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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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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56
결코 정죄함이 없는 그리스도인
로마서 8 : 1
서 론 : 우리는 이제 로마서 8장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7:18절 이하에서 한사람의 절망적인 탄식을 들으면서 죄의 세력아래에서 그 어떤 방법으로도 헤어 날 길이 없는 한 사람의 비참한 운명이 모든 인류의 공통된 운명인 사실을 깨닫게 되어 우리의 마음이 어두웠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8장에 들어서면서 이 같은 어둠이 일시에 개이고 밝은 생명의 약동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8장을 배우면서 깨닫게 되겠지만 8장은 그리스도인들의 성화를 위한 성령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장이 아닙니다. 율법의 정죄와 죄악의 권세에서 이기게 하신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8장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성화 되느냐는 문제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확실성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1. 5, 6, 7장과의 연결관계
우리는 8장 서두에 등장하고 있는 “그러므로”란 말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란 표현은 확실히 한 문장에서 다른 문장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8장 서두에 나오는 “그러므로”란 말은 7:25절에서 이어지는 문장의 연결을 의미하고 있지 않습니다. 7장의 결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그린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길이 전혀 없는 한 절망적인 사람의 탄식을 그리고 있으며 그는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죄의 종의 상태를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8장 서두에 나오는 “그러므로”란 말은 이 사람의 경우를 계속적으로 논술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I) 우리는 6장과 7장이 5장과 8장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장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의 위대한 논증을 바라봅니다. 한사람 아담으로부터 온 범죄와 한 사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은혜에 대하여 놀랍게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복음의 증거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의 공격을 예상했습니다. 율법에서 의를 얻는 줄로 알고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죄를 조장하는 내용이 아니냐? 율법의 거룩함을 부인하는 반 율법적인 것이 아니냐? 는 오해를 사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해소하기 위하여 6장과 7장을 다루게 된 것입니다.
6장의 내용은 전자의 경우요, 7장의 내용은 후자의 경우인 것입니다. 바울은 6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어떻게 죄 가운데서 거하겠느냐고 반격하고 있습니다. 7장에서는 율법은 선하고 신령하고 의롭다고 유대인들의 율법 관을 시인해 주면서 그러나 인간의 지체 안에 있는 죄의 권세가 이 거룩하고 선한 율법의 요구를 묵살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이기고 나로 하여금 더욱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아 가기 때문에 선한 율법으로도 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줄 수 없다는 탄식을 토로함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율법의 무력함을 증거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5장에서 8장으로 이어나가는데 있어서 율법주의자들에게 걸림이 되는 죄와 율법과의 관계를 명쾌히 해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2) 그러기 때문에 “그러므로”란 말은 5장 끝에서부터 8:1절로 이어져야 할 문맥의 연속이 되는 것입니다. 5:12절에서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논증하고 6장과 7장에서 죄와 율법에 대한 오해 될 부분을 해소하고 다시 5장의 마지막 부분이 이어지면서 “그러므로”라고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8장은 새로운 발견인 것이 아니라 5장에서 논술되고 있는 바를 더 자세히 강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우리는 1절에서 또다른 위대한 선언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말은 복음의 핵심을 들어낸 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특성을 나타낸 말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선언이야말로 인생의 궁극적이며 최종적인 문제해결의 결론이 되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어떤 종교도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란 그리스도와 연합한자로 그리스도를 영접한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있다고 하는 말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순종의 생활을 할 때는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생활이지만 죄를 범했을 때는 마치 이 특권이 살아져서 그리스도 밖으로 버림을 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들어온 것은 영원한 옮김이 되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셨습니다(요5:24). 다시 사망으로 옮겨질 수 없는 몸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건 그 사람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3.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정죄 함이란 말은 율법의 정죄를 말하는 것으로 곧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인류는 모두 이와 같은 율법의 정죄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한 명도 소망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1)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선언이야말로 인류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 정죄함이 없다는 놀라운 선언을 액면대로 받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일이 너무나도 놀랍고 엄청난 선언이기 때문에 이 선언에 토를 부칩니다.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죄를 회개했을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죄를 범한 상태에서는 이 선언이 해당될 수 없다는 이론입니다. 이 같은 주장이나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정죄함을 받았다가 그 정죄에서 풀려나는 생활을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2) 이 정죄에서의 해방은 그리스도인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초월한 전 생애에 해당되는 선언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의 시발점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는 그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의 최종적 승리의 시점인 하나님 앞에 가서 설 때까지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선언을 이루시는 분은 성령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그 일에 장애물이 될 수 없습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범하는 일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미 그리스도안에 들어 온 사람도 죄를 짓습니다(요일1:8).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죄는 이미 율법에 대한 죄가 아닙니다.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죄는 율법의 제재를 받지 아니합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죄일 뿐입니다. 자식이 아버지에 대한 가족적인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죄에 대한 처리는 율법의 정죄가 아니라 사랑의 징계로 나타납니다(히12:7-9).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결코 율법적인 정죄감에 사로잡힐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죄는 세상사람의 죄와 구별됩니다. 율법적인 범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과 인격적인 죄가 되는 것입니다.
결 론 :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는 죄를 범했을 때 결코 정죄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그 일에는 두려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는데 그 사랑을 배반한 자신을 바라보고 슬퍼하고 애통하며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우습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사랑과 인격적인 관계를 생각하고 율법아래 있는 사람보다 더욱 죄를 미워하고 죄와 더불어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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