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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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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산 믿음을 가지라
본문: 히11: 1- 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한 단체에서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해온 청년 1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였는데 응답자의 60%가 ‘착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두 번째 질문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 때 하나님이 만족하실까요?’라는 비슷한 질문이었는데 70%의 응답자가 ‘성경대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라고 응답했다. 연구를 진행한 사람 중 한 명인 스트로먼은 이 자료의 결과를 통해 ‘이 설문 조사를 통해 우리는 교회 안에 얼마나 공로주의가 만연한지 깨달았다. 사람들은 아직도 하나님이 우리의 노력을 보고 기뻐하신다고 생각한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은 자기 죄를 인정하고 주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믿음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노력과 업적으로 평가하지 않으신다. 세상에서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하고, 착하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아주 작은 일일 뿐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믿음을 내세우자.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상에서 착한 일을 한다고 구원받지 않는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어떤 교회에서 믿음과 행함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그 중에 많은 교인들이 행함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얻는 다고 주장을 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 그저 교회만 다니면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 믿는 다는 말만 하면 구원 얻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로마서에 나오는 말씀인 우리가 행위로 구원얻는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구원얻는 다는 말씀을 오해하고 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구원 얻는 것이 내 노력이나 선행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 교회 당시는 예수 믿는 다는 말만 하여도 십자가를 지고 순교를 각오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당시는 믿기만 하여도 이미 그는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구원받을 백성인 것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혹자는 오른 편 강도가 아무런 행위 없이 구원받지 않았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오른 편 강도는 예수님이 가장 고통 당하실 때 위로자가 된 사람이다. 그보다 더 큰 공로와 행위가 어디 있겠는가?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누가복음 4장 41절에 보면 귀신들도 예수님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고 소리 지른다. 귀신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그것이 믿음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산 믿음이란 무엇인가? 산 믿음생활이란 돈, 권세, 명예, 생명, 부모자식, 가정, 국가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삼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산믿음이 아니다. 우선순위가 바뀐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고 우상숭배자이다. 입술로만 믿는 사람들이 있다. 죽은 믿음이다. 성직자들 중에도 죽은 믿음의 소유자들이 많다.
야고보서 2장 14- 26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99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고자 할 때 비로소 그 믿음을 인정받았고 기생 라합도 자기 국가 민족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믿음으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기생 라합은 이방여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행위로 고백하였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능력의 하나님, 이 땅을 정복하신 하나님을 발견했던 것이다. 기생 라합은 추상적인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신앙을 가졌고,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여리고성이 무너지리라는 것을 믿었다. 그래서 라합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두 정탐꾼을 살려주었고, 친절과 봉사를 베풀었다.(수2장) 그런 까닭에 성경에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라"(약2:25)라고 말씀했다. 라합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행위로 고백했던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는 너희 믿음을 나타내 보이라고 요청하는 시대이다. 믿음은 말을 통하여서 보일 수 없고, 행위로 고백되어야 한다. 성경에 보면 자신들의 신앙을 행위로 증거했던 연약한 여인들의 행적을 볼 수 있다. 드보라, 에스더, 마리아, 다비다, 루디아, 이 여인들은 신앙을 행위로 고백함으로 인해서 그 이름을 성경에 남긴 위대한 여인들이었다. 기독교 신앙은 추상적인 논리가 아니다. 믿는 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때에 힘이 생기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믿음이 지극히 적은 것같이 보이지만 이 믿음을 행위로 옮겨 놓을 때에 놀라운 기적과 열매가 나타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믿음은 순종이다.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뒤 따라야 한다.
마태복음 7:21- 23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하였다.
만약 누군가가 다가와 "당신에게 믿음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그리고 만약 "믿음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믿음이란 첫째,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인정하는 것, 모든 인간의 죄인됨과 그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인정하는 것, 그러나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께서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둘째, 믿음이란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요, 내가 바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인데 예수님께서 이런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그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셋째, 믿음이란 결단과 순종이다. 나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어떤 명령을 내리시든지 "예 알겠습니다"라고 결단하고 실천에 옮기는 삶이 믿음이다. 또한 말씀을 읽다가 말씀이 깨달아지고 그 말씀에 감동이 왔다면 그 말씀 앞에서 '아멘'하고 결단하고 그 말씀이 요구하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 믿음이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떠나야 할 자리에서는 당장 떠나고, 정리해야 할 것은 확실하게 정리하는 것이 믿음이다. 결단과 순종이 없는 믿음은 무익한 믿음, 죽은 믿음이다. 이런 믿음은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
나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보자. 진실한 믿음인가 아니면 껍데기 믿음인가? 산 믿음인가 아니면 죽은 믿음인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 12)
그리스도인이 싸워야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 우리가 부름을 받은 곳은 전쟁터이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개인의 명예나 재산에 욕심으로 얽매이게 되면 우리를 부르신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드릴 수가 없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만과 탐욕과 거짓 교훈들에서는 달아나야 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한다.
이 선한 싸움은 건전하고 부동의 종말론적인 자세에서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이 이 명령을 지켜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만이 참된 축복의 근원이 되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며 오직 하나님만이 살아 계시고 가까이 갈수 없는 분이시며 우리에게 후히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부자들에게 권면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가장 귀중히 여기는 소유는 정함이 없는 재물이 아니라 현세와 내세에서 누리는 영생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우리는 의의 면류관을 받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여 선한 싸움을 싸워 수호하며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산 믿음의 신앙생활은 싸우는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이 악하기 때문이요 마귀가 두루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세상과 싸울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항상 깨어 기도하고 구하기를 힘써야 한다.(엡6:13- 18)
모든 달리기 선수들이 같은 출발점에서 달리지만 1등을 하는 선수는 하나인 것처럼, 우리들도 달려갈 길을 열심히 싸워나가야 한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도중에 낙심해서는 안 된다. 중도에 하차해서도 안 된다. 믿음의 주가 되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하여, 부지런히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잘 싸워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거룩하신 주님! 우리가 열매있는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많은 적그리스도와 이단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을 주셔서 거짓된 것과 참된 것을 분별하게 해주옵소서. 참된 복음을 심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우리가 산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 기도하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책망 받을 것 없는 말씀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 보내주소서. 성령이여 우리를 도우사, 변론과 언쟁,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 돈만을 사랑하는 것을 피하게 하시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우게 하시며, 영생을 확고하게 취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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