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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공간의 치유력, 머무는 곳이 심신의 행복을 좌우한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경향신문 2013.7.6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에스더 M. 스턴버그 지음․서용조 옮김 | 더퀘스트 | 423쪽 | 1만7000원
미국의 환경심리학자 로저 울리히는 1971년 펜실베니아주 교외의 한 병원에서 담낭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1982년까지 10년가량 진행한 관찰 중 하나는 창가쪽 환자 46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23명의 침상에서는 창으로 작은 숲이 내다보였다. 나머지 23명의 창에는 벽돌담이 들어서 있었다. 울리히는 심장박동, 심전도, 혈압, 체온에다 투약량, 진통제 종류, 입원기간 같은 여러 건강 지표를 조사했다. 숲쪽 환자들이 평균 24시간 먼저 퇴원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들은 진통제도 덜 먹었다. 울리히는 1984년 ‘병실 창으로 자연풍경이 보일 때 환자들은 더 빨리 회복되었다’는 내용의 실험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29년 전 미국에서 나온 울리히의 논문은 신경과학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공간 치유 능력의 과학적 근거를 처음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자연과 함께할 때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자연 공간이 ‘치유’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요즘 일반인의 건강 상식으로 보면 별 것 아니다. 건강에 더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자연과 함께할 때 만족감을 만들어내는 세로토닌이 더 많이 분비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줄어든다는 과학 지식도 안다. 한국 병원 중에도 진단과 치료뿐만 아니라 치유에도 관심이 있는 병원들은 적당한 마당이 없으면, 옥상정원이라도 꾸며놓기 시작했다. 수천 년 전 사람들도 이런 사실을 직관했던 것 같다. 그리스 사람들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을 소나무숲 부근,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위에 세웠다.
저자는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일하는 정신건강 전문가다. 자연이나 건축 공간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특히 뇌와 면역체계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오래 연구한 학자다. 그는 2003년 ‘신경건축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학문을 태동시킨 주역이다. 신경건축학은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한다. 건축과 신과학 사이의 접점을 모색하는 학문이다. 다시 울리히의 창으로 숲이 보이는 병실로 가 보자. 병을 앓거나 치유되는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 물리적 환경은 기분을 바꿔놓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치유 속도를 바꿀 수 있다. 창밖 숲의 어떤 요소들이 환자를 치유할까.
숲 전체를 두고 살펴보자. 저자는 건물을 인식하는 뇌 부위가 따로 있다고 한다. 뇌졸중 부위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흔히 길을 잃어버린다. 건물을 랜드마크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부위는 ‘해마 주변 위치인지 영역’ 바로 밑에 자리잡고 있다. ‘해마 주변 위치인지 영역’은 풍경 즉 여러 물체가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인식하는 부위다. 이 부위는 풍경을 볼 때 활성화된다. 하나의 물체를 볼 때는 약하게 활성화되고, 사람 얼굴을 볼 때는 전혀 활성화되지 않는다.
활성화? 서던캘리포니아주립대 어빙 비더먼 교수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아름다운 경치나 노을, 숲 같은 풍경을 볼 때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경로의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저자는 이 발견을 이렇게 비유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은 뇌에 많은 양의 모르핀을 투여해주는 것과 같다.”
숲과 나무는 치유를 촉진하는 또 다른 무엇을 갖고 있다. 세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형태를 갖는 ‘프랙털 구조’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 카오스 이론가 에이리 골드버거는 “프랙털이 인간 정신에 본질적으로 이롭다”고 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인 숲은 비슷한 패턴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모양이다. 숲이나 나무만 그런 건 아니다. 저자는 “나무가 가지를 뻗는 것처럼 비슷한 패턴이 반복해 나타나면서 크기만 조금씩 작아지는 형상은 나무뿐 아니라 파도, 눈송이, 조개, 꽃 같은 자연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오 헨리가 프랙털 이론을 알았을 리 없지만, 그가 쓴 단편 ‘마지막 잎새’에는 사경을 헤매던 화가 존시가 나뭇잎 하나에 희망을 가졌던 사실을 통해 자연의 치유 능력을 증언한다. 인조물도 마찬가지다. 고딕 건축을 보면서 마음이 편해진다면, 아치나 첨탑이 크기만 달리하며 여러 형태를 반복하는 프랙털 구조 때문이다.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추상미술에서도 마음의 안정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색도 빼놓을 수 없다. 자연은 다양한 색조의 녹색에다 빨간색 장미, 주황색 양귀비, 파란색 바이올렛, 보라색 펜지, 노란색 수선화 등등 다채로운 색으로 넘쳐난다. 풍경에 색이 더해지면 더 많은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된다. 오랫동안 수술실 벽은 녹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피 같은 붉은색을 집중해서 들여다보는 외과의사들이 조금은 눈을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녹색과 붉은색은 서로가 가장 대조되는 색이다.
앞서 언급했던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서는 병자들의 치료를 돕기 위해 음악을 이용했다.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을 음악과 결합해 연구한 대니얼 레비틴은 <호모 무지쿠스> <뇌의 왈츠>로 한국에도 알려진 학자다. 저자는 레비틴의 연구도 소개한다. 그는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 뇌의 이미지를 포착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fMRI 기계의 컴퓨터는 혈관을 흐르는 적혈구의 자기장 변화를 추적한다. fMRI 스캔에서 특정 부위에 빛이 나면 그 부위에 더 많은 혈액이 흐른다는 뜻이다. 저자는 “음악을 들으면 더 많은 신경세포가 활성화해 혈액이 제공하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fMRI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도 덧붙였다. 영국 음반회사 EMI가 비틀스 음반 판매 수익금을 가지고 fMRI를 개발한 것이다. 로큰롤은 섹스, 마약과 함께 욕망을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신체의 천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의 분비 부위를 활성화한다.
오감 중에는 촉각도 있다. 엄마한테 마사지를 받은 아기들은 사람 손길을 아주 적게 받은 아이들에 비해 빨리 자랐다고 한다. 인간적인 접촉, 예를 들면 병실에서 가족과의 만남, 쓰다듬기, 손 만져주기 등도 훌륭한 치유법이다.
저자는 신경과학, 즉 뇌와 면역체계 사이의 소통 연구를 다루고 나서야 건축으로 넘어간다. 주 연구 대상은 병원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병원 건축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 하나 있다. 병실과 시체 검시실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병원 문은 곧 죽음의 문이기도 했다. 이런 문제다. 19세기 병원에서는 출산 중 걸리는 전염병인 산욕열이 만연했다. 그 주범이 산모의 아기를 받는 의사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의사들은 사체를 부검한 뒤 가운을 갈아입지도, 손을 씻지도, 장갑을 끼지도 않았다. 몇몇 의사들은 손을 씻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수년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럽 사정도 비슷했는데, 헝가리의 제멜바이스라는 의사는 묽은 염소수로 손을 씻어야 한다고 강조하다가 결국 해고당하고 말았다.
나이팅게일은 그저 착하고 친절한 간호사의 표상이 아니라 위생을 실천한 전문가다. 크림전쟁 같은 데서 부상당한 병사들은 배설물 위를 뒤척이며 자신의 상처가 곪아가는 것을 봐야 했다. 나이팅게일이 한 일은 깨끗한 헝겊으로 상처를 닦고 시트를 수시로 소독한 것이다. 그리고 침대 사이 간격을 충분히 넓혔고 햇빛과 신선한 공기가 병동으로 들어오게 했다. 나이팅게일이 지지한 런던 성 토머스 병원은 햇빛, 통풍, 환기를 강조한 병원이었다.
오늘날 병원의 시체 검시실이야 환자들과 격리됐지만, 황량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가 남아 있다. 시각·청각·촉각·후각의 치유 능력을 북돋우는 공간이나 건축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저자는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족·친구의 방문을 제한하고, 진단과 의료장비를 강조하면서 병원이 환자들의 치유보다 기계를 위한 장소로 전락한 문제도 지적한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소음이다. 무거운 의료기구들을 옮기는 소리는 권고 수준(35데시벨)을 훌쩍 뛰어넘는다. 게다가 초현대식 병원 건물의 내부 구조는 환자는 말할 것도 없고 병문안 가는 이들에게도 미로처럼 느껴진다. 환자는 낯선 병원 내부에서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는다.
저자는 병원이 스트레스 요인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신체활동을 위한 공간과 아름다운 환경을 제공해 정서 및 정신건강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첫 장부터 주요하게 다루는 울리히는 치유 속도를 단축하는 의료시설 설계와 디자인을 실제 병원 건축에 적용하는 데 헌신했다. 그가 말하는 병원 개념은 정원, 자연풍경, 예술작품,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 자연의 소리,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색에다 가족이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공간을 더하는 것이다. 미국 코네티컷 주 뉴케이넌의 웨이버니 요양원은 치매 환자를 위해 설계한 곳이다. 각 방에는 침대를 비스듬히 놓았다. 시선은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는 창으로 향한다. 시선은 욕실 변기쪽으로도 가게 했다. 치매 환자들이 욕실이 어디인지 기억할 필요가 없이 찾아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신경건축학이 강조하는 오감이 작동하는 치유 공간은 환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녹지 근처의 아파트 주민들이 황량한 지역의 아파트 주민보다 주의력 테스트에서 더 좋은 성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저자는 뉴욕 사례를 소개한다. 뉴욕 하면 떠오른 것은 소음과 많은 사람, 교통 정체 등이다. 감각의 과부하가 걸린 이 도시는 그러나 2007년 미국에서 가장 건강한 지역으로 조사됐다. 비만 비율이 가장 낮고 미국 평균보다 9개월을 더 살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 결과였다. 저자의 말대로, 뉴욕이 치유의 장소가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질 높은 의료시설 같은 요인도 있지만, 저자가 치유의 요소로 꼽은 것은 걷기, 공원 같은 것들이다. 뉴욕은 1980년대부터 마약 소굴이던 공원에서 마약업자들을 소탕하고, 쓰레기와 낙서를 없애갔다. 매우 좁지만 흥미로운 볼거리로 가득찬 맨해튼의 도시 풍경도 치유를 촉진하는 요소다. 애틀랜틱 스테이션도 대안 건축물로 뽑았다. 1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과 아파트에 4만명이 일할 수 있는 업무시설을 갖춘 이곳은 전체 부지의 10%가량인 약 4만5000㎡가 공원·녹지·자전거도로·인도다. 모든 곳을 걸어갈 수 있는 이곳은 차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미국에서 예외적이고 특수한 공간이다. 사람이 걷는 속도에 맞춘 도시는 신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공간, 장소가 치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답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를 둘러싼 공간에서 우리는 그 공간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형성하기도 한다. 우리는 환경을 집어삼키고 파괴하며 결과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는 장소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시간을 내서 나뭇잎 위에서 반짝이는 햇빛을 보고 자연의 소리와 ‘정적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신만의 치유장소를 찾으라고도 한다. 그것은 고립과 회피, 외면이 아니다. 삶의 공간마저 평수나 시세를 따지며 교환 가치나 투자 대상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나는 어떤 공간에서 가장 행복한가”도 자문할 일이다.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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