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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11: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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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85
자긍치 말아야 할 이방인
로마서 11:13-18
서 론 :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분에 대하여 이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갈2:8).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골육의 형제들인 유대인들에 대한 구원에 대하여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서 견딜 수 없이 마음에 분함을 안겨준 것은 그리스도안에 들어온 이방인들의 자긍이었습니다. 로마교회는 이방인 교회의 표본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불신적인 유대인들을 향하여 교만하고 자긍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구원의 뿌리를 밝히면서 자긍치 말아야 할 것을 경종 했습니다. 이 같은 경종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 교회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에게 호감을 갖게 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 할 수 있게 한 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이 버림당함으로써 세상이 화목된 복음
바울은 15절에서 참으로 의미 있는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복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의 구약적인 섭리의 구분을 의미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I)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있어서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적어도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된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모든 육적인 자손이 구원의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하셨습니다(롬9:6-8). 물론 이 약속의 자녀가 신약시대에 와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인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하고 있지만 복음이 이방에 전파되기 이전까지는 이 약속의 자녀가 이스라엘 중에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 그런데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저희를 버렸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구원의 은혜가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이 구약시대에 이미 그 수를 채우셨습니다. 이제는 그 구원의 은혜가 이방인에게 미쳐야 할 시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구원의 하나님의 섭리이심을 바울은 밝혔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만의 선택이나 구원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일차적인 구원은 이스라엘에게로 돌아갈 것이지만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참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정된 모든 백성들에게 적용하시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같은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복음으로 나타나는 사실에 대하여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구약을 읽을 때 모세의 얼굴에 씌운 수건을 벗기지 않은 채 읽었기 때문에 율법에 숨겨져 있는 복음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구원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3) 바울은 이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세상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가져 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기 전에는 모든 세상이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상과 하나님과의 화평을 가져온 것입니다(엡2:16-18.)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심으로 언제나 공평하시며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부여되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받아드림으로 소생하는 역사
바울은 이스라엘의 버림당함과 함께 그들이 다시 받아드려질 일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 드리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은 영원히 버려진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장차 회복될 일에 대하여 19절 이하에서 여러 가지로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증거한 바로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두 가지 모습으로 보여줄 것입니다. 하나는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의 구원”입니다. 바울은 모든 이스라엘이 버림당한 것 같은 이제도 “그런즉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롬 11:5). 바울의 뜨거운 염원은 바로 이 같은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롬11:14).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의 시기입니다. 바울은 이 시기가 반드시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이스라엘은 받아 드려질 때가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바울은 25절에서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 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 가 그리스도안에 들어와야 그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시기가 바로 예수님의 재림 때이며 이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마지막 추수의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슥12:10).
3. 자긍하지 말라
하나님의 구원은 이처럼 공평하십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방인중에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그의 택한 모든 백성들을 한 명도 상실함이 없이 모두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바울은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일과 그 순서에 있어서 이방인보다 이스라엘을 우위에 두었습니다.
(1)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적용한 이 말은 처음 익은 곡식가루의 떡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명령에 근거를 둔 것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제물을 드림으로 그들이 수확한 곡식 전체를 드린 것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신15:17-21). 제사하는 처음 곡식가루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처음 선택한 아브라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식이나 야곱 등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있어서 다분히 처음 익은 곡식 가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이방인에게 보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우위를 둘 수 있습니다.
(2) 이방인은 꺾여진 가지에 접부침을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꺾여졌다는 것은 그들의 불신을 말합니다. 사실인즉 유대인의 불신이 이방인에게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접부치기 위하여 그 가지를 꺾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방인들은 그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된 것입니다.
결 론 : 바울의 이 같은 경종은 바울이 자신의 골육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울분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생명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복될 날이 올 것임을 바라보고 이스라엘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아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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