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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조남원
"으으으, 할머니!” “후유, 꿈이었구나.”
자다가 벌떡 일어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꿈속에서 외할머니네 거위가 긴 목을 땅에 닿을 듯이 들이대며 쫓아왔기 때문입니다. 외할머니네 거위는 걸을 때는 뒤뚱거리면서도 낯선 사람을 보고 쫓아올 때면 어찌나 빠른지 정말 무섭습니다. 그래서 외갓집 대문 옆에는 거위를 쫓는 장대가 놓여 있습니다.
오늘은 외갓집에 가는 날입니다. 내일이 외할머니 생신이라서 엄마는 고기며, 내복이며, 양말 등의 선물을 장만했습니다. 엄마는, 마침 개교기념일이라서 학교에 안 가는 나만 데리고 가기로 했습니다. 나는 엄마를 따라가는 것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합니다.
나는 외할머니를 좋아합니다. 외할머니는 늘 웃는 얼굴로, 내가 가면 `아이쿠, 우리 강아지 왔는가!' 하며 반갑게 맞아 줍니다. 여름에는 뒤뜰 장독대에 놓인 커다란 함지박에서 쌀뜨물 속에 넣어 우려 낸 땡감을 꺼내다 줍니다. 겨울이면 마루 끝에 붙어 있는 벽장 속에서 외갓집 동네의 맛있기로 유명한 `밤엿'을 대바구니 속에서 꺼내주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장롱 베갯속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를 꺼내, 엄마 몰래 내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 주기도 합니다.
나와 엄마는 열한 시쯤 되어 다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외갓집에 가려면 넓은 들판 길을 지나가야만 합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입니다. 삼월이지만 아직 추워서인지 논둑길이 살짝 얼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질퍽거리지 않습니다. 이 논둑길은 비가 오면 질척한 흙이 운동화에 착 달라붙어서 발을 떼기가 힘듭니다.
“엄마, 오늘은 신발에 흙이 안 달라붙어서 다행이에요.”
“그러게 말이다.”
“엄마, 근데 거위가 쪼면 어떡해요?”
“엄마 뒤에 딱 붙어서 잘 따라와.”
“새끼였을 때는 귀여웠는데……. 외할머니랑 논에 갈 때 데리고 간 적이 있어요. 논둑 옆에 있는 개울에서 헤엄치고 놀던 모습이 생각나요. 내가 이름도 지어줬잖아요!”
“뭐였지?”
“꾸꾸요. 근데 왜 그렇게 사나워졌어요?”
“그래서 집을 잘 지키잖니. 근데 이제 사람들이 무섭다고 싫어해서 거위 키우는 집도 점점 없어진단다.”
“으응, 그럼 외갓집 동네에서는 외갓집만 거위가 있는 거예요?”
“그렇지.”
나랑 엄마는 십 분쯤을 걸어서 외갓집 대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대문 앞에서 엄마는 담장 옆에 세워 둔 장대를 집어 듭니다.
“끼이익.”
“꽈아악 꽉, 꽈아악 꽉.”
외할머니네 거위가, 낯선 사람이 왔다고 시끄럽게 울어 댑니다. 나는 엄마 등 뒤에 숨어서 따라갑니다.
“꽈아악 꽉, 꽈아악 꽉.” “탁, 탁”
“저리 가, 이놈의 거위.”
“엄마, 무서워!”
나는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따라가다가 그만 미끄러졌습니다. 그래서 새 옷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엄마, 내 옷, 어떡해, 흐으응…….”
“어이구, 이놈의 거위, 저리 못 가!”
화가 난 엄마가 장대로 땅바닥을 더 세게 `탁탁' 칩니다.
“누구 왔우?” 뒤뜰에 있던 외할머니가 거위 소리 때문에 앞마당으로 나옵니다.
“엄마, 저 왔어요.”
“아이쿠, 일찌감치 왔구나. 우리 강아지도 왔네. 추운데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할머니 거위 때문에 새 옷을 버렸어요. 흐으응…….”
방으로 들어간 나와 엄마는 아랫목 이불 속에 손을 집어넣고 언 손을 녹입니다.
“엄마 거위 말고 개만 키우면 안 돼요? 올 때마다 거위 때문에 애가 놀라잖아요.” 추운데 먼 길을 걸어온 엄마가 힘이 들었는지 할머니한테 짜증입니다.
“그러냐, 그렇지 않아도 이번 장날에 내다 팔까 하는 중이다. 뒷집 순덕 할매 아들이 사십이 다 되아서 장개를 갔잖냐. 근디 지난달에 딸을 났구먼. 동네에서 경사 났다고 난리다. 근디 저 떼까우(거위) 땜에 애 놀랜다고 쫓아와서 야단이다. 이장까지 찾아와서 `동네 애 씨 말릴 작정이냐' 허 고, 동네에서 인심 잃게 생겼다. 그동안 정도 들고, 아숩지만 팔어야것다.”
외할머니는 내일 아침에 먹으려고 푹 고아 놓은 씨암탉을 푸짐하게 점심상에 내놓습니다. 외할머니 집에서 먹는 밥은 한 그릇을 먹고 또 먹어도 밥맛이 좋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 가까운 읍내로 시집 간 둘째 이모 셋째 이모 모두 모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들의 수다는 끝이 없습니다.
“엄마, 제발 저 거위 좀 치워 버리세요. 집에 들고 날 때 마다 장대를 들고 다녀야 하니 남 보기도 사납고…….”
이모들도 거위 타령입니다.
“왜들 그런다냐, 떼까우가 얼마나 집을 잘 지키는디. 느덜이 와서 집 지켜 줄 텨?”
“엄마, 도둑이 가져갈 물건이나 있어요?”
“안 그려도 팔라고 헌다. 팔면 느덜이 와서 집 지켜라 잉!”
밤늦도록 수다를 떨던 이모들은 피곤한지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뒤뜰 대나무 밭에서는 바람 때문에 대나무가 `솨아, 솨아' 소리를 냅니다. 나는 그 소리가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씁니다. 다음 날, 아침을 맛있게 차려 먹은 이모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엄마는 초등학교 동창 집에 놀러 갔습니다. 외할머니는 부엌에서 아궁이 속 군불에 묻어둔 고구마를 찾고 있습니다. 나는 햇볕이 따뜻이 내리쪼이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담장 너머 들판을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심심해서 장대로 마당 한 쪽에서 부리를 깃 속에 파묻고 졸고 있는 거위를 집적거려 봅니다.
“야, 너 땜에 내 새 옷 다 버렸잖아!”
거위는 장대로 건드려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는 도로 깃 속에 부리를 묻어 버립니다. 집 안이 조용하고 햇볕이 따뜻하니 졸음이 솔솔 옵니다. 나는 방에 들어가 아랫목에 발을 묻고 잠이 들었습니다.
“엄마, 민아는 뭐해요?”
“글씨, 잠들었는지 조용허다.”
나는 오줌도 마렵고, 엄마 소리에 잠이 깨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엄마, 오줌 마려워요. 응? 근데 내 신발? 엄마, 내 신발 없어졌어요!” “네 신발? 아니 저것들이!” 마당을 보니 누렁이랑 거위가 내 요술공주 새 신발을 입에 물고 쪼고 놀고 있습니다.
“엄마, 할머니, 으아앙, 내 신발…….”
“어이구, 이것들아 말썽 좀 작작 부려라!”
외할머니가 쫓아내려가서는 내 신발을 뺏어 왔습니다.
“민아야, 할미가 갈 때 신발 살 돈 줄 테니 그만 뚝 혀라.”
“엄마, 그러니까 거위 없애라고 하잖아요.”
“안 그려도 새터 길식이가 내일 장에 간다고 혀서 좀 내다 팔아 달라고 혔다. 내일 새벽에 데리러 올 거다.”
외할머니는 아침에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한 양푼 담아다가 거위 밥그릇에 쏟아 줍니다.
“많이 먹어라, 집 지키느라고 애썼는디…….”
거위는 맛있게 모이를 먹습니다.
새벽 잠결에 들으니 밖이 소란스럽습니다. 눈을 부비고 문틈으로 내다봅니다. “꽈아악 꽉, 꽈아악 꽉.”
거위들이 앞마당에서 뒷마당으로 큰 날개를 펼치고 도망 다니고 그 뒤를 길식이 아저씨랑 외할머니가 쫓아다닙니다. 장에 내다 팔려고 거위를 데리러 온 모양입니다.
“꽈아악 꽉, 꽈아악 꽉.”
온 동네가 시끄럽습니다.
집 안을 몇 바퀴 돌던 거위들이 지칠 무렵이 되어서야 길식이 아저씨는 겨우 거위를 경운기에 실을 수 있었습니다. 길식이 아저씨가 거위를 싣고 장터를 향해 갑니다.
“털털털 털털털.”
거위가 경운기 뒤에 실린 우리 안에서, 목을 쭉 빼고 자꾸 할머니 집 쪽을 쳐다봅니다.
“꽈아악 꽉, 꽈아악 꽉…….”
길식이 아저씨 경운기가 마을을 벗어나고, 거위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외할머니는 대문 앞에 서 있습니다. 마당으로 들어온 외할머니는 거위 밥그릇을 집어 듭니다. 그러고는 속이 상한지,
“돼지 밥 줘야겄다.” 하고 뒷마당으로 가 버립니다. 나랑 엄마는 문틈으로 내다보다가 서로 얼굴을 마주 봅니다.
“엄마, 거위가 좀 불쌍해요. 새끼 땐 같이 놀기도 하고 귀여웠는데 ……. 할머니가 거위 알 팔아서 내 신발도 사주고 새 옷도 사주고 그랬잖아요.”
“뭐가 불쌍하니? 조용하고 좋구먼. 너 맨날 할머니 집에 올 때마다 거위 땜에 가기 싫다고 그랬잖아.”
“엄마도 거위 알 가지고 예쁜 알 공예품 만들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난 시원하다.”
“에이, 반 애들한테 거위 알 자랑도 못하게 됐어요. 애들이 신기하다고 진짜 좋아했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거위 도로 데려오라고?”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나도 모르겠어요.”
아침 밥상에 노란 알찜이 올라왔습니다.
“민아야, 니가 좋아하는 떼까우 알찜이다. 많이 먹어라.”
나는 밥맛이 없어졌습니다. 동그란 종지에 담겨있는 노란 알찜이 물끄러미 쳐다보던 거위 눈같이 보입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숟가락을 놓아 버렸습니다.
“엄마, 배 아파서 먹기 싫어요.”
외할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합니다.
“우리 강아지 배탈 났나 보구먼, 이리 오너라, 할머니 손은 약손이니께. 쓱쓱 쓰다듬어 주먼 낫는다.”
무릎에 민아를 눕힌 할머니는
“할미 손은 약손, 할미 손은 약손.” 하며 둥글둥글 원을 그리며 배를 문질러 줍니다. 배는 안 아픈데 가슴이 아픈 것 같기도 합니다. 민아는 할머니 손을 가슴 위에 얹어 봅니다. 할머니 손이 따뜻합니다. 거위가 없는 외갓집은 너무 조용해서 귀가 `멍~'합니다.
“할머니, 이제 배 안 아파요.”
할머니 무릎에서 일어난 민아가 두 팔로 엄마 목을 감으며 귓속말을 합니다.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
“그래. 알았다.”
“엄마 열 시 차로 가 봐야겠어요.”
“왜? 내일이 일요일잉께 하루 더 자고 가지 그려?”
“애들 아버지 밥이랑 걱정돼서요.”
“그려, 그럼 떼까우 알허고 밤엿이랑 싸줄 팅게 김 서방 갖다 줘라. 그리고 민아야, 이 돈 갖고 가서 운동화 사 신어라. 떼까우 알 팔어서 모은 거다.”
“예. 고맙습니다.” 나는 새 운동화를 사는 건 좋은데 거위 알 판 돈이란 게 조금 마음에 걸렸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돈을 건넸습니다.
“엄마, 이거.”
엄마가 돈을 챙기면서 말합니다.
“왜? 거위 알 판 거라서?”
“아니, 엄마한테 맡기는 거예요.”
떠날 채비를 마친 엄마와 나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댓돌 위에 거위가 쪼아서 헤진 운동화가 놓여 있습니다. 나는 운동화를 들어서 뒤집어서는 손 위에 올려놓고 탁탁 털었습니다. 그러자 운동화 속에서 하얀 깃털 하나가 `나풀나풀' 날아 내 분홍 스웨터에 앉았습니다. 나는 깃털을 떼어 엄지와 검지로 살짝 잡고,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후우우' 먼지를 불어냈습니다. 그러고는 소맷부리에 대고 털을 가지런히 모은 뒤 스웨터 주머니에 넣고 가만히 눌러 두었습니다.
“지저분하게 뭐 하려고 그래!”
엄마가 괜히 마루 끝에 있던 장대를 거위가 앉아 졸던 자리에 던지며 말합니다.
“그냥요…….”
오늘은 외갓집에 가는 날입니다. 내일이 외할머니 생신이라서 엄마는 고기며, 내복이며, 양말 등의 선물을 장만했습니다. 엄마는, 마침 개교기념일이라서 학교에 안 가는 나만 데리고 가기로 했습니다. 나는 엄마를 따라가는 것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합니다.
나는 외할머니를 좋아합니다. 외할머니는 늘 웃는 얼굴로, 내가 가면 `아이쿠, 우리 강아지 왔는가!' 하며 반갑게 맞아 줍니다. 여름에는 뒤뜰 장독대에 놓인 커다란 함지박에서 쌀뜨물 속에 넣어 우려 낸 땡감을 꺼내다 줍니다. 겨울이면 마루 끝에 붙어 있는 벽장 속에서 외갓집 동네의 맛있기로 유명한 `밤엿'을 대바구니 속에서 꺼내주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장롱 베갯속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를 꺼내, 엄마 몰래 내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 주기도 합니다.
나와 엄마는 열한 시쯤 되어 다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외갓집에 가려면 넓은 들판 길을 지나가야만 합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입니다. 삼월이지만 아직 추워서인지 논둑길이 살짝 얼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질퍽거리지 않습니다. 이 논둑길은 비가 오면 질척한 흙이 운동화에 착 달라붙어서 발을 떼기가 힘듭니다.
“엄마, 오늘은 신발에 흙이 안 달라붙어서 다행이에요.”
“그러게 말이다.”
“엄마, 근데 거위가 쪼면 어떡해요?”
“엄마 뒤에 딱 붙어서 잘 따라와.”
“새끼였을 때는 귀여웠는데……. 외할머니랑 논에 갈 때 데리고 간 적이 있어요. 논둑 옆에 있는 개울에서 헤엄치고 놀던 모습이 생각나요. 내가 이름도 지어줬잖아요!”
“뭐였지?”
“꾸꾸요. 근데 왜 그렇게 사나워졌어요?”
“그래서 집을 잘 지키잖니. 근데 이제 사람들이 무섭다고 싫어해서 거위 키우는 집도 점점 없어진단다.”
“으응, 그럼 외갓집 동네에서는 외갓집만 거위가 있는 거예요?”
“그렇지.”
나랑 엄마는 십 분쯤을 걸어서 외갓집 대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대문 앞에서 엄마는 담장 옆에 세워 둔 장대를 집어 듭니다.
“끼이익.”
“꽈아악 꽉, 꽈아악 꽉.”
외할머니네 거위가, 낯선 사람이 왔다고 시끄럽게 울어 댑니다. 나는 엄마 등 뒤에 숨어서 따라갑니다.
“꽈아악 꽉, 꽈아악 꽉.” “탁, 탁”
“저리 가, 이놈의 거위.”
“엄마, 무서워!”
나는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따라가다가 그만 미끄러졌습니다. 그래서 새 옷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엄마, 내 옷, 어떡해, 흐으응…….”
“어이구, 이놈의 거위, 저리 못 가!”
화가 난 엄마가 장대로 땅바닥을 더 세게 `탁탁' 칩니다.
“누구 왔우?” 뒤뜰에 있던 외할머니가 거위 소리 때문에 앞마당으로 나옵니다.
“엄마, 저 왔어요.”
“아이쿠, 일찌감치 왔구나. 우리 강아지도 왔네. 추운데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할머니 거위 때문에 새 옷을 버렸어요. 흐으응…….”
방으로 들어간 나와 엄마는 아랫목 이불 속에 손을 집어넣고 언 손을 녹입니다.
“엄마 거위 말고 개만 키우면 안 돼요? 올 때마다 거위 때문에 애가 놀라잖아요.” 추운데 먼 길을 걸어온 엄마가 힘이 들었는지 할머니한테 짜증입니다.
“그러냐, 그렇지 않아도 이번 장날에 내다 팔까 하는 중이다. 뒷집 순덕 할매 아들이 사십이 다 되아서 장개를 갔잖냐. 근디 지난달에 딸을 났구먼. 동네에서 경사 났다고 난리다. 근디 저 떼까우(거위) 땜에 애 놀랜다고 쫓아와서 야단이다. 이장까지 찾아와서 `동네 애 씨 말릴 작정이냐' 허 고, 동네에서 인심 잃게 생겼다. 그동안 정도 들고, 아숩지만 팔어야것다.”
외할머니는 내일 아침에 먹으려고 푹 고아 놓은 씨암탉을 푸짐하게 점심상에 내놓습니다. 외할머니 집에서 먹는 밥은 한 그릇을 먹고 또 먹어도 밥맛이 좋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 가까운 읍내로 시집 간 둘째 이모 셋째 이모 모두 모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들의 수다는 끝이 없습니다.
“엄마, 제발 저 거위 좀 치워 버리세요. 집에 들고 날 때 마다 장대를 들고 다녀야 하니 남 보기도 사납고…….”
이모들도 거위 타령입니다.
“왜들 그런다냐, 떼까우가 얼마나 집을 잘 지키는디. 느덜이 와서 집 지켜 줄 텨?”
“엄마, 도둑이 가져갈 물건이나 있어요?”
“안 그려도 팔라고 헌다. 팔면 느덜이 와서 집 지켜라 잉!”
밤늦도록 수다를 떨던 이모들은 피곤한지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뒤뜰 대나무 밭에서는 바람 때문에 대나무가 `솨아, 솨아' 소리를 냅니다. 나는 그 소리가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씁니다. 다음 날, 아침을 맛있게 차려 먹은 이모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엄마는 초등학교 동창 집에 놀러 갔습니다. 외할머니는 부엌에서 아궁이 속 군불에 묻어둔 고구마를 찾고 있습니다. 나는 햇볕이 따뜻이 내리쪼이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담장 너머 들판을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심심해서 장대로 마당 한 쪽에서 부리를 깃 속에 파묻고 졸고 있는 거위를 집적거려 봅니다.
“야, 너 땜에 내 새 옷 다 버렸잖아!”
거위는 장대로 건드려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는 도로 깃 속에 부리를 묻어 버립니다. 집 안이 조용하고 햇볕이 따뜻하니 졸음이 솔솔 옵니다. 나는 방에 들어가 아랫목에 발을 묻고 잠이 들었습니다.
“엄마, 민아는 뭐해요?”
“글씨, 잠들었는지 조용허다.”
나는 오줌도 마렵고, 엄마 소리에 잠이 깨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엄마, 오줌 마려워요. 응? 근데 내 신발? 엄마, 내 신발 없어졌어요!” “네 신발? 아니 저것들이!” 마당을 보니 누렁이랑 거위가 내 요술공주 새 신발을 입에 물고 쪼고 놀고 있습니다.
“엄마, 할머니, 으아앙, 내 신발…….”
“어이구, 이것들아 말썽 좀 작작 부려라!”
외할머니가 쫓아내려가서는 내 신발을 뺏어 왔습니다.
“민아야, 할미가 갈 때 신발 살 돈 줄 테니 그만 뚝 혀라.”
“엄마, 그러니까 거위 없애라고 하잖아요.”
“안 그려도 새터 길식이가 내일 장에 간다고 혀서 좀 내다 팔아 달라고 혔다. 내일 새벽에 데리러 올 거다.”
외할머니는 아침에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한 양푼 담아다가 거위 밥그릇에 쏟아 줍니다.
“많이 먹어라, 집 지키느라고 애썼는디…….”
거위는 맛있게 모이를 먹습니다.
새벽 잠결에 들으니 밖이 소란스럽습니다. 눈을 부비고 문틈으로 내다봅니다. “꽈아악 꽉, 꽈아악 꽉.”
거위들이 앞마당에서 뒷마당으로 큰 날개를 펼치고 도망 다니고 그 뒤를 길식이 아저씨랑 외할머니가 쫓아다닙니다. 장에 내다 팔려고 거위를 데리러 온 모양입니다.
“꽈아악 꽉, 꽈아악 꽉.”
온 동네가 시끄럽습니다.
집 안을 몇 바퀴 돌던 거위들이 지칠 무렵이 되어서야 길식이 아저씨는 겨우 거위를 경운기에 실을 수 있었습니다. 길식이 아저씨가 거위를 싣고 장터를 향해 갑니다.
“털털털 털털털.”
거위가 경운기 뒤에 실린 우리 안에서, 목을 쭉 빼고 자꾸 할머니 집 쪽을 쳐다봅니다.
“꽈아악 꽉, 꽈아악 꽉…….”
길식이 아저씨 경운기가 마을을 벗어나고, 거위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외할머니는 대문 앞에 서 있습니다. 마당으로 들어온 외할머니는 거위 밥그릇을 집어 듭니다. 그러고는 속이 상한지,
“돼지 밥 줘야겄다.” 하고 뒷마당으로 가 버립니다. 나랑 엄마는 문틈으로 내다보다가 서로 얼굴을 마주 봅니다.
“엄마, 거위가 좀 불쌍해요. 새끼 땐 같이 놀기도 하고 귀여웠는데 ……. 할머니가 거위 알 팔아서 내 신발도 사주고 새 옷도 사주고 그랬잖아요.”
“뭐가 불쌍하니? 조용하고 좋구먼. 너 맨날 할머니 집에 올 때마다 거위 땜에 가기 싫다고 그랬잖아.”
“엄마도 거위 알 가지고 예쁜 알 공예품 만들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난 시원하다.”
“에이, 반 애들한테 거위 알 자랑도 못하게 됐어요. 애들이 신기하다고 진짜 좋아했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거위 도로 데려오라고?”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나도 모르겠어요.”
아침 밥상에 노란 알찜이 올라왔습니다.
“민아야, 니가 좋아하는 떼까우 알찜이다. 많이 먹어라.”
나는 밥맛이 없어졌습니다. 동그란 종지에 담겨있는 노란 알찜이 물끄러미 쳐다보던 거위 눈같이 보입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숟가락을 놓아 버렸습니다.
“엄마, 배 아파서 먹기 싫어요.”
외할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합니다.
“우리 강아지 배탈 났나 보구먼, 이리 오너라, 할머니 손은 약손이니께. 쓱쓱 쓰다듬어 주먼 낫는다.”
무릎에 민아를 눕힌 할머니는
“할미 손은 약손, 할미 손은 약손.” 하며 둥글둥글 원을 그리며 배를 문질러 줍니다. 배는 안 아픈데 가슴이 아픈 것 같기도 합니다. 민아는 할머니 손을 가슴 위에 얹어 봅니다. 할머니 손이 따뜻합니다. 거위가 없는 외갓집은 너무 조용해서 귀가 `멍~'합니다.
“할머니, 이제 배 안 아파요.”
할머니 무릎에서 일어난 민아가 두 팔로 엄마 목을 감으며 귓속말을 합니다.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
“그래. 알았다.”
“엄마 열 시 차로 가 봐야겠어요.”
“왜? 내일이 일요일잉께 하루 더 자고 가지 그려?”
“애들 아버지 밥이랑 걱정돼서요.”
“그려, 그럼 떼까우 알허고 밤엿이랑 싸줄 팅게 김 서방 갖다 줘라. 그리고 민아야, 이 돈 갖고 가서 운동화 사 신어라. 떼까우 알 팔어서 모은 거다.”
“예. 고맙습니다.” 나는 새 운동화를 사는 건 좋은데 거위 알 판 돈이란 게 조금 마음에 걸렸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돈을 건넸습니다.
“엄마, 이거.”
엄마가 돈을 챙기면서 말합니다.
“왜? 거위 알 판 거라서?”
“아니, 엄마한테 맡기는 거예요.”
떠날 채비를 마친 엄마와 나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댓돌 위에 거위가 쪼아서 헤진 운동화가 놓여 있습니다. 나는 운동화를 들어서 뒤집어서는 손 위에 올려놓고 탁탁 털었습니다. 그러자 운동화 속에서 하얀 깃털 하나가 `나풀나풀' 날아 내 분홍 스웨터에 앉았습니다. 나는 깃털을 떼어 엄지와 검지로 살짝 잡고,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후우우' 먼지를 불어냈습니다. 그러고는 소맷부리에 대고 털을 가지런히 모은 뒤 스웨터 주머니에 넣고 가만히 눌러 두었습니다.
“지저분하게 뭐 하려고 그래!”
엄마가 괜히 마루 끝에 있던 장대를 거위가 앉아 졸던 자리에 던지며 말합니다.
“그냥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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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십여 년 전 우연히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그림책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늦은 나이에, 그림책과 옛날이야기, 동화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 후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하게 되었고, 책을 읽어 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줄 때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화를 통해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동화를 통해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조금 부담이 되었지만 이 또한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용기를 냈습니다. 이 글은 어릴 적 외갓집에서 기르던 귀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 거위와 따뜻했던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그려본 것입니다. 지금은 집에서 잘 기르지 않는 거위의 이야기를 통해 사라져가는 생활문화의 한 부분을 알게 되고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도 느껴서 사랑과 감성이 풍부한 어린이로 자라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화작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정해왕 선생님과 박영란 선배님 글벗들과 가족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최수례(58)
△ 충남 강경 生
△ 초교 방과 후 강사
늦은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조금 부담이 되었지만 이 또한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용기를 냈습니다. 이 글은 어릴 적 외갓집에서 기르던 귀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 거위와 따뜻했던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그려본 것입니다. 지금은 집에서 잘 기르지 않는 거위의 이야기를 통해 사라져가는 생활문화의 한 부분을 알게 되고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도 느껴서 사랑과 감성이 풍부한 어린이로 자라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화작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정해왕 선생님과 박영란 선배님 글벗들과 가족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최수례(58)
△ 충남 강경 生
△ 초교 방과 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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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결말이 안정적인 따뜻한 이야기 작위적 아닌 순조로운 전개 빛나
본심 심사위원 두 사람에게 들어온 작품은 열세 편이었다. 열세 편을 심사위원 두 사람이 꼼꼼히 읽은 다음 각 세 편씩을 최종심에 올려 다시 살피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최종심에 든 세 작품은 `달빵별의 누룩왕' 과 열 여덟 살의 교문할머니' 그리고 `외할머니네의 거위'였다.
먼저, 달방별의 누룩왕'은 소재가 특이하고 구성 등이 신선하였으나, 동화를 읽게 될 주독자인 어린이들이 읽고 이해하기에 다소 난해한 느낌이 들었다. `열여덟 살 교문할머니'는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기다림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은 흠이 있었다. 구성이 다소 어설프고 산만했으며 문장이 매끄럽지 않았다. `외할머니네 거위'는 우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무리가 없었다. 문장도 안정적이었으며 결말도 순조로웠다. 순조로웠다는 것은 이런 류의 이야기가 범하기 쉬운 다소 작위적인 결말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을 말한다.
끝마무리가 자연스럽고 따뜻해서 심사위원 두 사람은 `외할머니네 거위'를 당선작으로 미는 데 이견이 없었다. 당선되신 분에게 축하와 더불어 더욱 열심히 정진할 것을 부탁드린다. 그리고 최종심에 오른 두 분에게도 더없는 격려와 노고를 치하드린다.
이상교·권영상 아동문학가
먼저, 달방별의 누룩왕'은 소재가 특이하고 구성 등이 신선하였으나, 동화를 읽게 될 주독자인 어린이들이 읽고 이해하기에 다소 난해한 느낌이 들었다. `열여덟 살 교문할머니'는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기다림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은 흠이 있었다. 구성이 다소 어설프고 산만했으며 문장이 매끄럽지 않았다. `외할머니네 거위'는 우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무리가 없었다. 문장도 안정적이었으며 결말도 순조로웠다. 순조로웠다는 것은 이런 류의 이야기가 범하기 쉬운 다소 작위적인 결말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을 말한다.
끝마무리가 자연스럽고 따뜻해서 심사위원 두 사람은 `외할머니네 거위'를 당선작으로 미는 데 이견이 없었다. 당선되신 분에게 축하와 더불어 더욱 열심히 정진할 것을 부탁드린다. 그리고 최종심에 오른 두 분에게도 더없는 격려와 노고를 치하드린다.
이상교·권영상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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