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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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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 21장(17) 진리는 밥에서 나온다 (요한복음 21장 13-14절)
한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있었다. 그는 중학교에 톱(top)으로 들어왔는데 몇 개월 만에 심하게 망가졌다. 성적도 떨어졌지만 성격도 떨어졌다. 반항하고, 거칠게 되고, 수업도 거부하고, 나중에는 친구들도 그를 따돌렸다.
선생님은 이유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의 부모가 별거 중이었다. 환경조사서를 보니까 부모가 모두 교회를 다녔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그 부모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마음에 감동이 생겨 양쪽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 성적문제로 의논하고 싶다고 해서 똑같은 시간에 학교로 오게 했다.
그날 학교에 와 보니 배우자가 있자 둘 다 언짢은 기색이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아이 문제는 두 분의 도움이 다 필요해 함께 모셨습니다.” 그리고 “이거 보세요.”하고 그 학생의 영어 시험 답안지를 보여줬다. 답안지에는 한 문제도 답을 적지 않고 낙서만 했는데 낙서의 마지막 부분에 선생님이 빨간 줄을 쳐놓은 이런 낙서가 있었다. “엄마! 아빠! 이혼하면 난 누구와 살아! 난 둘 다 필요해요! 엄마 아빠는 정말 우리를 사랑해?”
그 글을 보고 두 사람 모두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이 말했다. “두 분 모두 교회 다니죠? 제가 기도할게요.” 선생님이 기도하자 곧 교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그 가정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부모의 상처는 자녀의 마음에 큰 상처로 증폭된다. 부모의 정당하지 못한 감정과 태도, 정당하지 못한 말과 매는 자녀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그 기억과 상처가 오래 남아 자녀의 성격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부모는 자녀를 집에서 멍들게 해 세상으로 보내지 말고 세상에서 멍든 자녀를 집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지금은 사회가 병들어 어디에 가도 피멍이 들기 딱 좋은 상황이다. 사랑이 식어지고 있다. 이때 부모의 가장 큰 사명은 자녀를 사랑이 많은 자녀로 길러 세상으로 내보내 맑은 물 샘 근원이 되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본문은 사랑의 중요성을 잘 알려준다.
< 진리는 밥에서 나온다 >
본문 15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된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주님은 믿음을 배반한 제자들에게 분명히 무슨 말씀을 하고 싶었지만 밥 먹기 전에 하지 않고 먼저 따뜻한 사랑의 식탁을 만들어 밥을 잘 먹인 후에 하셨다.
성경을 보면 주님은 밥 먹이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벳새다 광야에서도 말씀만 주지 않고 배고픈 군중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도 채워주셨다. 주기도문을 보면 주님은 가장 먼저 찬양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 다음으로 구하는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제일 먼저 무엇을 구하게 하셨는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그 다음으로 무엇을 구하게 하셨는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주님은 ‘죄 사함을 구하는 기도’보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먼저 하게 하셨다. 그처럼 ‘밥 먹이는 것’을 귀하게 보셨다.
밥을 나눠주는 것은 무엇보다 귀한 것이다. 사람들이 “진지 드세요”라고 할 때 ‘진지’란 ‘어른들이 드시는 밥’을 높이는 말인데, 그 말은 ‘참된 지혜’를 뜻하는 ‘진지(眞智)’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아마 우리 조상들은 “진리는 밥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요새 많은 싸움은 진리 싸움보다는 대개 밥그릇 싸움이다. 반면에 밥을 나누려고 하면 지혜도 생기고, 외적인 평화와 내적인 평안도 주어진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떡이니”라고 하셨다(요 6:38). 그 말씀에서 떡은 ‘가끔 먹는 떡’보다는 ‘매일 먹는 밥’으로 표현해야 더 정확하다. 그때 주님이 좀더 고상하게 “나는 생명의 왕이니!”라고 하면 좋았을 텐데 “나는 생명의 밥이니!”라고 하시자 그 얘기를 듣고 사람들은 “너무 어렵네. 별 것 없네. 이상하네.”하고 주님 곁을 떠났다(요 6:60,66).
예수님이 “나는 생명의 밥이니”라고 하신 이유는 우리의 밥이 되어주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밥을 나눠주는 삶에 진리가 있고 축복이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복이 없는 사람은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사람이다. 두 번째로 복이 없는 사람은 내 밥그릇만 챙기는 사람이다. 진짜 복된 사람은 밥을 나눠주는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복된 사람은 자기가 밥이 되어주고, ‘거룩한 일을 위해 따돌림 당하는 사람’이다.
축복을 원하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밥을 나눠주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라. 선교란 ‘주님의 사랑과 밥을 나눠주는 것’이다. 진실한 신앙은 선교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선교사들은 나를 대신해 전방에 나가 영적 전쟁을 하고 있다. 상상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다. 그 짐을 함께 지지 않으면 누가 지겠는가? 한쪽에서는 목숨 걸고 싸우는데 한쪽에서는 안락의자에서 쉰다면 큰 죄일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문제이다. 혼자 살겠다면 영혼도 죽고, 축복도 죽고, 다 죽지만 자신을 태우고 헌신하면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다 산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가슴에 빨대를 끼고 축복의 꿀을 빨아먹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열어주려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총동원되셨고, 또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까지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과 선교사들의 수고와 땀방울과 핏방울이 있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며 십자가의 부담을 기꺼이 지는 것까지 나가야 바른 신앙생활이다. 삶의 최대 관심은 ‘따뜻한 사랑과 밥을 나눠주는 것’에 있어야 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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