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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열매 맺기 위하여

요한복음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243 추천 수 0 2013.03.15 21: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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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5:1-11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계속 열매 맺기 위하여
요한복음 15:1-11
2007. 9. 1.(토) 텔아비브 욥바 교회

 

지난 주중에 참으로 반갑고 감사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납치된 이들이 전원 풀려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비록 2명의 순교자가 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무사히 풀려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피랍된지 42일만에 풀려난 것인데, 이 42일이 가족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전원 풀려난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그 장면을 보면서 참 감사했습니다. 지난 42일 동안 가족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피랍된 아들 딸들의 무사 귀환이었습니다. 그것 외에는 다른 소원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의 그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가족들뿐만 아니라 이들을 위해 한국 교회가 기도를 했는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소원이 있습니다. 직업에 따라, 신분에 따라,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나름대로 바라는 바, 소원이 있습니다. 조금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42일간의 힘든 상황에서 무사귀환을 소원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학생에게 소원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입니다. 사업가는 사업 잘되서 돈 많이 버는 것이 소원입니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사람들은 꿈에도 소원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농부에게 있어서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농사한 수확물을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농부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소원입니다.

  오늘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인데, 이 비유에 보면 하나님을 이와 같은 농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포도나무를 가꾸고 재배하는 농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은 포도나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우리는 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 비유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농부이시라면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많은 소출을 얻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마다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달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맞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는 일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계시지만, 거기에만 머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 믿습니다.”하고 고백함으로 구원 얻기만 하면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만족하신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 큰 소원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낳았다고 끝이 아닙니다. 자식을 낳는 것도 소원이지만, 낳고 나면 또 다른 소원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낳은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다음 더 큰 소원을 하나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과실을 많이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에게 붙어 있다고 하면서 잎만 무성한 가지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늘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성한 잎을 사방으로 뻗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그런 가지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풍성한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두 송이 열매 맺는 것으로 만족하시지 않고, 더 많은 과실을 거두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믿습니다’하는 그런 기초적인 신앙고백을 하는 것으로 절대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과실을 많이 맺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과실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붙어 있는 포도나무는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나무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스스로 이 비유를 말하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것처럼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포도를 맺습니다. 절대로 사과나 복숭아를 맺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포도나무요, 그분이 우리의 나무라고 했는데, 우리가 맺을 열매는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열매? 예수 열매. 예수님입니다.

나무가 예수님인데 열매도 당연히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 나무는 예수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즉,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맺어야 할 과실이란 한 마디로 예수님을 닮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격과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비슷하게 닮아 가는 것이 과실이라는 말입니다. 포도나무가 포도를 맺는 것 같이 예수 나무는 예수를 맺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를 닮은 과실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격과 삶을 보고 ‘너, 예수를 많이 닮아가는구나. 정말 과실이 많은 포도나무 같구나.’하고 만족하실 수 있나요? 그렇다면 할렐루야지요.

그러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안타까워 하실까요? 예수를 10년 믿어도 가족들의 눈에 전혀 달라진 무엇이 보이지 않는 사람, 모태신앙이라서 뿌리는 있는 것 같은데 더 나아가지도 않고 더 성장하지도 않는 사람, 이웃 사람들이 볼 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인 줄은 알지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의 특별한 것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너나 나나 똑같다.’하는 생각이 들만큼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아니하는 사람...

만약에 우리가 이와 같은 삶을 산다면 많은 열매를 기대하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실까요?

  우리 모두가 가슴이 저리는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이 모양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잎만 무성한 포도나무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야 말로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것 같이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열매 하나 찾기 어려운 그런 허울 좋은 교회들도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슴 아프게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우리 자신을 살펴봐야 됩니다. ‘주님, 나를 보실 때 과연 주님이 만족할 만한 열매가 있나요? 내가 주님을 만족하게 할 만한,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열매가 있나요?’하고 자주 살펴보아야 합니다.

. 해마다 포도농사를 하는 농부는 그 포도나무가 과실을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서 정성을 쏟아서 해 주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가지치기입니다. 농부는 포도나무 하나 하나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손으로 들어보고 살펴본 다음에 죽은 가지는 사정없이 잘라 냅니다.

그 다음에 앞으로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 가지도 다 추려냅니다. 심지어 조금 나와 있는 순을 보고도 어떤 순은 떼어 내버립니다. 왜 죽은 가지를 잘라 주어야 합니까? 그것을 그대로 놓아두면 병균이 득실득실하게 되어 나중에는 건강한 나무까지 못쓰게 만들기 때문에 사전에 잘려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가지의 순을 다 떼어버립니까? 그것을 그대로 놓아두면 나중에 다른 가지들이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자양분까지도 전부 도둑질해 가버리기 때문에 사전에 다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우리가 과실을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제해 버리시는 것과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죽은 가지나 전혀 소망이 없는 가지를 완전히 잘라버리십니다.

그러면 우리 중에 누가 죽은 나무 가지입니까? 어떤 사람은 한때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 다니다가 배신한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이 죽은 가지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가룟 유다를 잘라버리셨듯이 그런 사람도 교회에서 잘라버리신다고 해석합니다.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보이는 나무 가지는 또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은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건성으로 다니는 사람이 바로 그런 가지라고 해석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것만 보면 구원받은 것이 틀림이 없는 것 같은데, 그 인격과 삶을 보면 예수 믿는 사람다움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없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일찌감치 천국으로 데리고 가심으로써 가지치기를 하신다고 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구원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식으로 하나님이 자르신다면 교회마다 하루에 장례식을 수십 건 치러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럴 지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강조하시려는 것은 죽은 가지가 누구며, 열매 맺지 못할 가지가 누구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려고 하시는 것은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보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말씀을 보면서 ‘나는 죽은 가지야, 나는 열매맺지 못하는 가지야’하면서 낙심하게 되는 일이 없습니다.

.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또 한가지 있습니다. 나무 가지를 깨끗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떤 나무 가지를 깨끗하게 하십니까? 과실을 안 맺는 가지입니까? 아니면 과실을 맺는 가지입니까? 과실을 맺는 가지입니다.

2절 하반절과 3절을 보십시오.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과실을 맺는 가지로 보시고 그들을 이미 말씀으로 깨끗케 해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 예수를 믿는 우리를 과실 맺는 가지로 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서 구원해 주신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우리 각 사람을 죽은 가지로 보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과실을 맺는 가지로 보십니다. 하나님이 조금만 손질해 주시면 풍성한 과실이 열릴 수 있는 가지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더 많은 과실을 맺도록 하게 위해서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깨끗케 하실까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을 듣고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또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허락하셔서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교훈하십니다. 그 말씀으로 책망하시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위로하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잘못된 것을 고쳐 주시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내가 이전에 깨닫지 못한 비밀한 은혜를 깨닫고 기뻐하게 하십니다. 우리 영혼을 소생하게 만드십니다. 어떤 때는 세상 사람들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십니다. 말씀을 가지고 성령을 통해서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심으로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귀담아 들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말씀으로 여러분을 교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우리는 과실을 많이 맺습니다. 그 말씀을 마음속에 잘 담으면 우리 인격과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많은 열매들이 나타납니다. 믿습니까?

말씀 잘 듣는 사람, 말씀을 배우고 깨닫기를 사모하는 사람, 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아 사는 사람, 이런 사람이 과실을 많이 맺는 겁니다. 그러므로 잘 들으셔야 합니다. 잘 배우고 잘 담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깨끗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별로 달갑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3: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안타깝게도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가 보면 가끔 매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매를  안 맞고 잘하면 좋겠는데 그게 안될 때가 많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보면 믿음이 좋고, 강한 분들은 대부분 하나님께 두들겨 맞은 경력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지난주에 청년들과 성경공부 할 때도 보니까 하나님께 두들겨 맞고 돌아온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이런 분들은 주님을 위해서 아주 헌신적입니다. 두들겨 맞으면서 연단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징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가 과실을 많이 맺기 위해서는 징계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도 참 징계를 많이 맞은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때리시면 참 무섭습니다. 자녀가 조금만 잘못해도 매를 들고 와서 때리는 이런 부모는 무섭지 않습니다. 한대 맞아주면 끝나기 때문입니다. 매일 한 대씩만 맞으면 됩니다. 그러나 1년이 가도 매 한번 안 들던 아버지가 한번 화가 나서 매를 들었다 하면 그때는 종아리가 터집니다.

하나님도 그런 아버지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침에 잘못한 것을 가지고 점심 때 때리고, 점심 때 잘못한 것을 가지고 저녁 때 징계하는 그런 분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가만히 기다리시면서 말씀을 가지고 교훈하시고 책망하시면서 계속 우리가 깨끗해지고 바르게 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듣고 빗나가고 고집스럽게 저항하면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를 때리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때리고 징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재산을 날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업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속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건강이 잘못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징계를 잘 받고 나면 하나님도 좋고 우리도 좋습니다. 우리가 과실을 풍성히 맺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경우에 따라서는 징계도 하시면서 우리에게 있는 죽은 가지, 곧 잘못된 부분들과 열매 안 맺는 가지들을 다 추려내 버리심으로 우리가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징계가 절대 손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 한가지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열매를 원하시면서도 우리보고 “열매를  맺으라.”고 명령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을 전체를 살펴보십시오. “너, 열매를 많이 맺으라.”하는 명령이 기록된 곳이 한 군데라도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왭니까?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맞습니다. 가지가 자기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가 할 수 있는 유일 한 것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일은 나무가 다 해줍니다. 흙에서부터 영양분과 수분을 끌어올려 가지에게 충분히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가지는 그것을 받아먹으면서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열매를 맺으려고 몸부림 칠 필요가 없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가 몸부림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해 보려고 해도 안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포도나무되신 예수님께 딱 붙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열매를 많이 맺으라”고 하시지 않고, “내 안에 거하라”는 명령만 거듭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4절을 다시 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예수 안에 사는 삶을 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까? 본문 7절은 두 가지 비결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기서 ‘내 말’과 ‘구하라’는 말을 주목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이 두 가지는 쉽게 말한다면 말씀과 기도를 의미합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묵상하면 그것이 곧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동적으로 예수 안에 거하면서 주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머리에 담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입술에 담고 지내라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노트에 기록해 놓고 있으라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어디에 담으라고요? 마음에 담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면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풍성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이 되어 우리를 튼튼하게 세워 줄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인격과 삶의 과실들이 절로 맺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우리를 보는 자마다 “와, 정말 다르다.”하고 말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 예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는 것과 동시에 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7절을 보면 참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주님 안에 거하면 무엇을 하라고 했습니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는 기도가 왜 말씀을 묵상하는 것에 뒤이어 나올까요? 여기에 참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기도는 자연스럽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펴놓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면서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하기 시작하면 말문이 열립니다. 기도가 터진다는 말입니다. 그 기도는 어떤 것만 구할 수 있는 제한적인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는 그런 기도인 것입니다.

  남여간에 만나면 처음에는 정도 안들고 누군지도 잘 모르니까 말을 할 때도 참 신경을 많이 쓰지 않습니까? 상대방의 마음을 슬쩍 떠보기도 하고, ‘이 말을 해도 될까? 이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하면서 할 말, 안 할 말 가려가며 조심스럽게 말하지 않습니까? 서로를 충분히 알기 전까지는 불편한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만남이 깊어지고, 사랑에 빠지고 나면 더 이상 상대방의 말을 가지고 이리 재어보고 저리 재어보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두 사람이 만나면 걸리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즐겁고 좋습니다. 그래서 듣고만 있지 않고 서로가 거리낌없이 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씀을 마음으로 묵상하고 살아 계신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읽고 그 사랑에 흠뻑 젖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무엇이든지 주님 앞에 부담 없이 아뢸 수 있는 기도로 발전을 합니다. ‘무엇이든지’의 기도는 바로 이와 같은 기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려면 이런 기도를 해야 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려면 이런 기도의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재미있어지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다가 보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무엇이든지 주님 앞에 거리낌없이 내놓고 기도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깊은 생명의 교류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고 자양분을 공급받습니다. 모든 필요한 지혜를 얻습니다. 생명이 유지되고 열매를 맺기에 꼭 있어야 될 것들을 주님으로부터 전부 공급받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당하고 시련을 당해도 휘청거리지 않고, 큰 슬픔을 당해도 그것 때문에 자포자기하지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우리가 주님의 능력을 공급받기 때문에 비록 생활이 조금 쪼들린다 해도 그것 때문에 오만상을 찌푸리고 하루종일 불평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 오늘 이 비유는 결국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큰 열매를 맺도록 이끄시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 붙어있으라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과연 말씀과 기도를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참 많은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솔직히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놓고 읽는 삶이 쉽습니까? 말씀을 묵상하는 생활이 그렇게 쉽습니까? 주님 앞에 무엇이든지 털어놓고 기도할 수 있는 그런 깊은 관계의 기도가 그렇게 쉽게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말씀과 기도에 몰입하는 것이 잘 안됩니까? 우리 자신이 게으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귀가 오만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우리로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말씀을 마음에 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비실비실하며 신앙생활하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한사코 말씀을 묵상하거나 기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으라!"는 명령은 하지 않으셨지만 "내 안에 거하라!"는 명령은 하셨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다. 주님 안에 거하면 열매는 저절로 맺어지는 것이라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명령을 하셨겠습니까?

명령을 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결단하고 노력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안에 거하기 위해 말씀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 각오를 하고 행동에 옮겨야 됩니다. 주안에 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내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기도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그 일을 방해하는 일들을 극복해내야 합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런던에 있는 왕궁에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몇년 전에 그 포도나무가 2천 송이가 넘는 포도송이를 맺어 장안에 화제가 된 일이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이 와서 조사를 해본 결과 그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템스 강이 흐르고 있는데 포도나무 뿌리가 계속 뻗어 나간 결과 그 해에는 그 뿌리가 강바닥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강바닥이나 강 주변의 땅만큼 비옥한 땅은 또 없을 것입니다. 뿌리가 거기에 있는 좋은 영양분을 전부 싹싹 긁어모아 가지고 포도나무에다 공급하자 가지마다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 뿌리를 깊이 박고 있으면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의 문제에 대해 주님께서 해답을 주십니다. 우리의 난제들을 주님이 때를 따라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의 인격과 삶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도록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받은 그 감격과 기쁨이 크지만 절대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 이후가 중요합니다. 계속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인격과 삶에 풍성한 열매들이 맺어지고, 그 열매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우리가 주님의 제자임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내가 열매를 많이 맺으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사모함과 결단과 노력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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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2 마태복음 천국의 아들 마12:46-50  신윤식 목사  2013-03-17 1689
8661 마태복음 예수님의 가족 마12:46-50  신윤식 목사  2013-03-17 2014
8660 마태복음 안식일 마12:1-13  신윤식 목사  2013-03-17 1776
8659 마태복음 인기 없는 예수 마11:15-24  신윤식 목사  2013-03-17 1795
8658 마태복음 합당치 않음 마10:34-39  신윤식 목사  2013-03-17 1577
8657 마태복음 전도 마9:35-38  신윤식 목사  2013-03-17 1758
8656 마태복음 권세 마9:1-8  신윤식 목사  2013-03-17 1417
8655 마태복음 제자 마8:18-27  신윤식 목사  2013-03-17 1520
8654 마태복음 믿음 마8:14-17  신윤식 목사  2013-03-17 1508
8653 마태복음 주의 이름으로 마7:13-27  신윤식 목사  2013-03-17 1864
8652 요한계시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멸망 계19:11-21  강종수 목사  2013-03-17 1796
8651 창세기 승리를 한 아브라함이 두려워한 이유는? 창15:1-14  김경형목사  2013-03-16 2222
8650 마태복음 정직한 감정 위에 내리는 은총 마26:36-46  류공석 목사  2013-03-15 2136
8649 열왕기상 로뎀 아래 있다고 느낄 때 왕상19:1-8  류공석 목사  2013-03-15 2566
8648 누가복음 Dominus Flevit 눅19:41-44  류공석 목사  2013-03-15 1558
8647 여호수아 실패가 하나님의 뜻이라고요? 수7:1-15  류공석 목사  2013-03-15 2449
8646 여호수아 누가 이 성을 무너뜨렸는가? 수5:13-6:7  류공석 목사  2013-03-15 2378
8645 여호수아 네가 어디로 가든지 수1:1-9  류공석 목사  2013-03-15 2756
8644 레위기 호산나 라바 레23:39-43  류공석 목사  2013-03-15 2558
8643 시편 주께서 복 주시기를 시128:1-6  류공석 목사  2013-03-15 2532
8642 요한복음 실패는 없다 요20:19-29  류공석 목사  2013-03-15 2130
8641 요한복음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 요15:9-17  류공석 목사  2013-03-15 2199
» 요한복음 계속 열매 맺기 위하여 요15:1-11  류공석 목사  2013-03-15 2243
8639 요한복음 선한 목자 요10:1-18  류공석 목사  2013-03-15 2999
8638 요한복음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요8:21-31  류공석 목사  2013-03-15 2129
8637 요한복음 은혜를 아는 사람 요12:1-8  류공석 목사  2013-03-15 2421
8636 스바냐 당신은 하나님의 기쁨 습3:16-17  류공석 목사  2013-03-15 2269
8635 요한복음 목숨을 건 용서 요8:1-11  류공석 목사  2013-03-15 1933
8634 요한일서 내가 존재하는 이유 요일4:7-12  류공석 목사  2013-03-15 2507
8633 요한복음 사랑은 사랑을 낳고 요21:15-17  류공석 목사  2013-03-15 2055
8632 요한복음 하나님의 일 요6:22-35  류공석 목사  2013-03-15 2361
8631 요한복음 목마름 요4:3-24  류공석 목사  2013-03-15 2300
8630 요한복음 이 성전을 헐라 요2:13-22  류공석 목사  2013-03-15 2074
8629 마태복음 원칙이 있는 삶 3 마6:31-34  류공석 목사  2013-03-15 1734
8628 마태복음 원칙이 있는 삶 2 마6:31-34  류공석 목사  2013-03-1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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