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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벧전2: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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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나그네 인생
벧전2:11-12
08. 5. 28(수)
나그네
돌아 갈 집이 없는 절망적 고독에 몸을 떨어 본 경험이 있나요?
다음은 어느 목사님의 어렸을 적 추억입니다. 더욱 실감나도록 '나'로 표현하여 읽겠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적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일이었습니다. 어느 봄볓이 화창하게 대지를 가득 채웠던 날 동네 골목에서 아이들과 같이 놀던 나는 마침 고무총을 만들어 누가 멀리 나가나 겨루기를 하다가, 갑짜기 고무총으로 묘기를 부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 때 나의 눈에 띈 것은 이웃집 장독대에 높이 올려놓은 햇볕에 반짝이는 장독이었습니다. 나는 그 장독을 고무총으로 맞춰보겠다고 장담을 한 다음 고무총을 힘껏 당겨 쏘았습니다.
고무총을 떠난 돌맹이는 슁 소리를 내더니 날라가 장독 한가운데를 명중했습니다. 나는 평소에 아이들과 겨루기를 하면 뒤지기를 싫어한지라 그 날도 내가 할 수 있는 기량을 모두 쏟아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런데 예기하지 못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돌맹이를 맞은 독에 구멍이 나면서 장독에는 분수가 생겼습니다.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재미있어 했습니다. 이 때 나의 영웅심이 발동이 되어 동네를 돌며 눈에 보이는 장독을 돌아가며 모두 쏘았습니다. 아이들이 나의 묘기에 부러워하는 모습을 본 나는 더욱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새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아이들을 끌고 새를 잡으러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얼마 후 나는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내가 한 일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집에 가까이 왔을 때 우리 집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두 모였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내가 망쳐 놓은 장독과 장 값을 변상하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평소에 장난기가 심하여 어머니에게 꾸중을 자주 듣는 편이었지만 이 날 어머니의 노하신 모습은 다른 날과 달랐습니다. 그 날 나는 집에서 쫓겨나고 이 후로는 어머니 아들이라 부르지 않겠다는 선언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열여섯에 결혼을 하시어 아버지와 같이 공부하시느라 어머니가 서른 한살 되시던 해에야 맏아들로 늦게 나를 낳으셨습니다. 늦게 난 아들이라 남 달리 부모의 사랑을 받고 크면서 버릇이 잘못 들었나 봅니다. 집에서 쫓겨 난 나는 학교 운동장으로 갔습니다. 노는 아이들이 많아 집에서 쫓겨났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고 아이들과 어울려 열심히 놀았습니다. 그런데 해가 저물자 같이 놀던 아이들은 각각 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도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에야 내가 집에서 쫓겨났다는 것을 깨닫고 어둠이 깔리는 운동장 귀퉁이 프라다나스 나무 밑에 쭈그리고 홀로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픔에 잠겨 있으려니, 갈 곳 없는 나에게 밀려오는 고독과 절망은 말로 형용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사람들의 오가는 발걸음도 끊기고 사방이 정막한데 나는 배고프고 춥고 떨리고 거지의 삼대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신세가 되었다 생각하니 더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그 때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이윽고 나타난 것은 아버지, 내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아셨는지 날 찾아 오셨습니다. 그 날 나는 용서받고 잠자리에 누우면서 다시는 어머니를 마음 아프게 해드리고 집을 쫓겨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아버지의 집, 낙원을 쫓겨난 나그네들입니다. 그러나 나그네 길에서 자신이 실낙원의 실존임을 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엔 평생토록 몸담아 일 할 일터가 있고, 사랑하는 아내와 목숨처럼 소중한 자식들이 있습니다. 시간을 보낼만한 취미생활이 있고, 죽고 못사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돈 버는 재미, 달콤한 사랑, 성취의 쾌감, 흥을 돋구는 놀이, 인생의 고독을 달래 줄 소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나를 떠나버리는 날이 있습니다. 같이 놀던 아이들이 날 저물면 각각 제집으로 돌아가듯 나만 홀로 남는 날이 옵니다. 아내도 남편도 친구도 자식도 그 많던 재미있던 일들도 모두 떠나가 버리고 나만 홀로 남게 됩니다. 그 때 정작 내가 가야 할 곳이 없다면 어찌 될까요?
고향을 떠난 사람은 나그네입니다. 나그네가 고향을 찾아와도 목메어 그리던 고향은 아닙니다. 두견화 피는 언덕에 올라 풀피리 맞춰 불던 옛 친구는 간데 없고, 살뜰히 사랑하던 부모형제도 찾을 길 없습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가요나 동요의 노랫말 소재에 \'고향\'에 관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고향 땅이 여기서 몇 리나 될까?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등등.
성경(벧전2:11)에서도 우리의 삶을 나그네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우리들의 이 세상 삶은 나그네(벧전1:1)의 삶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영생을 사모하는 자들로서 우리의 본향을 사모하니, 이 본향은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말씀하였습니다.
1. 우리는 돌아 갈 집이 있습니다.
나그네가 돌아 갈 고향이 있으면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닙니다. 돌아갈 집이 있고 기다리는 부모형제 친구들이 있으면 나그네 길은 슬프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 할 곳이 많도다"(요14:1-2)
2. 우리는 영원한 안식이 있습니다.
잠시의 고생은 돌아가 쉴 고향집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이에 대한 표현을 ‘현재의 고생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돌아갈 고향은 정녕 죄 많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장차 살 곳이 하늘나라에 있으니 처소에 대해 아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요14:1-3). 그 곳은 동록이 쓸지 않는 곳, 이별의 눈물이나 고통이 없는 영원한 집입니다. 우리가 필설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답고 영원한 우리의 본향집을 주님이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1:15-16)에도,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고향,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영원한 집이 예비되었습니다. 좌절과 실의로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엠마오길의 제자들 부활의 주님과 만난 길에서 희망과 용기를 찾았습니다.(눅24:13-35)
돌아 갈 본향집이 예비된 나그네는 그 길이 고달프지 않습니다. 죽음의 자리까지 동행하시는 그리스도가 있는 삶은 고독하지 않습니다.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건 상관이 없습니다. 기쁨이 있고, 찬송이 있고, 감사가 있고,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잠시 우리의 일손을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어 나그네길에서 진솔하게 나의 현주소를 확인해 보십시다.
우리는 잠시 사는 이 세상에서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축구하면서도 금식하는 목사님들 = 영성을 갖춘 대전노회 축구단 이야기)
행실을 선하게 갖고, 그 선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시기 바랍시다. 11, 12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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