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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눅24:36-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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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부활과 교회
누가복음 24:36-43,
09. 4. 12(부활주일)
인류 역사 이래 인간의 최대문제는 죽음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처럼 슬프고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는다고 할 때 누구나 인생의 허무와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죽음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두렵고 엄숙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형장으로 가는 죄수가 가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 깜짝 놀라 본인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 “어이쿠 하마터면 죽을 뻔 했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형수는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 일부러 신발을 벗고 가다가 신발 벗어졌다고 하여 다시 돌아온답니다.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함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이비 교주들이 주로 하는 얘기가 자기는 죽지 않으며 나를 믿는 자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하여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한 마디 항거하지 못하고 다들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도 천하에서 존경받는 그런 사람도 다 죽었습니다. 죽음은 인류의 최대의 적이요 우리 인간이 넘지 못할 불행의 장벽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죽음의 장벽을 깨뜨리시고 찬란하게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생명이시요 전능자요 창조주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사망이 그를 지배하지 못하며 불행과 저주와 슬픔과 어둠이 그와 함께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동에 파견된 기독교인이 현지의 직원과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현지의 모슬렘교도는 "우리는 매일같이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며 엄한 규율대로 살며 평생에 반드시 메카를 순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메카에는 아주 웅장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마호멧트의 무덤이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크리스챤은 대답하기를 "그것이 바로 기독교와 회회교의 차이점이다. 마호메트와 다른 종교의 교주는 모두 죽어 무덤에 묻혀 썩어 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지 사흘 만에 무덤을 깨뜨리고 부활하셨다"고 하였답니다.
칼 바르트는 '부활절과 성탄절의 설교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이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다양한 증언자의 증언이 기록되어져 있는 신약성경에서는 주님의 부활에 대해 204회나 언급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후 이 땅에서 40일 동안 계시면서 사람들에게 11번 나타나셨고 남겨진 네 마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맨 처음 신약시대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점으로 오순절 성령강림과 함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884년 부활절에 인천항에 어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가 입국하여 한국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 후인 1984년 부활절에 우리 세광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죽음을 이긴 그 자리에 교회가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이긴 사건입니다. 부활은 폭력을 넘어선 사건입니다. 부활은 거짓을 물리친 사건입니다. 부활은 억울함을 푸는 사건입니다. 부활은 눈에서 눈물을 거두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 네 마디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부활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의심을 이기는 부활입니다.
부활의 아침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등 몇몇의 여인들이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된 주님의 몸에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무덤에 이르자 무덤의 돌문이 옮겨져 있습니다.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달려가 누군가가 시신을 치웠다고 말했습니다. 여인들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믿어지지 않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무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좀더 젊었을 요한이 먼저 도착했지만 무덤에 들어가지 않고 들여다보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도착한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가자 요한도 따라 들어갔고 정말 주님의 시신은 없고 수의가 개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의미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곧 요 20:9,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아직 믿지 못하더라가 아니라 알지 못하더라고 말씀. 죽은 사람이 미리 예고한 대로 다시 살아나는 예를 듣거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제자 도마에게도 해당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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