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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13: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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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2000년대 설교 |
13장 1절-16절.
1절-16절: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우리 예수님을 믿는 기독자들은 일평생을 싸우고 가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어떻게 싸우느냐? 먼저 자기가 자기와 더불어 싸우고. 인간 자기 속에는 두 마음이 있어가지고 늘 싸웁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볼까, 또는 세상 소원 목적으로 살아볼까’ 하는 그 두 마음이 들어있어서 항상 싸웁니다. 이렇게 자기와 더불어 싸우고.
그런데 일반사람들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싸울 줄을 모릅니다. 자기 속에 두 마음이 있는지 세 마음이 있는지 잘 몰라요. 무조건 생각나는 대로 산다 그 말이요. 그렇지만 기독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찾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마음으로 싸운다 그 말이요.
이렇게 싸우고, 또 자기 몸 밖에 있는 것과 싸워야 되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살아갈 때에 자기 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이 아닌 세상 것을 소원 목적하고 살아가는데, 자기 몸 밖의 이런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공격을 하고 들어온다 그 말이요. 이렇게 자기에게로 공격을 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그들의 악한 생각들이 내 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싸워야 된다.
그러니까 자기 몸 안의 거짓된 자기 마음 즉, ‘세상에서 돈 많이 벌어서 부자로 한 번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자기 속에 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 마음속에도 그 마음이 들어있다 그 말이요. 그런데 다른 사람 역시도 그와 말을 하면 자기 속에 있는 그 마음의 그 질과 맞기 때문에 그 자기는 상대에게 여지없이 공격을 당하고 만다.
이런 생태를 일반적으로 볼 때는 ‘둘이 마음이 같다’ 그렇게 보는 거지만 우리가 신앙정신을 가지고 보면 ‘그 사람은 공격을 당했다’ 그렇게 보는 겁니다. 우리는 공격을 당하면 안 되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자기와 더불어 싸우고, 또한 자기 몸 밖에 있는 세상정신이 내 속에 못 들어오도록 싸워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이 싸움을 할 때 제일 좋은 방법은 수비전보다도 공격전이 제일 좋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지식적인 진리의 옳은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공격을 해서 이겨야 합니다.
이 때 상대방이 하나님의 옳은 것으로 공격을 받고 하나님의 그 옳음에 항복이 되면 그 사람은 산다 그 말이요. 이렇게 되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자’ 이런 헛된 꿈을 꾸지 않고 하나님의 옳은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기 때문에 한 세상을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갈 수가 있다.
이제 우리가 성경을 봤지만 이 성경은 역사를 가르칠 목적이 아니고, 또한 성경을 구구절절이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 그걸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싸움을 가르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싸움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볼 때에 큰 죄이던 작은 죄이던 죄의 대가는 사망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사람을 죽이는 죄가 더 크지요.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말 한 마디 하는 거나 사람을 죽이는 거나 죽는 거는 매 일반이다 그 말이요. 하나님 앞에 죄를 받는 거는 같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죄 하나 걸리게 되면 전부 다 걸리게 돼버린다. 우리가 잘 알기를 하나님의 십계명 중 하나를 못 지키게 되면 다 못 지키게 되는 그런 원리와 같다 그 말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 라고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부자청년이 그랬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 그런 사람들도 있다 그 말이요. 지금도 많이 있지요?
만일 그들의 말대로 그런 것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하면 예수님의 구속의 공로는 어디다 써먹느냐 그 말이요. 예수님의 구속이 무효가 돼버린다 그 말이요. 그리고 우리가 성경으로 들어가서 볼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오른 쪽에 못박힌 강도가 구원을 얻었거든요. 그렇지요? 그러면 이 강도가 언제 안식일을 지켜서 구원을 얻었느냐 그 말이요. 구원 얻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그 점을 꼭 기억해 두시고,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서 삼촌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식구가 불어나니까 양치는 목자들끼리 서로 싸운다 그 말이요. 그래서 아브라함 삼촌이 조카에게 먼저 우선권을 주지요. 그렇지요? ‘네가 좋은 대로 선택을 해라.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나이 드신 삼촌이 조카에게 우선권을 줍니다.
그 때 눈치가 있는 조카 라면 ‘아무렴 그럴 수가 있습니까? 먼저 삼촌부터 선택을 하십시오. 그런 후에 제가 선택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돼야 되겠지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아브라함 삼촌은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그 분쟁을 해결하기를 원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삼촌의 목자와 조카 롯의 목자와 싸우는 이것을 우연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섭리로 보자 그 말이요. 11절에 보니까 롯은 어디를 택했지요? 요단들을 택했습니다. 그 때 보니까 아마 요단 들이 천국처럼 보였던 모양이요. 그리고 가까이에 소돔 고모라성도 있었지요.
우리는 여기에서 눈에 안 보이는 싸움을 볼 줄 알아야 되겠는데, 롯은 여기서부터 지고 들어간 겁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삼촌 아브라함은 지금 이 싸움에서 승리를 하고 들어가는 겁니다. 영인 성장적인 면에서 이기고 들어간다 그 말이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이 싸움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섭리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유익을 주려고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인간이 볼 때는 손해가 나고 뭐 이런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유익을 주려고 하신다. 그 점을 명심하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걸 인간 대 인간 편으로 보면 서로 간의 싸움이지만 그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는 신앙이 좋은 자에게 좋은 것을 안겨주시려고 목자들끼리 싸움을 붙인다 그 말이요.
그래, 이 싸움에서 롯은 소돔 고모라 쪽으로 선택을 했고, 아브라함은 어느 쪽으로 선택을 했지요? 헤브론 골짜기를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결말이 났습니다. 이미 결말이 났어. 하나님께서 뭐라고 그랬지요? 조카 롯은 그 기름진 넓은 요단 들판을 향해서 떠났고, 아브라함은 양떼들을 데리고 산골짝으로 들어갔다 그 말이요. 그러니 인간 편에서 볼 때는 아브라함이 불리하지요. 엄청나게 불리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그러지요? ‘동서남북을 다 바라보라.’ 그러니까 동서남북이 뭐요? 요단 들판까지 사방이란 말이요. 그것을 다 누구에게 주겠다? 아브라함에게 주겠다.
그러니까 승자 같이 보이는 롯은 물질을 차지했지요. 그렇지요? 인간 편에서 그렇게 보인단 말이요. 그리고 패자 같이 보이는 아브라함은 돌짝밭으로 선택을 했다 그 말이요. 하지만 우리가 결과를 미리 내다보니 롯은 도적맞을 자로 됐어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차지했지요? 동서남북을 차자했지요? 그 선택이 자신에게 축복을 안겨주지요. 이게 무슨 뜻인가 하니 천국을 점령을 하고, 세상까지 점령을 하고. 즉 주권을 차지했다 그 말이요.
하나님께서 뭐라고 했지요? ‘네가 종과 횡으로 행해봐라.’ 즉 ‘네가 대신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고, 그 다음에 인인관계 즉, 횡적 관계를 바로 가지고 살아봐라. 그러면 네가 밟는 곳을 내가 다 너에게 주겠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차지했지, 또한 천국을 차지했지, 그 다음에는 세상을 차지했지. 주권을 다 차지했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싸움에서 아브라함 자신 속에 먼저 하나님을 선택한 거지요. 그렇지요? 아브라함은 신앙 믿음 옳은 진리를 마음속에 차지한 거고, 롯은 자기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차지한 겁니까, 세상을 차지한 겁니까? 세상을 차지했지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고, 롯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습니다. 또 조카 롯과 아브라함 삼촌과의 대화적인 싸움에서 아브라함은 빼앗긴 같으나 다 가지게 된 거고, 롯은 다 가진 자 같으나 전부는 빼앗기게 됐다 그 말이요. 이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이게 신앙의 세계라.
노아가 방주를 짓기 전에는 온 세상은 세상사람들의 것으로 보여졌으나 방주를 지은 후 40일간의 홍수 후에는 온 세상은 노아의 것이 돼버렸단 말이요.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싸움을 알아야 된다. 어느 마음이 자기 속에서 세력을 얻고 이기느냐? 어느 마음이냐? ‘세상 물질을 탐하는 쪽이냐, 진리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쪽이냐?’ 그 두 마음이 자기 속에서 싸울 때에 어느 쪽을 선택하던 자기에게는 반드시 선택한 그 쪽으로의 결과가 떨어진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그와 같은 싸움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두 마음이 일어날 때에 영의 눈을 가지고 어느 쪽 마음을 이겨야 될는지를 잘 알아서 그 싸움을 잘 싸우고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에게도 넘어가지를 않습니다.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선택했고, 조카 롯은 넓은 들판을 차지했습니다. 오늘날 세상 많은 사람들은 돈과 물질과 명예와 세상 것을 차지하느라고 분주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그러한 신앙의 마음을 가지고 먼저 하나님을 차지하고, 진리를 차지하고 이렇게 나갈 때에, 또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그 사는 자체가 정복성을 띠고 있는 것인고로 ‘밟는 것마다 너에게 주리라’ 라는 말씀이 나에게 응할 줄 압니다. 이것은 세상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제 저희들이 세상에게 돈에게 물질에게 정복을 당하지 말고 진리로서 사랑으로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정복해 들어가는 훌륭한 정복자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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