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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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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 21장(18) 은혜의 기억을 되살리라 (요한복음 21장 13-14절)
조반 먹은 후에, 해변이 아침햇살로 반짝거리고 제자들이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자 예수님은 드디어 제자 중에 베드로를 보며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 질문을 듣고 베드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주님! 저는 정말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이 이렇게 비참한데 잔인하게도 왜 그런 질문을 해서 아픈 상처에 식초를 붓나요?”
그것은 베드로의 생각이다. 주님은 과거의 아픔을 건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열심을 불러일으키려 하셨다. 그런 주님의 의도는 그를 부른 호칭에서부터 알 수 있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를 때 베드로의 옛 이름인 시몬이라는 이름을 부르셨을까? 그 옛 이름이 더 따뜻하고 친밀감 넘치는 표현이기 때문이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과거의 은혜 받은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예수님은 갈대 시몬에게 찾아오셔서 “너는 갈대가 아니라 반석이 될 거야!”라는 의미로 베드로란 이름을 붙여주셨다. 그리고 12제자 중 수제자로 삼으시고 수많은 은혜와 축복을 주셨다. 그 기억을 되살리기 원하셨다. 아마 베드로는 그 옛 이름을 들으며 과거의 은혜 받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을 것이다. 주님은 호칭 하나까지 베드로의 마음을 일으키려고 신경 쓰셨다.
< 첫 사랑의 열정을 회복하라 >
예수님이 베드로를 시몬이라 부르고 첫 번째 하신 질문이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이었다. 다른 질문도 많았을 것이다. “잘 지냈느냐? 지금 힘들지 않으냐? 정말 제자의 길을 갈 수 있겠느냐?” 그런데 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을까? 그 말은 결국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본문 15절에서 ‘이 사람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많다. 영어로는 ‘these’라고 되어 있으니까 ‘이 사람들, 이것들’이라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쉽게 말하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느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하나님이 지금도 하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첫 사랑의 뜨거운 마음과 열정을 회복하는 문제이다. 사랑만 있으면 용기도 생기고, 십자가도 지게 되고, 고난도 이길 수 있고, 인간사의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특별히 예수님이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하신 것은 외모주의, 외형주의를 경계한 말이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외모를 따져 ‘몸짱, 얼짱’이란 말도 생겼다. 뭘 하든지 얼굴부터 잘생겨야 한다.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가수를 해도 얼굴이 잘 생겨야 하고, 심지어는 회사원까지 얼굴 보고 뽑는다.
얼굴이 예쁘면 죄까지 용서된다. 일전에 한 20대 여자가 강도짓을 하다가 지명수배 되었다. 그런데 강도가 얼굴이 너무 예뻤다. 그때 강도 잡으라고 광고하니까 강도 잡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고 강도의 얼굴에만 관심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예쁜 여자가 어떻게 강도야? 잘못 짚었어!”라고 했다. 그래서 ‘강짱’이란 말도 생겼다.
신앙생활에도 그런 외형주의가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영적 원리는 외면하고 영적 은사와 축복에는 관심이 많다. 교회를 선택할 때도 외모를 보고 크고 화려하고 인테리어도 잘해야 선택한다. 눈에 보이는 표적이 있다면 우르르 몰린다. 표적신앙은 부적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다. 요새는 부적도 인쇄소에서 대량으로 만드는데 그 종이 한 장이 팔자를 고친다고 믿는 그런 믿음이 기독교에도 발견된다.
믿음이란 영혼이 하나님의 영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창한 제단이나 장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겉모습보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다. 화려한 기도보다 감사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고, 어떤 의식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축복을 원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 가장 좋아하는 것보다 더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인간적 계산도 버려야 한다. 계산하는 사랑은 변질된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받기보다 드리기를 더 생각한다. 많이 드리고도 더 드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주님이 그런 사랑을 원하는 이유는 내 것을 다 뺏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 더 주기 위해서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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