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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수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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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류공석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
네가 어디로 가든지
여호수아 1:1-9
2007년 10월 6일(토)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희망이라는 단어입니다. 언제 들어도 희망이라는 말은 좋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스라엘의 국가가 '하티크바'(התקווה), '희망'입니다. 이스라엘 건국 직전의 상황이 당시 전세계 유대인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6백만명이 죽임을 당한 홀로코스트를 거쳤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희망은 가장 절실한 가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앞날에 희망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래를 보는 눈은 좀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혹은 어떤 경우에는 미래를 기대와 확신의 눈으로 바라 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혹은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의 앞날에 희망이 있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정작 불안과 두려움으로 앞날을 내다보기도 합니다. 두 종류의 눈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한 눈은 기대와 확신으로 바라보는 희망의 눈이라면, 다른 한 눈은 실패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눈입니다. 누구나 성공을 원하지만 이룰 수 있으면 하는 희망과 더불어 실패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의 미래가 희망적일까요? 어떤 사람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자세입니다. 어떤 마음자세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부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느냐, 긍정적인 믿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성공은 판가름납니다. 우리가 어떤 소원과 비전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는 심리학적 연구가 있습니다.
1. I will not : "나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는 사람은 성공 확률이 제로입니다.
2. I can not : "나는 할 수 없습니다" 하는 사람은 성공 확률 10%.
3. I don't know how :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하며 자신 없어 하는 사람은 성공 확률 20%.
4. I wish I could : "나도 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사람은 30%.
5. What is it : "잘은 모르겠지만 그게 뭘까" 하며 긍정적으로 나가는 사람은 성공확률 40%.
6. I think I might : "아마도 할 수 있을 거야" 라고 믿기 시작하는 사람은 성공확률 50%.
7. I might : "나도 할 수 있을꺼야, 할 수 있을 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공확률 60%.
8. I think I can :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는 사람은 70%.
9. 더 나아가서 I can, 생각 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나는 할 수 있습니다" 하는 사람은 성공률 90%.
10. 마지막으로 "By God I can :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할 수 있다" 고 신앙적으로 확신하는 사람은 100%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성공은 그 사람의 자세에 달려있습니다. “I will not, I can not”,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안됩니다. 그러나 "By God I can",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100%의 성공이 보장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네가 믿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100%의 성공을 보장해주십니다.
이것을 좀 더 성경적으로 정의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바뀌어야 성공할 수 있다, 사람이 바뀌어야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된다.'
인생의 성공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하나님의 축복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그릇이냐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극명하게 기록돼 있는 책이 사사기입니다. 사사기는 똑같은 틀의 사건이 7번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틀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많은 은총과 은혜를 입고 평강을 누릴 때 그들은 우상숭배를 하고, 온갖 죄악을 범하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냥 두시지 않고, 사랑의 매를 치시는데 바로 이웃해 있는 모압이라든지 미디안, 블레셋 등을 동원해서 치게 하십니다. 농사를 다 지어놓으면 외적이 들어와서 모두 다 탈취해 가버립니다.
이렇게 고통을 당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다 약속이나 한 듯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용서함을 바라고, 간절히 회개기도를 올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간구를 들으시고, 그때마다 사사를 보내서 외적을 막게 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고, 또한 풍성한 축복을 주셨던 이런 틀이 7번 반복됩니다.
이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공과 축복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그릇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 믿음과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지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무한한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마음이 하나님께 거짓되고 온갖 죄악과 불순종의 길로 간다면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심판과 재앙뿐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을 7번 반복해서 전해주는 것이 바로 사사기입니다.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부터 이미 택함을 받았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들을 치고 있을 때, 호렙산 아래 떨기나무에 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불 앞으로 가까이 갔을 때 하나님 음성이 거기서 들려옵니다.
"여기는 거룩한 땅이니 네 신발을 벗어라"
네 신을 벗어라 하는 말은 '너는 나의 종이다. 이제는 네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살게 하고 내가 너를 쓰겠다.'하신 말씀입니다. 모세는 미약하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았고,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광야에서 이끌어 저 요단을 건너 목적지인 가나안까지 가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한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모세를 그렇게 애지중지 사랑하시고, 또한 그를 그렇게 귀중히 쓰시던 하나님께서 바로 손에 닿을 듯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바로 눈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보산에서 하나님은 그를 그만 쓰시기로, 그의 사역에 종지부를 찍고 맙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명기 32:51 말씀을 보면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
이런 말입니다. "모세야, 너는 나의 종이다. 너는 너 자신을 드러내서는 않된다. 네가 살아서 안된다. 나의 거룩함을 들어내고 내 뜻을 너의 삶 속에 그 대로 내어놓아야 한다." 이것이 모세를 부르시고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비록 한 순간이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져버렸습니다. 백성들이 목이 말라서 모세를 원망하고 아예 어떤 이들은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던 와중에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이제 그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셨는데 그는 본성이 드러나서 반석을 두 번씩이나 치며 혈기를 부리고 백성들을 저주하는 말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민수기 20장 11절 말씀에 보면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그리고 12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게 하리라'
모세의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믿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 즉, 이 말씀은 이런 의미일 것입니다.
'옛 이집트에서 너의 혈기를 참지 못해서 맨손으로 반역자를 쳐죽이던 너의 자아가 다시 살아나고 말았구나. 나를 믿지 못하고 네가 화를 내고 너 자신을 드러냄으로 마치 네가 한 것처럼 네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것처럼 하여 나의 거룩함을 가리웠구나. 이것은 나의 종의 모습이 아니다.'
모세는 한 순간 옛사람의 모습이 나타났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종의 그 아름다운 직분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종은 자신이 죽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옛사람이 죽은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옛사람으로 돌아가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쓸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입니 다. 비록 안타깝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이루시기 위해서 새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새 땅은 새 사람 이 밟아야 한다.' 이것이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약 변화와 성장을 원한다면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맞는 말입니다. 만약 변화와 성장을 원한다면 과거에 대해서 'Good Bye'를 깨끗이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고 나를 버리고 옛 자아에서 새 자아로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성장도, 축복도, 번영도, 새 은총도 입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을 앞 둔 그 중요한 시기에 옛 사람으로 돌아감으로 인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질 못했습니다. 우리는 모세의 경우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가 옛사람의 모습을 갖고 있다면, 혹은 옛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우리 역시 약속된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지만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라 새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옛사람을 벗어버리기 바랍니다. 썩어져가는 옛사람의 습관과 성품들을 버리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법은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옛 사람을 죽이고 보혈로 씻기움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새 땅은 새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새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께 쓰임받아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성공의 비결들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 첫째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목표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출발점부터 분명한 목표설정을 확립시켜주십니다.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그리고 어떻게"해야 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본문 2절을 보십시오.
“이제 너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데리고 요단강을 건너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라”고 분명한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주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목표가 모호할수록 성공률도 모호합니다. 목표가 선명할수록 성공률이 선명합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가 분명해야 합니다. 목표가 없는 인생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인생의 중심적인 목표가 없는 사람일수록 사소한 걱정, 두려움, 어려움, 자기 연민에 사로잡힙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일수록 덧없는 공상과 동경과 상상 속에서 방황하는 유약한 삶을 삽니다. 사람은 가슴속에 분명한 목적을 품어야 앞을 향해 정열적으로 전진해나갈 수 있습니다.
다윗이 성공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참 간단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목표를 따라 살았기 때문에 성공자가 된 것입니다.
고아 출신 여인, 에스더가 인생의 역경 속에서도 위대한 성공자가 된 것 역시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성공자가 된 것 역시 그이 삶의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세계 선교라는 거대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표에 따라 살았기에 그는 성공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의 목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입니다.
이점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일수도록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목표가 큰 사람일수록 위대한 성공자가 됩니다. 꿈과 비전이 큰 사람일수록 거인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표를 깨닫고 그 목표를 비전으로 삼는 사람은 위대한 성공자가 될 수 있고 영적 거장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가 있어서, 그 목표와 비전을 향해 나아가 큰 일을 이루어갈 수 있는 영적 거장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로는 비전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목표 달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본문 3절부터 계속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미래의 성공에 대한 확신을 계속 심어주고 계십니다.
"여호수아, 너도 모세처럼 할 수 있어. 그러니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거듭 반복하십니다(7절, 9절). 원뜻을 살려 번역하면 "결단력과 확신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꿈과 비전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어떤 목표를 세우고 추진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공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의심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왜 의심하는 지 아십니까? 주로 세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 경험 때문입니다. 경험이 확신을 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의심을 갖게 합니다. 전에도 안되었는데, 그런 적이 없는데, 지난 번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도 실패했는데, 하면서 자신 없게 만듭니다.
둘째, 감정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결정할 때 자신의 기분에 의존합니다. '나는 그것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럴 기분이 아니다, 지금은 너무 피곤하다'는 등 감정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변명 때문입니다. 소위 자기 정당화와 합리화입니다. 실패자일수록 궁색한 자기 변명이 많습니다. '돈이 없어서, 때를 잘못 만나서, 그 사람이 잘못하는 바람에'라는 구차한 변명이 많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의심의 사람이 아니라 확신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문제를 보지 않고, 약속을 바라보며 확신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가슴 시원한 말씀으로 용기를 주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니라”(마 8:13)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의 비전과 목표에 대하여 분명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할렐루야!
네 번째는 정도를 걸으라는 것입니다.
TV 프로그램 가운데 성공시대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참 좋은 프로라고 생각하는데, 성공시대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외길을 걸은 사람들입니다. 정도를 걸은 사람들입니다.
어느 것이 잘된다고 하니까 이것하다가 또 다른 것이 잘된다고 하니까 하던 것 때려치우고 그것 하는 식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 그 하나에 목숨을 걸고 정도를 걸은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옛날 그리스의 어떤 청년이 현자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으러 왔습니다. 그 때 그 현자는 참 간단한 일을 시켰습니다. 큰 대접에 물을 가득 채운 다음에 그 물그릇을 들고 동네를 한바퀴 돌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그가 돌아오자 현자는 젊은이에게 물어봤습니다. '자네가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무엇을 보았는가?'
청년은 ‘물을 엎지르지 않으려는 집중적인 노력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현인이 말했습니다. "자네의 인생을 그처럼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면 성공할걸세."
진정으로 성공자가 되고 싶다면 한눈 팔지 말고 정도를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는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정도를 걸으라는 것입니다. 7-8절을 표준새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오직 너는 크게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정도를 걷는 만큼 오히려 성공이 쉽습니다. 그렇게 될 때 성공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국가차원에서 시행한 운동이 있습니다. 소위 "삼관개혁(三觀改革)" 운동입니다.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의 개혁인데, 이러한 삼관의 개혁이 없이는 나라의 경제 정치 개혁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내면의 개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얼마나 성과를 이루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야말로 신앙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정도를 걷는 것입니다. 말씀의 정도를 걷는 것입니다. 말씀을 다 지켜 행하는 것이요,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8절).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성경적인 만큼 성공적이 될 것입니다.” 멋있는 말이죠? 따라해보세요. “내가 성경적인 만큼 성공적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수아 1장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거듭 확신시켜주십니다. 5절과 9절입니다.
그러니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또 결코 겁먹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의 비결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절대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축복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능력과 힘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5절이 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공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성공은 내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면 그 아무 것도 나의 성공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만큼 나는 무적의 용사가 될 것입니다.
둘째는 함께 하심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여 주시고 지켜 보호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광야 길에서 모세와 함께 하셨듯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여주실 것을 약속해주십니다.
세번째는 형통함의 복입니다. 7-8절이 그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형통의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을 의지하는 만큼 크게 번영하였으나 롯은 자신의 잔머리를 굴리다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신뢰하였던 다윗은 갈수록 흥왕하는 성공자가 되었으나 사울 왕은 하나님을 떠나 권력과 재물을 의지하므로 점점 쇠퇴하는 처참한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성공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주께서 친히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수아가 받은 축복입니다. 여호수아 6:27에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의 명성이 온 땅에 두루 퍼졌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러한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공은 환경이나 배경에 있지 않습니다. 성공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새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목표를 분명히 하십시오.
비전에 대한 확신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만큼 여러분의 성공은 보장됩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목표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비전에 대한 확신을 가지십시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정도를 걸으십시오.
그리 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과 돌보심과 함께 하심의 은혜가 여러분들을 성공자가 되게 할 줄로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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