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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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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http://hanmihye.egloos.com/3256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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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yrus p66(200 AD) 요한복음서 10장 13~17절

Codex Vaticanus(350 AD) 요한복음서 8~9장

Codex Sinaiticus(350 AD) 요한복음서 1장
(*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여서, 마침 계기가 주어진 참에(房家님의 글) 자료 하나를 적당히 편역해서 올립니다. -한미혜 *)
기독교 신약성서의 연대추정
(원문: Dating the Oldest New Testament Manuscripts by Peter van Minnen )
기독교학에서 성서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본문비평학(textual critics)이라 부른다. 본문비평은 기독교의 성서를 근간이 되는 다양한 사본들의 내용을 비교 분석하여 필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나 오타 등을 밝히고 사본들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는 작업을 중심으로 한다.
처음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서가 출판된 것은 1516년이었다. 이것은 어느 위대한 네덜란드의 문헌학자의 혁혁한 공로였다. 그의 이름은 로테르담의 데세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당시까지 이러저러한 라틴어 신약성서가 있었는데, 에라스무스가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출판한 것은 새로운 라틴어 번역의 저본(텍스트)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마르틴 루터(1483-1546) 등 종교개혁자들이 자국어로 번역한 신약성서는 이 새로운 라틴어 번역을 저본으로 삼고 있었다.
에라스무스가 출판한 그리스어 신약성서는 중세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몇 가지 사본(manuscript)을 편집한 것이었다. 이 사본들은 원래의 성서를 베낀 것인데, 대부분은 사본의 사본(또는 다시 그 사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세기까지도 그리스어 신약성서의 근간이 되는 사본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19세기의 독일 학자 콘스탄틴 티셴도르프(Constantin Tischendorf)는 각고의 노력으로 상당히 우수한 질의 사본들을 많이 발굴해 냈다. 이 사본들은 4세기에서 5세기 정도의 것으로서, 그만큼 후대의 첨삭이 적기 때문에 소중한 일차문헌들이 된다. 1870년대에는 영국 학자 웨스트콧(Westcott)와 호트(Hort)가 여기에 가세하여 두 개의 경쟁하는 그리스어 신약성서가 출판되기에 이르른다. 이 두 책은 서서히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그 뒤에 수 천 개의 사본들이 계속 발굴되었다.
1930년대와 1960년대에 부유한 장서수집가였던 비티(Chester Beatty)와 보드머(Martin Bodmer) 덕분에 상당히 많은 파피루스 사본들이 발굴되었다. 이 사본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무엇보다도 다른 사본들과 달리 파피루스 사본은 매우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4세기 이전이고, 어떤 것은 신약성서가 저술될 당시에 매우 가까운 시기도 있다. 이전에도 파피루스 사본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전 것은 시기가 더 나중이고 성서의 극히 일부분만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파피루스 사본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파피루스 사본의 연대는 어떻게 추정할까? 어떤 사람은 탄소연대측정법 같은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면 연대추정을 할 수 있으리라 상상할지 모르겠지만, 지질학적인 역사가 아니라 이렇게 최근(^^;)의 유물에 대해서는 탄소연대측정법 같은 것은 무용지물이다. 고문서연구가(paleographer)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필체를 연구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필체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바뀌는 법이고, 사회적으로도 전반적인 필체의 변화의 양상으로부터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 활자가 나온 뒤에도 이런 서체 내지 필체의 변화로부터 시기를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특히 활자가 나오기 이전에는 이 방법이 매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성서만 가지고서는 필체 비교라는 방법이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필체가 매우 비슷한 성서 외의 사료들이 매우 많이 남아 있고, 그 사료들 중에는 정확히 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역사적인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거나 그 해의 특별한 일(천재지변이나 전쟁이나 일식-월식의 관찰 등)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문서연구가들의 세심한 비교연구 결과, 40여 개의 사본이 3~4세기의 것으로 밝혀졌다. 안타깝게도 그 중에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은 6개밖에 되지 않는다. 이 여섯 개의 사본은 P4, P45, P46, P66, P72, P75이다.
가장 오래된 '사본'인 P52는 요한복음의 일부를 담고 있는데, 이 사본은 125년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적어도 요한복음의 경우에는 125년 이전에 씌어졌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여겨지고 있다.
후대의 사본으로는 350년 경의 사본으로 추정되는 B사본(Vaticanus), 5세기로 추정되는 시나이사본(Sinaiticus), 그 이후로 추정되는 A사본(Alexandrinus) 등이 거의 완전한 사본들이다. 이 사본들은 모두 이집트에서 발굴되었다. 시나이사본은 19세기에 시나이 산 언덕의 어느 성당 도서관에서 발굴되었고, 상페테르스부르그(레닌그라드)로 옮겨졌다. 1933년에 사회주의 소련은 이 역사적인 문헌을 불과 10만 파운드에 런던의 영국박물관(흔히 대영박물관이라고 잘못 표기되는 British Museum)에 팔아 버렸다. 알렉산드리아 사본(A사본)은 17세기까지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총대주교 도서관에 있었는데, 지금은 런던의 영국도서관(British Library)로 옮겨져 있다. 바티칸 사본(B사본)은 중세 이후로 이제까지 바티칸에 있다.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정리한 사람은 뮌스터(Münster)의 알란트(Kurt Aland)와 프린스턴의 메츠거(Bruce Metzger)이다. 현대의 각 나라 언어로 된 신약성서는 대체로 이들이 편집한 것을 주요 저본으로 하고 있다.
[참고: Carsten Peter Thiede, The Earliest Gospel Manuscript?: The Qumran Fragment 7Q5 and its Significance for New Testament Studies (London: Paternoster, 1992)에 대한 서평]
[참고: The Qur'an and the Bible in the light of history and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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