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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It Is Not I But God)

시편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425 추천 수 0 2013.04.29 23:16:37
.........
성경본문 : 시8:1-9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2년 3월 11일 설교 
<주기도문 연속설교 "너희가 기도할 때에......"> 5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It Is Not I But God)
시편 8:1-9


1.

지금 이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모두 하나님을 믿는 분들이거나 혹은 믿으려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 여러분은 왜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남들은 편하게 쉬거나 즐겁게 놀러 다닐 시간에 왜 여러분은 예배의 자리에 나와 계십니까? 내 필요한 곳에 쓰기에도 부족한 돈을 왜 십일조로 혹은 주일 헌금으로 드립니까? 요즈음 많은 분들이 새벽 기도회에 나오시는데, 왜 그 수고를 하십니까? 교회로 모여 일하다 보면, 피곤하기도 하고 또 때로 상처를 받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봉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그럽니까?

재빨리 손을 들어 "정답!" 하고 외치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정답은 말할 것도 없이 '구원 받기 위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고 그 구원을 지키고 완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고와 희생과 헌신을 아까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성경 안에서 그같은 말씀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오신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룰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막 10:45)

요한은,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을 보내신 목적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요 3:17)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빌 2:12)

이와 같은 말씀들을 인용하자면 한이 없습니다만, 위에 인용한 말씀만 보아도 "구원받기 위해 예수 믿는다"는 말은 정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태어나면서부터 믿음의 길 위에 서 있게 된 사람도 있고, 중간에 믿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진맥진한 영혼을 끌고 구원을 찾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기도 합니다. 사정이 어떻든, 믿음의 길에 서 있는 이유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혹은 받은 구원을 지키고 완성시키기 위해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이 충분한 대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니, 저 목사가 제 정신인가? 구원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는 대답이 왜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의아해 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정신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사순절 기도 여정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더 맑은 정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을 때는 '나 자신의 구원'을 간절히 바랍니다. 거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능자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하늘 아버지로 섬기고 살다 보면, 믿음의 목적이 나로부터 하나님에게로 옮겨집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면 알수록 나는 작아지고 사소해지며, 하나님은 커지고 중요해집니다. 전능자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그리고 "하늘에 계신"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자각하는 순간, 내가 믿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시스틴(Sistine) 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The Creation of Adam)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다. 저도 직접 본 일은 없습니다만, 그림에서 본 것을 상상만 해도 어떤 감정일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망각합니다. 그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그분의 현존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나를 잊고 오직 그분을 즐기며 찬양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가 보면, 믿음의 목적은 나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찬양하며 그분을 높이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믿음의 여정에서 꼭 한 번 겪어야 하는 전환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왜 믿으십니까?"라고 누가 물으면,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믿습니다" 혹은 "나를 지으신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믿습니다"라고 답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당신은 왜 주일에 교회에 나가 그 고생을 합니까? 왜 그 많은 돈을 십일조로 드립니까?"라고 누가 물으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이것 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머리로 암기해서 말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경험으로 깨달아 그렇게 살고 또한 그렇게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이 진리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첫 머리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말문을 여신 예수님은 여섯 가지의 청원(petition)을 올리십니다. 처음의 셋은 하나님에 관한 청원입니다. 영어로 'Thou Petitions'라고 부릅니다.

1)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2) 나라이 임하소서.
3)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다음에 이어지는 셋은 기도자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영어로 'We Petitions'라고 부릅니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여!"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말문을 여신 주님은 계속하여 '우리'를 주어로 사용하십니다.

4)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5)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소서.
6)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앞으로, 여섯 가지의 청원들을 하나씩 묵상할 예정인데, 그 이전에 이 청원의 순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자 자신의 필요를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에 대해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이 순서를 통해 가르치십니다. 기도에 있어서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유는 대부분 자신의 문제 때문입니다. 기도 생활에 꽤 열심을 내는 사람들도 대부분 '응급조치식 기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와 울고 불고 떼를 쓰다가, 문제가 사라지면 기도를 멈춥니다. 그분들에게 기도란 하나님께 보내는 SOS 신호와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항상 기도의 자리를 찾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 자신의 필요와 문제가 중심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나의 관심사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단계로부터 성장하기를 기대하십니다. 나 중심의 기도에서 하나님 중심의 기도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말씀과 묵상과 기도를 통해 전능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의 초점이 저절로 바뀝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경험하고 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저 하늘 높이까지 주님의 위엄이 가득합니다. (1절)

이렇게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는 순간, 미켈란젤로의 그림 앞에서 자신을 잊고 탄성을 연발하듯,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렇게 찬양과 경배의 기도를 드리다 보면, 우리는 어느 새 우리를 에워싼 문제들로부터 들려 올려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초라한 삶 속에 깊이 스며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계속하여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4절)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대면하고 보면,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에 비해 너무도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하찮은 존재에게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격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의 자리로 가지고 나온 모든 청원들을 잠시 물려 놓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기도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감미롭고 황홀한지 모릅니다. 그 순간,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는 찬송가의 가사가 진실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과 영광에 잠겨 있다가 우리는 서서히 우리 자신의 문제로 기도의 관심을 돌립니다. 그 때, 우리는 기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우리의 문제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과 영광에 잠겨 있다 보면, 우리의 마음의 눈이 맑게 씻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의 문제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문제에 대해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기도를 시작하자 마자 자신의 문제들을 붙들고 애걸복걸하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위한 첫 번째 청원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문화에서 이름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서양 문화에서는 첫 만남에서 이름을 서로 주고 받습니다. 이름을 하나의 기호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동양 문화에서는 상대방과 어느 정도의 관계가 형성되어야만 비로소 '통성명'이라는 것을 합니다. 상대방에게 내 이름을 알려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믿고 자신을 연다는 뜻입니다. 이름은 하나의 기호가 아니라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교우 중 원치 않는 일로 감옥 생활을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이름에 대한 부분에서 아주 깊이 공감을 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자, 죄수 번호를 주면서 앞으로는 그 번호로 불려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더랍니다. 그 순간, '아, 이곳에서는 내가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름을 기호로 생각하는 사람은 번호로 불리는 것이 그리 큰 변화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름을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번호로 불리는 것은 자신의 인간성을 부인 당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고 기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십계명에도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항목이 있습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출 20:7)

이 계명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당신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것 중에서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의 이름 뿐입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행위는 하나님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거룩'이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카도쉬'(kadosh)입니다. 이 말은 원래 '구별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라는 말은 "하나님은 전적으로 다른 분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과는 전적으로, 질적으로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피조물은 유한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피조물은 물질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고, 피조물은 그 한계 안에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선과 진리와 정의와 아름다움에 있어서 흠이 없는 분이고, 피조물은 무엇이 선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정의를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그분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는 말을 뒤집으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룩히 여기게 하소서"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이 기도는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특히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구별됨을 알아보고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인정하게 되기를 비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인 동시에 기도자 자신과 모든 인류에 대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피조물과 얼마나 다른 분인지를 모든 인류가 알게 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형편 없이 취급받고 있습니까? 지난 설교에서 제퍼슨 벳키(Jefferson Bethke)의 영상 "Why I Hate Religion But Love Jesus"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이 영상이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끌자, 그 내용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영상이 줄줄이 올라왔습니다. 그 중 "I Hate Religion, And Jesus Too"라는 제목의 영상도 있습니다. 저는 "혹시나?" 싶어서 그 영상을 조금 보다가 꺼 버렸습니다. 그 영상에 나오는 사람의 표정과 말에서 느껴지는 극단적인 세속성과 야만성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시편에 보면, "주위에는 악인들이 우글거리고, 비열한 자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습니다"(12:8)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실로 요즈음이야말로 '비열함이 칭송받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영상을 끄고 나서 저는 속으로 탄식하며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하찮게 알려졌기에 '나는 예수를 미워한다'고 거침없이 말하게 되었을까?" 실로, 비열함이 인기를 끄는 이 시대에 우리는 더욱 더 열심으로 이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하늘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이 땅의 모든 이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하소서.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알게 하시고, 하나님 답게 섬기게 하소서.
아버지의 이름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소서.
아버지의 이름만이 홀로 높아지소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의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소서.

하나님의 거룩함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밉다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에서 보이는 그 야만성을 치유할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심 밖에 없습니다. 


4.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기도는 가장 먼저 "하늘 아버지, 저로 하여금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피조물과 얼마나 다른 분인지를 나부터 알아야 합니다. 한 번 알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인간의 이해력으로 하나님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매일같이 더 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그분에게 더 사로잡힙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면 갈수록, 나의 생각과 행동이 변해갑니다. 그렇게 되면, 나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은 더욱 높임을 받으십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는 기도는 또한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에 대한 중보 기도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알게 되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잡신을 떠나며, 거짓 신을 벗어나, 영원하고도 참된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우리는 이 기도를 다음과 같이 바꾸어 드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 제 아들에게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아버지, 제 친구에게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진 나라들을 마음에 품고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북한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아버지, 이란 땅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지난 주, 저는 '전도'와 '선교'가 잃어버린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아픔을 덜어 드리는 노력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전도와 선교는 또 다른 면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전도'(evangelism)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되면,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될 것입니다. '선교'(mission)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하는 노력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 아버지를 향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고 진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전도와 선교에 대해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는 기도를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모든 교회를 향해 계속 올려 드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과 축복을 위해 믿는 차원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참되게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자신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 분투하는 차원에서 도약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쓰는 차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 잘못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로 받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힘쓰면 됩니다.

지난 주간의 어느 날 새벽, 저는 찢어질듯한 마음의 아픔을 느끼면서 이 땅의 교회들을 위해 중보했습니다. 그 전날에 교회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인터넷 신문을 통해 읽었습니다. 어느 대형 교회 목회자가 성추문으로 사임을 했는데, 거액의 전별금을 받았고, 그로 인해 교회가 시끄럽다는 기사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동료 목회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국에 있는 어느 유서깊은 교회에서 오래도록 목회하다가 은퇴하는 분이 계신데, 교회야 깨지든 말든 조금이라도 더 받아 가지고 나가기 위해 전횡을 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교회가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새벽에 기도를 하는데 이 이야기들이 생각이 났고, 그로 인해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자는 것이고, 교회라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잘못될 수 있나 싶어서, 통곡하는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에게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 자신과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섬길 때,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행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높임 받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 올리는 주된 기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요즈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직 자신의 유익을 찾기 위해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까? 그같은 이기적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 몸부림치는 '시장형 교회'(market-type church)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교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모으느냐에 있습니다. 또한 가장 좋은 제품을 파는 교회를 찾아 구름떼처럼 몰려다니는 '소비자형 신자'(consumer-type believer)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더렵혀지고 있는지요!

과연, 우리도 이 정신없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경쟁해야 하겠습니까? 과연, 우리 교회도 더 많은 사람을 유치하는 경쟁에 참여하여 끝없는 욕망을 불태워야 하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저는 오늘 교인 총회에 올라온 동의안에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동의안에 담겨진 꿈은 우리의 욕망을 키우자는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자는 꿈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욕망을 이루는 꿈은 우리의 호주머니를 털면 쉽게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꿈은 더욱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힘 입어 포기하고 희생하고 섬기지 않으면 이룰 수 없습니다. 부디, 오늘 교인 총회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 두고 두고 감사할 조건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센터빌 캠퍼스와 맥클린 캠퍼스의 영적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마음 속 깊이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목적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 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이용해 나의 유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항상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저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높아지소서.
우리 교회를 통해 주님의 이름을 높이소서.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을 회복시키셔서
오직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만 전심하게 하소서.
교회를 찾는 모든 신자들을 축복하셔서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는 일을 목적으로 삼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게 하시고
아버지를 아버지 답게 섬기게 하소서.
오, 하늘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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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1 누가복음 하나님 안에 타인은 없다 (No Strangers In God) 눅15:25-32  김영봉 목사  2013-04-29 2626
8990 누가복음 나에게서 아버지를 본다 (I See My Father In Me) 눅15:11-13  김영봉 목사  2013-04-29 2499
8989 전도서 나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My God Is Too Small) 전5:1-2  김영봉 목사  2013-04-29 3166
8988 누가복음 기도 안에 내가 있다(I Am in My Prayer) 눅11:1-4  김영봉 목사  2013-04-29 2413
8987 고린도전 네가 누군데! (I Know Who You Are) 고전8:1-13  김영봉 목사  2013-04-29 2192
8986 고린도전 내가 누군데!(I Know Who I Am) 고전6:12-20  김영봉 목사  2013-04-29 2278
8985 사도행전 다 잡힐 때까지 (Until I Am Completely Grasped) 행19:1-7  김영봉 목사  2013-04-29 2255
8984 디도서 너에게서 예수가 보인다면... (If I See Jesus in You...) 딛2:11-14  김영봉 목사  2013-04-29 2697
8983 누가복음 자비에 기대어 살다(Leaning On His Mercy) 눅1:46-56  김영봉 목사  2013-04-29 2516
8982 이사야 너희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 (Here Is Your God) 사40:1-11  김영봉 목사  2013-04-29 2614
8981 이사야 나는 늘 기다린다(I Am Always Waiting) 사64:1-9  김영봉 목사  2013-04-29 2201
8980 신명기 감사절에 생각하는 영적 전염병(Thinking of Spiritual Epidemic at Thanksgiving) 신8:11-20  김영봉 목사  2013-04-29 3089
8979 스바냐 포도 지게미에 앉아(Sitting on the Lees) 습1:12-18  김영봉 목사  2013-04-29 1988
8978 고린도전 은사로 되는 교회(Church Run by Gifts) 고전12:4-11  김영봉 목사  2013-04-29 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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