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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직분자의 자질

디모데전 빛의 사자............... 조회 수 3577 추천 수 0 2013.05.26 18: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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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딤전3:1-16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교회 직분자의 자질

본문: 디모데전서 3:1~ 16

 

최근 큰 도시에 있는 교인수 300명 이상의 교회 담임목사가 되려면 그 자격요건이 박사학위 소지자로서, 외국어 실력을 갖추고, 경력과 외모가 화려하고, 나이는 40- 50세 등의 까다로운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쇄도한다고 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지원한다고 하면 아예 명함도 내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려말 승려에게 병역과 세금면제 등의 혜택으로 승려 지원자가 많아지고, 불교가 타락하므로 조선 초기에는 숭유억불 정책을 썼는데, 오늘날 한국교회 성장의 장애요인을 저는 무엇보다 교회지도자의 자질 부족이라고 봅니다. 세상적인 자격요건으로 선택된 지금 한국교회의 지도자들 중에는 삯꾼 목자와 소경된 지도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훌륭한 교회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또는 훌륭한 교회 지도자를 선택하기 위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과 조건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지도자는 일상생활에서 평상인 보다 모범적이고 흠이 없어야 합니다.

본문 2절에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심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하였습니다. 즉 감독은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할 뿐 아니라, 자기 가정을 믿음으로 잘 다스려야 하고, 믿지 않는 불신 사회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고, 교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올바로 교육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 성경에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딛1:7-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지도자는 정직하고 잘못을 즉시 회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같은 분은 그의 사생활에서까지 그 정직함으로 유명하고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말씀을 드리면 그가 어느 때 서점으로부터 책을 빌려다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보는 중에 물을 엎질러서 한 쪽에 물이 좀 젖었어요. 물론 말렸지요. 그 다음에 이 책을 돌려줄 때 가서 그 책을 펴주고 "여기에 물이 젖었었는데 지금 말랐습니다만은 제가 이렇게 실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스스로 치뤘다는 거 아닙니까? 그 뭐 책에 물 좀 묻었다가 마르면 그만이지 뭐. 아, 접어놓으면 그만이지. 이걸 가지고 가서 여기에 물이 묻어 젖었었습니다, 라고 고백해야만 하는 그의 정직한 마음, 이것이 그의 지도력과 지혜와 용기에 근본이 됐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목회자들이 받은 목회학 박사 학위의 70% 이상이 엉터리 가짜라고 합니다. 외국의 박사 학위 장사꾼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목회자들이 가짜 박사 학위의 최고의 단골 고객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일부 대학교에서 가짜 박사학위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나는 대학에서 가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쫓아내듯이 교회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목사' 보다 '박사' 칭호를 좋아하는 목회자들은 강단을 떠나야 합니다. 그런 목회자들로부터 목회자의 양심이나 목회의 정신을 찾는 다는 것은 한낮에 별을 찾는 것보다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 사무엘서에서 하나님이 인정한 위대한 지도자를 만납니다. 다윗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가리켜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고치고 역사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됩니까? 다윗은 무엇보다 자신의 죄에 대해 정직했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데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도 그렇게 깨끗한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목숨 바쳐 충성하는 부하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을 하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그의 남편을 격전지에 보내 간접 살인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허물과 죄를 깨닫고 잘못을 시인하고 철저히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차한 변명으로 자기 죄를 정당화시키지 않았습니다. 거짓으로 죄를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권력으로 죄를 무마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새로워졌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목사나 교회 지도자에게 퍽 경고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천당문에 서서 천당으로 들어오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구원받은 무리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얼마 후에 저 멀리 세상에서 목사였던 한 사람이 구원받은 무리에 끼어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너무너무 기뻐서 팔을 벌리고 쫓아 나가서 반가와 하시면서 목을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성도들이 예수님께 불평을 하였습니다. "주님, 너무하십니다. 세상에서 목사와 평신도를 구별하시더니 아니 천당에 와서도 그렇게 구별하십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퍽 미안해하시면서 "얘들아, 참 미안하다. 그런데 내 마음을 좀 이해하여 다오. 사실 내가 지금까지 천당에 오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목사는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가 지금 이 사람이 처음이야. 그러니 내가 얼마나 반갑겠니?" 세상에서는 목사가 되어 일하고 교회의 지도자 일을 보지마는 예수님 앞에 서게 될 때는 어떨까? 하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 지도자들이 회복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덕목은 바로 정직과 회개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기의 부족함과 잘못을 시인하고 고치고 회개하려는 사람을 찾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직시해야 합니다. 지난날의 잘못들을 함께 인정하고 함께 고쳐나가야 합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다 너희들 때문이다"라는 고집으로는 새로워질 수 없고 병든 사회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들이 정직하고 겸손히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철저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지도자가 될 때, 우리 사회와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셋째, 지도자는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한 단체의 성장은 지도자의 지도능력과 깊은 관계가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기독인들은 헌금과 십일조는 잘 바치는데 똑똑한 자녀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바치는 데는 인색합니다. 우수한 자녀는 죄수나 환자를 다루는 법관이나 의사 시키려 하고, 열등한 자녀는 영적, 정신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을 성전의 모퉁이 돌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섭리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한국 기독교 발전에 암적 요소라고 봅니다. 그런데 유의할 점은 성령충만과 함께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의 체험담입니다. 그 목사님은 학식이 풍부하기로 소문난 분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두 학교에서 마쳤고 박사 학위까지 받은 학자였습니다. 공부를 마친 그 분이 한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에 걸쳐 그 교회는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고 힘이 넘쳤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힘이 있고 다른 설교자에게서 들을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교인들은 설교란 바로 저런 것이라고 감격하며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넘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차츰 생명력을 잃어 가게 되었습니다. 강단의 설교는 아직도 해박한 지성과 학식을 담은 고상한 내용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교인들은 이제 더이상 감동을 받지 않았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교인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2년이 지나고부터는 처음보다도 더 힘이 없는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교회 부흥의 장애 요소를 찾아 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목사님은 성경 말씀을 읽다가 어두워졌던 눈이 밝아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즉 말씀이 없는 학문과 지식의 전달과 윤리적인 교훈은 인간 지식의 지평은 넓혀 줄 수 있으나 결코 하나님의 생명을 줄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넷째, 지도자는 겸손하고, 섬기는 자야 합니다.(눅22:23-27)

사사기9장 8절에서 15절에 나무들이 사는 나라에서 왕을 뽑는 얘기가 나옵니다.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그리고 포도나무에게 나무들이 왕으로 삼고자 차례로 찾아갔으나 모두 정중히 사양했으나 가시나무는 우쭐대며 폭언까지 해가면서 응했습니다. 군림하는 가시나무 같은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낮아지고 섬기신 마음을 본받아 진정 모두를 섬기는 자세를 갖춘 사람을 지도자로 선택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섬기는 가치관을 생활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도자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이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만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 대접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도자들은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경험도 많이 축적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섬김의 생활은 종교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육자도, 정치인도, 기업인도 누구를 막론하고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꼭 갖추어야 할 생활의식입니다. 권력을 얻고, 재물을 얻고, 명예를 얻기 위하여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섬기는 삶을 가져 보람있는 삶을 느끼기 위하여 공부도 하고, 정치도 하고, 연구도 하고, 행정도 하고 사업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14:17- 18)


다섯째, 지도자는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믿음의 형제를 위하여 밤낮 기도하며, 축복하고, 말씀을 통하여 믿음과 지혜를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 봉사할 수 있도록 갖출 수 있게 해주고, 영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엡4:11-12) 참된 지도자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종이 되고 성도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요10:11-17)


여섯째, 지도자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출32:11) 신랑되시는 예수님께 신부 되는 정결한 처녀를 중매하는 중매자가 되어야 합니다.(고후11:2) 그리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여야 합니다. 나는 부족하고 세상은 험해도 하나님만 믿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일곱째, 교회 지도자는 말로써 설교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몇년 전에 나는 연극배우 친구를 가진 어느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배우는 연극이 상연될 때마다 많은 관객을 끌었으며 목사님은 대조적으로 교회에서 몇 사람 되지 않는 교인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목사님은 배우인 그의 친구에게 "자네는 관객을 많이 끌어들이지만 내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네. 그 이유가 뭘까? 자네 말은 꾸며낸 이야기이고 내 말은 불변하는 진리이기 때문일거야"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배우 친구는 "나는 꾸며낸 이야기를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자네는 진리를 꾸며낸 이야기처럼 말하고 있다네 " 하고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생활태도나 방식을 통하여 또는 주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행부족으로 진리를 꾸며낸 이야기로 알리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 18)

 

여덟째, 지도자는 앞을 내다보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뱀이 있었습니다. 뱀의 꼬리는 언제나 머리에 맞붙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꼬리는 드디어 불만을 터트려 머리에게 대들었습니다. "어째서 나는 언제나 네 뒤에 맹목적으로 맞붙어 다니고 네가 언제나 나를 대신해서 의견을 말하고 방향을 정하느냐? 이건 아주 불공평하다. 나도 말이지 뱀의 일부인데 언제나 노예처럼 붙어다닌다는 것은 이야기가 좀 이상하다." 머리는 응수했습니다. "아니 멍청이 같은 소리 작작해라. 네게는 앞을 살펴 분간할 눈도 없고 위험을 탐지할 귀도 없고 행동을 결정할 두뇌도 없다. 나는 결코 나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너의 일을 생각하기에 언제나 너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꼬리는 큰 소리로 웃으며 "그런 소리는 실컷 들었다. 어떠한 독재자도 어떠한 압재자도 모두 따르는 자를 위하여 하고 있다고 하는 핑계아래 제멋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머리는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네가 내 역할을 해보렴"했습니다. 꼬리는 기뻐서 이번에는 앞장서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이내 수채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머리가 갖은 수고를 다한 나머지 간신히 수채에서 기어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조금 나가니 꼬리는 가시투성이인 덤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꼬리는 애쓰면 애쓸수록 가시 속에 찡겨서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머리에게 구조되어 상처를 입으며 가시 수풀에서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꼬리가 또 앞장서서 나가니까 이번에는 불이 타고 있는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점점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다급해진 머리가 필사적으로 구출하려 했으나 때는 늦었습니다. 몸은 태워지고 머리도 함께 죽어버렸습니다. 지도자를 선택할 때에는 언제나 머리를 선택하고 이 꼬리와 같은 자를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지도자는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합니다. 미래는 오늘의 변화를 수용하고 준비하는 자만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아홉째, 교회 지도자는 자기의 재능을 주를 위해 힘껏 사용하여 교인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이스라엘에 가보면 유다 광야에서 목자와 양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목자는 양보다 앞서간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일단의 양떼를 만났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양 앞에는 아무도 없고 뒤에 한 사람이 따라올 뿐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저 사람이 목자입니까?”하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저 사람은 목자가 아니고 장사꾼입니다. 시장에서 양을 사다 도살해서 파는 장사꾼이죠” 자세히 보니 장사꾼은 막대기를 든 채 양들의 뒤를 좇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목회 현장에서 자주 묻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지금 양 앞에 가는 목자인가, 뒤에 따라가는 장사꾼인가?” 요한복음 10장 4절 말씀은 목회자들의 리더십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목자는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말씀대로 목자는 양보다 앞서가며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목회자의 목양적 사명과 리더십은 분명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 피터 와그너의 말대로 목회자는 하늘로부터 목회 지도력을 받고 평신도는 그 사역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특권은 언제나 책임을 동반합니다. 목자가 양 앞에 간다는 것은 특권이지만 양들에게 무엇인가 보여주면서 앞서가야 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책임입니다. 가끔 교회안에서 제자 훈련이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제자 훈련을 보고 배우게 하지 않고 듣고 배우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도들이 잘못하는 것은 대개 목회자들이 잘못하는 것임을 목회자들은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헌금을 안 하면 대개 목회자가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자기노출을 안 하면 대개 목회자가 숨기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예배를 잘못 드리면 대개 목회자가 예배를 잘못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라”고 말하지 않고 “나를 따르라”고만 소리치는 리더십은 예수님이 가르친 리더십이 아닙니다. 존 맥스웰이 말한 것처럼 “리더는 자기가 가는 길을 알고 그 길을 가고 또한 그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오늘도 보고 배울 수 있는 목자를 따릅니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3)

 

목회자도 설교자이기 전에 예배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자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뜨겁게 찬양하며 예배하면 그 모습은 성도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어 더욱 큰 감동을 주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설교자의 삶과 예배의 모습 자체를 메시지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서 120여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임재를 맛본 후 복음을 역동적으로 전하여 삼 천명을 구원시켰습니다. 설교자이기 전에 성도들과 함께 성령의 임재를 기다린 예배자였던 베드로에게 성령께서 임하시자마자 복음이 놀랍게 선포되고 폭발적인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펜사콜라 브라운스 빌 교회의 담임 킬 페트릭 목사는 예배시간에 성도들과 한데 어우러져서 다윗과 같이 역동적으로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다윗은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법궤가 돌아올 때 심지어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야웨 앞에 뛰놀며 찬양했습니다.(삼하 6장). 다윗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는 항상 그 어느 누구보다 앞섰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양 하는데에 있어서는 항상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여호와 앞에서 뛰놀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가는 자기의 예배를 빈정대는 아내 미갈에게 그 보다 더 천한 여김을 당할 지라도 내가 야웨 앞에서 뛰놀겠다는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늘 참된 예배자로 있었던 다윗의 때에 이스라엘이 가장 강한 나라를 이루었다는 것을 지도자들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많은 주의 종들이 자신이 설교할 때 성도들에게 찬송도 뜨겁게 하고 아멘도 크게 하라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그다지 역동적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계집종들과 신하들 앞에서 천히 여김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찬양하리라'고 고백한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순수한 예배자로 나아간다면 부흥은 더욱 앞당겨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찬양뿐 아니라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에게 전도하라고 강조하기 전에 자신의 재능을 다 사용하면서 전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열 번째, 지도자는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가 단순히 설교나 잘하고, 교인 숫자나 늘리고, 교회건물을 아름답고 크게 짓는 외형적인 성장만 꿈꾸고 있다면 그는 소경된 지도자입니다. 참 교회 지도자는 모든 성도에게 주님이 주신 소망과 기쁨과 평안을 충만히 줄 수 있는 비전을 가르치고 보여주어야 하며, 지도자는 목표를 정하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참된 지도자는 찾아보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저마다 자신이야말로 참된 지도자라고 소리를 내지만 우리는 그들에 대하여 속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참된 지도자는 오직 주님에게 속한 자여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에게만 충성스러운 자가 참된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주님의 의해 인정받는 지도자들이 되시고, 참된 지도자를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게 어느 날 후배가 찾아와 “어떤 목회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종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경건한 사도가 되어야지.” “영성을 제외한 실제 목회 생활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마르틴 루터는 수첩을 꺼내 거기에 적혀 있는 ‘자기 신조 10가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1) 목회자는 쉬운 말로 설교하고 질서있게 가르쳐야 한다.

2) 훌륭한 머리가 있어야 한다.(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사고가 있어야 한다)

3) 분명한 발음 등 언어사용에 능숙해야 한다.

4) 좋은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진실한 목소리, 설득력있는 목소리를 갖춰야 한다)

5)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6) 그만 둘 때를 알아야 한다.

7) 자기가 하려고 하는 말에 확신이 있어야 한다.

8) 진실을 위해 몸, 영혼, 재물, 명예를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9)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10) 고난과 비난을 참고 견뎌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자질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 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모세를 도와서 사역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출18:21, 25) 여기서 규정하고 있는 자격 요건은

첫째, 재덕이 겸전한 자

둘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셋째, 진실한 자

넷째,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청렴결백한 자이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실례를 보면 초대교회에서 최초로 일곱 집사를 뽑을 때 구비요건은

첫째, 믿음이 충만한 사람

둘째, 성령이 충만한 사람

셋째, 지혜가 충만한 사람‘넷째, 칭찬 듣는 사람이다.


본문 딤전3: 1- 13과 디도서 1장 6- 9절에 나오는 직분자의 자격요건은

1.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2,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

3.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4. 근신할 줄 알아야 한다.

5. 아담해야 한다.

6. 나그네를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

7.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

8.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한다.

9. 제 고집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

10. 급히 분내지 말아야 한다.

11. 구타하지 말아야 한다.

12. 다투지 않아야 한다.

13. 관용할 줄 알아야 한다.

14.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

15. 자기 집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16.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한다.

17. 선을 좋아해야 한다.

18. 의로워야 한다.

19. 거룩해야 한다.

20. 새로 입교한 자가 아니어야 한다.

21. 모든 일에 충성해야 한다.

22.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한다.


얼마 전, 한 목회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교회가 평소에는 참 은혜로운데, 새로운 장로를 뽑고 임직식을 거치면 교회가 한동안 어려움을 겪습니다.” 교회의 일을 위해 누군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교인들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특정교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도 준비된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자 하는 일꾼들을 세우는 일에 더 많이 기도하고,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간혹 교회는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자격기준에서 벗어난 세속적인 사람을 세우거나, 세상적인 지위나 학벌, 개인의 이해관계를 따라 사람을 선택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공동체를 파괴하고 맙니다. 교회의 직분을 맡는다는 것은 개인의 명예도 아니요, 신분상승은 더더욱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는 올바로 세워진 직분자들의 기도와 봉사로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세우는 일에 더 많이 기도합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직분자들을 세웁시다. 그럴 때 그 일이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축제가 될 줄로 믿습니다.

 

 * 기도: 준비되어진 지도자를 쓰시는 하나님, 주님을 본받아 참 목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을 향한 저의 봉사가 참된 섬김이 되게 하시고 늘 자신을 감추는 법을 훈련하게 하소서. 주님 안에서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기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언제나 겸비한 자세로 살아가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주께서 쓰시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주의 일을 감당하는 동안에 주의 도우심을 얻게 하소서. 선한 목자장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리더십에 예수님과 같은 선한 목자의 리더십이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당신께서 합당히 여기는 자들을 직분자로 세울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을 주소서. 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교회에는 축제가 되게 하소서이 땅에서 겸손하게 섬기는 삶을 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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