있기 위해서 선교센타를 구하려는 것이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일을 할 때 돈이 있어야 하지만 돈이 사역을 결정짓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믿어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정도 주실 것이고, 나아가 정말 멋있는 선교센타를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듣기 좋은 교훈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 이상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때 그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믿습니까?
그런 말이 있지요? "당신의 삶을 말씀의 실험장으로 만들라!" 정말 하나님의 말씀처럼 되는지 안되는지 살아보라는 겁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 때 과연 하나님께서 덤으로 채워주시는지 아닌지 실험해 보라는 겁니다.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먹고 사는 문제에 눌려서 다른 더 큰 것들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세상은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더 가치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최고의 가치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이루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하고 힘써야 할 될 최고의 가치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들 그냥 놔두겠어요? 나만 해도 청년들이 그렇게 살면 내 주머니에서 뭐가 나가요. 하물며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살 때 그냥 놔두겠어요. 분명 채워주셔요. 굶지 않아요. 물질로도 채워주시지만 물질보다 훨씬 큰 은혜와 복을 주셔요. 무엇인지 아세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사는 은혜를 주셔요. 내 안에, 그리고 내 삶 가운데, 그리고 내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기가막힌 은혜인지 아세요. 이 복을 받으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되는 겁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에게는 분명 먹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더욱 귀한 가치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구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부르심의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뜻에 순종하여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겁니다. 삶에 필요한 것들은 덤으로 주시는 겁니다. 덤으로 주시는 것에 목숨 걸지 마세요. 핵심을 잡으세요. 핵심을 잡으면 주변 것들을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뭐예요? 핵심이 무엇인지를 아는 거예요. 오늘의 핵심정리. 뭐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증명되어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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