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시85:6 |
|---|---|
| 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 참고 : | 2009-06-17 http://www.yullin.org |
다시 살리시리니
내 영혼의 봄날을 위하여 6 2009.06.17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시 85:6).
I. 본문해설
오늘 우리가 읽는 본문은 고라자손의 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시를 관습적으로 성가대 지휘 자의 지휘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던 것 같습니다. 어떤 주석학자는 고라자손 중 한 사람이 쓴 시라고 하기도 하고 다윗이 쓴 시를 고라자손이 보관했기 때문에 고라 자손의 시라고 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1절서부터 4절까지 이스라엘 역사에 있었던 중대한 사건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은 다 름아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킨 사건입니다. 시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건을 노래하면서 그 공동체적, 국가적, 교회적 사건을 회상하며 현재의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를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벨론의 포로에서 건져내셨던 사랑으로 죄와 무기력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건져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II. 언약 백성의 삶
우리는 여기에서 언약 백성의 삶을 봅니다. 즉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는 백성의 삶이 어떠해야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던 것은 그들이 주님께 범죄 하였기 때문인데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분노를 거두시고 그들을 용서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이 회개하고 통회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은혜를 베푸셨다고 시인은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인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것도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의 결과요 또 바벨론에서 고통 받던 이스라엘 백성이 본토로 돌아오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 곧 당신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시고 신실하신 성품 때문이었다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고 바벨론을 떠나올 때 가졌던 순수한 신앙의 감정이 사늘하게 식어가는 가운데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인 깊은 침체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답게 살 수 있도록 새로운 은혜를 부어달라고 말입니다.
작년에 영국에 갔을 때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했던 예배당을 방문했습니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목회를 하고 계셨는데 둘째 아들이 선교를 가겠다고 해서 파송을 했다고 합니다. 며느리는 임신한 채로 중국에 갔는데 중국에서 며느리와 손자 모두 죽고, 아들은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당시에 영국 교회에서는 몇 교회 건너 하나씩 젊은이들이 수시로 순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교회가 지금은 담임목사님이 없습니다. 교인 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담임목사님 생활비를 줄 수가 없어서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며 설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에 종교개혁이 있을 당시 참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만명이 넘는 순교자들이 있었던 에딘버러에 도시 한복판에는 전설적인 설교자 존 낙스의 동상 대신 경험주의 철학자 흄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영국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죄 가운데 깊이 사로잡혀 진노아래 있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여러분을 죄 가운데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 가운데 게으름과 나태로 침륜에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 생활은 언약 백성에게 어울리는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굳게 명심하고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언약백성의 참된 삶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 참된 삶으로 돌아올 때 여러분은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깃발이 되고 하나님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해주는 나팔소리가 될 것입니다.
A. 참된 기쁨의 생활
언약 백성의 참된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바로 기쁨의 생활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의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 세상에 알릴 수 있겠습니까? 참된 기쁨의 생활. 이것이 바로 언약백성의 삶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언약백성으로서의 삶의 본질적인 기쁨을 회심하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해주십니다.
B. 기쁨의 근원
회심 후 제일 먼저 밀려오는 감정은 바로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굳게 붙드는 순간 이전에 경험해 본적이 없는 기쁨을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부어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삶에 진정한 기쁨은 내적 생명을 경험함으로써 알게 됩니다. 예전에 느꼈던 기쁨은 감각적인 사물과 세상살이에서 오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언약 백성으로서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 무한하시므로 거기에서 솟아나는 기쁨 역시 놀라운 영속성을 가집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 자신이 기쁨의 근원이시기에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그 기쁨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과 영혼과 정신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기쁨이 가득 할 때에 우리는 우리가 처한 환경도 다르게 보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이런 기쁨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에 대해서 회개하고, 잘못된 자아를 성찰할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탈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자기 깨어짐 속에서 흘리는 눈물은 하나님 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자기 깨어짐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오히려 강하게 합니다.
우리의 심령에 하늘에 신령한 자원이 가득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조금 손해 보는 것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관용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때 이것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신 주님 때문에 우리가 누리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간증집회는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 중에 뛰어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본질적으로 끊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회귀하여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여러 군데서 다윗 요셉을 뛰어난 사람으로 칭찬합니다. 하지만 다윗이 왕이었기 때문에, 요셉이 국무총리에 올랐기 때문에 그들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들의 믿음을 칭찬합니다.
C. 소중히 여김과 기쁨
하나님과의 평화를 회복하는 것의 핵심은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마음의 참된 기쁨은 사랑하는 관계에서 옵니다. 이 사랑의 특성 두 가지는 소중히 여기는 것과 기쁨입니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은 신앙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아주 값지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얼마나 소중한 분입니까?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중하게 다룹니다. 이것이 소중히 여기는 특성입니다.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련된 것들을 모두 소중히 여깁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부르심, 사명, 하나님을 알려주신 지식, 하나님의 은혜, 교회, 교회 안에 질서 등 이 모든 것 안에는 하나님의 특성이 배어있고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다는 사실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했을 때에만 알 수 있습니다.
III. 영적 회복과 은혜 작용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영적인 회복과 은혜의 작용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를 다시 살리사,” 여기서 살린다는 표현은 시편에 여러 차례 나옵니다. 이것은 죽었던 것 혹은 생명의 특성이 현저하게 상실된 것을 살려내는 것으로 다시 생명을 부여해서 살아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가 스스로 의도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면 그가 어디에 있든지 불꽃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회복시켜주는 백성들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로 말미암는 기쁨이 우리의 중심 속에서 차고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우리를 다시 살려달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영적인 심령의 부흥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IV. 결론 : 영적 회복을 구함
지금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무엇을 절실히 구해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나 자신의 영혼, 우리 가족의 영혼, 그리고 많은 지체들이 살아있다고는 하나 죽은 것과 같은 교회를 위해 우리가 구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교회 안에서 본질적인 일을 위해서는 눈물 한번 흘려본 적 없는 사람들이 비본질적인 것을 위해서는 열심을 내는 것은 그리스도를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시대, 이 나라, 그리고 이 교회를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온 마음을 다해 우리 자신의 영혼의 부흥과 교회의 부흥과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이 여호와와 여호와의 행하신 일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자들이 되지 않도록 온 마음을 다해 간구하는 일입니다. 2009-06-17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