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구별된 사람들

출애굽기 김영준 목사............... 조회 수 4170 추천 수 0 2013.04.18 22:15:04
.........
성경본문 : 출10:21-23 
설교자 : 김영준 목사 
참고 : 2008.07.06 기쁜소식교회 http://www.gnc.or.kr/ 

출10장 21-23 

세상에서 구별된 사람들

 

병든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아버지에게 예수님이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 말씀을 듣고 그 아버지가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믿사오니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이 말 속에 그의 모순이 담겨져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믿는다는 말입니까, 믿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믿으면 믿는 것이고 못 믿으면 못 믿는 것이지 내가 믿사오니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 구절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습니다. 안 믿는다면 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가 깊다고 우리에게는 동시에 의구심 ․ 주저함 ․ 두려움 ․ 의심 같은 것이 동시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저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은 제 말을 곧이들으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제가 상담을 할 때는 매우 합리적으로 또 냉정하고 판단하고 또 상식적으로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담을 마치고 기도할 때 그 때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곧이들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의 영감으로 하는 말이고 믿음의 고백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목사님의 말씀도 신뢰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까. 저에게도 모순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상반된 면모가 있지 않습니까. 길을 가다가 누군가 노방전도를 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나 저사람 몰라요, 나 교회 안다녀요, 이런 민망한 면이 있지만 동시에 아,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담대하게 전도를 하지 못할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어느 것이 진짜 우리의 반응입니까? 또 누가 눈물을 흘리면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볼 때 한편으로는 저 사람 참 믿음이 좋다, 뜨겁게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꼭 저렇게 티를 내야 될까, 꼭 저렇게 기도해야만 잘하는 것일까 하는 흉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어느 것이 진짜 우리의 마음입니까? 신도시 같은 데 가서 한 상가건물에 교회가 여러 개 들어와 있는 것을 보면 민망하고 대한민국에는 교회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고 열심히 나오지 않습니까. 어느 것이 진짜입니까? 정답은 둘 다라는 사실이에요.

 

우리는 늘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삽니다. 사랑하려는 마음과 미움 사이에서 갈등하고 성령과 육신 사이에서 갈등하고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갈등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는 이와 같은 갈등이 불가피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살면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힘든 것입니다. 몸을 입고 살면서 영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고 또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정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이 깊어지고 오래되면 우리를 영적으로 무기력화 시킵니다. 기도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영적인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껍데기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6~8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기대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두 마음을 품는다고 했습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아무것도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다시 말하면 그의 믿음의 능력이 없어지고 기도의 능력을 잃어버린다는 얘기입니다.

 

소위 세계화된 시대에 살면서 세상은 점점 좁아집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는 것은 점점 더 많아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눈치 봐야 될 일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손해를 보는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남편들입니다. 남자들입니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까 가정의 돈 지출에 대한 권한이 점점 남편으로부터 아내에게로 넘어간다고 했는데 이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닙니다마는 통계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그만큼 남편의 권한이 줄어들어 간다는 얘기입니다. 남편들이 불쌍하지요. 남편뿐만 아니라 남자들이 다 그렇습니다. 요즘 남학생들이 남녀 공학을 피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도 여학생들에게 치여서. 남자의 입지가 점점 좁아진다는 것입니다. 또 누가 손해를 보는지 아십니까?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옛날에는 지도자들의 권한을 존경하고 존중해 주었습니다. 우러러 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 없습니다. 이제는 초등학생도 대통령을 욕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초등학생이 무엇을 안다고. 그러나 이제는 높은 사람, 우러러 보는 사람, 어려운 사람이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물러가라, 물러가라고 요구하는데 정말로 물러가면 대책이 있느냐? 대책 없습니다. 그런 것 없습니다. 그냥 물러가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무책임한 것입니다. 이건 국가의 절차와 제도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불만, 자신의 감정, 이것이 어떠한 원칙보다, 제도보다도 어떠한 질서보다도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의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지금 당장 내 불만을 표시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것은 가정에서도 통하지 않는 것이고 직장에서도 통하지 않는 것이고 교회에서 통하지 않는 것이고 나라에서도 당연히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이 시절은 합리적인 시절이 아니고 감정이 다스리는 시절이 되어버렸습니다. 합리적인 것이 통하지 않고 목소리 큰 사람과 강한 정서가 다스리는 시대가 되다보니까 이제는 이것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그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불쌍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불쌍합니다.

 

그리고 또 이러한 시대에 누가 손해를 보는지 아십니까. 절대적인 진리를 믿는 종교가 손해를 봅니다. 그게 바로 기독교입니다. 다른 종교는 적당히 포용이든 타협을 말할 수 있지만 기독교는 우리가 믿는 교리에 대해서 절대로 타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이천년 전에도 그랬고 구약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왜 다니엘이 사자굴속에 던져졌는지 아십니까.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까.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왜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까. 예수님 믿고 섬기는 것을 거부하기를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왜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했습니까. 일본 신사에 절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만 기독교가 타협을 할 수 없는 게 아니고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고집스럽고 배타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믿음의 성격상 불가피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타협하게 된다면 믿음 자체를 타협하는 것이고 진리 자체를 타협하는 것이고 예수님 자체를 타협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타협하게 된다면 예수님을 그저 인간으로 보는 것이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요, 예수님이 세상 죄를 담당하러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는다는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가 고집스럽고 배타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의 믿는 믿음의 성격상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대든 중세든 지금이든 우리의 믿음의 고백은 여전합니다. ‘천하에 사람이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느니라‘ 그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같이 일하고 같이 어울리고 같이 잘 수는 있지만 우리의 믿는 것을 타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이러할수록 우리는 더 담대해 지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하고 친절해야 되지만 동시에 강하고 담대해야지 강하고 담대하지 않으면서 온유하기만 하면 그 사람은 물러 터져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으로는 아무런 능력을 행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마귀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의 무력화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마귀를 내쫓는 것이 영적인 능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무기력화 되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영화 엑소시스트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그 영화는 제일 무서운 영화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보고 싶지 않은 영화입니다. 그 영화가 처음 개봉됐을 때 전기 소모량이 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불을 켜놓고 잠들었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보면 두 명의 신부님이 나오는데 젊은 신부는 귀신에 대해 무지하고 나이든 신부는 전문가입니다. 그 소녀 속에 들어온 귀신을 만나보고 쫓아본 적이 있는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젊은 신부가 자기의 이론을 이렇게 폅니다. ‘제 생각에는 적어도 이 소녀의 속에 세 인격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나이든 신부가 지체 없이 대답합니다. ‘아니다, 단 한 인격체만 있을 뿐이다.’

마귀는 우리를 혼동 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무기력해져서 마귀를 내쫓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크리스챤의 아이덴티티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정확하게 구별하신다는 사실이에요. 구별하십니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세상에 섞여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가 당신이 백성인지 정확하게 구별하십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구별이 가능합니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 천국 가는 사람과 지옥 가는 사람이 정확하게 구별됩니다. 우리 눈에는 구별이 안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애굽 전역에 어두움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더라’ 자수하여 광명 찾자. 빛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구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십니다. 내 백성, 내 자녀라고 세상에서 우리를 구별하십니다. 차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확하게 구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로 우리에게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어야 됩니다. 내가 누구냐, 내가 어디에 속했느냐 나는 누구편이냐 라는 문제에 있어서 정확한 정체성이 있어야 됩니다. 아이덴티티가 분명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거기에 따라오는 특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별하시고 우리에게 분명한 정체성이 있으면 거기에 따라오는 특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특권입니다. 영적인 특권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었더니 애굽 전역에 어두움이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던 것처럼 이게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특권이에요. 온 세상이 어두워 깜깜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은 어두움이 다스리지 못합니다. 온 나라에 불황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에는 형통함이 가능한 것이고 온 세상이 병들고 우편에서 만인이 넘어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 재앙이 가까이 하지 못할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경제적으로든 건강이든 모든 면에 있어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것을 아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권세와 특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게 바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니다. 무기력하지 않고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모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 이상하다. 오, 신비하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당연한 것입니다. 응답 안하시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했는데 믿음은 일하는 것이요 믿음은 살아있는 것이요 믿음은 능력이요 믿음은 적극적인 것이요 믿음은 유일하게 우리를 이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고 세상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8964 요한계시 새 예루살렘성의 재료와 삶 계21:18-27  강종수 목사  2013-04-21 1944
8963 창세기 현숙한 여인 리브가 창24:15-67  한태완 목사  2013-04-21 5603
8962 룻기 현숙한 효부 룻 룻1:15-18  한태완 목사  2013-04-21 2974
8961 히브리서 현실을 극복하는 믿음 히11:30  김형준 목사  2013-04-21 2930
8960 로마서 율법의 기능 롬7:1-4  민병석 목사  2013-04-20 4211
8959 로마서 죄의 삯과 하나님의 은사 롬6:20-23  민병석 목사  2013-04-20 3124
8958 로마서 거룩함에 이르라 롬6:17-21  민병석 목사  2013-04-20 5665
8957 로마서 순종과 소유권 롬6:15-16  민병석 목사  2013-04-20 2662
8956 로마서 불의의 병기와 의의 병기 롬6:12-14  민병석 목사  2013-04-20 5353
8955 로마서 성결 생활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롬6:12-14  민병석 목사  2013-04-20 3673
8954 로마서 승리적인 생활의 방법 롬6:10-11  민병석 목사  2013-04-20 3356
8953 로마서 주님의 부활의 참 의미 롬6:8-10  민병석 목사  2013-04-20 2598
8952 로마서 죄에서 벗어난 우리 롬6:6-7  민병석 목사  2013-04-20 5181
8951 로마서 연합이 의미하는 뜻 롬6:5-7  민병석 목사  2013-04-20 3880
8950 로마서 그리스도와의 연합 롬6:3-4  민병석 목사  2013-04-20 3775
8949 로마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의 신분 롬6:1-2  민병석 목사  2013-04-20 4366
8948 로마서 죄와 은혜 롬5:20-21  민병석 목사  2013-04-20 3683
8947 로마서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 롬5:18-19  민병석 목사  2013-04-20 2039
8946 로마서 한 사람 아담의 죄와 한 분 그리스도의 의 롬5:17  민병석 목사  2013-04-20 2022
8945 로마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풍성한 은혜 롬5:15-16  민병석 목사  2013-04-20 1680
8944 요한복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7) 의심 많은 도마 요20:24-29  김필곤 목사  2013-04-20 3863
8943 누가복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6) 십자가를 진 시몬 눅23:26  김필곤 목사  2013-04-20 3778
8942 마태복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5) 세리에서 사도로 마태 마9:9-13  김필곤 목사  2013-04-20 2915
8941 마태복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4) 눈이 열린 시각 장애인 마20:29-34  김필곤 목사  2013-04-20 3217
8940 느헤미야 3.1절과 신앙인의 자세 느1:1-11  김필곤 목사  2013-04-20 2728
8939 창세기 믿음 좋은 요셉을 팔려가게 하시는 이유는? 창37:12-25  김경형 목사  2013-04-20 2574
8938 누가복음 풍성한 삶을 위하여 눅6:38  이동희 목사  2013-04-19 4349
8937 출애굽기 아홉째 재앙- 흑암 출10:21-29  임덕순 목사  2013-04-18 1914
8936 출애굽기 여덟 번째 재앙, 메뚜기가 땅을 덮다. 출10:1-20  성홍모 목사  2013-04-18 2159
8935 출애굽기 여덟째 재앙-메뚜기 출10:1-20  임덕순 목사  2013-04-18 2256
8934 출애굽기 아홉 번째 재앙, 흑암이 땅을 덮다. 출10:21-29  성홍모 목사  2013-04-18 2208
8933 출애굽기 출애굽기 연구시 주의점 출10:1-2  백영희 목사  2013-04-18 2203
8932 출애굽기 선민의 구출 출10:1-2  백영희 목사  2013-04-18 1803
8931 출애굽기 미정 출10:1-2  백영희 목사  2013-04-18 1725
8930 출애굽기 소유와 생명 출10:24-26  이상봉 목사  2013-04-18 1713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