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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누릴 곳이 아니라 나의 영적 실력을 준비하는 곳

출애굽기 궁극이............... 조회 수 3517 추천 수 0 2013.06.12 14:48:49
.........
성경본문 : 출2:1-10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21-10.

 

1-10: 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고 하는 세상은 대립과 마찰과 충돌이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갈 그 세계는 대립과 마찰과 충돌이 없는 세계입니다. 왜 그럴까? 그 하늘나라 세계는 본래 하나님의 것으로 단일 된 세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세계는 본질이 진리요 본성은 사랑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천국이란 천국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대로 단일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돌과 마찰과 대립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이질성이 없는 세계입니다. 단일성에 다른 맞지 않는 것이 전혀 없는 곳이라 그 말이요.

 

따라서 우리 기독교는 단일운동을 하는 곳입니다. 누구와의 단일입니까? 하나님과의 단일. 하나님과의 단일에다 하나님의 의사와 목적에 맞추어 살게 하는 것이, 그렇게 교훈을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기독교회는 하나님의 의사 단일에 맞추어야 하는 겁니다. 맞추도록 해야 되고.

 

그러면 기독교가 그게 아닌 세상에 맞추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단일이요, 이질이요? 그건 이질. 기독교회에서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복 받고 세상에서 잘 된다하고 가르치는 것은 세상을 말하는 거요, 천국을 말하는 거요? 세상. 그러면 세상을 가르치는 그 교회가 하나님의 본질에 하나님의 단일에 맞추는 거요, 이질로 나가라고 하는 거요? 이질이지요.

 

그러니까 기독교를 그냥 저 교회는 너무한다. 너무 엉터리다그런 식으로 보지 말고 질적으로 하나님의 본질이냐, 하나님의 의사 목적에 단일이냐그렇게 보란 말이요. 신앙 사상적으로 근본적인 것에다 대놓고 봐야지요.

 

, 그러면 아이구, 저 교회는 너무 심하다. 너무 한다이거는 바로 본 거요, 잘 못 본 거요? 잘못 봤지요?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 속에 바른 척도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딴 것을 보고 나쁘다. 좋다하는 그 잣대가 있단 말이요. 이러면 그 잣대를 바른 걸 가졌습니까, 바른 것을 못 가졌습니까? 바른 것을 못 가졌다면 그건 하나님의 잣대가 아니고 세상 잣대지. 기독교를 볼 때 그렇게 보란 말이요. 그렇게 봐야 만이 기독교를 정확하게 명확하게 가려낼 수가 있는 거지요. 교훈 적인 면에서 특히 더 그렇고.

 

그러니까 기독교는 내세주의인데, 전달자가 본질로 나가다가 하는 방편에서 잘못된 방편을 조금 잘못 쓸 수는 있어요. 그러나 본질로 나간다고 하면서도 계속 그렇게 쓴다면 잘못 나가는 거지. 자타의 구원목적에 두고 본질로 나가지만 지혜가 부족하다 보니까 방편적으로 조금 잘못 나갈 수가 있어요. 그러나 이런 경우 그 사람이 본질로 나가고자 하는 신앙이 분명하다면 바로 다시 본질로 들어와서 나가게 돼요. 그런데 방편이 위주가 이질로 돼버리면 결국은 달라져 버려요. 노상 그렇게 나가면 안 된단 말이요.

 

그러니까 전체 교회를 보는 신앙이 있지요? 하나님의 구원목적의 단일성의 본질적인 그것이 아니면 교회운동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구원목적이 아닌 종교활동을 세상이 놀랄 정도로 아무리 크게 해도 그거는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된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과의 단일이 아니므로 이질이지요. 그러니까 본질과 다르단 말이요. 아무리 기도하고 아무리 종교활동을 해도 그것은 생명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자적 성문적인 면으로 이단이 아니라고 해도 그거와는 상관이 없이 구원을 이루지 못해놓으면 그건 하나님과 달라지는 거니까 이렇게 되면 그의 신앙은 하나님의 단일로 나가지 않고 이질이 돼버리는 거지. 그러니까 구원이 아닌 것은 전부 심판 아래 놓이게 된다.

 

우리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들을 때 정확하게 따질 줄 알아야 돼요. 모르면 배워야 하고. 교회 안에 개인적으로 이질도 들어오고 이단도 들어오고 별 희한한 게 다 들어오지요? 그러나 교회 전체적으로 볼 때에, 특히 교역자의 메시지만큼은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면 안 됩니다. 기독교의 본질이 하나님의 의사 단일에 맞추는 거니까. 그래야만이 그게 기독교입니다.

 

생각을 해봐요. 학교에서 백날 공부를 해도 원리(공식)를 모르면 무슨 소용이 있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자기만 손해지. 그런 것처럼.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단일운동을 하는 곳이 기독교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목적선택, 또 존재선택 이런 모든 선택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단일운동을 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곳에는 절대로 이질성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것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을 즉,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입히고자 하는 목적에서 입니다.

 

나이 많이 드신 분들을 보면 아이고 이놈의 세상, 귀찮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그러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빨리 안 데려가시느냐?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헌 누더기 같고, 때 구정물이 주룩주룩 있지요? 그러니까 그 구정물을 빼게 하느라고 빨리 안 데려가신단 말이요.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옛날에 내가 행했던 것이 잘못 됐구나. 잘못 됐구나이런 게 자꾸 들어가야지요. 그러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사람이 겸손해지고 그래요. 그렇게 해서 타락된 성격 성질이 다 죽어야 합니다. 다 죽어야 데리고 가지요? 또 살아있는 사람도 데려가긴 데려갑디다만 그래놓으면 그 무슨 소용 있어요?

 

그러니까 나이 드신 분들은 빨리 가시려면 자기 속의 더러운 거 하나님 앞에 다 내놓고 하나님, 내가 평생 이렇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더럽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하면 얼른 데려가요. 하하하.

 

안 그러면 나이 드실수록 젊었을 때 고생고생하고 고통스런 일 당한 것이 나이 드는 것과 함께 더 꼿꼿해집니다. 그러면 안 돼. 그러면 고통이야. 그런 고통스러운 마음이 들면 몸에서 병이 생겨. 그러니까 그 성질 때문에 병이 생기고, 병이 생기면 몸이 감당을 못해요. 그러면 또 아이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그러면서 약 먹어야지.

 

마음을 잘 갈고 닦으면 예뻐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얼른 데려가요. 남 원망하고 그러면 믿는 효력이 없어. 그러니까 그런 마음은 독약과 같아가지고 예수 믿어도 효력이 안 나. 남 원망하고 고통 하는 그게 다 빨아먹기 때문에 그래요.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래야 돼요. 그런데 그게 참 어렵지요?

 

하늘나라의 세계는 인격자가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격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차등과 격차가 나기 미련입니다. 그러니까 인격적인 면에 격차가 있는 곳이 그 나라이다.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을 못 받으면 그 사람이 어른이 돼서 부모가 돼도 자식을 사랑하는 그 면에 축소가 돼버려요. 그러나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으면 그 아이는 자기 속에 사랑이 들어 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많이 줄 수가 있어요.

 

그리고 바꿔서 생각해 보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면도 있지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그 면도 있는 건데 자식이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 부모공경을 하는 그 면에 있어서 감소가 돼버려요. 우리 인간은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모든 면에 막히지 말라고, 사랑하고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주고받는 그 면에 막히지 말라고, 그 면을 충분하게 배우고 깨달으라고 하나님께서 부모형제를 만들어서 줬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인간은 받을 줄도 알아야 되고, 줄줄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주기는 주는데 생산해 낼 줄을 모르면 그것도 안 되지요. 그렇게 되면 인간이 정서적으로 자라는 면에 뭔가가 이상이 생긴단 말이에요. 밸런스가 맞지를 않아.

 

옛날에 보면 우리가 그걸 많이 느낄 수가 있는데 유교의 집안에서 어른만 알아가지고 여자나 어린아이는 콱 눌러놓으면 그런 집안 아이들은 다 튕겨나가 버려. 누가 그런 압박을 받으려고 그래요? 그러니까 명령도 옳은 명령이라야 되는데 그런 가정에서는 옳은 명령이 안 돼. 그러니까 비정상적이고 불의적인 명령을 어떻게 받아요? 안 받는단 말이요.

 

그러면 그 자식이 나는 커서 안 그래야지하겠지만 부모로부터 옳은 것을 못 배웠는데 안 그래야지가 어딨어. 자기 혼자 스스로 배우려면 일생동안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배워야 하니 그거 배우느라고 써먹지도 못하고 일생 다 가지. 그래서는 안 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살아있는 동안에 부지런히 부모자식 친구 간에 옳은 연관관계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될수록 자기의 실력이 자꾸 커져요. 인간이 사는 세계, 특히 성도의 세계는 진리로써 관계성을 맺어나가면서 그것이 이루어지면 천국점령이 되는 거지요.

 

그리고 성경에 천국에 관한 말도 많이 있어요. ‘천국은 이와 같으니그런 말 많이 있지요? 천국이라 할 때 자원적 소원적으로 천국권 내가 있고, 또 치리권 내를 말하는 천국도 있고, 생명계를 말하는 천국도 있고, 애정적인 면으로 말하는 천국권도 있고, 많이 있습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이 계속 천국에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죽어있지 않고 다 살아 있습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무슨 생명을 가지고 살아 있느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 있습니다. 불교는 그런 게 없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생명적 주권통치요 단일통치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은 모든 존재가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개체로 존재합니다. 현재 이 세상에서 육체의 생명은 개체 개별적 생명으로 살고 있지만 그곳에는 하나님의 한 생명을 가지고 개체적으로 살고 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는 안 죽는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데 죽겠어요? 안 죽지.

예를 들면 변전소의 전기가 나가면 각 가정의 전기는 순간적으로 다 가버리지. 그러니까 전기회사를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각 가정의 전등 하나 하나는 한 생명을 가지고 사는 개체생명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죽지 않는 한 영의 생명은 안 죽어요.

 

그리고 현재에 우리에게 영의 생명이 있는데, 이 영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겁니다. 이 영의 생명은 물질의 밥을 먹고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 기독자는 육체는 비록 밥을 먹고 살지라도 영의 생명 위주로 사는 거지요.

 

영의 생명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모든 성도는 너도 나도 다 하나님의 이 생명으로 살려놓은 것입니다.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이고, 시간적으로 보면 시간이 다함이 없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소유적으로는 영의 생명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자가 이 생명을 가지고 삽니다. 이 땅에서도 성도들이 그렇게 살고. 그러니까 우리의 중생된 영의 생명과 하나님의 생명과는 질이 똑같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천국권 안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현재 이 땅에서 살아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것이니까 그거는 천국권 안에 있는 생명이다.

 

그리고 내 이성과 몸이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한 이성과 몸도 천국권 내에, 하나님의 치리권 내에, 애정권 내에 있다 그 말이에요. 이런 권, 이 라인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있다 그 말이지요.

 

그리고 천국이란 곳은 의사도 대립과 마찰이 없는 곳이다. 하나님의 단일 된 의사로 산다 그 말이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런데 천국에서는 격차가 있다. 이 세상에도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어요. 같은 나이인데 어떤 아이는 어른 말을 얼른 얼른 알아듣고, 어떤 아이는 못 알아듣고 멍청한 아이들도 있지요? 그게 격차란 말이요.

 

그리고 천국은 주님을 닮은 것만큼, 하나님의 의사를 소원 목적을 닮은 것만큼 천국을 사용하고 누리는 면에 의욕이 있어요. 닮지 못한 것만큼은 의욕이 없어. 그러면 닮지 못한 것만큼은 이 세상에서 누구의 의사대로 살았다는 증거냐 하면 자기의 의사대로 살았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그거는 자기 손해지. 엄청난 손해지.

 

여러분들, 하루하루 산다는 거 절대로 우습게 생각지 말아요. 왜 그런가 하니 여러분들, 그 왜 이웃이나 딴 사람 죽는 거 봤지요? 어느 날 어느 시간에 죽고 또 낳고, 또 낳아도 어느 날 어느 시에 또 죽고. 이런 걸 가만히 볼 때에 절대로 매일 매일의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됩니다. 날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도 그 날에 있는 자기가 그렇게 중요하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허투로 어영부영 시간 보내며 살지 말라 그 말이에요. ‘찰칵하는 1초 동안에 자기 목숨도 끝나는 거 아니요?

 

그런데 사람들을 보면 자기 생일날만큼은 잘 기억하지요? 그런데 생일날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왜 생일날 다음부터는 길거리 거처럼 사는지 모르겠어.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이 날을 하나님이 뭘 하라고 줬어요? 하나님의 성품을 잘 닮으라고 만들어 놨는데, 그 일을 하라고 자기에게 날을 주고 부모형제를 주고 그랬는데 그 자기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자신을 만들어 놓은 그 목적대로 살지도 못하고, 또한 인간 앞에서도 인간처럼 바로 살지 못한다면 그 뭐요? 그 뭐하는 짓이요? 그래요, 안 그래요?

 

인간의 세계를 보면 도둑들이나 깡패들의 세계에서도 자기 후계자를 기르는데 더더군다나 기독자이고 아니고 간에 인간이라면 뭔가가 후대에 남겨주는 게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아요? 뭔가가 교육적인 거, 써먹을 수 있는 거, 향상이 될 수 있는 걸 남겨야지요.

 

우리 기독자들은 이 세상에 왔다 갑니다하는 그것이 속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활동하고, 다른 사람에게 뭔가가 유익되는 것을 남겨주려고 그래야 됩니다. 말하자면 그게 자기 후계지요. 성경은 그걸 다 말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살아생전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인간에게 맨 손해만 주며 살다가 죽을 때는 나 죽거들랑 태우지 말고 무덤을 지어라. 비석을 세워라해서 그 사람의 비석을 세운다면 비문에 내가 이 세상에 왔다가 한 일없이 왔다가 갑니다그렇게 새겨놔요?

 

인간은 살아서 뭔가를 해놓은 가치를 남겨놓고, 좋은 것을 심어놓고 가야 된다. 뿌려놓고 가야 된다. 안 그러면 믿고 안 믿고 간에 인간의 값어치가 없어. 우리 인간은 그래선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전부는 자기 의사대로 살았다는 증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세상에 살면서 천국을 점령하며 살아야 된다. 이건 자기 구원을 말하는 거지요? 왜냐하면 죽음 저 넘어 세계에는 주권에 격차가 있고, 능력에 격차가 있고, 실력에 격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없다고는 부정 못해요. 왜냐? 이 세상에서도 격차가 나기 마련이니까. 한 날 한 시에 낳아도 격차가 있단 말이요. 그걸 무시하면 안 되지.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느니만큼 그 사람 속에 의욕이 생깁니다. 늙고 젊고 간에 의욕이 생겨요. 살고픈 마음이 있어요. ? 구원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나가는 그것이 있으니까. 우리에게는 그것이 재산이지요.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 우리의 재산이다. 인간의 고귀한 가치성은 인격이니 하나님의 인격을 내 속에 많이 집어넣는 거. 그리고 그 인격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많이 연관성을 갖는 거. 이게 우리의 재산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격차가 나게 하려고 인격의 세계는 격차가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지었습니다. 왜 만물을 만들었느냐? 인격을 격차가 있게 하기 위해서. 왜 격차가 있게 하느냐? 인격의 세계는 그렇다 그 말이요. 알겠어요?

 

그리고 인간의 실력의 격차, 능력의 격차, 인격의 격차를 하나님 당신이 주권적으로 했다면 이거는 하나님의 공평성과 공정성이 없어집니다. 물론 하나님의 공평성과 공정성에 있어서 선택 예정 구속은 일률적 동등입니다.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세상에 격차가 있는 것은 천국의 격차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거다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인간 자기는 배우고 깨달아야 된다 그 말이요. 그런데 격차성이 있지만 하나님의 예정 면은 인간의 실행에 의해서 무너지지를 않습니다.

 

, 그러면 우리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볼 때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면으로 볼 때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키워가지고 실력을 크게 해서 확장시켜서 어디로 들이려고 그러는 거지요? 가나안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목적으로 보는 거고, 그러나 인간적으로 그냥 보면 왜 출애굽해서 가나안으로 가는 거지요?

 

하나님의 주권이 여러분들의 목을 매어서 강제로 끌고 가는 겁니까, 아니면 여러분들이 가고 싶어서 가는 겁니까? 말하자면 여러분들이 천국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겁니까, 끌려가는 겁니까? 인간 자기들이 가고 싶어서 가는 거지요. 그렇잖아요? 그러면 여기에서 뭐가 생겨요? 차등이 생기고. 물론 애굽에서도 차등은 생기지.

 

이스라엘을 등용시킨 것은 첫째는 전체 택자에게 바른 구원이치 바른 구원도리를 가르칠 목적으로 등용시켜서 계시기관으로 삼으신 겁니다. 어떻게 볼 때에 그렇단 말이요? 전체 택자로 볼 때에 이스라엘을 등용시켜서 계시기관으로 삼은 것.

 

그러면 요단강을 건너가는 건 뭐냐? 또 홍해는 뭐냐? 홍해는 교회 입교, 요단강은 죽음의 선을 넘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에서 성장시키지 않고 애굽에 보내가지고 애굽에서 천국성을 성장을 시키고, 또한 애굽을 탈출을 해서 광야에서 훈련 교육을 시켜서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게 하는 것은 이 이스라엘을 통해 지금 우리의 이룰구원 면에서 재세기간 동안에 구원을 잘 이루어 천국에서의 주인공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주인공이 뭐냐? 실력적으로 만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이름만 주인공이 아니고 실력적으로 주인공.

 

세 번째는 영적으로 본다면 이스라엘의 자체 구원역사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개개인이 성화구원 소유구원 능력구원 연관구원을 이루어 가는 이걸 또 보여준다 그 말지이요. 이치는 같아요. 이치라고 하는 것은 영적으로 대나, 개인에게 대나, 백 사람에게 대나, 이스라엘 전체 국민에게 대나 모두 그 한 이치를 가지고 따져나간단 말이요. 그게 이치란 말이요.

 

국가적으로 보면 공주국(共主國) 애굽이 있고, 공동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민족적 공로(共奴)로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영토도 없는 이 이스라엘을 무기도 없이 탈출을 시켰습니다. 하나님은 만능의 능력자시지요? 인간 자기의 구원운동에 이 환경을 주고 저 환경을 주고, 미운 사람 붙여주고 고운 사람도 붙여주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붙여주실 때에 나는 거기서 어떻게 살아왔느냐? 여기에서 각자마다 엄청난 차이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또 수입의 결과가 완전히 다르고.

 

하나님이 하시는 한 사건 한 사건 속에 복합적인 계시가 들어있는데 그 속에는 이스라엘이 들어있고, 교회가 들어있고, 내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3500년 전의 그 때의 지금의 나, 말이 좀 이상하지? , 내가 3500년 전으로 가서 있고, 3400년 전의 그 사건이 지금 나에게 와서 있고. 그리고 지금의 내가 교회요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이 이런 나에게 그 누구를 통해서 건 진리지식을 주고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70인을 애굽에 들여놓고 교훈적으로 내려가는 것이 있는데, 내려가는 그 속에 히브리인의 긍지가 있지요? 그래서 애굽 안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기본자세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 성도의 기본자세 다 알았습니까? 따라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어디서 그렇게 산다고요? 애굽에서. 애굽에서 공노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 그들에게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하는 요셉의 뿌리 있는 그 신앙이, 히브리인의 그 긍지가 내려가고 있는 겁니다.

 

또 따라합시다. ‘이 세상은 나의 영존처가 아니다.’ 모르긴 해도 백 년만 지나면 이 자리에 있었던 사람 중에 여기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야. 이 세상은 나의 영존처가 아니다.

 

따라합시다. ‘조만간에 나는 이 애굽에서 떠난다.’ 3500년 전에 이스라엘이 가졌던 그 정신을 보란 말이요. 그리고 그 정신이 오늘날 우리 속에서 살아서 숨 쉬고 있지 않은가?

 

따라합시다. ‘이 세상은 나의 실력 배양장이다.’ 무슨 실력? 영적 실력, 믿음실력, 신앙실력.

 

따라 합시다. ‘나의 영원히 누릴 곳은 천국이다.’ 이 세상은 누릴 곳이 아닙니다. 절대로 이 세상을 어영부영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 부르는 노래가 즉흥적이야. 옛날 사람들은 술판 벌였다 하면 의례히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그 노래 부르지. 이 노랫소리 가만 생각하면 귀에 거슬려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하며 놀면 그 분위기가 즐겁긴 하겠지만 그러나 정신적인 면으로 볼 때에 이거는 아주 사람 망하는 노래요.

 

그 보면 안 믿는 사람은 몰라서 그렇고, 우리야 믿어서 그렇다고 하는 거지만 믿고 안 믿고 간에 전체 인간의 기준 중심이 뭐요? 정확한 척도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밖에 없다. 아주 절실히 느껴요.

 

따라합시다. ‘천국은 실력대로 누린다.’

 

오늘 이만큼 합시다.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영원 전 창세 전서부터 하나님의 의지세계 속에서 저희들을 예정적으로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오늘날까지 저희들에게 기본구원을 입혀서 밤잠도 주무시지 않고 무던히 성화구원을 입혀주시려고 애쓰심을 성경을 통해서 저희들이 깨달아 볼 때에 과연 저희들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 살면서 뭔가가 정신이 달라야 되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위신도 있고, 만물 보기에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의 제 1 목적물로 되어있는 긍지가 있고, 그런고로 저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적마다, 들을 적마다, 상고할 적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계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심비에 잘 새겨지고, 모든 생활면에 활동적으로 하나님의 사상과 정신과 소원 목적이 건너갈 수 있도록 저희들을 꼭 붙잡아 주시옵소서.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세상이고, 자기 것이 있으면 흥청망청 마음대로 쓰기 좋은 과학적인 세상 문화적인 세상이지만 하나님 아버지, 이런 가운데 살고 있는 저희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우리의 정신 속에 썩어빠지고 심판 아래 놓여질 더러운 세상의 것을 절대로 감염시키지 말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생명력이 있는 이 말씀에 피동 된 그 사상과 정신으로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천국 점령자가 될 수 있도록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명철한 지혜와 총명을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궁하고 극진한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충만하심이 성화구원을 이루면서 살고자 하는 당신의 백성들 머리 위에 영원히 같이 할지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sort
17257 로마서 욕심을 버리면 길이 보인다 롬6:23  김동호 목사  2012-08-23 3550
17256 시편 찬양의 힘 시108:1-5  이정수 목사  2010-04-04 3550
17255 창세기 유다지파의 사자 ..... 창49:1-12  이정원 목사  2010-07-16 3549
17254 에배소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엡1:15-23  우제돈 목사  2010-05-06 3548
17253 출애굽기 만나의 영적 의미 출16:1-8  정용섭 목사  2009-11-18 3548
17252 요한복음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믿음 요4:46-54  이동원 목사  2009-11-21 3546
17251 시편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시46:1-11  한태완 목사  2011-05-03 3545
17250 출애굽기 이스라엘 첫 대제사장 아론 출17: 1- 7  한태완 목사  2011-11-11 3543
17249 마태복음 세례의 의미 마28:18-20  이상호 목사  2013-04-12 3540
17248 요나 요나의 회개와 감사기도 욘2:1-10  이상호 목사  2013-03-10 3540
17247 고린도후 견고한 진을 파하는 힘 고후10:1-6  이한규 목사  2011-08-12 3539
17246 고린도전 부활, 그 이후(첫 열매이신 그리스도) 고전15:20-26  허태수 목사  2011-11-29 3538
17245 에배소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2) 강건 엡6:10-20  김필곤 목사  2012-02-20 3537
17244 열왕기상 불 후(後)의 세미한 음성 왕상19:11-12  김남준 목사  2010-05-13 3537
17243 다니엘 기도의 영적인 싸움 [1] 단10  이동원 목사  2009-12-10 3537
17242 마태복음 교회의 3대 사명..... 마4:23-25  이정원 목사  2010-02-25 3536
17241 마태복음 낙심 포기하지 마라 마15:21-28  한태완 목사  2013-04-09 3532
17240 레위기 생각을 바꾸자 레17:1-16  최장환 목사  2013-03-20 3532
17239 예레미야 옛 언약, 새 언약 [1] 렘31:31-34  정용섭 목사  2012-04-06 3531
17238 마가복음 휴식의 중요성 막6:30-31  한태완 목사  2010-07-06 3530
17237 시편 희망을 잃지 말라 [1] 시121:2  한태완 목사  2012-07-17 3527
17236 설교자료 말씀의 숨과 결-대한성서공회 민영진 목사 설교비평  정용섭 목사  2009-05-08 3526
17235 마태복음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자가 되라 마25:1-13  한태완 목사  2011-05-31 3525
17234 잠언 동물의 지혜를 배우자 잠30:24-28  민병석 목사  2010-05-14 3525
17233 시편 하나님의 섭리 시69:13-18  한태완 목사  2014-02-22 3524
17232 고린도전 방언 기도의 유익이 무엇인가? 고전14:39~40  조용기 목사  2009-06-01 3524
17231 누가복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눅16:1-9  허태수 목사  2013-08-25 3522
17230 마태복음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라 마5:43-48  한태완 목사  2013-12-14 3521
17229 민수기 축복하며 복받는 세상 민6:22-27  김필곤 목사  2012-08-28 3520
17228 마태복음 암탉 같은 하나님: 전폭적 포용과 忍苦의 神 마5:43-48  한완상 형제  2004-01-06 3520
» 출애굽기 이 세상은 누릴 곳이 아니라 나의 영적 실력을 준비하는 곳 출2:1-10  김경형 목사  2013-06-12 3517
17226 시편 온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라 시150:1-6  한태완 목사  2011-01-31 3516
17225 신명기 축복의 길, 고난의 길 신8:2~3  조용기 목사  2010-02-15 3516
17224 사도행전 21세기의 바나바 행11:19-30  유흥준 목사  2013-02-12 3515
17223 이사야 죽음을 무너뜨리리라! 사25:6-8  정용섭 목사  2010-06-14 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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