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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2:1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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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예수님의 4중 감사 - 범사에 감사합시다
눅 22:14-20
2008. 3. 2, 오전
사순절 넷째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생애를 묵상하며 지내는 계절입니다. 금년도 표어를 같이해 보겠습니다. 오늘 그 6번째로 ‘범사에 감사합시다’라는 주제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5번째 전도에 대해서는 다음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은 그분의 짧은 기간 동안 감사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감사를 받아야 되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겪을 필요가 없는 고통과 죽음을 불평 한마디 없이 고스란히 감당하면서 감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평생 감사를 실천하셨던 주님의 생애 가운데서 나는 크게 4가지의 감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4가지 감사는 마치 실내악의 4중주처럼 아름다운 선율로 다가옵니다.
1. 있는 것을 감사(요 6:1-13)
오병이어 사건은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5천명을 먹일 일을 앞에 두고 “우리가 어디에서 음식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6;5) 하셨습니다. 그리고 안드레가 “예수님, 여기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는데, 그것으로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며 달리 방도가 없다는 듯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어린이의 도시락,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그 많은 사람을 먹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난처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하셨을까요?
비록 소량의 음식이었지만 예수님은 있는 것을 먼저 보셨고,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혹시 더 없느냐?”고 묻지도 않으셨습니다. 모든 일에 앞서 비록 작은 분량이지만 먼저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작은 것을 놓고 감사했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남자 어른 5천 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는 것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만 보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비교하다가 불행하게 됩니다. 큰 것, 좋은 것, 많은 것만 바라보고, 작은 것, 사소한 것, 평범한 것의 소중함은 보지 못합니다.
작은 것을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감사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예수님의 감사에서 배우게 됩니다.
2. 실패 속의 감사(마 11:25-26)
예수님은 전도 여행에서 실패의 슨 맛을 보셨습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수모와 멸시뿐이었습니다. 수고한 결과에 비해 열매가 너무 초라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애쓰며 전도한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했을 때는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11:21)고 책망하시며 탄식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결국 예수님은 감사로 되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11:25, 26).
어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아이들이 주님을 받아들인 것이 감사의 이유였습니다. 큰 비중을 두고 애쓴 일이 뜻대로 안 되어 가슴 아팠지만 부스러기 은혜로 아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일이 감사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은 다 아버지의 뜻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의 뜻입니다.”라고
때때로 우리도 큰 실패를 겅험하고,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분노하고 좌절하고 낙담합니다. 그러나 실패와 고통 중에도 감사거리를 찾는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갑절의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3. 슬픔의 자리에서도 감사(요 11:38-44)
예수님의 또 다른 감사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였습니다. 주님은 바쁜 사역으로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야 무덤에 도착하셨습니다. 이미 나사로의 몸에서는 냄새가 났습니다. 주님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시며 슬픔의 눈물을 흘리셨다.
사람들에게 죽음은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절망을 의미했습니다. 무덤을 가로막고 있는 돌문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는 담이며, 절대로 살아올 수 없는 영원한 다리를 뜻했습니다. 슬픔과 애통함이 가득한 자리에서 우리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위로의 마음만 조심스럽게 전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으로 나아가 “돌을 옮겨 놓으라”(요11:39) 하시더니 뜻밖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요11:41).
예수님은 죽음의 비극적인 상황을 뒤로 하고 먼저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시작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너무나도 상식 밖이었습니다. 초상집에서 금기시되는 언어, ‘감사’를 주저 없이 사용하셨습니다.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고, 죽음 이후에 영생이 있고, 죽음 이후에 하나님이 계시기에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4. 십자가 감사(눅 22:14-20)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도 감사하셨습니다. 33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고 가슴 아픈 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 감사함이 생길 리가 만무합니다. 죽음의 사실을 받아들이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만일 우리가 15시간 후에 죽음을 맞이한다고 하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그것도 죄인들이 당하게 되는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된다면 과연 감사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아마 사형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질 것입니다.
예수님도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에 만감이 교차하여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인류를 구원하는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으셨고, 죽음을 바로 앞둔 최후의 만찬에서 이렇게 감사하셨습니다.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눅22:17, 19).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거행하는 숙연한 자리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셨습니다.
“이는 내 몸이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피다. 받아 마셔라.”
주님은 죽음의 시간, 십자가를 앞에 놓고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당신의 몸을 내어 놓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33세에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만찬에서 감사를 드린 주님의 감사야말로 깊이 있는 감사이며, 감사 중에 감사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감사는 오직 영생에 대한 확실한 소망,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애의 모든 관계를 감사로 연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셨습니다.
꽃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은 꽃을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요, 나무를 보면서 감사하는 것은 나무를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검사하는 것은 하늘을 만드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감사의 씨앗을 심는 사람만이 더 큰 감사의 열매를 거둔다는 것이 믿음의 법칙이요, 예수님은 그것을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범사감사는 만사형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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