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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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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57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
로마서 8 : 1 - 2
서 론 :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선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이 죄와 사망의 법(율법의 정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절은 바로 1절의 해설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해방이란 말은 죄와 사망의 법의 속박에서의 벗어남을 말하며 이 해방은 한정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해방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 속박 안에 들어갈 수 없는 해방, 그곳으로부터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그와 같은 해방입니다.
1.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확신의 근거
구원은 단회적(單回的)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구원은 영적이요 완전한 구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 우리의 환경이나 어떤 조건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면 하나님의 구원은 불완전한 구원이 아닐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은 불완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영원하고 확실하다는 것은 성경적인 증거에 기인합니다.
(1) 우리의 구원이 영원하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에 의하여 계획되고 하늘에서 성취되었다는데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엡1:3,4).
(2)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선악)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택하심을 따라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 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다”고 했습니다(롬9:10-12).
(3) 우리의 구원은 우리 생애 전반에 걸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구원에 어떤 조건이 필수적으로 따라야만 한다면 그런 구원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계속적인 의의 실천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제 구원에서 떨어질는지 모른다면 그 구원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같은 막연하고 실현 가능성도 불확실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셨다면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역사는 분명히 실패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이건 그리스도 밖이건 의를 행할 자란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소식을 복음이라고 말하고 이를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 구원이 우리에게 영원히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2. 정죄함이 없는 생애에서 오는 기쁨
정죄함이 없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기쁨과 감사의 원인이 되는 일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에게도 정죄함이 있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기쁨 대신 언제나 불안이 깃들 것이며 감사대신에 회의 속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
(I) 정죄함이 없는 생활로서만이 하나님과의 영원한 화평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이 화평이란 다시는 깨어질 수 없는 영원한 화평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이유에서이건 또 정죄함이 오는 일이 있게 된다면 이 화평은 그때까지 만의 제한적 화평이 될 것입니다. 이런 화평은 화평이 아닙니다. 다시 진노를 받게 되거나 다시 깨어지는 화평이라면 아무 가치도 없는 화평입니다.
(2) 정죄함이 없는 생활만이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 되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구원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라든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하여 신앙이 침체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 그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믿음이야말로 시험과 절망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되며 구원을 의심하므로 더욱 깊은 죄악의 함정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위기에서 자신을 건질 수 있습니다.
(3) 정죄함이 없다는 믿음만이 죄의 속박에서의 해방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제 죄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성도들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자기 지배의 영역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죄가 나를 아주 떠나버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지난날의 죄의 지배에 익숙해져 있는 지체가 있습니다. 죄에 지배를 받아온 육신에는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옛 습성이 있습니다. 죄는 이 습성을 이용하여 우리들을 끊임없이 죄 가운데로 유도하며 지배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죄는 그리스도인을 다시 그의 종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창세 전에 이루신 하나님의 선택과 그리스도의 흘리신 속죄의 피는 우리로 죄의 종의 자리에서 영원히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죄는 죄의 지배를 다시 받게되는 죄가 아니며 율법의 정죄를 받는 죄인 것이 아니라, 아들과 아버지와의 관계의 죄이며 사랑에 관한 죄입니다. 우리는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하며 그 죄를 회개해야 할 것이지만, 죄의 종으로 되돌아가게 되거나 율법 아래로 다시 돌아가 정죄함이 없다는 이 진리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평안을 되찾을 수 있으며 믿음에 다시 굳건히 서서 죄를 이길 수 있는 담대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생명의 성령의 법
이처럼 그리스도인을 정죄에서 영원히 해방시킨 일에 대하여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란 말은 어떤 계명과 같은 것을 연상해 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사역을 법이란 단어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정죄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과 대조적인 견지에서 이것을 성령의 법이란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 언약을 행위언약으로 세우셨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두 번째의 언약 곧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 언약을 세우실 때 믿음으로 의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이 언약 역시 하나님의 법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 같은 은혜를 “믿음의 법”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롬 3:27).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받는 하나님의 의는 “믿음의 법”입니다.
4. 죄와 사망의 법
죄와 사망의 법이란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롬7:23). 바울이 7:23절에서 말하고 있는 죄의 법이란 인간의 지체 속에서 율법을 거역하고 우리로 죄 가운데로 사로 잡아가는 죄의 권세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8:2절에 나와 있는 죄와 사망의 법이란 사망을 주는 죄의 법이란 뜻으로 곧 율법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요약해서 풀이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영원히 해방시켜 주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온전히 해방시켜 주셨음으로 영원히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 같은 생명의 성령의 법을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약1:25).
결 론 : 믿음으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이 법은 율법에 우선하고 율법을 초월하고 율법의 속박을 받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런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에 적용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다시는 지난날 우리를 지배했던 율법의 통제를 받거나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 법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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