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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3:34-35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2.10.24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요13:34-35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삐딱이들’14-


공관복음서의 마지막 만찬에 해당하는 본문은 요한복음에서 13-17장입니다. 지금까지 요한복음의 내용이 그랬지만 여기서도 요한복음은 여타 복음서와는 다른 분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이야기는 해방 절 전날, 그러니까 다른 복음서들이 마지막 만찬이라고 하는 그날, 식사 중에 있었던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그 유명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이른바 세족식이 있던 날의 이야기입니다.

13:2에 보면 배반의 시간이 임박했다는 정보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마지막 만찬 직후 배반이 있었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이 대목에서 예외 없이 성찬례의 원형으로 본문을 읽습니다. 가장 오래된 복음서인 마가복음에는 이 대목이 마치 거사를 앞둔 피의 예식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리고는 곧 제자의 배신이 있고, 대중의 소란을 염려한 산헤드린의 불체포 협의를 번복하고 대제사장은 사병을 급히 파견하여 예수일당의 소탕작전을 수행합니다. 이 때 주모자 예수가 체포당한다는 이야기가 담담히 전개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은 수수하게 성찬례의 기원이라는 의미로 이 사건을 전달합니다. 마가복음서에서와 같은 긴박한 정치적인 현장성이 상실된 것입니다. 아마도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마가복음서의 그 장면보다 마태나 누가복음서의 마지막 만찬이 갖는 이해를 더 받아 들였던 모양입니다. 마가복음서보다 앞서 기록된 바울의 표현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치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고전11:23-26-

마가복음은 이러한 일반적인 이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한복음은 마가도 아니고, 마태나 누가의 관점도 아닌 다른 관점에서 성찬례를 해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성찬례의 말씀은 마지막 만찬의 맥락에서 멀어지고, ‘서로의 것을 나눔으로써 굶주림으로부터의 벗어남’ 이라는 새로운 맥락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가복음은 마지막 만찬이 정치적인 격변의 상황으로 기록되고, 마태나 누가는 단지 의식화나 제도화의 측면으로 마지막 만찬을 받아들이는 반면에 요한복음은 아주 실제적인 생활인 ‘나눔’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앞서도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요한공동체는 예수의 정신이나 삶이 ‘예전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마지막 만찬의 대목도 요한공동체는 ‘성만찬’이라고 하는 예전으로만 지켜지는 것을 거부하고 실제적인 삶의 실천적 덕목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만찬은 세족의 행위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때에도 세족은 단지 예식이 아니라 실제적인 섬김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세족’이 예식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13:14에 나오는, ‘나처럼 여러분도 서로의 발을 씻어주시오.’라고 권고하신 것을 보세요. 이것은 이 행위를 반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느닷없는 행동의 교훈을 간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새 계명’이 그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일련의 예수행동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새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요13:34-35절이 그것 아닙니까?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이 평범해 보이는 말이 어떻게, 왜 ‘새 계명’이 되는 겁니까? 그동안 유대교와 유대인들은 사랑을 가르치지 않았단 말입니까? 혹은 이 요한복음의 본문이 제자들에게 전한 교훈이니만큼, 후대에 교회들이 사랑보다 다른 교훈을 우선시해서 강론했다는 말일까요?

그런데 요한복음 13-17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새 계명이라고 했던 ‘사랑 하라’는 게 왜 선포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은 세상의 ‘증오의 대상’이 되어 있었습니다(15:18, 17:14). 박해를 당했습니다(15:20). 추방당하기가지 했습니다(16:2). 곧 요한공동체가 유대교의 고강도 정체성의 정치로 인해 회당으로부터 이질적인 대상으로 낙인찍히고 폭력적인 배제를 당했던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요한공동체만 이런 힘겨운 일을 당했을 까요? 유독 요한공동체만 반 유대교적인 예수운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 마태, 누구는 요한공동체와는 달리 유대교적인, 유대교의 신경이 거슬리지 않을 만큼만 예수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공동체를 제외한 여타의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운동의 신앙공동체이지만 유대교적인 제도, 계급, 사회해석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 공동체는 애초에 그게 못마땅한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만 모진 고초를 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 공동체는 예수운동이 바로 되려면 마땅히 그런 일을 감수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게 그들에겐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보세요.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어 쫓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죽이는 사람마다 자기네가 하는 그러한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올 것이다.” 요16:2

이 구절에서 요한공동체를 회당에서 추방한 이들이 단지 회당 당국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성전이 로마에 의해 파괴되자 바리새파들을 중심으로 유대교 복권운동이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 발흥된 예수운동의 단체들도 회당에서 유대교들과 함께 신앙조직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건물을 여러 교회가 다른 시간대 별로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았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요한공동체만 유독 내 쫓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너무 지나치게 반 유대교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너무 지독한 예수운동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게 그들에게는 꼴사나웠던 것이고, 그래서 거기서 쫓겨남을 당하게 되고 모두의 적이 된 것입니다.

당시의 회당은 단지 종교의 중심체 구실만을 한 게 아닙니다. 유대사회의 회당들은 로마제국의 중심과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유대종교를 유지하는 대신 로마정권에 대해서 반역을 하거나 항거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협약사항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회당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곧 사회에서의 추방을 의미합니다. 요한 공동체가 겪어야 했던 배제와 추방의 현실이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회당에서만 증오의 대상이 된 게 아니라 세상에서도 증오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회당에서만 폭력을 당한 게 아니라 세상에서도 그들은 폭력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완전한 [왕따] 집단이었던 것입니다. 폭력에는 재산과 자격의 박탈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들은 사실 종교와 세상에 의해서 살해될 위기를 가득 끌어안은 상태였고, 실제로 살해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빛나는 예수 정신이 뭘까요? 그게 바로 ‘서로 사랑’인 것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서로 사랑하라’는 말과 요한공동체가 직면한 상황에서의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그 격이 엄청 다릅니다. 위기를 맞았으니 ‘너희들 끼리 서로 사랑해서’ 이 상황과 고통을 이겨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삶의 위협 앞에서 너를 그렇게 하는 그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새 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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