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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9: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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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74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
로마서 9:13-18
서 론 : 이삭과 야곱의 선택에 관한 바울의 증거는 유대인들에게 몇 가지 의문을 던져 주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가 인간의 구원이 전혀 하나님의 예정된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인 자신들의 유익이 무엇이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선이나 악에 기준을 둔 것이 아니라면 결국 이같이 행하시는 하나님이야말로 불의 하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로 출애굽에 나타난 바로의 경우를 예로 들어 증거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대한 문제는 어느 시대에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었습니다. 지금도 이 문제 때문에 신학자들간의 열띤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진리를 바탕으로 성경을 교리적으로 정리한 것이 칼빈의 기독교 강요라고 하는 책이며 이 책에서 주장되고 있는 성경의 핵심적인 교리가 오늘날 전 세계 장로교회의 교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 교리가 곧 ‘칼빈주의’라고 통칭되고 있으며 이에 반하는 교리로써 ‘알미니안주의’라고 하는 인간자유 의지의 구원론이 등장한 것입니다.
(1)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확고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릴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전권 적인 주권이 작용한다고 해서 그리고 이 같은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이해와 의지를 무시한 것이라 하여 하나님께 불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는 하나님께 불의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그렇게 주장한다면 결국 하나님을 불의 하신 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전개하는 그의 논증에서 인간의 선택과 유기와 같은 하나님의 예정이나 선택 문제는 그 권한이 우리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전혀 하나님께만 속한 것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출애굽기 33:19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다”는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2) 바울은 구원받을 자의 선택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원하는 자란 말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에서 말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 중에는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6:44).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자유의지는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인간은 죄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이이며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완전히 두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라고 한 것은 인간의 노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도덕적인 선이나 죄를 벗어버리기 위한 고행이나 생명을 얻기 위한 선행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 같은 일은 자기가 행한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의로워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지 인간의 달음박질하는 애씀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유대인들이 얻기를 노력한 의에 대하여 이처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한 것입니다(롬10:3).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바른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의 예정이나 선택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에 속한 것임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2. 바로에게 보이신 경우
바울은 애굽 왕 바로의 경우를 예로 들어 인간구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에 대하여 논증했습니다. 그는 17철에서 출9:16에 나타난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1) 바로란 인물은 우연히 애굽에 태어나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왕의 지위에 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란 인물은 이미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서 유기 된 자로, 이스라엘의 구원과 하나님의 권능을 만방에 전파하게 하시려는 목적에서 애굽 왕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고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같은 일에는 이론이 제기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 일에 대하여 하나님과 쟁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같은 쟁론이 인간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바로를 이 일을 위하여 세웠다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어 애굽 땅에 재앙을 내리신 사건을 가리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시어 가나안 땅으로 들이시기 위하여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세에게 바로 왕 앞에서 이적을 행할 하나님의 권능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이 권능으로 바로 앞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단 한가지 재앙만으로도 바로 왕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보내시게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아니하셨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다 내리시기까지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심으로 그 재앙을 다 받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은 바로 왕에게 너무나 무자비한 일일 수 있습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잔인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계획하신 섭리를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 섭리란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땅에 전파되게 하려 하심”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3) 그때 나타내신 하나님의 능력은 그 이후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 하는 역사적 사건이 되었으며 지금도 우리는 그 당시의 사건을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나 애굽 사람들에게 아무런 효과를 줄 수 없었던 것처럼 그 이후의 세대에 가서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친히 목격하고 그 능력으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을 받은 이스라엘까지라도 그들의 마음이 강퍅함으로 광야에서 죽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 일이 또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도 해당되어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으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여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4) 바울은 결론적으로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바로의 강퍅함이 자신의 자유의지와 결단에 의한 것으로 자기 자신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느냐?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비밀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고유한 주권적 권능이신 것입니다.
결 론 :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권한을 우리 인간들은 침해할 수 없고 또 침해당하지도 아니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정하시되 하늘에 예비된 모든 신령한 축복을 주시기 위해 선택하셨다고 하는 이 한가지 사실만 가지고서도 한 평생 감격하고, 한 평생 감사하고, 한 평생 그 은혜를 찬미해도 부족하다는 이 사실을 명심하고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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