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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마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1967 추천 수 0 2013.04.04 23: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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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6:16-18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http://www.john316.or.kr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마태복음 6장 16-18절)

 

 < 외형도 중요합니다 >

 “사랑하니까 떠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지만 계속 같이 있으면 피해나 부담을 주니까 조용히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 태도가 좋게 말하면 배려하는 태도일 수 있지만 때로는 그런 태도가 성숙과 발전을 막습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사랑을 지속시켜줄 결혼과 같은 틀로 들어가야 합니다. 애인 관계로만 있으면 갈등이 생길 때 쉽게 떠날 수 있지만 결혼하면 갈등이 생길 때도 일단 결혼이란 틀 안에서 변화를 모색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남녀의 반이 나뉘면서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이성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서 여자들은 다 천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어쩌다 여성을 만나면 최고로 대접해주었습니다. 학생 때는 복싱과 격투기를 해서 남자들끼리의 실제 싸움에서는 져본 적이 없지만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했습니다. 그처럼 최고로 위해줄 마음은 준비되었는데 최고로 위해줄 대상은 못 만났습니다.

 청소년 때 예쁜 여학생을 보면 마음은 있어도 대시는 못했습니다. 거절당하는 것이 싫기도 했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싫은데 계속 따라다니면 얼마나 더 싫겠습니까? 그래도 계속 대시하면 혹시 좋아질 수도 있었지만 상대가 먼저 좋아하지 않으면 대시조차 안했습니다. 이성이 처음에는 조금 빼는 제스처도 취할 수 있는데 그런 반응을 보면 바로 물러서니까 항상 이성교제의 본론으로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얘기는 어제 아내의 결재를 받고 하는 얘기입니다. 신학교 때 저를 잘 봐준 케렌(Keren)이란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피부가 백인 중에도 유난히 하얗고 키는 저보다 약간 컸지만 슬림한 체형이었고 시골 출신이라 워낙 순수해서 남자를 잘 몰랐습니다. 그녀는 나약(Nyack) 대학에 다니고 저는 대학원에 다녔습니다.

 대학원 1년차 후배인 그녀의 남동생 케일럽(Caleb)을 통해 알았는데 볼 때마다 호감이 갔습니다. 영어도 완벽하게 알아듣도록 천천히 말했고 저의 이름도 남들은 대부분 편하게 ‘행유(Hangyu)’라고 발음했는데 그녀만은 정확하게 ‘한규’라고 발음할 정도로 배려심이 남달랐습니다. 그 뒤로부터 둘 다 신학생이니까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채 2년간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녀는 대학교 도서관을 두고 거의 매일 대학원 도서관으로 와서 지냈고 얼마나 착한지 제가 어떤 얘기를 하면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녀도 학기가 끝나서 남미 단기 선교를 2개월 간 갔다 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갔다 와서 만났는데 얼굴이 타서 약간 붉어졌습니다. 거의 매일 보다가 2개월 만에 보자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녀의 붉어진 얼굴로부터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면서 가장 기쁜 선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 선물은 결혼 프러포즈였습니다.

 프러포즈를 결심한 날 아침에 LA에 계신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는 전화를 했습니다. 프러포즈에 당연히 “예스!”란 대답이 나올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못하시는 어머님은 시큰둥하게 여기셨지만 영어를 잘하시는 아버님은 “오케이!”를 하고 오히려 백인 며느리가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는 눈치였습니다. 아버님의 허락을 받았으니까 이제 멋지게 프러포즈를 하고 “예스!”란 대답을 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그날 저녁에 그녀를 불러내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했습니다. 식사 후 차를 몰고 근처 공원으로 가서 공원 벤치에 앉아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결혼해줄 수 있냐?” 그리고 매너 없게도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한국으로 같이 가자! 둘째, 한국어를 배워라!” 프러포즈를 받는 입장에서는 어떤 조건을 걸 수 있지만 프러포즈를 하는 입장에서 어려운 조건을 건다면 얼마나 매너 없고 교만한 태도입니까? 여자를 깊이 사귀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매너 없는 태도가 나온 것입니다.

 그때 금방 나올 줄 알았던 “예스!”란 대답은 없고 저의 손을 잡고 큰 눈으로 잠시 동안 저만 빤히 쳐다봤습니다. 약간 어색했습니다. 그때 바로 “예스!”란 대답이 나오지 않은 것이 실망되어서 “깊이 생각해보라! 늦었으니까 그만 가자!”고 일어서서 그녀를 기숙사에 바래다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뉴욕 업스테이트에 있던 신학교 기숙사에서 나와 뉴욕 시내에 방 하나를 얻어 이사했고 얼마 후 귀국했습니다.

 그 후로 그녀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부담을 주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쉽지 않은 조건을 내걸고 당장 반응이 없다고 쉽게 실망해버린 제가 더욱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배려하는 태도가 아니라 매너 없는 태도라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안 되고 ‘사랑을 담는 틀’이 있어야 사랑이 유지되는 스타일입니다.

 어떤 연인은 사랑하는데 그냥 살면 되지 결혼이란 틀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틀이 없는 관계는 금방 깨질 가능성이 큽니다. 적어도 저 같은 스타일은 금방 깨집니다. 인간관계를 하다 보면 사랑하는 관계라도 갈등이 생길 수 있는데 그때 남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고 조용히 훌쩍 떠날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결혼하면 쉽게 떠나지 못하고 지지고 볶여도 그 틀은 지킬 스타일이기에 저처럼 스스로 잘 물러나는 사람에게는 잘 물러나지 못하게 하는 외적인 틀이나 울타리가 꼭 필요합니다.

< 외식을 멀리하십시오 >

 어떤 것이든지 내용이 중요하지만 외적인 틀도 필요합니다. 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내용이 없으면 외식이 됩니다. 요즘 가장 큰 문제는 외형은 있지만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외형은 있지만 내용이 불순물인 것도 문제입니다.

 요새 남의 설교들을 모아 대량의 스팸메일을 보내어 광고한 후 그 남의 설교 자료들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후진국도 아닌데 아직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조만간 그런 일이 제지되면서 그 동안 번 것 이상으로 벌금을 맞아 다 토해내게 될 것입니다. 미국은 그런 일에 무섭게 벌금을 물려서 그런 컨닝 인생을 차단합니다. 약 백만 명이나 되는 변호사들이 각 분야에서 활동하니까 저작권이 얼마나 존중됩니까?

 어떤 유명한 세미나 교재가 있습니다. 그 교재는 상당수가 다른 교재를 짜깁기한 내용이기에 저작권에 걸릴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 교재를 팔고 세미나 회비를 거둬서 매년 몇 십억 원의 막대한 수입을 올립니다. 그러나 카피라이트(저작권)를 파헤치는 카파라치에 의해 법망에 걸리면 이제까지 번 것을 다 벌금으로 토해내야 합니다. 그래서 마치 수입이 없는 것처럼 강사가 말합니다. “매년 1억씩 우리 교회가 이 세미나를 위해 지원합니다.”

 희한한 계산법입니다. 몇 십 억 원의 수입은 수입대로 따로 잡아 금고에 넣고 그와는 전혀 별개로 따로 1억 원을 헌금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대단한 헌신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막대하게 남는 장사입니다. 그렇게 수입이 많은 것을 알면 비난도 크게 받고 더 나아가 저작권 문제로 그 동안 번 것을 다 토해낼 수도 있으니까 수입 얘기는 빼고 헌금 얘기만 하면서 그 상황을 포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기도원에서는 공짜로 숙식을 제공한다고 하며 목회자 초청 집회를 엽니다. 겉으로 보면 큰 헌신 같고 설교도 은혜가 됩니다. 원래 극단적인 헌신 설교는 은혜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처럼 헌신하는 사람은 순수하게 은혜로 하지만 헌신 설교로 돈을 벌고 자기 왕국을 키워가는 장사꾼은 따로 있습니다. 특히 극단적인 헌신 설교는 바른 믿음에서 이탈한 이원론적인 설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단시비에 잘 빠지니까 공짜로 숙식을 제공한다면서 목회자 초청 집회를 여는 것입니다. 참석 목회자들을 우군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집회에 참석하면 첫째 날은 극단적인 헌신 설교로 은혜를 끼칩니다. 둘째 날은 돈 얘기를 조금 비칩니다. 셋째 날은 노골적으로 돈 얘기를 합니다. “성도도 헌신하는데 목회자가 공짜로 은혜를 받기만 하면 되느냐?” 그처럼 공짜로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초청해놓고 “공짜의식을 가지면 되겠느냐?”고 면박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목회자들은 대개 은혜를 아는 분들이기에 그들 중에 일부는 크게 헌신합니다. 결국 공짜로 숙식을 제공한다는 그 집회는 우군도 얻고 돈도 버는 일석이조의 남는 장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순수하지 못한 행위 및 집회들이 은혜를 추구하는 순수한 사람들을 울리기에 예수님은 그렇게도 외식을 미워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외식적인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는 남만 손가락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너무 심한 외식적인 행위들은 영혼과 가정을 망가뜨리고 한국 교회를 망가뜨릴 수 있기에 겉은 그럴듯하지만 속은 썩은 그런 외식적인 모습 및 집회들은 힘써 멀리해야 합니다.

< 금식할 때 주의할 것 >

 본문 말씀은 외식적인 금식을 강력한 경고한 말씀입니다. 금식 자체는 유익이 많습니다. 병들면 먹는 것보다 안 먹는 것이 좋습니다. 정신적 충격을 받을 때 식음을 전폐하는 것도 괜한 투정이 아닌 인체보호본능 때문입니다. 병들 때 식욕이 없는 것은 병든 비상상태에서 음식물이 많이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즉 음식 소화를 위해 위장으로 보낼 혈액을 급히 병든 곳으로 보내려는 인체의 의사표시가 식욕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금식은 타성에 빠진 신체를 활성화시키는 충격요법입니다. 금식하면 인체는 비상상태를 선포하고 각종 호르몬 분비가 활성화되면서 인체의 저항력과 자연치유력이 크게 증대됩니다. 또한 오랫동안 축적된 노폐물이 배출되고 잉여물질도 에너지로 전환됩니다. 특히 위장과 혈관 등에 붙은 불순물이 제거되어 소화기와 순환기 질환에 놀라운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결국 금식은 무분별한 식생활과 운동부족 등으로 약해진 현대인의 심신을 새롭게 하려고 하나님이 숨겨두신 비장의 카드이고 최고의 보약입니다.

 물론 금식을 맹신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해야 기도가 응답된다고 하지만 성경에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금식을 남용하지 말고 바르게 해야 합니다. 금식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슬픈 기색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16절). 둘째,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16절). 셋째, 얼굴을 깔끔하게 단장해야 합니다(17절). 넷째, 은밀하게 하나님께 보여야 합니다(18절). 금식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위한 육신의 고행입니다. 그래서 금식을 비롯한 모든 선행은 은밀하게 해야 하나님이 보고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

 사람들은 선을 행하면 대개 감사의 인사를 기대하고 감사가 없으면 부정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할 마음과 능력도 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선행을 잊게 해달라는 기도도 하십시오. 선을 행하고 마음이 더 옹색해지면 안 됩니다.

 큰일을 해도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해야지 “내가 큰 일을 했다!”고 자부심을 가지면 오히려 영혼에 독이 됩니다. 선행을 통해 칭찬을 얻거나 복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그저 좋아서 과시하지 않고 은밀하게 선을 행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금식도 신앙과시의 수단이 되면 안 됩니다. 금식의 가장 큰 목적은 ‘교만과 자랑을 빼기 위한 것’인데 금식하고 마음이 높아지려면 차라리 금식하지 않고 겸손한 것이 더 낫습니다.

 어느 날, 수도원의 금식기간에 모두가 금식할 때 주방장이 성 프랜시스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어제 수도사 중에 누가 주방에서 죽을 훔쳐 먹었습니다.” 그러자 수도사들이 웅성거렸습니다. “누가 금식 기간에 그랬는가? 반드시 색출해내자!” 그때 프랜시스가 말했습니다. “주방장! 그 죽을 가져와라. 우리 같이 먹자.” 수도사들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고정하세요. 왜 그러세요?” 그때 프랜시스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자기 의를 내세워 죽 먹은 사람을 정죄하다가 교만에 빠져 멸망할까 두렵다. 우리가 다 먹고 하나가 되자!”

 자기 의로 남을 정죄한다면 그 의를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작은 은혜는 ‘분리해내는 은혜’지만 큰 은혜는 ‘붙들어주는 은혜’입니다. 어떤 성도는 조금만 은혜를 받아도 남을 잘 정죄합니다. 그러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잘못은 저의 기도 부족 때문입니다.” 그처럼 정죄하는 입을 닫고 남의 허물을 자신이 뒤집어쓰는 것이 깊은 영성입니다.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외식이 아닌 그런 영성을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40일 금식기도를 했다는데 평소에 거짓말을 참 잘합니다. 그렇다면 40일 금식기도를 했다는 거짓말인들 못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3주 금식한 후에 총회에 와서 권모술수를 부립니다. 그가 왜 금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몇 명의 목사님이 제주도에 갔다가 <러브랜드>란 곳을 지나쳤습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 궁금해서 가보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때 가장 적극적으로 가보자는 분이 바로 그 직전에 21일 금식한 목사님이었습니다. 결국 은혜가 안 된다고 안 갔지만 그처럼 사람에게는 억제하기 힘든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 본능의 통제와 자기 비움을 위해 하는 금식을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 바리새인의 금식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중에 금식을 밥 먹듯이 합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또한 기독교의 40일 금식기도는 더욱 대단한 일입니다. 문제는 그런 금식을 통해 자아가 죽기보다는 오히려 자아가 팽창될 때도 많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여러 금식일을 제정해 죄를 슬퍼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금식의 참 정신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것입니다.

 종교의 본질은 ‘신적인 형식의 시행’에 있지 않고 ‘신적인 형상의 회복’에 있는데 형식적인 금식이나 구제나 기도는 오히려 교만의 독을 마음에 퍼뜨립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사야 58장을 보면 이사야는 진정한 금식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 세상을 돌보는 것이고, 또한 권력과 금력으로 억압 속에 사는 사람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또한 이사야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굶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사 58:6-7). 결국 진짜 금식은 ‘굶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소외된 영혼을 귀하게 대접하고 배고픈 형제와 이웃을 돕고 거룩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나가는 사명자와 선교사를 돕는 삶이 바로 진짜 금식입니다.

 하나님은 추수 때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위해 밭의 한 모퉁이를 남겨두라고 했습니다. “나는 밭이 없으니까 그 계명과 상관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누구에게나 마음, 물질, 시간 등의 밭은 있습니다. 그것들의 한 모퉁이를 필요한 사람의 몫으로 남겨놓는 삶이 진짜 금식하는 삶입니다.

 요새 능력과 은사를 불나방처럼 추구하다가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능력을 받았다고 초심을 잃고 교만해진다면 차라리 능력을 안 받고 겸손한 것이 낫습니다. 살면서 너무 외적인 것에 끌리지 마십시오. 금식기도나 능력이나 은사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말씀과 기도로 무장된 은밀한 나눔의 영성은 성도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영성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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