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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15:2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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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바울의 사역 원리
롬 15:22-33
07. 10. 14, 오전
요즘 사람들은 전도가 안 된다. 힘들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옛날에도 복음 전파는 어려웠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듯, 옛날 사람들도 여가를 즐겼습니다. 시대마다 복음 전파에 대한 장애물들이 독특하게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복음전파가 힘들고 어렵다고만 말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전도가 힘든 시기에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의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역 원리를 오늘날 적용시켜야 할 것입니다. 힘들고 안되는 이유만 나열하지 말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복음 전파에 힘을 썼던 사람들의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그 원리를 내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최대 명령인 온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의 사역 원리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그는 전도에 관한 한 노하우가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의 노하우는 단순한 기교가 아닙니다. 복음 전파에 일생을 바친 후에 나온 전도의 원리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처럼 복음 전파가 어려울 때에 그의 사역 원리를 배워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따라가다 보면 바울을 능가할 수 있는 전도 원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 다시 한번 사도 바울의 전도 자세를 생각해 보고, 그의 몸에 흐르고 있는 사역의 원리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과 같은 복음전파자가 된다면, 우리 역시 바울과 같은 정신으로 전도를 하게 되어 복음이 힘있게 전파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굴 닮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무기력한 삶을 사는 사람한테서는 무기력이 나오고, 탱크처럼 밀고 가는 사람에게서는 추진력이 나옵니다. 다정다감한 사람한테서는, 부드럽게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웁니다. 우리가 1세기의 사도 바울에게 가면 복음 전도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을까요? 그의 사역의 원리가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1. 철저한 계획. :19-24절
일반적으로 전도하면 무계획적이고 무원칙적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전도를 무원칙적으로 하면 성공할 확률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더 많습니다. 어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전도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전도는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해야 합니다. 준비 없이 전도 나가면 무장 없이 전투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무장 없이 나간 전투는 승리를 하지 못합니다. 패배의 아픔과 고통만 남습니다. 그래서 전도는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준비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눅 14:28)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일할 때에 망대부터 세운 사람이 있습니다. 망대부터 세우면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일이 빨리 진척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망대는 필시 무너집니다. 망대를 세우려면 건축비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망대를 준공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계산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기초를 파고 공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턱없이 적은 비용을 갖고 있으면서 높은 망대를 짓다가는 부도가 납니다. 결국 짓지 아니한 것만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일을 할 때에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획이 없이 일하다 보면 중간에 엉뚱한 일이 터집니다. 그러면 그 일을 처리해야 하고, 결국에는 계획 자체가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복음을 전파하다가는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복음 전도를 살펴보면 철저하게 계획했다는 점을 금방 느낍니다. 로마서 15:19-24절을 보십시오.
여기에는 바울의 전도 일정표가 나옵니다. 우리는 그의 일정표에서 전도 계획이 세밀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우선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지금의 그리이스) 지역까지 두루 복음을 전합니다. 또한 그는 이전부터 로마에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로마 선교에 대한 정보도 풍부했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로마는 이미 복음이 전파된 곳이었습니다. 로마서 1:8절에 보면, 로마인의 믿음이 이미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15). 복음으로 무장되지 못한 사람들이 로마 성도들 가운데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들에게 복음을 다시 전하고, 또 복음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겸 로마행을 준비합니다.
로마 전도 계획이 자주 막힌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두루 복음을 전파하다 보니 로마에 갈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는 로마만이 아니라, 스페인지역까지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서바나(스페인) 지역으로 갈 때에 로마에 들리겠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예루살렘- 터어키지역- 그리이스-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이어지는 전도 여행을 준비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전도하기 위해 철저하게 일정을 준비했습니다. 준비된 자세로 전도에 임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전도할 때에 어떻게 전도합니까? 기도하고 나가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도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비율은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철저한 준비도 아주 중요합니다. 무작정 나가는 것보다는 분명한 대상자를 정해서 찾아가는 것이 훨씬 바람직합니다. 또한 한 사람의 대상자만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자꾸 복음을 전파할 대상자를 넓혀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지역 전도를 계획했다면, 오늘날의 지역교회는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차근차근 전도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 대상자를 차츰 넓혀가다 보면 어느 덧 그 지역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2. 협력자를 발굴함. 24절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 외에 로마의 교회를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는 2가지입니다.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 외에 또 하나는 성도와의 교제입니다. 성도와 교제를 하여 서로 위로를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마 교회 역시 황제숭배의 압력을 받고 있었기에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고통을 들으면서 바울은 그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로마 교인 역시 사도 바울의 고통을 들으면서 위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복음 안에서 서로 교제하기 위해 만나고 싶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복음 전파를 위한 지지자를 얻기 위해 만나고 싶었습니다. 24절 후반절에서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는 말은 로마 교회가 바울의 스페인 선교에 동참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로마교회에서 바울 선교사를 파송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결코 혼자 힘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독선주의자가 아닙니다. 바울의 선교 여행에는 그를 돕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는 바나바와 실라와 마가 요한이 나옵니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그를 돕는 사람의 명단이 나옵니다. 무려 34명이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을 위해 목이라도 내어놓을 정도로 열렬하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친척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많은 동역자들을 통해 바울의 전도 전략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동역자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로 동역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로 동역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지역을 안내하는 일로 동역을 했습니다. 여려 형태의 동역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도움을 주었던 이들이 전부다 온순하고, 겸손하고, 사람들이 다루기 쉬운 인물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었기에 그만큼 개성이 독특했을 것입니다. 개중에는 바울이 원하는 성품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루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모두의 마음에는 선교사를 돕겠다는 열정만큼은 뛰어났습니다. 바울은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동역자로 삼은 것입니다. 또한 동역자의 편에서 본다면 자신들이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서 바울을 도왔던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어떤 분야가 하나씩은 있었습니다. 그 하나를 갖고 도왔습니다. 결코 슈퍼맨이나 슈퍼우먼이어서 바울을 도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에는 협력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도움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달란트에 따라 일할 곳을 찾아야 합니다. 서로 돕고 협력을 해야 합니다. 하나의 팀을 이루어 어려움을 서로 이겨내야 합니다. 어려운 일도 함께 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함께 풀어갈 때에 길이 열리는 법입니다. 우리에게는 바울처럼 동역자를 발굴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바울을 도왔던 동역자들처럼 지도자를 도우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돕고 협력을 할 때에 복음전파가 힘있게 펼쳐질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인적 자원이 풍성한 편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맡아서 일할 사람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해주겠지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십시오. 다른 사람이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내 자신이 돕겠다는 자세로 살아가십시오. 자신이 도울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서 최대한 목회자를 돕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목사가 도움을 요청할 때에 뒤로 쳐지는 자가 되지 맙시다. 목사가 도움을 요청할 때에 기꺼이 시간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는 동역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3.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균형. 25-27절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가진 자세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균형이 이루도록 한 것입니다. 복음전파는 물론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복음 전파가 영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물질을 무시하거나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터어키 지역의 복음에 힘쓸 때에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를 도울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26절에 나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위해 헌금을 하자, 바울은 그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떠납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헌금을 했는지, 아니면 바울이 가서 호소를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했다는 것이고, 이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바울이 쓰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한다는 구실로 떡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이 물질이 필요할 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복음과 떡이 조화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기아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국국제 기아대책기구에 따르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 돈 500원이면 르완다 난민에게 일주일치 옥수수죽의 영양식 제공할 수 있고, 1,000원이면 결핵에 걸린 어린이에게 결핵치료제 2주일 공급, 3,000원이면 북한동포 한 사람의 한달 식량비라고 합니다. 물론 요즘 북한도 시장을 개방했기에 변수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우리가 조금 아껴 쓴다면 지구촌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복음을 줍니다.
성경은 구제에 대해 아주 유익한 교훈을 제시합니다.
(잠 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어떤 사람은 안 쓰고 모으기 위해서 별의 별 짓을 다합니다. 그렇게 아껴도 가난하게 된다고 합니다. 아끼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돕는 손길에 너무 인색하지 마십시오. 남을 돕는 일에는 풍성하게 하시고, 자신에게 쓰는 돈은 인색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성경 구절을 보겠습니다.
(잠 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여러분 풍족하게 살고 싶습니까? 윤택하게 살고 싶습니까? 남을 돕는 손길을 개발하십시오. 남을 돕는 손길에게는 풍성함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제를 아주 거창하게 생각합니다. 구제를 하려면 많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오늘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게 구제를 했을 때에 얼마만큼의 구제를 했다고 생각합니까? 당시 사는 것이 보잘 것 없었기에 그리 많은 액수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바울은 그 보잘 것 없는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로 갑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큰 돈이 아니지만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자신들을 위해 구제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미국 상원의원이 마더 테레사에게 물었습니다. "전 세계에 널려진 그 많은 굶주린 자들을 어떻게 다 먹이십니까?" 마더 테레사는 명답을 합니다. "한번에 한 명씩이요(One at a time)". 그렇습니다.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전쟁과 고아와 기근과 최근에 들어와서는 AIDS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손을 내밉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요청을 받을 때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가? 그러나 테레사 여사는 한번에 한 명씩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영적인 말씀뿐만이 아니라, 육신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과 빵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4. 양육에 힘씀.(:28-29)
씨앗을 뿌린 후에 저절로 나두면 자라지 못합니다. 거름을 해주어야 하고, 김을 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의 씨앗을 뿌린 후에도 돌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양육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한 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복음이 전파된 곳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을 3차례나 전도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양육에 힘썼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23절에서 이제는 이 지방에서 할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임무, 복음전파와 양육을 다 완수했다는 말입니다. 복음전파자가 해야 할 일은 양육까지도 포함이 됩니다. 어떻게 해야 양육을 할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훈련을 받는 사람만 양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양육자는 기본적인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무나 양육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양육의 기본이 성경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누구나 양육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체계적인 양육은 할 수 없다해도, 어떻게 해서 구원을 받는지,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지, 기도는 어떻게 하는지, 찬송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헌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기본적인 양육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신이 은혜를 받은 말씀이나, 또는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가 되었던 구절을 설명함으로 다른 사람을 양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육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 됩니다. 또한 우리가 양육해 나갈 때에 성령님께서 그를 자라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요한 복음을 차근차근 읽는 가운데 양육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기에 요한복음을 읽고 설명해준다면 듣는 심령의 마음이 뜨거워질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어떤 원리에서 사역을 펼쳤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대야말로 진정 복음의 능력이 강하게 회복되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힘있게 복음 전파가 성취되어야 할 시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사역을 해야 합니까?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협력자를 발굴해야 합니다.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이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양육에 힘을 써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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