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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0: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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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곽면근 목사 |
참고 : | 2010.05.09 누림교회[기침] http://www.nurim.or.kr/ |
출10장1-29
어떻게 여화와를 섬길느지
Ⅰ. 인류의 하나님
1. 모든 이들에게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든가, 유대인의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10:1~2절 말씀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모세에게 말씀하셨는데 모든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모세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그 상황자체가 샘플적 상황이고 실제적으로는 모세와, 이스라엘과 그 자리에 있었던 아들들과 그 자리에 없었던 자손들까지를 포함하여 결국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 중의 하나가 편 가르기입니다. 인간의 편 가르기에 하나님을 이용하면 안 됩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간의 편 가르기가 끝나고 하나로 연합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문제 유발자가 아니라 해결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2. 알리라
10:1~2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알리라.’는 사명이나 ‘이스라엘의 장년들과 아들들과 자손들에게 여호와를 알게 하라.’는 명령이나 ‘애굽에게 하나님을 알리라.’는 책임을 짊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 여호와가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시는 것이지 모세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일하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에 애굽을 항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10장에서는 여덟 번째 이적을 통하여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지 못하면 누구 책임입니까? 하나님 책입니다. 만약 애굽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누구의 책임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누구의 책임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오늘 본문까지 여덟 번의 이적이 진행되면서 하나님이 모세를 채근하는 장면, 모세를 닦달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세가 경과 보고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대책을 세우거나 다음 진도를 상의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계획하고 하나님이 진행하고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이요, 기독교의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애굽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 이스라엘의 아들과 자손의 귀에 전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자이시고, 인간이 대상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분이시고, 인간이 누리는 자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좋게 하자고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을 도와주자고 애굽을 힘들게 하면 안 됩니다. 지금 각각의 이적이 등장하는 것이 애굽을 징계하거나 형벌을 내리거나 패망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당연히 4절도 재앙이 압니다. 만약 하나님이 애굽에 거듭되는 재앙을 내리셔서 우박으로 식물을 모두 황폐하게 하고, 메뚜기로 모든 식물을 먹어버리게 했다면 그것으로 끝입니까? 그래서 애굽 백성이 모두 굶어 죽었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박과 메뚜기가 식물을 황폐하게 만들기 전에도 이미 하나님은 애굽에게 식물을 제공하고 계셨고, 우박과 메뚜기가 식물을 황폐하게 만들고 난 후에도 하나님은 애굽에게 계속해서 식물을 제공하여 애굽이 먹고 살도록 도우셨습니다. 애굽 역사에 하나님의 식물 재앙으로 애굽 백성이 굶어죽고, 애굽이 망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인간은, 이스라엘이든 애굽이든, 하나님을 믿는 자이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이건 모든 인간이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식물을 먹고 살아왔고, 먹고 살고 있고, 먹고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 축복을 주시는 분이시오, 하나님의 문제의 원인자가 아니라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분입니다.
Ⅱ. 그들의 하나님
1. 복종과 순종의 차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저들의 항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은 싸움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항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좋은 것을 포기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하나님 앞에 복종하기를 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안하는 것이 현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좋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도우려고 한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기대하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2. 그들의 하나님
애굽 신하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그들의 하나님을 섬기게 하라.’가 고작입니다.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자신들을 도와주고 축복한다는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애굽의 신들을 이겼다면, 이제 신을 바꾸어 자신들도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을 섬겨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바로 왕의 표현 속에 인간, 죄인의 종교관이 배어있는 것이 ‘갈 자는 누구 누구냐?’라는 질문입니다. 바로가 생각하고 있는 종교관은 말 그대로 종교행위입니다. 바로는 신앙이 삶의 원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로는 신앙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원리와 가치와 기준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가 생각하고 있는 종교적 관점에서는 아이들이 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가 생각하는 종교는 종교행위이고, 종교행위는 모든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대표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중에 바로는 사람은 모두 보내도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의 종교적 개념에서는 만약 제물이 없다면 그 종교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가 알고 있는 신들은 언제나 제물을 요구하고, 제물이 없다면 신은 감동을 받지 않고, 신이 감동받지 않으면 인간의 제사는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보내면서도 신 앞에 무기력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것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반응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先行)적 은혜를 받은 것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삶의 행복의 원리로 깨달아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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