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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출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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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 참고 : | 2000년대 설교 |
1장 1절-7절.
1절-7절: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 인이었더라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기도 올립시다. 사랑으로 죄 많은 저희들을 불러주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 또한 불러주셔서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저희들에게 권고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고, 이 시간을 통해서 저희들의 잘못된 모든 지식관을 하나님의 지식관으로 바꿀 수 있게 도와주시고, 저희들의 부족한 모든 면을 채워주시고, 하나님 앞에 잘못되고 비뚤어진 거 낱낱이 고쳐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앞에 흡족한 당신과 똑같이 닮은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나오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세상 모든 인간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든지 자기에게 이 세상은 한 번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한 번 실수하면 똑같은 그 면이 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실수했다고 해서 실수한 그 나를 봐주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 날 실수를 했으면 그 다음 날 또 주는 게 아니라 그 말이요. 한 번 실수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실패를 해도 그것으로 끝나고, 성공을 해도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간 후에 후회하지 말고 우리는 현실을 실속 있게 살아야 되겠다 그 말입니다. ‘이 일이 저 일보다 낫다. 이 일은 저 일보다도 옳다’ 하면 그 옳다 하는 것으로 살기 위해서 어떤 결단이 나더라도 그 옳은 것은 해야 한다 그 말이요. 우리 기독교는 어릴 때부터 정확한 가치 평가를 내리도록 해야 됩니다. 또 내리고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다. 그러니까 그 중간은 없다 그 말이요. 정확한 가치 평가를 내려서 영원을 손해 보지 말라 그 말이요.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누림성 면을 가치 있게 보고 있지만 그러나 이 세상은 영원에 비해 보면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인간이면 다 동등한 인간으로 보이나, 물론 구성요소라든지 하는 건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제 1 목적물과 제 2 목적물이 있는 이상 다 같은 인간이 아님을 알 수 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인간의 구조라든지 구성요소라든지 그런 면이 다 동등하게 보여지기 때문에 인간 눈에는 둘로 나누어져서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정확한 정답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면 ‘영원한 결과성에 가서는 둘로 나누어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가 있다 그 말이요. 어떤 면에서 둘로 나누어지느냐? 결과에 가서 목적적인 면에서 둘로 나누어진다 그 말이요. 결과성에서 나누어지는 그 성분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느낄 수 있고,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 세상에는 믿는 사람이 아니면 안 믿는 사람이지 그 중간은 없습니다. 그렇지요? 둘로 나누어진단 말이요. 그러나 현재는 예수 안 믿고 있다고 하더라도 죽을 때 가서 예수 믿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지금 안 믿는 사람을 향해 ‘너는 지옥 간다. 너는 천당 간다’ 그렇게 완전히 정답을 내릴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그림자는 볼 수가 있는 거지요.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때에 인간은 제 1 목적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있고, 제 2 목적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있다. 성경이 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인간이면 다 똑같다고 그렇게 봐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지옥에 가는 사람도 있어요, 없어요? 전부 다 천당에 갑니까, 지옥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까?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있어요, 없어요? 있지요. 예수 믿으면서 지옥에 가는지 천당에 가는지 그것도 모르고 예수 믿는다면 그건 안 되지요. 예수 믿는다는 건 벌써 하나님의 자녀니까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가는 거지. 그러면 내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천국에 가게 되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내가 천국에 가게 되는 겁니까? 어느 거지요? 어느 거요? 두 번째 게 뭐지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기 때문에 내가 누굴 믿어요? 예수님을 믿게 된 거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하는 그 면을 전제하지 않고, 그 면은 모르고 단순히 그냥 인간 제 편에서 볼 때에는 내가 어떻게 해서 천국에 가게 됐다고 그러지요? 내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천국에 가게 됐다고 그렇게 본단 말이요. 그거는 인간 편에서 보는 것. 그러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편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 그래야 하나님의 의사성을 알 거 아니요? 하나님 편에서가 아니고, 그 면은 막힌 채 인간 편에서 보게 되면 그 사람은 같이 예수를 믿는 거지만 생각이 전혀 달라져 버립니다. 전혀 달라져 버려요.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인간 중에 제 1 목적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있고, 제 2의 목적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있다고 하는 이걸 전체적인 면을 보고 또 개인적인 면도 보고, 보는 눈이 예민해야 됩니다. 하나님 한 분만 자존자요 하나님 한 분만 영존자요 하나님 한 분만 독존자요 하나님 한 분만 무한자요 완전자요 인격자요 생존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전부 다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다 그 말이요. 물질계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과 세상 것.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들었다 그 말이요. 이걸 크게 나누어서 보면 신령계와 물질계를 하나님께서 만들었는데 그 안에는 그 안에는 수수 많은 존재들이 있지요. 물질계에는 물건들이 있고, 개도 있고, 새도 있고, 고기도 있고, 눈에 안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수수 억억 많은 피조물들 중에 오직 인간 자기만큼은 하나님의 특수적인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특수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누구만큼? 돼지만큼? 누구만큼 그렇단 말이요? 인간 자기만큼은 그렇단 말이요. 세상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모르니까 인간 자기를 누가 만들었는지 잘 몰라요. 보통 보면. 그저 ‘남녀가 짝맞아서 시집장가 가서 아기를 낳았구나’ 그런 식이지.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특수한 피조물로 만들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특수 피조물에게는 특수성이 있다. 바꿔서 말하면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특수한 피조물로 지었다’ 그렇게 되기도 해요. 무엇이 특수하냐?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만든 특수한 목적이 있다 그 말이요. 누가요? 나 말고 딴 사람이? 인간 자기라. 인간 자기가 특수한 존재라 그 말이요. 인간의 이런 특수성을 이 세상사람들은 모르고, 또한 학교에서도 몰라요. 대학교라든지 그런 데서도 몰라요. 성경에서만이 가르쳐 줘요. 보면 방송이나 테레비에 나와서 한다는 얘기가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창조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거기에 인간의 특수성이 있어요, 없어요? 특수성이 있는 것 같으나 하나님의 특수성, 즉 하나님이 인간 자기를 만든 하나님의 그 마음은 모른 채 다만 인간을 이 세상의 모든 것과 비교를 해 볼 때에 인간 자기가 딴 것들보다 좀 특수하거든.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인간은 말하는 동물이다.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런 식으로 말이 돼 있단 말이요. 성경을 알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란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놓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평가해 볼 때 거기에는 하나님의 특수성을 염두에 두고, 특수목적을 염두에 두고 그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이요. 이해갑니까? 같은 말 같으나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사상과 깊이를 우리가 알아야 된다 그 말이요. 안 그러면 ‘아, 유식하다’ 그렇게 보지. 우리는 그거 유식하게 보지를 말아요. 그 말 누군들 못 해. 그 말은 누구든지 할 수 있어. 자기가 인간이라면 ‘나는 돼지하고 다르다’ 누가 그 말을 못 해. ‘나는 말하는 인간이다.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다’ 아, 그 말 누가 못 해.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왜 나를 만들었나?’ 하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단 말이요. ‘하나님, 나를 왜 특수적인 피조물로 만들었습니까?’ 하니까 하나님이 왈 ‘특수목적이 있기 때문에 너를 지었다.’ 인간은 지음 받은 면에서만이 아니라 구성요소에 있어서도 또 특수해요. 짐승의 살을 떼어다가 인간 살에다 붙일 수 있어요? 아마 세포조직도 다를 걸? 사람이 타락된 세상에서 별의 별 장난을 다 하지. 코끼리의 생명을 빼다가 사람 속에 넣어주면 사람이 어떻게 되겠어? 그게 가능하다면 인간이 코끼리만큼 될는지 모르지만 코끼리처럼 코나 안 나오면 다행이야. 안 그렇겠어? 자꾸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람이 호랑이 발톱을 먹으면 그만큼 강해지나? 호랑이 발톱은 호랑이가 뭘 먹고 난 거지? 호랑이는 짐승발톱만 먹고 살았나? 호랑이도 딴 짐승을 잡아먹었어. 그럼 딴 짐승은 노상 식물을 뜯어먹고 그러지 않았느냐 그 말이요. 그러면 그 식물의 요소들은 어디서 나왔느냐? 땅에서 나왔거든. 여러분들, 열매를 먹으면 단 것도 있고 신 것도 있고, 어떤 거는 쓴 것도 있고 어떤 거는 매운 것도 있고 그렇지요? 그런 식물들은 땅의 양분을 먹고 그런 맛이 나는 거지요. 그러니까 땅 속에 그런 요소들이 다 있다는 거지. 그렇지 않아요? 없는 것이 나오는 게 아니에요. 이걸 보면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가 너무나도 신비해요. 신비스러워. 또 그 어느 한 가지만 먹으면 그게 인체에 독이 되지만 딴 거하고 같이 먹으면 그것이 융합이 돼가지고 중화가 되는 그런 것도 있고. 우리 인간은 존재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성분적인 면에서도 특수하고, 성격적인 면에서 특수합니다. 인간 외에 다른 어떤 피조물들이 고상하게 생겼다고 해도 신령계에 속하는 피조물은 이 땅에서 오직 우리 인간밖에 없어요. 신비롭지 않아요? 인간 자기가 그렇단 말이요. 여러분들에게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들을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는지? 어떤 면에다 자기의 가치를 두고 자기의 가치를 느끼는지? 아니면 자기의 그 가치성도 모르는 건지? 여러분들은 자신이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느낍니까? 가치가 없다고 느껴져요? 함부로 내동댕이쳐요?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으로 된 자기의 가치를 모르면 모든 것이 와서 그 인간을 짓밟아 버려요. 알겠어요? 밟혀야 돼요. 또 하나님이 밟혀버리게 만들어요. ‘너는 가치가 없게 살려고 하는구나. 그러니 너는 가치가 없다. 인간 속에는 가치 평가를 이해타산을 따질 수 있는 그게 들어있어서 누구든지 피해를 안 보려고 그러고, 손해를 안 보려고 그러는데 네가 인격적인 면에서 네가 너를 가치 없게 내동댕이 치는구나’ 하고 하나님이 밟아버리라고 그래요. 마태복음 5장 13, 14절에 뭐라고 그랬지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그렇지요?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버림을 받으면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다. 가치가 없단 말이요. 이걸 복음적으로 얘기해 보면 기독교인이 예수 믿으면서 성경을 깨닫지를 못하고 아무 것도 모른다면 그건 밟혀야 돼요. 그건 무시당하는 거요. 아무리 교인이라도 목사부터가 무시해 버려. ‘네가 기독교인이냐? 교회 다니면서 왜 못 배웠느냐?’ 하고서. 이단들도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해가지고 교인들을 잡아먹으려고 그러지 않아요? 이를 테면 여호와의 증인 같은 사람들도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해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안 보니까, 또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인간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특수목적을 안 가르쳐 주고 맨 ‘예수 믿어 복 받아 잘 살자’ 그따위 식으로 가르치니까 이단에 펑펑 넘어가는 거지요. 사정없이 KO당하는 거지요. ‘여호와의 증인이 오면 이단이니 받아들이지 말아라.’ 누가 그 말을 했느냐? 목사들이 했거든. 그러면 이단노릇을 누가 하고 있느냐? ‘예수 덕으로 이 세상에서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살고 호강하며 살았으면’ 하는 자기가 하고 있단 말이요. 이게 얼마나 저질적인지? 이건 자기가 자기의 가치력을 떨어뜨리는 겁니다. 막 밟아버려요. 천사나 마귀들은 영계에 속하는 겁니다. 신령계에 속하는 존재라 그 말이요. 영물이라 그 말이요. 하지만 우리 인간만큼은 영과 육의 결합체로서 영은 신령계에 속하고 육은 물질계에 속합니다. 인간 자기가 그렇게 된 존재입니다. 영과 육으로 결합된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볼 때에 영육 결합체로서 지음 받은 존재는 인간 외에는 없다. 오직 인간 자기밖에 없다. 인간은 어떻게 지음 받았다고요? 뭘로 지음을 받았다고요? 영육 결합체. 영과 육의 결합체. 여러분들은 물론 교회 와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배우니까 이런 걸 알지만 세상사람들이 자기가 인간이면서 ‘나는 영육 결합체로 지음을 받았다’ 하는 그런 면을 알아요, 몰라요? 모르지요.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거라. ‘나는 뭘로 됐다’ 하는 이걸 모르는 거라. 그러고도 똑똑하다고 그래요. 자기가 자기도 모르면서 똑똑하다고 그래요. 그러니 이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냐? 그렇지 않아요? 인간 자기 존재가 하나님 다음 가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 다음에? 하나님 다음. 나는 하나님 다음 가는 존재다. 그렇다면 그런 존재가 ‘내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아야지’ 하는 그게 죄입니까? 그런 목적으로 사는 사람의 정신 속에는 ‘나는 하나님 다음 가는 존재다’ 하는 그 정신이 들어있어요, 없어요? 없다. 그러면 돼지는 뭘까? 하기야 여러분들이 돼지가 안 돼 봐서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이 한 번 생각을 한다면 돼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돼지 왈 ‘나는 하나님 다음 가는 존재다’ 그 생각을 할까, ‘어떻게 하면 설거지물이라도 많이 좀 안 부어주나?’ 그 생각을 할까? 어떻게 알지? 돼지는 안 돼 봤지만 돼지는 배부르면 똥구덩이 가서 자고, 배고프면 와서 자기 밥통에다 네 발 다 집어넣고 거기에 오줌도 싸고 똥도 싸고 그 똥 먹고, 배부르면 또 가서 자고 하고 있으니까 그런 돼지에게 물어보나마나지 뭐. 그렇지 않아요? 인간이 돼지처럼 그렇게 살면 좋습니까? 그렇게 살면 자기 주가가 떨어져. 자기는 저질적인 인간으로 돼버려요. 별 수 없어요. 자기가 자기 스스로 내려가는 거요. 남이 발로 차나? 스스로 내려가서 있으니까 밟히는 거지. 누가 발밑에 내려가서 있으라고 그랬나? 제가 내려갔지. 돼지 집에 들어가면 돼지에게 밟히지 뭐 돼지가 떠받들어 주나? 인간은 하나님의 특수목적으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궁극적 목적적 구원을 선택하셨고, 우리는 그 구원의 제 1 목적물로 지음을 받은 겁니다. 만일 우리가 특수목적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의 특수성으로 지음을 받지를 아니했을 거란 말이요. 동물 중에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게 뭐지요? 아, 원숭이, 고릴라. 원숭이가 인간하고 비슷하지만, 인간을 닮았지만 하나님의 특수목적으로 지음 받은 겁니까? 우리 인간은 영육 결합이 특수하고, 또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마음 정신 취미, 하나님의 지혜지식성 하나님의 도덕성 하나님의 능력성을 감염될 수 있는 그런 자로 지어졌다 그 말이요. 그런 면에서 특수하다 그 말이요. 그리고 그 면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그 나라에서의 누림성이 있고 느낌성을 가진 존재로 지은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도 누림성을 맛보게 해주고 느낌성을 맛보게 해줘요. 우리 인간은 감염성적으로 지어진 것이 특수하다 그 말이요. 다른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록 하나님을 닮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 자기만큼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록 하나님을 닮아요. 반면에 세상을 가까이 할수록 세상을 닮고. 그렇지요? 가까이 하는 것으로 자꾸 옮아요. 인간 자기가 그렇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 그 말이요. 부정적으로 나쁜 쪽으로 말한다면 나쁜 아이들과 나쁜 장소를 자꾸 가게 되면 나쁜 것이 자꾸 옮아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인간의 나약성, 연약성, 그 자기를 모르면 안 되는 겁니다. 알아야 된다 그 말이요. 하나님을 하루라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을 닮게 되고, 하나님을 하루라도 떨어지면 그만큼 떨어지는 거고. 그렇지 않아요? 인간 자기가 하나님과 멀어지면 별 수 없어요. 똑똑하다고 해도 누가 알아주지를 않아요. 첫째는 하나님이 안 알아줘요. 하나님께서 왜 감염성을 우리 인간에게 넣어서 인간에게 하나님을 감염시키려고 그럴까? 우리 믿는 성도에게 왜 자꾸 하나님을 감염시키려고 그럴까? 왜 그럴까요? 왜 자꾸 하나님을 감염시키려고 그럴까? 누구처럼 만들어 주려고? 하나님처럼 만들어 주려고. 왜? 왜 그래야 되느냐 그 말이요. 학교에서 왜 영어를 가르치지요? 왜 영어를 가르쳐요? 가르치는 이유가 뭐요? 외국사람을 보면 통하게 하려고 그러고, 또 어떤 사람은 이민을 가려고 영어를 배우잖아. 그런 것처럼 하나님이라야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에 나를 데리고 들어가서 하나님처럼 누리며 살게 하려고 그런다 그 말이요. 하나님은 신령계와 물질계를 만들기 전에 당신 홀로 천국에서 독존하고 계셨기 때문에 사랑할 대상이 없었다 그 말이요. 없었는데 어떻게 기뻐했을까? 하나님 당신 스스로 혼자서 사랑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어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어요. 우리 인간들도 보면 인간 자기 혼자 있어도 기쁠 때가 있지요? 기쁘고 즐거울 때가 있어. 그런데 어떤 사람은 둘이 있으면 혼자 있는 것보다 기뻐야 될 텐데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그것도 있습니까? 있지요. 오히려 혼자 있으면 더 홀가분하고 즐겁고 기쁘고 신이 나서 흥얼거리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우리 인격자들에게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사랑은 하나님 당신이라야 100% 받을 수가 있어. 우리 인간의 사랑은 단순하기 때문에 한 가지나 혹 두 가지 이렇게 주고받을 수가 있는데, 이런 존재를 하나님의 사랑을 100% 주고 받고 하게 하려니까 예수님으로 통해서,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당신의 성품을 주는 거지요.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끄집어 내려가지고 하나님을 인간 자기처럼 만들어 놔요. 이게 타락된 오늘날 교회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이란 말이요. 하나님을 인간 저처럼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모든 간구하는 것도 저한테 맞춰가지고 제 소원 들어달라고 그래요. 하나님의 의사가 어떻고, 생각이 어떤지, 마음이 어떤지 그 면을 알려고 하고, 그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제 욕심대로 기도를 하고, 그걸 주면 하나님을 위해서 쓰겠다는 그런 식이지. 오늘 아침에 차타고 오면서 그 어느 방송이지? 기독교 방송인가, 극동방송인가? 어느 방송이요? 어떻게 속에서 부글거리는지. 아니, 십계명에 부모공경 하라는 거 있지요? 그걸 갖다가 ‘논어 맹자 공자 어쩌고’ 하고 나옵디다. 그러니까 삼강오륜에 보면 공자도 부모공경 하라는 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공자가 말한 거와 성경에서 부모공경 하라는 거와 같다는 거지. 어째 같아? 어떻게 속에서 부글거리는지. 그게 또 기독교인이래요. 장로인지 목사인지, 나는 끝까지 안 들었어. 어떻게 속에서 부글거리는지 꺼버렸어. 그 모양이야.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건 하나님 의사에서 나오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고. 그렇지요? 그러면 부모를 어떻게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지요. 유교의 공자는 아담이 선악과 따먹은 그 후로 영이 죽었고, 타락이 된 그 머리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그게 나온 거요. 그럼에도 하나님이 말씀한 그 뜻과, 공자가 말한 그 뜻과 같을까요, 다를까요? 그 질이 같아요? 아니,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공자가 말한 건가? 공자가 그 말한 걸 몰라서 하나님이 또 그 말을 했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어째 그걸 모를까? 어째 그게 성경하고 똑같으냔 말이야. 오늘날 기독교가 그렇습니다. 기독교가 그 모양이에요. 하나님을 의사적으로 모르니까 그 장난이 나오는 거지. 그러니까 하나님을 끌어다가 인간 제 차원처럼 말해버리는 거요.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고상해지고 올라갑니까, 인간 저처럼 쪼그라집니까? 하나님이 어디 쪼그라질까마는. 우리 인간세계에서도 말을 할 때에 어떤 사람은 부풀려서 말하고, 어떤 사람은 쪼그라뜨려서 말을 하지요. 그런데 그걸 전혀 모르는 사람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그 말대로 생각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할 거 아니냐 그 말이요. 하여튼 여러분들은 빨리 빨리 성경을 깨달아가지고 그런 사람 붙잡아서 좀 가르쳐요. 오늘날 기독교가 다 그럴까마는, 좋은 교회도 있어요. 좋은 목사님들도 있고. 헌데 이 시대가 마지막이니만큼 어디를 가든지 보면 세상을 가르치고 있다. 교회는 뭘 가르치는 곳이요? 어디를 가르치는 곳이요? 예? 교회는 뭘 가르쳐요? 하나님을 가르치고, 천국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고, 이치를 가르치고, 신령한 뜻을 깨닫게 하는 곳이지. 그런데 ‘예수 믿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맨 그런 식이라면 난 안 믿겠어. 헌금 갖다 줘가면서 뭐 하러 그런 걸 믿어. 하여튼 자기 앞에 소돔 고모라처럼 유황불이 떨어져야 그 때는 실감이 나지 아직은 실감이 안 나요. 우리는 존재적으로는 하나님은 아니지만, 그리고 현재적으로 신령계 천국은 못 갔고 천국은 못 누리지만 그러나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가난하든지 부요하든지 간에, 배웠던지 못 배웠던지 간에 하나님의 성품은 입을 수 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생각을 내가 가질 수가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닮을 수는 있다. 이게 예수 믿는 거란 말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 속에 몇 가지 사랑이 들어있지요? 세 가지가 들어있는데, 스톨게가 있고 필레오가 있고 에로스가 있고. 아가페 속에는 그게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선지사도들이 기도할 때에 ‘아버지’ 그랬다가 ‘주여’ 그랬다가 ‘당신이여’ 그랬다가 하지요? 아가페 사랑은 복합성이란 말이요. 복합성이면서 다양성이다. 하나님께서 당신 홀로 천국을 누리시면서 너무나도 좋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단 말이요. 그래서 아가페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당신 홀로 그 천국을 누리길 원치 않으시고 ‘이 좋은 천국을 어찌 나 혼자만 누릴 수가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가지셨다 그 말이요. 그래서 ‘나 같은 천국을 누릴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를 만들어서 나와 함께 이 천국을 누리게 하자’ 했던 겁니다. 그러면 ‘나 같은 자’가 누구요? 여러분들 자신이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닮았다 그거지요. 1차적으로 그렇고, 2차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 닮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라’ 하는 것. 그래서 ‘예수님을 닮으라’ 하는 거고,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한 것은 내가 예수님을 닮으면 하나님을 닮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니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서 나에게 예수님을 감염을 시켜라 그 말이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감염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성품만 닮도록 되어 있다면 좋겠는데 이 감염성이라는 것은 인간이 죄와 가까이 하면 인간에게 죄가 감염이 되도록도 됐단 말이요. 우리에게 천국만 있고 지옥이 없으면 좋겠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천국만 있고 지옥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잘 믿는 사람이요, 못 믿는 사람이요? ‘아버지는 왜 문 위에 매를 걸어놨을까? 저것 좀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아이는 공부 잘하는 아이요, 못하는 아이요? 지옥이 없었으면 좋겠지요? 이 세상에 어려운 사건 환경을 몰아 붙여서 나한테 안 줬으면 좋겠지? 그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요, 안 좋은 사람이요? 그러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을 위해서 지옥도 만들어 놓고, 몽둥이도 올려놨단 말이요. 우리가 시간적으로 찰나적으로 순간적으로 하나님으로 감염돼 나가지 아니하면 내 속에 죄가 자꾸 커져나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면에는 적극적이라야 되는 겁니다. 소극적으로 신앙생활 하지 말란 말이요. 적극적이라야 죄를 이길 수가 있는 겁니다. 인간이 죄악성에 감염이 됐다가 그 죄가 도로 빠져나가면 무(無)로 돌아가는 게 아니요. 왜 그런가 하니 오늘 죄를 지었다가 내일 회개하면 그것이 완전히 때가 빠지듯이 빠져나간 거냐? 빠져는 나갔지만 오늘 죄지은 그 시간만큼은 영원히 흘러가버린 거요. 그래서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거지요. 이스라엘이 70인이 애굽에 들어가 가지고 430년이 지난 후에 60만 대군으로 나온다고 하는 그 말속에는 아주 다양한 계시가 함축이 돼 있어요. ‘애굽에 70명이 들어가서 430년 지나서 60만 대군으로 나왔다’고 지금 제가 말한 게 몇 초가 흘렀지요? 430년의 기간을 말로 할 때 몇 초가 흘렀어요? 한 10초나 흘렀나? 그 10초를 늘어뜨리고 늘어뜨리고 늘어뜨리면 몇 년이 돼요? 430년이 돼. 단 10초 정도의 말로 430년의 기간을 말을 했지만 이 430년이라고 하는 그 시간 속에는 이스라엘이 어떤 신앙정신으로 믿어 나왔다는 그것이 들어있단 말이요. 그게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의 본문인 1장 1절부터 7절까지를 가지고 몇 번을 설교를 하는 거지요? 다양한 측면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전기공사를 해 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거야. 겉에서 보면 전기선이 몇 가닥이지? 두 가닥. 그런데 이 전선을 탁 잘라서 보니까 그 속에 그 두 가닥도 있고, 또 두 가닥만 있나? 잘잘한 머리카락 같은 게 50심, 30심 막 그렇게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죄악성에 감염된 이거는 영원히 자체적 심판이 되는 겁니다. 재판석에서 판사가 ‘너 이놈, 몇 년 동안 살아라’ 하고 쾅쾅 두들기고 하는 그런 게 아니고 우리 믿는 자에게 죄로 감염이 된 것만큼은 하나님의 성품을 입는 면에서 못 이룬 거지요. 그만큼 손해란 말이요. 그런 면을 여러분들은 이해타산적으로 아주 애닮게 생각을 해야 돼요. 그런 면에서 가슴 아프게 생각을 하고. 그런데 죄가 뭔지를 알아야 말이지. 죄가 뭐지요? 꼭 못된 활동한 그것만 죄로 보면 안 돼요. 여러분들이 현재적으로 무슨 큰 죄는 안 지었지요? 그러나 지을 가능성이 자기에게 있을까요, 없을까요? 잠재의식 속에 있단 말이요. 들어있어요. 들어있는 거예요. 그런데 잠재되어 있는 이걸 나는 몰라요. 하지만 어떤 환경이 오면 잠재돼 있던 그게 튀어나와요. 그러나 그 때가 오기 전에는 몰라. 그런데 그 때가 오더라도 어떤 죄행이 안 튀어나오게 하려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나의 인격화 시키면 돼요. 그러면 그것은 나오기 전에 자지러져 버려요. 알겠어요? 안 믿는 사람들은 단순히 그냥 행동 죄만 가지고 ‘죄다. 아니다’ 하고 따지지만 여러분들은 그 생각만 갖고 있으면 안 돼요. 왜 그러냐? 하나의 예를 들을 게요. 지금은 중들이 자꾸 마을로 내려오지요? 빌딩 속에 들어가고 그래요. 엊그제는 불교 믿는 사람이 우리 집에 전도 왔더라고. 그래, 불교의 교리대로 한다면, 석가의 교리대로 한다면 물질은 전부 죄고 물건을 보면 자꾸 욕심이 생기니까 물건을 안 보려고 그래요. 여자를 보면 음심이 들어가고, 또 돈을 보면 탐욕이 들어가고, 먹을 것을 보면 먹는 욕심이 자꾸 생기고 그렇거든. 그러니까 안 보려고 그래요. 안 보려고 어디로 올라간 거지요? 산속으로 올라갔어요. ‘물질은 모두 다 악하다’ 이런 식이니까. 그러나 물질이 악한 게 아니지요. 사람 자기 속이 악한 거지. 산으로 올라가면 거기는 자기 혼자 있으니까 죄 지을 필요가 없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 장소만 피하면 될 거 아니요? 그런데 속에는 뭐가 따라가고 있지요? 죄 짓고 싶은 마음은 따라가요. 산속 절간에서 혼자서 목탁 두드리고 있으면 딴 사람이 와서 탁 볼 때에 뭐처럼 보이지요? 죄인처럼 보입니까, 신선처럼 보입니까? 어떻게 보일까요? 여러분들이 볼 때는? 뭘로 보여요? 신선하게 보여요? 그런데 그러면 중들은 제 스스로 나왔나? 누가 만들었지요? 중도 사람 아니냐 그 말이요. 그래, 그 사람을 누가 만들었어요? 마귀가 만들었나, 하나님이 만들었나, 제 스스로 나왔나? 하나님이 만들었지요.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를 돼지처럼 만들지 않고 개처럼 만들지 않고 소처럼 만들지 않고 인격자로 지었고, 특수목적이 있고, 특수성이 있게 지으신 것이지요. 인간 보기에는 그가 중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인간이란 말이요. 즉 하나님의 그 특수목적으로 지은 인간인데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중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그러겠어요? ‘네가 참 잘 하는구나. 네가 네 마음을 갈고 도를 닦는구나. 그래, 부지런히 닦아라. 그러면 내가 너를 하늘나라로 데리고 올라가마’ 그럴까, 하나님이 ‘네 이놈, 내가 너를 왜 만들었는지 네가 아느냐? 네가 인간이라면 산속에 숨어있지 말고 인간 속에 들어가서 성품이 인격이 취미가 마음이 정신이 하나님처럼 만들어져라’ 그러실까? 중이 그러고 있는 것이 인간 보기에는 죄를 안 짓고 있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그렇게 하고 있으면 사건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 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가지를 않아.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가지를 않아. 배워지지를 않아. 그러니까 중이 산속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요, 선이요? 죄요 죄. 그래,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중 자기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있는 그것을 자기가 봅니까, 못 봅니까? 못 보고 있단 말이요. 성경은 그런 걸 가르쳐 준단 말이요. 뭐가 죄냐? 인간 보기에는 행동 죄 하나 지은 이런 걸 ‘죄다. 아니다’ 하고 손가락질하고 입질에 오르내리고 까 내리고 욕을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으로 통해서 성경을 깨닫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지 않았다면 그건 죄란 말이요. 알겠어요? 거기에 대한 심판이 영원하다 그 말이요. 지옥으로 보낸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것을 적극적으로 믿으라 그 말이요. 적극적으로 믿으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집에서 살림살이는 등한시 하고 맨날 교회 와서 기도하고 철야기도 하며 교회에서 살라는 말인가? 아니에요. 맨날 교회 와서 살아도 죄 짓는 게 있어요. 사람이 밤이 되면 자야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연이치를 주신 것은 밤이 되면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직장이면 직장, 농사면 농사, 장사면 장사를 하나님께서 주신 그 환경 속에서 환경을 잘 이용 응용해가지고 하면서 성경에서 배우고 깨달은 것을 잘 연관을 시키고 그런 사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잘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싫다고 다 버리고 도망을 가면 하나님이 상을 주느냐? 그건 상이 아닌 다 심판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예수 믿는 이치 도리를 깨달아야 된단 말이요. 무조건 ‘믿사오니 믿사오니’만 해서는 안 됩니다. ‘믿사오니’ 뭘 믿어? ‘주실 줄 믿습니다?’ 뭘? 몽둥이나 안 주면 천만다행이지.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 믿는 이치를 잘 배워야 된다. 잘 깨달아야 돼요. 그리고 부지런히 깨닫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정신이 들어가고, 그러면 자기가 영특해질 거 아니냐 그 말이요. 자기가 하나님처럼 지혜롭고 총명해지지 않느냐 그 말이요. 성경을 대학교에서 배울 수가 있어요? 성경은 하나님의 책이고 하나님을 공부하는 책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는 거 아니요? 그런데 성도들이 성경을 세상 책만도 못하게 여기고, 교회에서 성경을 들고 세상을 가르치고 있으니. 여러분들은 이제 교회에 나오는 것만을 족하게 여기지 말고, 우리가 배가 고프면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먹지요? 그런 것처럼 성경도 부지런히 읽고, 그리고 설교 속에서 더 많은 이치를 깨닫고 그러면 자기가 자꾸 올라가잖아요? 자기가 자꾸 영광스러워지지 않아요? 하나님은 나를 당신처럼 영광자로 만들러 주려고 하는 건데.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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