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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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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2000년대 설교 |
1장 1절-7절.
1절-7절: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 인이었더라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기도: 세상 끝 날까지 저희들을 사랑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불러주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을 수 있는 큰 은혜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희들이 간구할 때에 성령님께서 같이 하여 주시고 저희들 속에 어리석은 지식과 잘못된 마음, 옳은 기준이 아니고 본질이 아닌 이질적이고 거짓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진리지식과 하나님의 도덕성과 하나님의 능력성으로 우리의 속에 가득 채워지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70명의 소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가서 430년을 지나는 동안에 대 이스라엘로 커져서 강해져서 출애굽을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소 이스라엘이 들어가 가지고 대 이스라엘로 나올 때에 무엇으로 커졌느냐? 이 세상 사람들은, 특히 교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개척교회를 시작해서 몇 달 안 돼서 몇 백 명이다. 그 다음에 조금 있으면 교회건물을 짓는다더라 하는데, 문제는 ‘무엇으로 커졌느냐’ 하는 그게 문제지요. 무엇으로 커졌느냐? 진리적으로 커졌느냐, 비진리적으로 커졌느냐?
개인적으로 사업적으로 볼 때에 ‘아, 그 사람 성공했다’ 그런 거 우리가 많이 들을 수 있어요. 그래, 성공도 좋은데 ‘무엇으로 성공이 됐느냐’ 그게 문제지요.
보통 세상 사람들을 보면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크게 된 것을 보고 상당히 부러워합니다. 돈을 가지고 라든지 세상적인 모든 요소들을 가지고 영광 받고 명예자리에 올라가고 부자가 되고 한 그런 걸 상당히 부러워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큰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속에 들어있는 그 정신이 무엇으로 커졌느냐가 중요하단 말이요. 사람마다 다 커지는 걸 좋아하지요? 그런데 무엇으로 커지느냐? 그게 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70명이 애굽에 들어가 가지고 장정만 60만 대군으로 되어 나오는데 그 개인 하나하나마다 속에서 자라나고 크게 되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교훈이다 그 말이요. 이게 중요하고 크다 그 말이지요.
껍데기로 커져봐야 그건 소용이 없지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사람이 되지 못했는데 부자로 살면 뭐할 거냐 그 말이요. 사람의 인격 자체가 망해먹었는데 돈이 많으면 뭐할 거냐 그 말이지.
오늘날 테레비라든지 이런데서 떠들썩하게 많이 보여주지요? 우리는 그것을 보고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껍데기로 커지는 거, 소유성을 많이 가지는 이게 큰 게 아니요. 그런 걸 돋보면 그 사람도 망해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속의 정신 사상밖에 없어요. 사람은 인격으로 커져야 된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그 속의 인격이 아닙니까? 인격으로 커져야 된다.
우리 성도들의 머리통 속에는 하나님의 진리지식, 하나님의 인격으로 커져야지요. 그게 옳다 그 말이요. 아무리 가난해도 사람이 하나님의 도덕성자로 돼야지요. 그게 옳다 그 말이요. 옳은 것은 목숨을 내걸고라도 나가는 거지요.
우리 성도들 속에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또 생명도 둘이고, 생각도 둘이고.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니까 천국정신을 갖고 신령계의 정신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있고, 또한 예수님을 믿기 전에 가졌던 그런 정신 마음이 또 있거든요.
그러니까 인간 자기 속에서 항상 그 두 마음이 싸우고 있다 그 말이요. ‘어떻게 하면 좀 편해볼까’ 하는 그런 마음이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있고. 내 마음속에서 그 두 가지 정신이 싸우고 그래요.
인간 자기는 자기 속에서부터 싸움이 시작돼요. 그러니까 이걸 쉬운 말로 하면 일반적으로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라도 일반적으로 그런 두 마음이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 기독자들의 마음은 그 차원을 넘어서 ‘이질이냐 본질이냐, 하나님의 것이냐 아니면 인간의 것이냐’ 하는 싸움이 자기 속에 있는 겁니다.
육적 물질성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은 세상이라고 말하는 건데, 이런 세상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애굽의 바로 왕으로 사는 거다 그 말이요. 그 사람 속에 애굽이 왕이다 그 말이요. 그 사람 속에 세상이 왕이다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지식을 배우고 깨달아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진리지식이 자기 속에서 주격이 되어 있으면 ‘이거는 하나님이 왕이다. 예수님이 왕이다’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비교 판단을 할 때에 내 속에서 세상이 왕이 되는 것이 좋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왕이 되는 것이 좋겠느냐? ‘내가 어느 것을 좋아하느냐’ 하는 것으로 판단은 내릴 수가 있겠지요?
세상이 왕이 되면 그 결과성은 고통입니다. 내 속에 돈이 왕이 되면 그 사람은 고통을 당하게 돼요. 고통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속에서 왕이 되면 그거는 기쁨과 즐거움이요.
또 하나, 내 속에서 진리가 왕이 되면 나는 영적인 면에서 부강해진다. 우리 인간은 어떤 면이건 자꾸 배우면 자기가 배우는 그 면에 대해서 부강해져요. 나쁜 것을 배우면 나쁜 쪽으로 부강해지고, 좋은 것을 배우면 좋은 쪽으로 부강해지고. 그런데 나쁜 것이 부강해져봐야 그건 뭐 심판과 멸망밖에 더 있겠어요? 그러나 진리가 왕이 되면 진리지식의 통치를 받고 영적인 면에서 부강해진다.
내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치리를 받고, 자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치리를 받고, 하나님의 생명적인 치리를 받게 되면 내 속에서 하나님의 성질이 자라나게 됩니다. 이러면 내 속에 세상의 성질이 자라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성질이 자라난다. 고로 인간 자기는 무엇을 배우든지 배우는 면에서 자라나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무시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지식으로 자라나면 그 인간은 인격에 있어서 최고의 고상한 자가 됩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 속에 하나님의 지식이 있고 인간지식이 있는데, 자기 속에서 인간의 지식이 왕이 되고 주격이 되고 주장을 하면, 또 교회적으로는 교권이 왕이 되고 세상적인 그 무엇으로 왕을 삼으면 그 사람 속에서는, 그 교회 속에서는 새사람이 탄압을 받게 된다. 아까 자기 속에 둘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지요? 자기 속에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탄압을 받는다 그 말이요. 쭈그러진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내 속에 왕이 둘인데 ‘어느 왕이 주체이고 어느 왕이 주격이냐?’ 하는 그 자기를 늘 심사를 해야 됩니다. 자기 속에서 어느 것이 왕이 돼 있는지? 세상이 왕이 돼 있으면 자기는 고통이 와요. 그러니까 자기가 고통을 받을 때에 ‘아, 내 속에 세상이 왕이 되어 있구나’ 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왜 ‘왕이 둘이냐, 하나냐’ 히고 자꾸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자기 속의 고통과 기쁨과 영광 이런 거를 심사를 해서 고치게 하려는 겁니다. 이 성경은 다 그렇게 돼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고통과 번민과 걱정과 근심이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 속에 세상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고통을 당할 때는 ‘내가 사는 목적을 물질적인 요소에 두고 사니까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구나’ 하고 얼른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을 이용 활용을 할지언정 세상의 물질을 주격으로 하거나 세상을 주격으로 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 그 말이요.
우리교회 전도지에도 그런 게 있지요? 인간의 머리 위에는 누구지요? 하나님. 인간 아래는? 물질 즉, 세상 물건 일 사건. 그렇습니다. 그 중간은 누구요? 바로 인간 자기. 그런데 이것에 대한 지식이 빈약하거나 모르는 사람은 자기 머리 위에다 세상의 짐을 딱 올려놔요. 그러면 인간 자기는 그 짐이 무거워서 꼬부라져 버리지. 그러니 얼마나 어리석으냐 그 말이요.
짐을 내려놔야 하는데 머리 위에 짐을 올려놓고 무겁다고 고통하고 걱정 근심을 하면 문제는 뭐요? 짐을 머리 위에 이고 걱정 근심을 한다고 해서 그 걱정 근심이 덜어지겠어요? 문제는 이치만 바꾸어 놓으면 되거든요. 하나님을 잘라버리고, 이건 목이 잘린 사람과 같지. 하나님을 잘라버리고 짐을 세상을 돈을 머리 위에 턱 올려놓으면 그 얼마나 고통스러우냐 그 말이요.
우리 인간들은 명예가 왕이 되기도 하고, 인간지식이 왕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건이 왕이 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걸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 때문에 사람을 잡는 일도 있지요?
사람 속에 돈이 물질이 세상이 왕이 돼놓으면 부자지간에도 돈 가지고 이해 타산적으로 따져 들어가고, 내외간도 돈 가지고 이해 타산적으로 따져 들어가고, 모녀간도 돈 가지고 이해 타산적으로 따져 들어가고, 친구 간에도 돈 때문에 이해 타산적으로 따져 들어가고. 이게 뭐요? 그러니까 인간과 인간, 인격 대 인격으로 통하는 그 면은 완전히 막혀버리고 사람을 사귀되 물질을 두고 사귀고, 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물질을 두고 싫어하고.
요새 시집장가를 가도 돈 때문에 시집장가 가는 그런 사람도 많대요. 시집장가 갔으면 한 몸 아니요? 그렇지요? 결혼식장에서 주례자가 둘이 한 몸이라고 했을 거야. 그런데 시집가는 그 날부터 내가 번 건 내가 가지고 네가 번 건 네가 가지고. 이게 뭐요? 그건 벌써 헤어질 꿍심을 가지고 결혼이 됐고, 그 마음을 가지고 사는 거라.
그러면 그 가운데서 나온 자식은 누구 자식이야? 그건 어떻게 되지? 그건 아버지 자식인가, 엄마 자식인가? 얘기 좀 해 봐요. 그러니까 자식한테 부모들이 칼 맞아 죽을 만도 해. 왜 그와 같은 일들이 나나?
사람은 인격체야. 인격으로 결합이 되고 인격으로 사랑하고. 인간의 사귐이 그래야 옳은 거 아니요? 그런데 가정도 그런 건 없고 그냥 돈 가지고 따지고. 아이고, 참 그런 가정 보나마다 빤한 거야.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서 애굽에 보면 저기 저 사막에 무엇이 우뚝 우뚝 서 있지요? 삼각형으로 된 거? 아, 피라미드. 피라미드 그거 애굽에 저절로 생긴 겁니까? 저절로 생긴 거 아니지요. 인공적으로 생긴 거요. 사람이 손으로 등으로 만들었다 그 말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들어가 가지고 430년을 지나면서 사람이 불어날 거 아니요? 이들이 히브리인 힉소스족 즉, 셈족이란 말이요. 이들은 애굽에서 총리대신을 한 요셉의 혈족들인데, 요셉을 총리대신을 시켜준 왕 역시도 셈족입니다. 그래서 이 왕은 요셉을 잘 알아요. 그리고 요셉의 이력도 알아주었어요. 그래서 이 왕이 요셉을 생각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대해 주었어요.
이렇게 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그냥 눌러 붙어. 배가 부르고 살기 편안하고 이렇게 되니까 ‘여기가 나 살 곳이다’ 하고 애굽에 눌러 붙어버렸어. 바꿔서 말하면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 여기가 내가 영원히 살 곳이다’ 하고 마음을 푹 놓고 눌러 붙었다 그 말이요. 소원 목적성이 땅에 눌러 붙어서 ‘땅에서 부자 되고, 땅에서 잘 살고, 땅에서 내가 누리고, 땅에서 일등 되고’ 등등 사는 목적이 아예 그렇게 돼버렸어.
이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꼴을 못 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애굽의 왕을 탁 갈아치워 버렸어요. 이래서 새로 나온 왕은 요셉을 아는 왕이었어요, 알지 못하는 왕이었어요? 성경에 보니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핍박이 오기 시작을 하는데, 추측컨대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원이 돼가지고 지어진 게 저 피라미드란 말이요.
그래, 피라미드를 만들다가 죽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수도 없이 많을 거란 말이요. 일 빨리 안 한다고 채찍에 맞아 죽고, 병들어 죽고. 얼마나 많겠습니까?
저기 중국의 만리장성이 놀랍고 굉장한 거지만 그 만리장성을 쌓다가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애굽의 피라미드를 쌓다가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피를 흘리고 토하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깔려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렇게 죽어갔지만 죽은 그들의 이름이 있어요, 없어요? 이름이 없어.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이 없어. 하지만 그 성을 쌓으라고 한, 그 탑을 쌓으라고 한 이름난 그 왕은 자기가 주먹만한 돌 하나라도 옮겼을까요, 안 옮겼을까요? 안 옮겼어. 그러니까 이걸 달리 말씀드리면 왕이 바꾸어지면 자기가 이처럼 비참해진다. 알겠어요? 자기 속에 왕이 바꾸어지면 자기는 비참해진다.
자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왕이 되면 자꾸 자라나가고 성장이 돼 나가고 인격이 성장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라나가고, 그러나 자기 속에서 세상 소원 목적으로 왕이 돼버리면 자기는 비참해져요. 또 다르게 말씀드리면 자기 속에 세상이 왕이 되면 무엇을 쌓았다? 아까 사막에서 무엇을 쌓았다고 그랬지요? 아, 피라미드. 자기 속에 세상을 쌓으면 피라미드를 쌓아요. 이름 없는 피라미드, 비참하게 죽어갈 피라미드.
우리가 성경을 보면 나의 속에 하나님의 백성인 히브리와 세상백성인 애굽이 들어있어서 그 두 마음이 공존하고 있어요. 인간 내 속에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이 무형의 왕을 심사하라. 세상의 부귀공명을 좋아하는 것은 나에게 있는 애굽 왕입니다. 세상 왕이란 말이요.
우리는 어떤 환경 어떤 일을 당해도 ‘어떻게 하면 내가 나의 속을 깨닫고 하나님의 성품을 잘 입어 가느냐? 어떻게 하면 이 사건 환경을 통과하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옳은 사람 바른 사람으로 통과하느냐?’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참으로 옳은 생각이고 옳은 마음이요.
그러니까 신앙적으로 말한다면 사건 환경을 통해서 영적 실력을 배양하라. 세상 애굽은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지식을 바로 배우고, 바른 사람이 되고. 세상사람이 알아주던 말던 그거는 상관이 없고 자기의 인격을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라 그 말이요. 이것이 예수 믿는 거다 그 말이요.
손뼉 치고 춤추고 사람 끌어 모아다가 돈 긁어먹고 하는 이게 교회가 아니란 말이요. 그건 사기꾼들이야. 그건 복음이 아니야. 그런 게 예수 믿는 게 아닙니다. 성경을 제쳐놓고 무슨 짓들을 하느냔 말이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옳은 정신, 옳은 마음, 하나님에게 대한 정신, 하나님에게 대한 마음을 제쳐놓고 무슨 딴 짓을 하느냔 말이지. 자기에게 고통만 되게.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가 아닙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해서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 하라. 여기에서 너희들은 죄 지음을 면하라’ 그랬지요? 그러니까 분명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이게 기독교입니다. 성경이란 말이요.
세상에서 출세하는 게 좋습니까, 출세를 못해도 옳은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게 좋습니까? 어느 겁니까? 둘 다 좋다 그겁니까? 어느 것이 하나 좋다고 돼야 되겠지요?
O집사님, 세상에서 출세하는 게 좋습니까, 출세를 못해도 옳은 사람 되는 게 좋습니까? 둘 다 좋습니까? 선택을 해 보십시오. 말 못하는 거 보니까 둘 다 가지고 싶은 욕심이 대단한 모양이야.
둘 다 가지고 싶은 그 마음은 옳은 마음이요, 속에 뭐가 들어 있는 거요? 둘 다 좋다고 하는 마음도 속에 뭐가 든 거고, 거기에서 판별을 못 내리고 가만있는 것도? 속에 뭐가 든 거지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이거다’ 하고 턱 판별을 내릴 줄 알아야지 가만있어도 이건 도매금으로 넘어가요.
우리가 천국 갈 사람이 아닐 것 같으면 세상출세 하는 줄을 잘 타면 돼요. 그렇지요? 그러나 임시의 것 때문에 영원한 것을 버리게 되면 자기 속에 왕이 바꾸어져 가지고 피라미드를 쌓게 돼요. 세상에서 자기 피라미드를 쌓는단 말이요.
우리 인간은 각자가 자기 환경에서 소 왕입니다. 정치적으로 나라적으로 왕도 있지만 각자는 자기가 사는 거기에서 다 소 왕국의 왕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누가 자기의 주권을 침해한다든지 자기를 해롭게 해 봐요. 왕 행세를 하려고 안 그러는가?
자기 속에 주인을 바꾸어 놓고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될 런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 되면 자기는 고통이 온다. 알겠어요? 인간 자기는 절대자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님으로부터 통치를 받고, 애정적 치리를 받고, 사랑적인 치리를 받고, 애정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독불장군이 될 수 없지요? 반드시 부모의 애정권 안에서 살아야 되고, 애정적인 치리를 받아야 하는 거지요.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그걸 보여주지요. 그것을 벗어나면 인간 자기는 고통이 와요.
그러면 하나님의 통치와 치리를 벗어나면 아무 데도 통치를 안 받느냐? 천만에요. 하나님을 안 믿게 되면 어디 가서 통치를 받는가 하니 세상에 가가지고 통지를 받아요. 돈에 통치를 받고, 환경에 통치를 받고 그래요. 그러면 고통이 오기 마련이지.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하나님의 법칙이 그렇게 만들어진 겁니다. 인간 자기는 하나님의 법칙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인간 자기는 불완전하다. 다 성장된 자기가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알아야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내 속에 하나님의 정신을 마음을 키워야 된다. 인간은 자기 속에서 인격을 키워야 돼요. 참 인격을 키워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돼나가면 그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세상을 이기게 돼요. 알겠어요?
주머니에 돈 떨어지면 우는 인생, 주머니에 돈 들어있으면 웃는 인생. 이거는 어디에 지배를 받는 거지요? 환경에 지배를 받는 인생이다. 돈 있으면 ‘허허’ 웃고 돈 떨어지면 울고, 그러니까 환경이 와서 ‘울어라’ 그러면 울고, ‘웃어라’ 그러면 웃고. 그 어디 쓰겠어요?
창세기에 보니 인간에게 환경을 다스리라고 그랬지요. 통치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속에 가득 채워서 자기가 사는 환경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야 하는 겁니다. 그게 옳은 인간이다 그 말이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진리의 통치를 받으면 내가 깨달아져. 깨달아지니 내가 나를 바로 다스리고, 내가 나를 바로 다스리니 그 다음에는 가정을 잘 다스려 나가고, 자기가 사는 사회의 생활에서도 그 환경을 잘 다스려 나가고. 이게 인간이라 그 말이요.
그런데 오늘날 세상을 가만 보면 인간이 다스리는 것 같으나 보면 전부는 자기 속에서 돈이 다스리고, 자기는 돈을 따라 움직이고, 환경의 지배를 받는 타락된 인간이 돼버렸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 그 말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기가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참 옳게 살다가 참 옳은 사람으로 잘 만들어져서 가야 된다. 그게 얼마나 기쁨이고 영광이고 행복이냐?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이 세상에 살 때에 우리의 모든 주변에 여러 가지 환경과 크고 작은 사건이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사건 환경이 교체되는데 이것을 누가 하느냐?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했습니다.
내 몸 밖의 사건 환경이 교체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잠깐 있다가 가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인간 자기도 교체가 되고, 세상도 교체가 되고, 온 세상은 교체되는 세상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교체되는 것이니 어느 것 하나라도 영원한 것이 없는 줄 압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지요? 하나님께서는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교체시키면서 ‘이런 세상 속에서 너는 성경에서 바로 깨달아서 옳은 인격자로서 성장하라. 자라가라’ 하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신 뜻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옳은 사람으로 되어서 이 세상을 마치는 날 저희들을 영원한 하늘나라로 데려가기 위해서 그와 같은 훈련을 시키는 줄 믿습니다.
믿고 보니 이것을 알겠습니다마는 믿기 전에는 이것조차도 몰라서 이런 저런 사건이 왔을 때에 내가 좋아하는 사건 환경이 오면 좋아라 하고, 내가 싫어하는 환경 사건이 오면 싫어하고 그 환경을 밀어버리고 이런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인간 자기의 힘이 부족하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찾아가거나 다른 그 무엇에게 가가지고 이 사건 환경이 내 마음에 맞지 않으니 거두어 가 달라고 하고, 다른데 가서 힘을 얻으려고 하는 그런 것도 우리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타락된 지식을 가지고 볼 때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그 속에서 나 하나 바로 만들어지고 고차원적인 도덕성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지면 그런 사건 환경도 무난히 이기고 넘어갈 터인데, 그러나 하나님의 소원과 목적과 뜻을 모르니 그 사건과 대립하고 그 사람과 대립을 하고 충돌을 하고 마찰을 하고, 이렇게 지나니 결국에 가서 인간 자기의 양심이 부끄러운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제발 그런 사람으로 살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의 이 옳은 말씀이 우리의 속에 가득 들어있게 도와주시고, 미련하고 둔탁한 저희들을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궁하고 극진한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충만하심이 하나님의 진리지식과 옳은 성품으로 자라고자 하는 당신의 자녀들 머리 위에 영원히 같이할지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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