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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순전한 신앙 이야기<http://cafe.naver.com/ghkdqnd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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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릇만 되겠다는 자들
유별나게도 우리는 큰 것을 좋아합니다. 큰 것이 우리에게 어울리는지, 잘 맞는지, 필요한 것인지, 그것을 감당하고 유지시켜 갈 수 있는 것인지 한번쯤 생각도 해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 그리 큰 것을 선호하고 원하는지 특별한 이유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단순한 아이들처럼 큰 것이 좋고 자랑스럽고 작은 떡보다 큰 떡이 눈에 들어오고 그냥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되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작은 땅 한반도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오던 우리 조상들이 큰 나라나 대륙을 꿈꾸며 선망했던 것이 후손된 우리들에게 한 맺힌 유언처럼 미쳐져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엇비슷한 크기의 가까운 일본 사람들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작으면서도 그리 큰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더 단순하고 수준이 외형적으로 큰 것에만 치유치는 욕망의 작용이 더욱 강해서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보면 큰 것으로 가고 큰 것을 가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요 발전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큰 것은 자랑이고 으뜸이고 작은 것은 수치고 꼬리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네 어른들이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너는 큰 인물이 되라, 큰 사람, 큰 일군, 큰 그릇이 되라고 당부하고 당부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지 사람들은 큰 집에서 살려하고 큰 평수의 아파트로 늘려 이사 하려하고 더 큰 차로 바꾸려하고 대기업을 선망하고 큰 도시에로만 몰려들고 큰 학교에 입학 하려하고 심지어는 큰 묘지까지 선호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런 수준이나 이런 차원이 되어서는 안 될 교인들이나 그들의 지도자까지 대다수가 세상 사람과 똑같이 큰 것을 좋아하고 세상에서 큰 자가 되고 머리가 되려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자들은 하나같이 외형적으로 큰 교회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은근히 자신을 하나님의 큰 그릇으로 소개하고 또한 교인들은 그렇게 인정합니다. 큰 교회 어떤 목회자들은 노골적으로 큰 교회에 와야 큰 복 받고 크게 되고 큰 일군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이 큰 교회를 이루었다며 큰 교회에는 하나님의 큰 능력의 역사가 특별하게 작용하는 것처럼 떠들어 댑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황당무계한 말에 끌려 큰 교회를 좋아하며 몰려듭니다. 자신들의 역량이나 형편으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큰 것들을 큰 교회를 통해 크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입어 보려는 기대에서입니다. 또 보면 예나 지금이나 많은 신학생들이 큰 교회에 가서 전도사생활을 하려 합니다. 이유는 거기가야 배울 것이 있고 자신도 그런 큰 교회를 세우는 큰 그릇이 되는데 매우 유익하고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큰 교회 부교역자로 가는 것이 일류대학교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특별한 빽(?)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 그렇게 연관된 자들의 입으로부터 종종 들려올 정도입니다.
필자가 총각 전도사로 장위 동 어느 작은 교회에서 시무할 때 일입니다. 저를 잘 아는 분이 다녔던 어는 교회 연세가 지긋한 여자 전도사님이 저를 중매해준다고 해서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상대가 되는 아가씨를 만나기 전에 나는 그 전도사님을 먼저 만나서 그분으로부터 아가씨에 대한 정보와 내가 행동해야할 주의 사항을 들었는데 그때 그분은 내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느 교회에 있느냐? 큰 교회냐? 그래서 내가 작은 교회라 했더니 그분은 내게 아가씨를 만나면 큰 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다고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요?”라고 했더니, 그래야 아가씨가 더 호감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것은 내게 말문이 막힐 정도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분이 먼저 그 아가씨에게 나를 큰 교회 전도사라고 소개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그 아가씨가 그런 기대를 가져서인지 몰라도 나는 있는 그대로 소개했고 한술 더 떠서 앞으로 농어촌 산간벽지에 가서 목회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래서인지 성사가 되지 않았지만 황당했던 것은 담임 목사도 아닌 임시적인 교육전도사가 큰 교회 있으면 어떻고 작은 교회 있으면 어떻습니까? 그게 앞으로 큰 일군 되는데 좌우하는 전초기지라도 된다는 것인지 ․ ․ ․ ․ ․ ․ .
잘 아는 선배 목사님이 근간에 내게 이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집사람이 자기보고 그릇이 적다며 그러니 항상 이 상태에서 더 크게 나가지 못한다고 그릇을 넓게 크게 가져보라고 ․ ․ ․ ! 근래에 와서 자꾸 잔소리처럼 하는데 스트레스 받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사모세미나” 그런 데를 몇 번 갔다 오더니 그런 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런 데에 강사로 나오는 분들은 주로 자타가 인정하는 큰 그릇된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그렇게 큰 교회를 하는 큰 그릇된 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그럴싸하게 체험을 전합니다. 들어보면 그들은 믿음의 그릇도 크고 비젼도 대단합니다. 전국적이고 세계적입니다. 그릇을 벌린 만큼 하나님은 채워주시고 쓰신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그러니 큰 그릇이 되려면 확신의 큰 믿음을 가지고 넓게 크게 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얘기에 감동을 받은 자들은 그들이 대단히 훌륭한 목회자로 보이는 반면 동네에서 보일까 말까하게 이름도 없이 목회하는 남편목사는 초라하고 형편없이 여겨질 뿐인 것입니다.
오늘날 보면 교회 안에는 큰 그릇이 되려는 자들뿐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나 목회자 후보생의 과정을 가는 신학생들 그리고 부교역자들의 관심도가 목회를 크게 성공한 큰 일군들이 되려하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로 그런 목회성공, 교회성장 세미나가 매체마다 큰 광고로 주류를 이루고 큰 그릇이 되어 보려는 비젼을 가진 자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입니다.
큰 것은 무엇이고, 작은 것은 어떤 것이고, 무엇이 소중하고, 그 가치차이는 어디에 있는지, 특히 하나님의 작은 일군, 큰 일군의 차이는 무엇인지,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 나라 된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깨닫고 가르쳐야 할 자들이 단순하고 어리석은 아이들처럼 무조건 큰 것 좋아하고 큰 그릇 큰 사람만 되겠다하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그것은 세상 나라 차원이고 하나님 나라 차원은 아닌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인 되신 분으로서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나 그분 마음대로 그릇의 분량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볼 때 다섯 달란트가 큰 일 이요 그것을 맡은 자는 큰 일군 된 자 같지만 주님은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나 다 지극히 작은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하나님 영역의 모두 작은 부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처럼 큰 그릇, 작은 그릇으로 구분하시고 차이를 두시지 않으십니다. 그릇에 대한 그 분의 말씀을 보면 집에는 많은 그릇이 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쓰여질 그릇으로 분명하게 구분시키십니다(딤후 2:20). 원래 우리는 모두다 진노의 그릇들이었다고 사도 바울은 증거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토기장이와 같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관용하시고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이 있는데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된 자로 세상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히 쓰시는 선한 그릇된 자들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 증거 하기를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 만드는 권이 없느냐”하면서 이 두 그릇된 비유로 하나는 모세와 하나는 바로 왕을 들어 증거 합니다(롬 9:17-24).
그런데 그릇된 우리가 다 큰 그릇된다 하고 또한 우리가 원하는 데로 그렇게 되는 것처럼 말한다면 맘대로 그릇을 만들고 부수는 토기장 같은 하나님의 주권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릇은 토기장이가 만든 대로 구분되는 것이며 또한 주인이 쓰는 데로 쓰여질 뿐입니다. 그릇자체는 자기 마음대로 그릇을 크게 넓게 좁게 할 수가 없고 자기 좋은 데로 써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릇된 자들은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힘쓰면 주인의 거룩하고 선한 일에 쓰임에 합당하게 된다고 했습니다(딤후 2:21). 그릇을 씻는 다는 것은 바로 그릇된 자의 안에 있는 옛 사람의 근성과 욕망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그릇의 겉만 씻는 바리새인들에게 사람들에게 인정받아 높아지려는 외식자로 책망하시면서 너희는 잔과 그릇의 겉만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면서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러면 겉도 깨끗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3:25-26).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속에 사람들이 인정하며 높여 주는 큰 그릇이 되겠다고 하는 욕망부터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고자 택하신 하나님 나라에 선한 일군다운 그릇으로서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바른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초창기에는 서로 크고자하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서로 길가다가도 다투기도 할 정도였습니다(막 9:34). 예수님은 그런 부족한 제자들에게 이방의 권세자나 높은데 있는 대인들은 사람을 임의로 주관하고 또 그들로부터 섬김을 받으려고 큰 자가 되려한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하나님 나라 된 너희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하시면서 예수님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오셨다고 하셨습니다(마 20:25-28).
이 상태로 서로 크고자 하는 인간적 중심을 가졌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아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랬던 욕망의 자신들이 죽고 성령의 소욕에 사로 잡혀서야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구별된 선한 그릇된 자들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를 것이니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고 구원을 이루는 일을 위하여 낮아지며 섬기는 삶을 살 때야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영광을 가지는 참으로 하나님 나라에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보이는 큰 것만 좋아하고 큰 사람, 큰 일군, 큰 그릇만 되겠다는 우리들의 기대와 비젼은 세상 적이고 인간적인 욕망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품고 성공해 보려고 하는 인간적인 욕망이 있는 이상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으로 세워가지 못합니다. 또한 그럴수록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과 작은 형제는 소홀히 하게 되며 무시하는 교만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큰 그릇된 자로 큰 교회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는 자들이나 또 그런 자들을 따라 자신도 그렇게 큰 그릇이 되겠다는 자들을 보면 작은 교회나 그런 교회 목회자들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우가 많이 보이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저들끼리 자랑은 하지만 주님 보시기에 벌거벗고 있는 교회요 소경되고 형편없는 교회일 뿐입니다. 세상 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하나님 이름으로 요란하고 혼합되게 펼쳐갈 뿐인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큰 그릇이든지 작은 그릇이든지 그릇은 작고 큰 것에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여 지고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존귀한 여부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큰 그릇이 되겠다는 내 의지와 욕망이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으로 채워진 그릇이 된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어디가나 어떤 형편에서나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자가 되었고 구원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 나라에 선한 일군으로 살아간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큰 일군이 아니라 참 되고 진실한 일군이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큰 그릇만 되겠다는 자들은 그 욕망을 쉽게 접을 수 없겠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전하고 싶은 것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도 충성되다 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진정 소중한 것은 작은 것에 있는 것이며 큰 그릇에 영광을 두고 인간적인 기준에서 소홀히 여기고 보잘것없게 보는 작은 것에서 참으로 크고 존귀한 것을 보며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크고자 하고 높아지려 하고 그렇게 사람들의 영광을 구하고자 함에는 낮아지고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사람다운 모습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의 증인 된 거룩하고 진실한 교회의 모습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며 벌거벗고도 수치를 모르는 외모만 가진 교회들로만 높아져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 이니라”고 말입니다(눅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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