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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서 예수가 보인다면... (If I See Jesus in You...)
디도서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697 추천 수 0 2013.04.29 23:16:37성경본문 : | 딛2: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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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영봉 목사 |
참고 :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
2011년 12월 25일 주일 설교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목사
너에게서 예수가 보인다면... (If I See Jesus in You...)
디도서(Titus) 2:11-14
1.
Merry Christmas! 성탄의 은총이 교우님들의 영혼과 가정과 직장 위에 함박눈이 쌓이듯 소리 없이 그러나 충만하게 쌓이기를 기도합니다.
12월 25일이 주일과 겹치는 것은 대략 7년에 한 번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보통 성탄일에 가까운 주일에 '성탄축하예배'를 드리고, 25일에는 '성탄일 예배'를 또 한 번 드리는데, 올 해에는 두 예배를 겸하여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드리는 이 예배는 두 배로 진해야 하고, 은혜도 두 배로 받아야 합니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성탄일을 맞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십니까? 제게 배달되는 성탄 카드에 적힌 사연을 읽어 보면 다 각각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특별한 축복에 감사하며 이 날을 맞습니다. 어떤 이는 몇 년째 풀리지 않는 생활고에 허덕인 까닭에 지친 마음으로 이 날을 맞습니다. 어떤 이는 외로움과 무료함의 감정으로 이 날을 맞고, 어떤 이는 분주함으로 이 날을 맞으십니다. 요즈음에 대목을 맞아 눈코 뜰 새 없는 교우께서 어느 날 일하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찬송을 들었답니다. 그런데 자신의 입에서 "바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노래를 따라 부르더랍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바빠진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는데,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다 각각입니다. 마음은 다 각각이지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기도는 하나로 집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기도입니까? 이미 고인이 되신 시인 구상 선생은 어느 해 성탄절에 우리 모두가 드려야 할 기도를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성탄을 일흔 번도 넘게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권능의 천주만을 모시고 있어
저 베들레헴 말구유로 오신
그 무한한 당신의 사랑 앞에
양을 치던 목동들처럼
순수한 환희로 조배할 줄 모르옵네
성탄을 일흔 번도 넘게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허영의 마귀들이 들끓고 있어
'지극히 높은 데에서는 천주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좋은 사람들에게 평화'
그날 밤 천사들의 영원한 찬미와 축복에
귀먹어 지내고 있습네
성탄을 일흔 번도 넘게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안일의 짐승만이 살고 있어
헤로데 폭정 속, 세상에 오셔
십자가로 당신을 완성하신
그 고난의 생애엔 외면하고
부활만을 탐내 바라고 있습네
성탄을 일흔 번도 넘게 맞이하고도
나 자신 거듭나지 않고선
누릴 수 없는 명절이여!
이 시는 성탄을 맞는 우리의 마음 상태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진정한 믿음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품어야 할 기도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 줍니다. 저는 구상 선생을 잘 알지 못합니다만, 이 시를 쓸 당시 그분이 이 시에 고백된 대로 그렇게 형편없이 살고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평생 실존적인 고민을 안고 문학과 종교에서 그 해답을 찾았던 구상 선생은 이 시를 쓸 당시에 인격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높은 경지에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깊은 경지로 나아갈수록 자기 성찰은 더 깊어지는 법입니다. 이 시를 통해 구상 선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그의 거룩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해로 여러분은 성탄을 몇 번째 지내고 계십니까?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지낼 것 같습니까? 성탄을 몇 번 지냈든, 혹은 앞으로 몇 번을 더 지내게 될 것이든, 오늘, 우리는 구상 선생의 시를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에 대해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그리고 매 년 이 즈음에 성탄을 축하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찾고 그 의미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도록 하지 않는다면, 성탄을 아무리 반복한다 해도, 아무 의미 없는, 지나고 나면 탈진과 허무감만이 남는 헛된 몸부림이 되고 말 것입니다.
2.
오늘 우리는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Lectionary)에서 정해 준 대로 디도서 2장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 말씀은 성탄을 참되게 지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성탄을 반복할 때마다 우리에게서 일어나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해 줍니다. 적어도 세 가지를 붙들어야만 성탄의 의미가 우리에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성탄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11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자비의 하나님께서 죄와 어둠과 죽음 가운데 사는 인류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우리 인류의 아픔을 보시고 아파하셨습니다. 어미가 태중에 있는 아기를 생각하듯, 마치 창자가 꼬이는 듯 한 아픔을 느끼시듯, 그렇게 인간을 안타까이 여기셨습니다. 2천 년 전, 베들레헴의 어느 짐승 우리에서 태어난 그 아기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인해 주어진 구원의 선물이었습니다. 그 구원의 선물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구절의 뜻을 풀어서 다시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포기할 정도로 인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이렇게 크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차별 없이 구원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므로 '누구든지' 그 은혜를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합니다. 그 '모든' 사람 안에 나도 포함되어야 하며, '누구든지' 안에 내가 있어야 합니다. 성탄의 사건은 인류 전체를 위한 사건인 동시에 나에게 일어난 사건이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났는데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무리 대단한 사건이라도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성탄일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아라"고 찬송하는데, 정작 자신은 그 '만 백성' 안에 속하지 않는다면, 나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둘째, 성탄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도 과거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누구나 "내 모습 이대로" 은혜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은혜는 "내 모습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그 은혜 받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은혜는 우리를 교육하여, 경건하지 않음과 속된 정욕을 버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합니다. (12절)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건져내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14절)
'은혜'는 값없이, 조건 없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만,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같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은혜가 클수록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은 심하게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눈을 뜬 사람은 그 은혜에 감복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변합니다. 방탕하며 살던 아들이 어머님의 은혜에 눈을 뜨자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을 청산하고 어머님이 기뻐하실 일을 하며 살아가듯, 하나님을 떠나 살던 사람이 그분의 은혜에 눈을 뜨고 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근심하실 일들을 청산하고 그분이 기뻐하실 일을 행하게 됩니다.
셋째, 성탄일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체험하고 맛 본 것보다 더 완전한 것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새롭게 하고 그 소망을 더 뜨겁게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에 눈을 뜨고 나면, 우리가 그동안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아야만 전부를 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보이신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나면, 그 나라가 환히 그리고 완전하게 드러날 날이 있음을 또한 믿게 됩니다. 믿을 뿐 아니라 그 날을 사모하고 기다립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된 소망 곧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고대합니다. (13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이라는 종말 신앙은 소위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교리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억지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야만 종말에 대한 믿음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눈 뜨고 그 은혜의 능력으로 새 사람이 되고 매일같이 변화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가 지금 체험하는 영적 세계가 완전하게 드러나는 날을 믿고 소망하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체험한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 나라를 인정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가 온전히 드러나는 미래를 믿고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성탄을 축하하며 우리는 카드를 주고받고 선물을 교환하며 파티를 열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 모든 활동의 의미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말씀에 의하면,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이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나를 위한 것'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에 새롭게 눈 뜨고, 그 은혜의 능력으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셋째,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그분이 이끌어 오실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 소망에 불을 지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탄의 세 가지 의미를 붙들고 이 절기를 지킨다면, 우리는 성탄을 지키는 해가 늘어갈수록 우리 자신이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나에게도 오셨습니까? 이천 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 나신 그 예수가 나의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습니까? 태어나셨다면, 그 예수께서 내 안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계십니까? 그분의 세력이 내 안에서 왕성해져 나의 뜻이 그분의 뜻에 일치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이 말하듯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변화가 나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내 안에 계시다는 증거가 내 삶 속에서 드러나고 있습니까? 성탄을 맞을 때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아들이 더욱 강해져서, 우리의 말 속에서 주님의 향기가 풍기고, 우리의 행동을 통하여 주님의 진리가 드러나며, 심지어 우리의 표정에서 주님의 모습이 보이는, 진정한 거듭 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지난 화요일, 새로 권사와 장로로 선출되신 분들에 대한 고시와 심사가 있었습니다. 심사의 자리에는 다른 연합감리교회의 목사님들이 둘러앉아서 심사 받는 분에게 여러 가지의 질문을 주고 받습니다. 한 분 한 분 따로 인터뷰를 합니다. 심사위원장은 언제나 원로이신 김명종 목사님이 맡으십니다. 'MJ 목사님'이라고 불리는 분입니다. 심사 과정에서 그분이 심사를 받는 분에게 빠짐없이 하시는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권사 혹은 장로가 되시면, 영적 생활을 더욱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아, 저 권사님, 저 장로님을 뵈면 꼭 예수님을 뵙는 것 같아, 라고 말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합니다. 아셨죠?"
저는 그동안 매 년 심사할 때마다 이 권면을 들었으니, 수도 없이 들은 셈입니다. 그런데 그 권면을 들을 때마다 새롭고, 들을 때마다 찔림을 받습니다. 이게 보통 권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그 질문을 던질 때마다 저는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권사 혹은 장로가 되는 분들이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면, 목사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해 저는 덥석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제 능력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연극하여 속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 속임수가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그런 것 말고, 제 모습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는데, 누군가 제 모습을 보고 "아, 꼭 예수님을 뵙는 것 같아!"라고 말하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그것은 제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면, 그리고 그 은혜의 능력에 깊이 잠겨 살면, 그 은혜가 나를 그렇게 변화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저 김영봉의 의지와 능력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은 능히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이 이렇다면, 저도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아니, 용기를 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면, 그 은혜가 나를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심사 중에 MJ 목사님으로부터 이 권면을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아주 가까운 친구 중 한 사람에게 오래도록 전도를 했는데, 참 전도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다음과 같이 말하더랍니다. "너에게서 예수가 보이면 교회에 나갈께." 이게 얼마나 겁나는 말입니까? 나약한 인간이 어떻게 삶으로써 예수를 보여준다는 말입니까? 그분은 "이를 어쩌나."하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부터 그 친구가 아이들과 함께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그 친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예수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교회에 나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럴 정도로 영적으로 자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셨습니다.
4.
제가 보는 기독교 관련 저널(Christian Century) 최근호에 '렘브란트와 예수의 얼굴'(Rembrandt and the Face of Jesus)이라는 제목의 전시회에 대한 글이 나와 있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전시회는 지금 디트로이트 예술 회관(Detroit Institute of Arts)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여러 점의 성화에서 예수님의 얼굴 부분만 확대하여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감상하게 만든 전시회입니다. 한 번 가 보고 싶은 전시회입니다.
제가 읽은 글에 의하면, 렘브란트가 그린 예수님의 얼굴들을 시대 순으로 놓고 보면, 뚜렷한 변화가 보인다고 합니다. 초기의 작품에서 예수님의 얼굴은 주로 위로 향하고 있고 뭔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듯한 느낌을 가지게 해 줍니다. 그것이 우리가 익숙한 성화의 분위기입니다. 렘브란트도 초기에는 전통적인 화풍을 그대로 따랐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다음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렘브란트의 예수 상에서는 인간적인 면모가 더 부각되고 저 세상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사라집니다. 고개는 아래로 향하고 있고, 눈은 연민의 정을 담고 내려다봅니다. 어딘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주변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엠마오 상의 두 제자'라는 제목의 그림에 나오는 예수상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렘브란트가 살던 암스텔담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유대인 주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예수님의 모델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 화가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때 사람을 모델로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는데 어디 감히 인간을 모델로 사용한다는 말입니까? 당시 분위기는 그것을 신성모독(blasphemy)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렘브란트는 이러한 전통을 거부한 것입니다. 당시 보수적인 네델란드의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더구나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심이 점점 커지는 분위기에서, 실제 유대인을 모델로 삼아 예수 상을 그린다는 것은 파격 중에서도 파격이었습니다. 렘브란트는 이렇게 전통과 격식을 파괴하면서까지 '인간으로서의 예수상'을 그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제게 더 흥미로웠던 사실은 후기에 그린 몇몇 예수 상에서 렘브란트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모델로 하여 예수 상을 그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렘브란트는 자신을 모델로 하여 바울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한 인간이었으므로 렘브란트는 자신을 모델로 하여 바울을 그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그리면서 자신을 모델로 삼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남긴 몇 개의 예수 상에서 그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그 중 하나가 이 작품입니다.
렘브란트는 말년에 이 그림들을 자신의 침실에 걸어 두었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몇 가지의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왜 예수님 상을 그리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덧씌웠을까요? 그는 왜 유독 이 그림들을 침실 벽에 걸어 두었을까요?
오늘의 말씀을 비추어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메시야가 되고 싶다는 소망도 아니었을 것이요, 메시야가 되겠다는 야망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메시야가 아닐까 하는 정신 착란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가 일평생 살아온 생의 궤적을 볼 때,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기를 소망했을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예수를 믿고 죄 사함 받고 죽고 나서 천당 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변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의 표정에서 예수님이 보여질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의 마음과 예수님이 하나가 되어, 그의 말과 행동과 표정에서 예수님이 드러나기를 원했습니다.
5.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 중에 "너 성결키 위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 찬송의 2절 가사를 참 좋아합니다.
너 성결키 위해 네 머리 숙여
저 은밀히 계신 네 주께 빌라
주 사귀어 살면 주 닮으리니
널 보는 이마다 주 생각하리
Take time to be holy, The world rushes on
Spend much time in secret, With Jesus alone.
By looking to Jesus, Like Him you shall be
Your friends in your conduct, His likeness shall see.
"주 사귀어 살면 주 닮으리니 널 보는 이마다 주 생각하리." 구상 선생이 일흔 번째 성탄을 지내면서 스스로를 반성하며 드린 기도가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눈에는 구상 선생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좋아하고 그분의 시와 글을 좋아합니다. 렘브란트가 말년에 예수상을 그리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덧씌운 이유가 이같은 거룩한 소망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너에게서 예수가 보이면 교회에 나갈께!" 이 말은 어느 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닙니까? 이 세상이 교회를 통해 보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이것 아닙니까?
그것을 소망하고 그것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고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오늘 성탄을 지키면서 마음 속에 새겨야 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에 은혜가 내 삶 속에 임하도록 그분께 자신을 활짝 여는 것, 그리고 그 은혜가 나를 깊이 깊이 변화시키도록 내어 맡기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환히 드러나는 날까지 그 변화가 지속되기를 소망하는 것, 그리하여 나를 보는 이 마다 주님을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그리고 날마다 기도하고 소망할 일입니다.
2011년 성탄절을 지내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같은 거룩한 소망을 마음에 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올 해 뿐 아니라, 앞으로 몇 번의 성탄을 더 지낼지 모르지만, 성탄을 지내는 회수가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으로 인해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우리의 표정에서 주님의 모습이 더욱 선명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주님,
저희 마음에도 오시옵소서.
베들레헴 마굿간에 오신 주님,
저희 마음에도 오시옵소서.
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그 은혜에 깨어나게 하옵소서.
주님이 저희 삶의 주인이 되시어
저희 말에서 주님의 향기가,
저희 행동에서 주님의 진리가,
저희 표정에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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