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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출2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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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맥추감사 제사를 드리자
출 23:16, 레 23:15-21
09. 6. 28, 맥추감사절
오늘은 맥추감사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날을 하나님께 나아와 제사, 즉 예배를 드리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오늘과 같이 도시화되고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에 농사짓는 이들에게나 있을 추수한 것에 대해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절기행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하나님을 더 잘 믿는 기회로 삼으면 복이 될 것입니다.
올 봄에 저는 신비한 농사경험을 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작년에 감자를 샀는데 겨울이 지나면서 모두 속이 썩어버렸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속만 썩어서 봄이 되자 아내는 밭에다 버리고 필자는 다시 집으로 가져와 "왜 멀쩡한 감자를 버렸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럼 어디 당신이나 먹으랍니다. 그래서 잘라보았더니 정말 감자암이더군요. 겉은 건강한데 속은 완전히 썩었더라구요.
그런데 밭에 버린 감자가 기경을 하면서 뭍혔다가 싹이 나오고 열매를 맺어 하지가 지나 감자를 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감자가 나오고 또 나오고 자꾸 나오는 겁니다. 참 신비한 일입니다. 감자는 썩어서 못 먹게 되었는데 겉에 남은 감자씨가 자라나 주렁주렁 열매를 맺었어요.
생명의 신비! 땅의 신비! 농사의 신비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매 순간 신비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유월절과 수장절(가을 감사)은 일주일 동안 행사가 진행이 됩니다. 이에 비해 맥추감사절은 하루 동안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농번기로 매우 바쁜 시기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바쁜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이 절기를 지키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반대로 우리가 이 날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건강한 삶을 살기위한 일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을 돌아 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맥추감사절은 바쁜 시간에 가던 길을 멈추어 축제를 통하여 더 복되게 만드는 시간입니다.
맥추감사절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내용을 하나하나 생각을 하면서 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충만히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맥추감사절은 네 가지 제사를 순서에 의해 드립니다.
1. 첫 번째는 소제를 요제로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17절)
소제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밭에 뿌린 씨앗이 자라 결실을 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시하는 제사입니다. 그러기에 소제의 제물은 농산물, 즉 곡식이고 이 곡식으로 가루를 내고 빵을 만들어 바치는 제사입니다.
이 소제를 요제 제사법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요제라는 말은 흔들어 드린다는 뜻이지요. 위에서 아래로, 뒤에서 앞으로 흔들기도 합니다. 제물을 흔드는 것은 “하나님, 이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은혜를 받고도 감사를 하지 않는 것은 사람도 아니지요. 어떻게 감사를 할 수 있나요? 소제의 제물을 만드는 두 가지 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추수한 곡식을 일일이 갈아서 가루를 냅니다. 다음으로는 밀가루에 누룩을 넣고 반죽을 하여 2개의 빵을 만듭니다. 작은 낱알 하나를 땅에 심었더니 백배의 결실을 주시는 것처럼, 작은 가루에 누룩을 넣어 반죽을 하고 불에 찌니까 더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우리를 풍성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탈무드에 보면 ‘신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낱알 그대로인 밀을 가지고는 빵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밀을 부서뜨려 밀가루가 되어야 비로소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영국의 신학자이며, 유명한 성서주석가인 매튜 헨리가 한번은 강도에게 자기 돈지갑을 도둑맞았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4가지를 감사했다고 합니다.
첫째, 내가 이번에 도둑맞았으나, 전에는 도둑맞은 일이 없으니 감사합니다.
둘째 도둑이 내 생명은 빼앗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셋째, 지갑을 도둑맞았으니 내 재산이 도둑 은 것 아니니 감사합니다.
넷째, 내가 도둑맞았을 뿐이고, 내가 남의 것을 도둑질한 것 아니니 감사합니다.
도둑맞았을 때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오늘 이시대의 모든 문제는 감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감사의 말을 강요하는 국법은 없으며 또한 감사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의 단순한 삶은 더 풍성한 삶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사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갈아내지 않고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깊이 마음을 갈아서 생각에 생각을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발견하게 될 되어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시다. 감사해서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는 번제를 화제로 헌신의 제사를 드립니다.(18절)
번제는 제물이 짐승입니다. 일년 된 흠 없는 양 일곱 마리, 어린 수소 한 마리, 숫 양 두 마리를 껍질은 벗기고 머리도 빼고, 피도 내장도 빼고 난 후 깨끗이 씻어서 드리는 것입니다. 이 제물을 화제로 드리라는 것은 불에 태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양 일곱 마리, 수소 한 마리, 수양 두 마리를 각을 내고 깨끗이 씻어 불로 태워 완전히 흔적도 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그 냄새가 대단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향기가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명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나의 정욕은 다 버립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사명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아십니까? 한마디로 있는 사람이 잘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자발적이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사회봉사와 기부·헌납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에서 나온 말로 높은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은 이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가져야 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초기 로마에 있어서는 귀족과 같이 사회의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히 여길 뿐 아니라 이를 가진자의 명예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평가입니다.
어려울 때는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진정으로 선진국이요, 영국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습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책임 있는 자세를 갖고 희생할 수 있어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교회의 부흥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속죄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19절)
“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화목 제물로 드릴 것이며”
속죄제는 자신의 부족을 스스로 인정하는 제사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입니다. 인간은 다 부족합니다. 잘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어디에고 진정한 행복과 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속죄제와 화목제, 왜 이 두 제사를 같이 해야 할 것을 지시하실까요? 그 이유를 알면 이 둘은 같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속죄제는 의무적으로 드려야 하는 제사로서 부지중에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비는 제사입니다. 속죄제의 제물은 수 염소 한 마리이고 이 수 염소 한 마리를 불에 완전히 태워 드리는 번제입니다.
부지중에 죄를 짓는 것에 대한 제사를 드리라는 것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나면서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의롭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안정하는 고백입니다.
죄인이니까 알면서도 죄를 짓고 모르면서도 죄를 짓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죄제는 단순히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용서를 받는 제사가 아닙니다.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음에 대한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유한한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화목제를 드려야 합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성도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제사입니다. 이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서원을 하는 자발적인 제사입니다.
서원은 야곱이 창28:20에서 하나님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나서 광야 외로운 곳에서 돌베게를 베고 잠을 자는데 하늘과 땅 사이에 사닥다리가 놓이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는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구나!’ 깨닫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 앞에 돌 베게로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가 가는 이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세기 28장 20절에서 22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복을 주셨고 야곱 또한 하나님에 대한 서원을 지켜서 복을 받게 됩니다.
또 사무엘상1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상1:11에 보면 한나가 믿음의 서원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한나의 태를 열어 주셔서 사무엘 이후에 5남매를 주셨습니다.(삼상2:21)
할렐루야! (아멘) 감사하지요? 우리는 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승리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는 성도에게 복을 주십니다.
화목제는 부족한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기를 바라면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요 하나님께 바쳐지는 인생으로 살겠다는 하나님과 약속을 하는 서원제입니다. 이 서원제는 절대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원해서 하는 제사입니다.
그러나 속죄제를 통하여 인간의 약함과 부족함, 그리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예수님 제자들)
여기에서 알아야 될 놀라운 사실 하나는 구약의 맥추절을 무교절 첫이삭을 드린 날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라고 해서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 이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계셔서 성도를 가르치시고 도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요14:25,26) 성도는 하나님의 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냈습니다(마태12:28) 이 하나님의 영이 오순절 날 기도하는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이 성령이 오신 날이 교회의 시작이요, 성령을 모신 분이 성도입니다.
20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마리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서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이니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그리고 이 화목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로서 첫 이삭으로 만든 떡과 두 마리 어린양을 요제로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제사장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화목제의 성격상 하나님께 서원을 하는 인생이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의 도움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4.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21절)
이 날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안식일로 지킵니다. 이날은 제사만을 드리면서 하루 온 종일 ‘지난 시간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그러므로 온전한 헌신을 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혹시 부지중에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은 물론 나는 이렇듯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부족한 사람임을 고백을 하고 하나님의 규례대로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날이기도 합니다.
1)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님도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제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은 속죄제를 제외한 소제, 번제, 화목제는 모두가 자원제 즉 강제로 하는 제사가 아닌 스스로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런 감사의 제사는 자유입니다. 드릴 수도 있고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당신 밖에는 없습니다! 라는 고백을 듣고 싶어 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2)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준비합시다.
제물은 마음의 표시오 믿음의 표시입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제물을 드립시다.
하나님께 편지를 쓰십시다. 감사할 일, 헌신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부족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동행하는 성령의 삶을 살겠다는 서원기도를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편지가 감동이 되는 것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헌물은 마음의 제물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희생의 제물을 드립시다.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가지고 있는 것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말과 행동 그리고 물질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이면 감사헌금을 드리고, 맥추감사절이 되면 맥추감사헌금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물질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9장 11-13절에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라고 했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님에 대해서 자기를 낳아주심에 감사한 마음이 있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한 마음이 물질로, 몸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모실 수 있어야 하고, 공경해야 하며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물질의 양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담긴 표현을 원하십니다.
곡식을 드리는 소제, 소와 양을 잡아 드리는 번제, 그리고 양을 잡아 흔들고 제사장의 몫이 되게 하는 화목제의 제물과 같이 우리도 우리의 것 중에 물질을 드립시다. 우리의 소유는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믿음의 제물이어야 합니다.
구원은 값없이 받습니다만 축복은 반드시 순종이라는 통로를 타고 들어옵니다.
추수감사절이 시작된 동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 중 반 이상은 굶어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있는 사람들마저도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국적으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한 농부가 이런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생각을 달리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는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유럽에서 신앙의 자유를 잃고 얼마나 쫓겨 다녔습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습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그전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식대신 감사의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농부의 이 말은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금식기도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이 일이 감사절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는 가난을 이깁니다. 역경 중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참된 감사는 평안의 요 위에 누워서만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의 재에 앉아서도 가능합니다.
참으로 역경 중의 감사는 큰 믿음에서 옵니다. 감사하는 신앙은 이미 승리의 길을 걷는 것이며 그 행보는 결코 실족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는 평안할 때 뿐 아니라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사철 푸른 나무처럼 시들지 않는 싱싱함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6). 어떻게, 염려가 없을 수가 있습니까? 사람이 사는데 어떻게, 문제가 없겠습니까? 그런데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신뢰관계가 두텁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문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망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영광 받으실 것이기 때문에, 그런 확신이 있기에 어떠한 광야 길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렵고 심각한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사람은 역동적인 신앙인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능력을 체험합니다. 왜냐 하면 믿음의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맥추감사절을 맞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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