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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저자 : 정원 | 출판사 : 영성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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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기도 시리즈 1편당신이 아직 방언의 은사를 경험하지 못했다면부디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주님께서는 당신에게 귀한 은사를 경험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방언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이 은사를 잘 사용하고 새로운 풍성함을 누리며, 이 은사를 통하여 당신의 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주님은 당신에게 새로운 영역을 알려주실 것입니다.가까이 있지만, 그리고 너무 귀한 것이지만 우리가 가치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방언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 가치를 발견하십시오. 이해하십시오. 경험하십시오. 그리고 이 은사를 통하여 주님께 더 깊…[더보기▶] |
정원의 <방언기도의 은혜와 능력1>을 읽다.
읽으면서 밑줄친 부분을 옮겨 적었습니다.
1.기도산보 중의 메시지
방언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경험하는 것에 아주 커다란 경험을 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부자가 되고 싶다면,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방언이 당신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주의 얼굴을 구한다면,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면, 주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고 있다면 방언은 당신에게 많은 유익을 줄 것입니다. 방언은 당신의 영을 아주 예민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2.방언은 회복의 은사이다
최근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책과 가르침과 훈련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방법들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많은 가르침과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것을 어렵게 느낍니다. 성경을 읽고 큐티를 하고 마음을 잔잔하게 하며 배운 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헛갈립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영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영의 감각이 부족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머리에 많은 성경구절이 떠올라도,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그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적용하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방언기도를 충분히 많이 하는 것이 영적 기초체력을 쌓는 것입니다. 방언을 하면 할수록 영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영감이 생기기 때문에 영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음성과 메시지에 예민하게 됩니다.
3.이성과 방언
탁월한 이성은 아름답고 귀한 달란트이지만, 영들을 분별하거나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데 있어서 이성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성과 영성은 서로 다른 영역이고 서로 다른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알려고 할 때, 이성은 수많은 생각을 양산해냅니다. 영리한 사람일수록 생각이 많습니다. 어떤 생각은 아주 합리적인 듯 보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 같고 하나님의 음성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잠시 후에 이성은 반대의 생각을 하게 합니다. 조금 전에 했던 생각의 잘못된 부분들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다시 반대쪽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다시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를 반복합니다. 결국 '나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방언기도를 평소에 많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이 비교적 쉽습니다. 어느 정도 방언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방언기도를 하면 영감을 느낍니다. 평안과 기쁨이 동반된 어떤 메시지를 느낍니다. 그래서 그쪽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결정하는데 별로 주저함이 없고 어려움도 없습니다.
4.회복과 교제
아담이 범죄한 순간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따라 예수님이 오셔서 그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고 그 실제의 적용이 이루어지는 사건이 오순절 성령의 임하심이었습니다.
오순절 사건은 개인적 사건이면서 또한 시대적인 사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시대가 끝이 나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임하심을 통하여 누구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방언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를, 교류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언어의 선물이며 교류를 위한 선물입니다. 이 언어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교류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5. 응답과 임재
기도의 응답은 있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는 것은 아주 비극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분을 가까이서 누리고 교제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열심히 주님을 믿고 봉사해도, 다른 이들에게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며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주님과의 개인적인 친밀감이 없다면, 달콤함이 없다면 그것은 너무 힘든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 진정한 신앙은 주님을 가까이 알고 누리는 것입니다.
6.입을 벌릴 때 영이 흘러나온다
입을 벌리지 않는데 어떻게 영이 열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안에 거하시는 주의 영이 흘러나올 수 있겠습니까? 마음으로만 주를 구하고 몸과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길을 막아놓고 은혜를 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방언은 이성의 언어가 아닌 새 언어, 새 발음입니다. 방언을 구하고 기다린다면 한국말로 기도를 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방언이 임하기를 우리말로 기도하고 기다려야 하지만, 충분히 기도했다면 그 다음에는 더 이상 우리말을 하지말고 입을 주님께 맡기며 믿음으로 우리말이 아닌 다른 말을 해야 합니다.
7. 완악함
하나님은 인격이시며 또한 동시에 영이시며 영의 특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님의 영은 입을 통해서, 소리를 통해서 흘러나오는데 입을 꼭 다문 상태에서 '꼭 말로 해야만 하나. 하나님이 귀가 없으실까... 내 마음을 아시겠지.. 다 아시니까...'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영의 흐름과 소리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리의 흐름을 무시하면서 그 영의 충만함을 구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많은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나는 부르짖고 소리를 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것은 교양이 없어 보였고 천박해 보였습니다. 나는 깨달았습니다. '아, 이게 바로 완악함이었구나.. 내 기질, 내 성향을 버리지 못하는 나 중심적인 사고가 곧 완악함이구나. 나의 체질은 고상한 것이 아니고 완악한 것이었구나..' 하나님의 사랑과 풍성함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오직 내가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8.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고 존중하시며 우리에 의해서 제한을 받으십니다. 각 사람이 열린 만큼 그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어떤 이들이 은사에 대해서 마음을 닫고 비판한다면 그는 은사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이들을 싫어하시지 않고 그들이 좋아하는 다른 부분을 통해서 은혜를 주십니다. 어떤 이들이 은사를 좋아하지만 말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거나 깊은 헌신과 희생에 대해서 열려있지 않을 때, 주님을 닮아가는 것을 갈망하지 않을 때, 그는 몇 가지 은사를 얻겠지만 그가 구하지 않는 것은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치우친 자들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받을 수 있는 것만을 주시며 더 주시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십니다.
9.능력에 대한 책임과 위험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때 거기에는 책임이 따르며 조심하지 않으면 너무나 위험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부족하고 낮은 마음이 부족한 사람이 권능을 얻게 된다면 그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그는 자칫하면 재앙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10. 내적인 은혜
내적인 세계, 내부에서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 그것은 아름답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에 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가 중심으로 주님을 깊이 사랑하지만 그 은혜가 바깥으로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그는 현실에서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으나 바깥에 어떤 영향력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바깥으로 흘러나올 때, 그것은 능력으로 역사하며, 사람들은 그 힘을 느끼며, '이것이 무엇이지? 뭔가 어떤 힘이 움직이고 있어..'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아주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그것은 외적세계, 물질세계에 영향을 줍니다. 그가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고 말씀을 전하면 사람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11.외적인 능력
외적인 능력은 영적 성숙과 상관이 없습니다. 능력은 인격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기와 같은 것입니다. 외적인 능력이란 멋진 것이지만 거기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성화되지 않은 능력자에게는 조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려가 되는 것은 자아와 혈기가 그대로 살아있고 돈을 사랑하며 접대받기를 좋아하는 등 세상적인 가치관이 그대로 남아있는 미숙한 신자가 능력을 많이 경험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이들은 칼을 가지고 있으나 그 사용법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12. 기도는 경험자에게 배우라
기도에는 단계와 과정이 있는데, 처음에는 발성기도로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기도하면 영이 눌리기 쉽습니다. 의지적으로 부르짖고 발성하고 그렇게 준비가 된 다음에 묵상기도와 같은 깊은 기도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묵상기도 침묵기도를 하는 것은 초등학생이 대학생 교제를 펼쳐놓고 이해하려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경험이 없이 논리나 상식이나 추론에 의존해서 결론을 내리면, 당시에는 맞는 것 같지만 실제의 경험 후에는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경험자에게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13.단음절 방언에는 능력이 있다
k집사는 성도들과 어울려 기도를 할 때 "따따따다...."하는 단음절의 방언을 계속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참 단조로운 발음이었는데 이상하게 그가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을 때는 어떤 강력한 힘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방언으로 강하게 기도하고 있을 때는 기도하는 다른 성도들에게도 어떤 영적인 능력이 전이되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그 방언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어느 기도원에서 만난 영이 맑은 사역자가 방언하는 것을 보더니, 그의 방언이 공중에 있는 악한 영들을 향해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 같으며, 그래서 그 방언을 맞고 공중에서 악한 영들이 마구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14. 섬세한 기질은 깊고 단순한 기질은 강력하다
시계같은 사람이 있고 망치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시계는 섬세하지만 약합니다. 망치는 단순한 도구이지만 아주 강합니다. 시계와 망치는 어떤 것이 좋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용도로 만들어졌으며 용도대로 잘 사용되느냐의 문제입니다. 영적으로도 섬세한 사람은 대체로 약하고, 강한 사람은 예민한 부분이 약합니다. 어느것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쓰임새의 문제입니다.
15.마음과 영은 다르다
영이 기도하는 것과 마음이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전14:14) 영은 방언을 하면서 기쁨과 감미로움을 느껴도 마음은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기 때문에 별로 즐거움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발전하는 것과 영의 지능, 감각이 발전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속에서 일어나는 영의 소리, 영의 감동은 겉사람의 마음에 속한 것과는 다릅니다. 겉사람의 인격처럼 거칠고 낮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결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것입니다.
16. 하나님의 임재의 달콤함을 누림
방언을 계속하면서 나는 많은 변화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더 선명한 변화는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전에 느끼지 못하던 내적인 감각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 임재의 경험이 이렇게 달콤하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종종 주님이 아주 가까이 계시는 것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친절하고 사랑과 선의가 가득한 하나님의 임재를 자주 경험하게 되었고 기도하는 것,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일인가를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17.찬양의 감동을 누림
방언을 경험하고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서 일어난 가장 놀라운 변화는 찬송에 대한 느낌입니다. 찬송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며 찬양을 드리는 것은 너무나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복음송이나 경배곡도 좋았지만 찬송가를 부를 때 깊은 감동을 느끼곤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보혈과 관련된 찬송가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과 층격이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십자가와 보혈에 대한 찬송을 하면 속이 뜨거워지면서 한없는 눈물과 통곡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내가 아닌 내가, 나의 영이 찬송을 하고 감동하기 때문입니다.
18.악한 영들의 실제를 인식함
방언을 할수록 영의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악한 영의 움직임과 그 흐름에 대해서도 느끼게 됩니다. 분명히 빛의 왕국에 대적하는 어둠의 왕국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치열한 전쟁입니다. 방언을 할수록 그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19.말씀의 맛과 충격을 경험함
방언을 많이 하면서 성경을 읽을 때 나 자신이 문자 그대로 말씀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느끼거나 통곡하기도 하고, 읽다보면 어느새 여러 시간이 지나가 버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방언을 많이 하면서 영이 활성화되고 영적 감각이 예민해지자 말씀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 영이 그것을 느끼고 감격하고 반응하는 것 같았습니다.
20.말씀으로 인도하심을 경험함
방언을 많이 하면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구역심방을 위해 어느 집에 도착하기만 하면 신기하게도 어떤 말씀이 떠오르면서 그 집의 상황에 맞는 메시지가 주어지는데, 마치 그 집의 속사정을 들킨 것처럼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적절한 상황에서 필요한 말씀이 떠오르는 것은 몹시 신기하고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전에는 말씀이 단순히 교과서와 같은 상태였다면, 방언으로 영혼이 깨어난 뒤로는 교과서에서 배운 공식을 사용해 문제를 푸는 것처럼 실제의 삶 속에서 말씀이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21.말씀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음
방언을 계속하면서 전에는 전혀 감지할 수 없었던 말씀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이 증가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평범한 말씀으로 인식했던 부분에서 감추어진 그리스도, 감추어진 영의 흐름이 느껴지고 감동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영을 깨우는 근본원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흐르는 것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보화됨에 대한 말씀을 대하면 깊은 속에서 무엇인가 감동과 충격이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22.인도하심에 대한 내적인 감각이 생김
방언을 많이 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내적인 감각이 생깁니다. 전에는 무엇을 기도해도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행동을 취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냥 내가 행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많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내적 감각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지적인 판단이나 양심의 소리와 같이 이성과 지식이나 선입견과 같은 것에 영향을 받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내적 감각은 이성이 개입하기 전에 먼저 일어났습니다.
23.사람의 마음을 인식함
방언을 많이 하면 사람의 마음을 쉽게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이나 기분, 내적인 상태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마음에 두려움이나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 속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내적 인식은 사람을 이해하거나 돕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방언기도는 깊은 내면의 감각을 일으켜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내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어떤 영적 작용을 일으키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24.말씀과 영적 진리에 대한 통찰력을 얻음
방언을 많이 하면 영적 진리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성경을 대하고 있으면 무한하다고 할 정도의 메시지와 깨달음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메시지를 얻기 위해서 고민을 해 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찬양을 하고 주를 부르며 방언을 많이 하고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으면 수많은 메시지와 깨달음이 쏟아지는 것 같이 들어왔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그것을 정리하고 선택해서 다듬는 것뿐이었습니다.
25.방언의 은총을 나누는 기쁨들
방언은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동시에 2개국어를 할 수는 없듯 기도하다가 혀가 꼬이면서 한국말이 아닌 이상한 언어가 나오면 억지로 막으려 하지 말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무조건 그 언어를 따라서 하면 됩니다. 그저 유치하고 한심하게 느껴지더라도 그냥 혀와 입술에서 힘을 빼고 그냥 두면 됩니다. 그러면 입술이나 혀가 덜덜거리면서 알르르르... 라라라라 같은 초보적인 방언이 나옵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냥 계속 하다보면 방언이 계속 진화합니다. 방언은 성령님께서 주시지만, 그것을 받는 것은 사람입니다. 주셔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을 가질 수는 없겠지요
26.방언을 경험해도 그 가치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한때 울고 통곡하고 기뻐하면서 방언을 하고 찬양하던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러한 열정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보물을 얻었지만, 그 보물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고 그 보화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며 그다지 관심도 없었습니다. 나는 갈망이라는 것, 주님 자신을 갈망하고 주님의 임재와 체취를 갈망한다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7.방언을 할수록 영적 감각이 깨어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4장에서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해서는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하면서 방언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 방언을 말하면 말할수록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그 사람은 신령한 감각이 생깁니다. 방언을 하기 전에는 별로 없었던, 별로 활동하지 않았던 영적인 감각이 생겨납니다. 잠자고 있던 영이 깨어나고 영의 감각이 깨어나게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영의 감각이 깨어날 때 분별이 일어나며 지식은 실제가 됩니다.
28. 성령님의 감동은 섬세하고 인격적이다
성령님은 결코 우리의 의지를 억압하고 일방적으로 운행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사모하고 헌신하는 만큼만 우리를 사로잡으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허락을 기다리시며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고 의탁한 만큼만 역사하십니다.
29. 사역자와 방언
방언과 발성기도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흐름이 나타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서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고요히 모셔두기만 한다면 그 영은 우리에게 특별한 일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방언을 말하고 소리를 표현함을 통해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나오시게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성령의 풍성하신 역사를 누리고 경험하게 됩니다.
30.직분은 주님의 주권이지만 영적 은사는 사모함에서 온다
우리가 주님께 복종하며 하나님의 뜻과 인도를 구해야 하는 것이 있고, 간절하게 사모하고 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은사적인 것은 후자에 속한 것입니다. 간절하게 사모하는 자는 얻고 그렇지 않은 자는 얻지 못합니다. 이것은 성숙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열정에 대한 문제입니다.
31.사역자가 배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사역에 헌신하지만 영적 세계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많은 진리를 전하면서도 '왜 이렇게 성도들이 변화되지 않는가, 왜 나 자신도 변화되지 않는가, 승리의 삶, 풍성한 삶은 왜 이렇게 멀리 있는가?'로 갈등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경험, 은사적인 문제와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육과 세상과 마귀와 싸우면서 충분한 무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면, 승리와 변화를 경험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많은 경우 예리한 지성은 영성의 원리의 이해나 각성에 있어서 전혀 무력합니다.
32 논리적으로 옳아 보여도 영적으로 옳지 않을 수가 있다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는 서구의 영향으로 합리주의와 물질중심적인 면과 세상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신자가 주님과 가까이 교제를 누리고 기도의 기쁨과 은총을 경험한다면, 그런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의 추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서 출세를 하면 성공적인 신자이지만, 주님을 가까이 누리고 경험하는 신자라면 신비주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져갑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 관계는 딱딱하고 따분한 것이 아닌, 가슴이 설레고 흥분되는 관계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이며 또한 연안의 관계입니다. 영성이 발전될수록, 영혼이 깨어날수록 이 관계는 아름다워지고 깊어집니다.
33 집회에서 방언이 임할 때
방언이 나타나는 순간을 성령이 처음 임한 순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방언이 나타나는 것은 이미 받은 성령이 바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고, 복음을 깨닫고 주님을 영접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과 관계를 맺을 때, 그는 이미 성령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고(롬8:9) 또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12:3) 그러므로 예수를 주라고 부르며 고백하고 따르는 자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이미 그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내주하시기만 하고 바깥에 나타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풍성한 삶을 사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내주하시는 성령의 나타나심이 은사입니다. 방언은 그 중의 한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34. 가장 귀한 일은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에는 복음이 필요하고, 복음의 받아들임이 필요하며, 주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승리의 삶에는 성령의 나타남이 필요합니다. 역동적이고 권능적인 삶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와 역사와 나타나심이 필요합니다.
35.이성만으로 변화된 삶을 살기는 어렵다
영의 감각이 깨어나지 않으면 세상적인 것들이나 악한 것들을 이성으로는 옳지 않다고 여기지만 마음으로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영의 감각이 일어나면 그것들을 더 이상 즐길 수가 없고 그것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악한 기운들을 통하여 고통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그것들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세상의 영에서 벗어나게 되고 승리하는 삶이 실제적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36 방언에 대한 여러 오해들
1.방언을 받는다는 표현에 대해 - 방언을 받는다, 성령을 받는다는 표현은 지금까지 없었던 어떤 것을 새롭게 얻는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령이나 방언을 새롭게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방언을 하지 않는 사람은 방언을 안 하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2.영이 있는 사람은 영으로 기도할 수 있다 - 우리 안에 영이 있다면, 그 영은 움직이고 표현하고 그 어떤 기능을 발휘할 것입니다. 영의 언어는 그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에게 부어진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영이 우리에게 죄감을 느끼게 하고,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기도와 예배의 소원을 일으키고, 복음 전도의 열정을 일으키는 것처럼... 영으로 말하고 기도하고 싶은 감동이 일어나며 말할 수 있는 것도 영의 기본적인 기능중의 하나입니다.
3.통성기도 시간은 설교시간이 아니다
통성기도를 드리는 순간은 말씀을 듣는 시간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시간입니다. 기도의 인도자가 청중의 개인 기도를 돕는 면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기도 인도자는 대체로 마이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의 기도소리 내용은 다 들려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역자의 기도 내용이나 기도 소리가 청중들의 기도에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역자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청중은 그 기도의 내용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고 개인기도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4. 방언의 나타남은 기질과 관련이 있는가? - 속에 있는 것의 나타남은 성격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적인 기질의 사람은 속에 있는 것을 잘 나타내지 않습니다. 외향적인 기질의 사람들은 속에 있는 것을 잘 드러냅니다. 방언의 나타남은 성숙이나 미성숙의 문제가 아니고 기질에 많이 좌우됩니다.
37.발성기도와 표현의 중요성
소리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소리를 내서 기도하고 소리를 내어서 찬양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소리는 영의 흐름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눈으로만 읽고 묵상하는 것과 소리를 내서 읽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분명하고 강한 소리로 말씀을 읽을 때 그것은 우리의 영을 활성화 시킵니다. 소리를 내서 기도하는 것과 속으로 기도하는 것은 영의 자유함에 있어 많은 차이가 납니다. 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것은 기질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습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별로 바람직한 상태라고 할 수 는 없습니다.
38 말의 표현이 어려운 것은 묶여있는 것입니다. - 말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중요한 일입니다.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묶여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질의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분별하고 자기의 약점을 이해하고 극복하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자신을 깊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말의 표현에 익숙한 사람들을 쓸데없이 말이 많은 사람들이며 천박한 사람들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곤란한 일입니다.
39 소리의 표현은 많은 풍성함을 가져온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할 때 구원에 이릅니다.(롬10:9-10) 마음으로 믿는 것이 중요하지만 또한 그 믿는 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이 물질세계에 나타나게 합니다. 구원의 역사가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고 나타나게 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유치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씀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40 방언의 내용
방언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방언을 하는 것이, 의미도 모르고 뜻도 없는 말을 무한정 반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유익이 있느냐고 하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불신자들이 믿는 자들을 조롱하면서 예수를 믿으면 밥이 나오냐고, 떡이 나오냐고 하는 말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하여 자기 생각으로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저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옳은 것일까요? 그들의 말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그 의미를 못 알아듣는 것 뿐입니다. 세상에 소리의 종류는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습니다. 방언에도 의미가 있고 뜻이 있습니다.
41. 방언의 내용은 무엇인가 -방언은 나의 영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이나 이성이나 감정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사람은 몸을 통하여 물질세계와 접촉합니다. 그리고 마음 즉,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통하여 환경과 자아를 인식하며 몸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영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이성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마음은 논리적인 사고를 통하여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추리와 분석을 하지만, 그것으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으며 복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나의 영만이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방언은 풍성하게 하는 영의 기도이다 -방언기도는 영의 역사를 충만하고 풍성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물질적이고 외적인 기도와는 다릅니다. 방언기도는 부자가 되기 위한 기도가 아니며 이 땅에서 성공하기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불신자들도 기도를 해준다고 하면 좋아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기도를 소원성취를 도와주는 도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은 영이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예수를 믿은 이후에는 그러한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42 영의 상태는 그사람의 마음의 상태와 다르다 - 모든 사람들의 안에 영이 있으며 그 영은 그들의 겉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겉사람에는 자아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라도, 그 안에는 주님을 갈망하는 영이 있습니다.
43.방언의 발전과정
1.방언의 첫 단계는 밋밋한 느낌이 많다
2.방언의 두 번째 단계는 고통스러운 느낌이 많다
3.처음부터 원액이 나오지 않는다
4.방언의 세번째 단계에서 기쁨과 풍성함을 맛보게 된다.
5.방언의 발전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44 방언과 영의 정화
1 방언은 혼을 정화시킨다. -방언은 영을 누르는 혼과, 영을 억압하고 있는 마음을 덜어내어 영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기도입니다.
2.영과 혼의 기능은 서로 다르다 - 혼(이성, 감정, 의지) 중에 이성이 발달한 사람은 지혜와 논리가 뛰어나고, 감정이 발달한 사람은 감수성이 많아 정서적이고, 의지가 발달한 사람은 열정과 행동력이 뛰어납니다. 영의 감각이 깨어난 사람은 영계에 대해서 이해와 경험이 쉽고 영들을 잘 분별하고 느끼게 됩니다.
3.혼이 강할 때 주님께 굴복하지 않는다. -이성이 강하면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되기 전에는 주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강하면 감정이 흥분되기 전에는 주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의지가 강하면 주님이 막으셔도 자기의 의지와 고집으로 불순종을 합니다.
4.혼은 영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5.헌신되지 않은 혼의 마음은 영에게 고통을 준다.
6.혼의 잘못된 의식으로 영이 고통을 겪는다.
7.방언으로 영이 풀려나기 시작한다.
8.방언은 영의 몸을 움직이게 한다.
9.잠은 마음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10.꿈은 혼의 정화를 위한 것이다.
11.방언을 할 때 혼의 억압이 바깥으로 터져 나온다.
46. 방언 기도의 내용과 통역
방언은 영의 기도이며 영의 언어입니다. 그것은 의미가 있는 기도입니다. 방언 통역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기 방언을 자기가 통역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방언을 통역하는 것입니다. 방언 통역을 위해서는 방언 통역하기를 원해야 하며 이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실제로 통역을 하려고 믿음으로 시도해야 합니다. 방언도 우리 안에 있는 것처럼 통역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영의 언어를 주시고 말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통역하게 하십니다. 방언의 통역은 의식을 통하여 영감이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의식을 제어하고 성령의 의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47.대략적인 방언의 종류
1.간구하는 형태의 방언- 초기 방언으로 기도할 때는 영적 기갈이 몹시 심한 상태이기 때문에 주님의 임재, 주님 자신을 얻고 사로잡히기 위한 기도를 많이 드립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경험하게 되면 차츰 사역적인 기도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의 영이 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2.영과 혼의 고통과 눌림이 치유되는 과정의 방언 -현실의 문제와 고통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이런 방언을 할 때는 애절한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가슴속의 깊은 통증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3.포근한 위로와 안위가 느껴지는 방언 -이것은 우리의 영이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위로하고 힘을 주시며 용기와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4.방언을 하는 중에 자기도 모르게 강력하게 소리가 나오는 방언 -목소리도 굵어지고 거친 톤으로 나옵니다. 온 몸이 부르르 떨리는 전율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것은 전쟁의 방언이며 악한 세력을 꾸짖고 대적하는 기도입니다.
5.믿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선포하는 형태의 방언
6.감사와 찬양, 경배와 사랑의 고백을 드리는 형태의 방언
48.성경에 나타난 방언의 내용에 대한 언급
1.통역이 필요한,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담은 방언(고전14:13)
2.오순절날 처음으로 나타난 방언에 대한 언급(행2:11)
3.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과 방언이 임하심(행10:44-46)
4.영의 기도로서의 방언(고전14:14)
5.영으로 축복하는 기도로서의 방언(고전14:14-16)
6.감사가 포함된 방언(고전14:17)
7.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 방언이라는 언급(고전14:2)
49. 영은 하늘의 보물창고이다
영은 하늘나라의 보물창고와 같습니다. 영에는 천국으로부터 많은 메시지와 능력과 보화가 임합니다. 영에게 쌓여있는 그 보화들을 혼의 마음이 조금씩 알아간다는 것은 아름답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보물창고를 열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혼이 영과 영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영에게 오는 압력을 이해하고 영을 보호하며 관리하고 협력하는 데에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마음과 생각이 높아져서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주인이 되려고 하며 주님의 뜻을 묻지 않고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메시지에 관심을 갖지 않고 스스로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모든 일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이성과 마음은 스스로 아무리 생각하고 연구해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마음은 단지 주의 인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영에게 말씀하시고 감동하시는 주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때 혼의 마음은 평화를 얻게 됩니다.
50. 통역훈련의 과정과 원리들
1.통역하기를 사모해야 한다
2.내 안에 통역을 주시는 성령이 거하심을 믿어야 한다.
3.충분한 방언기도 분량을 채워야 한다.
4.머리를 잠잠하게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5.방언을 하면서 조용히 그것을 관찰하라.
6.방언을 크게, 간절하게 하라.
7.가슴을 토하듯이 부르짖어 방언하라.
8.속에서 나오는 느낌을 강력하게 큰소리로 말하라. ⓒ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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