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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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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2000년대 설교 |
2장 1절-10절.(참고: 히 11장 23절-28절)
출 2장 1절-10절: 레위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사이에 두고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
히 11장 23절-29절: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한 것이며.
(히브리서 본문만으로 설교함)
우리가 교회적으로 일을 놓고 볼 때에 일을 하는 활동 사역 어떤 사업을 이루는 거, 교회사업, 사람 많이 모으고 예배당 건물 크게 짓고 하는 이런 사업이 중요하고 급하다면 6일 동안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그 분이 우리 인간에게 그런 일을 맡기는 것보다 하나님 당신이 만능의 능력으로 일을 해치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빠르지요.
그런데 기독교회라고 하는 것은 그 일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목적이냐? 사람 만들어지는 목적. 사람 완성. 무슨 완성? 인격의 완성.
일반적으로 예수를 안 믿어도 사람을 고등교육을 가르쳐서 세상에서 지혜지식자로 만드는 것이, 훌륭한 인물로 만드는 것이 공장에 나가서 일하는 것보다 참 어렵습니다. 일 중에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 사람 만들어지는 이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일 중에 이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이요. 세상에서 뭐가 어렵다 해도 그렇다 그 말이요.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을 크게 해서 성공적으로 마치는 그것과, 사람이 인격의 완성으로 만들어지는 그것과 어느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지요? 사람 만들어지는 거.
만들어지되 일반적 완성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닮아지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니 하나님 당신은 만능의 능력자인데, 못 하실 일이 없는데, 하나님 당신이 만능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 인간의 뜻과 의사를 무시하고 하나님 당신의 뜻대로 우리를 인격자로 완성을 시키는 일을 한다면 쉽겠는데 문제는 우리 인간을 도덕성자로 자유자로 인격자로 지었고, 이런 존재에게는 심판이 있기 때문에 이런 존재는 깨달아지면서 소원이 되면서 자원이 되면서 순종을 해서 만들어지도록 하려니까 하나님도 그렇게 어렵다 그 말이요.
하나님 당신의 힘으로 후다닥 해치우면 쉽겠는데 인간에겐 그렇지를 않단 말이요. 몽둥이로 두들겨 패거나 코를 꿰어서 끌고 가서 일을 하게 해서는 사람이 안 돼. 잠언서에 있지요? 미련한 놈은 절구통에 집어넣어가지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사람이 만들어지기가 어렵다 그 말이요.
무쇠 덩어리를 자꾸 두들겨 싸면 더 단단해지지. 이처럼 사람을 뜨거운 열 속에 집어넣어가지고 무쇠를 녹이듯이 사람을 두들겨 패면 그 사람의 마음이 돌아섭니까? 그렇지 않지요. 우리가 쇠 같으면 그렇게라도 하겠는데 인간은 그렇게는 안 돼.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깨닫게 해서 인간 완성 인격자로, 지식이 있는 자로, 지혜가 있는 자로, 슬기가 있는 자로, 총명한 자로, 영리한 자로, 거룩한 자로 완성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인간이 임시적인 현세적인 세상 것을 붙잡고 아옹다옹 싸우는 그게 아니고 죽음의 사선을 넘어 하나님의 그 세계를 바라보도록 하려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오늘도 해를 떴다가 지게 하고, 달이 떴다가 지게 하고, 세상의 모든 만사 만물을 나 하나 바로 만들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 그게 아니고 나를 깨닫도록 하려니까 그렇게 어렵다 그 말이요.
여러분들, 자신이 사람이 다 됐다고 보아집니까?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닮아야 할 텐데 어떤 때는 내 성질이 욱하고 일어나지요. 독사 같은 성질, 욕심 부리는 성질, 고약한 성질 마음이 내 속에서 막 일어난단 말이요.
인간 모두가 자기 성질 그대로 살 것 같으면 인간은 다 죽지 못 살 거라. 그렇지 않겠어? 그렇게 되면 힘없고 약한 사람은 이 세상에 못 살 거야.
세상에서 제일 최고의 강자, 권투계의 강자가 누구지? 알리요? 알리인지 모를리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제 하기 좋다고 이런 사람이 보이는 사람마다 죄다 제 마음대로 두들겨 패면 모르긴 해도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사람이 살짝만 건드리기만 해도 일어나지 못할 거야.
사람이 누구든지 그래요. 자기를 완성시키는 이것이 참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완성을 시키는 것이냐?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만든 그 인간을 속성적으로 인격적으로 자라게 하려니까 하나님이 자꾸 당신의 성품을 입히는 거지요. 인간은 그렇게 돼지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셨단 말이요. 아무렴 인간 속을 만드신 그 분이 어련히 알아서 이 말씀을 주었겠느냐 그 말이요.
이 세상의 어떤 인간이 인간을 만들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할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각자를 하나님처럼 완성시키는, 인격자로 완성시키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알겠어요? 농사짓고 공장에서 일하고 정치하고 장사하는 이런 딴 일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지.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이 중요하냐, 나를 바로 만드는 그 일이 중요하냐? 하나님은 어떤 것으로 보지요? 그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은 어떤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까? 밥 먹고 배부르면 잠자고 똥 싸는 거? 그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까? 인간이 그렇게 사는 것은 짐승에 불과하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살면 안 되지요. 그렇게 살면 사실 또 그 자는 자꾸 뒤떨어져.
여러분들, ‘일이 완성이 되었다. 그러나 자기는 안 만들어졌다’ 하는 그게 하나 있고, ‘자기는 완성이 됐다. 그러나 일은 미완성이다’ 이게 하나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어느 것을 알아주실까요? 후자가 어떤 거지요? 그럼 여러분들은 여기서 누구를 알아줍니까? 일 완성시킨 그런 사람을 알아주지? 사람의 인격의 완성, 인격의 성장성적인 면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보는 게 거꾸로 된 거지. 잘못 됐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앞에, 하나님 기준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이렇게 들어가야지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 제 보기에, 안 믿는 사람들 보기에’ 기준이 그렇게 되면 안 되지요. 이러려면 뭐 하러 예수 믿어. 뭐 하러 교회 다녀. 예수 믿고 두들겨 맞을 바에야 예수 안 믿고 얻어맞는 게 낮지. 안 그래? 제 마음대로 하고 얻어맞는 게 낮지 뭘.
우리가 또 하나 빠지기 쉬운 골짜기가 있습니다. 뭔가 하니 설교를 할 때에 재미있는 말 그런 게 있어요. 거기에서 자칫 잘못하면 무엇을 잃어버리는가 하니 방향감각이 상실이 되기 쉽습니다. 이게 빠지기 쉬운 골짜기란 말이요. 교훈을 받는 여러분들이 그 면에서 방향을 바로 보아야 되겠는데, 목적을 바로 보고 가야 되겠는데 그 면에 빠져버린다. 함정에 빠진단 말이요.
일반적으로 열차 간이나 버스 탈 때에 소매치기들이 어디서 설치지요? 어떻게 해서 싹 빼가지요? 어떻게 하지요? 나의 시선을 다른 데로 가게 해놓고 훌쳐간단 말이요. 그런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 그렇지 않겠어? 그런 거와 같다.
그게 아주 교묘한 방법이거든. 교회에서 말씀을 들을 때 딴 데 신경을 쓰게 해가지고 내 마음을 도적질해 가는 거. 유인작전. 그러니까 내 마음을 도적질해 가려면, 목사 자기가 원하는 대로 교인이 신경을 쓰게 하려면 합법화를 시켜야지. 나쁘게 말해서 믿는 사람을 속여먹으려면 성경을 들고 와서 속여먹는 게 쉽습니까, 불교의 경전을 들고 와서 속여먹는 게 쉽습니까? 어느 거지요? 성경. 그렇지요.
‘우리가 죽으면 천국 간다’ 하는 이거는 예수님이 도맡아 있는 거고, 그러니 우리가 일보다도 더 중요시해야 할 것은 자기 자체 완성. 인격의 완성. 그러니까 사람의 인격이 완성되는 그 면을 중요시해야 된다. 중요성을 가져야 된다.
왜 그 면에 중요성을 가져야 되느냐? 우리에게 영원적 궁극적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이요. 우리에게 죽음의 선을 넘어 영원적 궁극적 최종적 결과가 있기 때문에 교회의 교훈을 아주 중요시 여겨야 된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 예수 믿으면 병 낫는다’ 이렇게 해놓으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속에 깨달음의 인격은 자라지를 못 해. 인격이 못 자라. 인격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져야 자라는 거다. 그래야 영리한 자가 되고 지혜로운 자가 되고.
‘예수 믿고 병 낫고 부자 된다’ 그 소리 아무나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아무나 할 수 있지.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람을 깨닫게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 믿고 부자 된다’ 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을 목사가 하고 있어. 그런 말은 목사만 하나? 나도 할 줄 알고, 다 할 줄 알지. 그런 교훈에서는 사람의 인격이 완성이 되지를 않습니다. 알겠어요? 이런 교훈을 들으면 자기의 궁극적 최종적 결과적 목적이 어떻게 되겠느냐? 예수 믿는다고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그 꼴이 뭐가 되겠느냐 그 말이지. 미련한 자가 돼가지고, 둔탁한 자가 돼가지고, 둔팅이가 돼가지고 이거 어디다 쓰겠느냐 그 말이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일은 해야지요. 그런데 어떤 일이든 일을 볼 때에, 또는 나에게 일을 맡길 때에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니 자기의 구원거리로 봐라. 자기 만들어지는 방편으로 보아라. 알겠어요?
‘내가 이 일을 해야 돈을 벌어서 배부르게 잘 먹고 살지’ 하는 그 생각은 인격이 없어. ‘이 일하는 방편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끼리 연관 관계성을 바로 가지고, 이 일을 하면서 예수님을 더 잘 믿어나가야지’ 하는 그런 정신으로 하는 것은 바른 정신이요. 그러니까 일 속에서 자기의 구원거리를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나가는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말이요. 그게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일을 하면서 가져야 할 자세라 그 말이요. 믿는 사람의 자세라.
자, 그러면 믿는 사람은 그런 자세로 일을 해야 하는 건데, 안 믿는 사람은 어떻지요? ‘이 일을 해가지고 내가 돈을 얼마 벌어야 되겠다. 돈 많이 벌어서 집 사고 땅 사고 자동차를 사야겠다’ 그 생각을 하지요? 그러면 믿는 사람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해 놓으면 믿는 정신이 어디 있지? 그건 믿는 정신이 없어. 안 믿는 사람과 똑같단 말이요. 이름표만 ‘믿는 사람이다’ 하고 달아놓았다 뿐이지 안 믿는 사람의 속과 똑같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앞에 얻어터지기 일쑤지. 우리는 만들어지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
그럼 일을 하고 난 뒤에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겠느냐? 내가 일을 놓고 일을 하기 싫어서 대립적으로 했는지, 또 사람에게 대립적으로 했는지? 하기는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서 하는 마음은 없었는지, 아니면 자기가 엄연히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기 싫어서 안 하고 있다가 명령을 듣고서야 그 일을 했는지? 아니면 그 일은 어차피 내가 할 일이요, 또는 내가 몰랐지만 시켜서 알게 되니까 ‘예’ 하고 호응적으로 그 일을 했는지? 더 나아가서 자원적으로 그 일을 했는지? 어쨌든 일을 하고 난 뒤에 하나님 앞에 일을 한 자기를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어떤 일거리를 주었다 그랬을 때에 내 속에서 하기 싫다고 대립적으로 나가기가 쉽다 그 말이요. 그렇게 되면 언제 깨달아지고 언제 사람이 만들어지지? 언제 기술이 좋아지고.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희망이 없어.
이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뭐 하나 시켜놓으면 성질을 막 부리고, 툴툴거리고, 안 하고 도망가고 하는 이런 사람 어디 가서 칭찬 받고 사랑 받겠어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또 제 기분 맞춰주는 데만 자꾸 가게 돼요. 이런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속아 넘어가게 된다. 사기 당하게 된다. 그 사람은 평생 헛 살게 된다. 그라면 한 일이 뭐요? 밥만 먹고 똥만 쌓지. 쌀값만 올려놓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만 보면 그런 사람이 있지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요? ‘아이고, 저 사람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도 있고, ‘이 사람은 있어야 돼. 없으면 안 된다.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도 있다. 여러분들은 꼭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합니까, 있으나 마나 그래야 됩니까? ‘아이고,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입니까?
인간은 병이 안 든 이상, 정신이 말짱한 이상 반드시 다른 인간에게 유익을 주도록 되어 있어요. 일이 없다고 놀면 어떻게 되지요?
나이 많은 사람 중에는 칭찬 받는 사람이 있어요. 나이 많아서 퇴직을 해가지고 힘은 없고 하니 비 들고 동네 슬슬 다니며 청소하는 그런 사람이 뉴스거리로 나오지요? ‘몇 십 년 동안을 보상 없이 한다.’ 그 얼마나 듣기 좋아요. 보상을 안 받았다고 하는 그게 문제가 아니고 그 인간은 사회에 유익이 되는 것이다 그 말이요.
나이가 많아도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는 젊은데 ‘어디 가서 도둑질을 할까? 술 먹는 사람 주머니나 털까?’ 그런 궁리하다 철장 속에 들어가는 사람 봤지요? 참 그거. 그 왜 그럴까? 인격이 자라지를 못했어. 깨닫지를 못했어.
모세가 깨닫고 나니 몇 년이 지났는가 하니 40년이 지났나? 날 때부터 계산한다면 80년이지요. 하나님 앞에 바로 깨달을 때까지 80년이 지났어. 거기에 비해 우리를 보면 우리는 갑갑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모세가 깨닫는데 80년이 자났다고 한다면, 그러면 80년 된 그 모세를 우리 앞에 놓고 모세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우리는 그 자리에 앉아서 80년의 세월을 단축시킬 수가 있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게 성경이란 말이요.
처음에는 이스라엘 해방을 누가 하려고 그랬지요? 이스라엘 해방은 원래 누가 하는 거지요? 하나님이 하는 거지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거,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거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일을 모세 자기가 하려고 그랬거든.
모세의 주먹이 얼마나 큰지 몰라도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하는 사역장에 나가보니 애굽의 십장들이 회초리를 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을 못한다고 빨리 하라고 내려치거든. 이걸 목격한 모세가 자기 힘을 가지고 애굽인을 한 방 쳤는데 머리가 그냥 뒤로 휙 돌아가 버렸지. 죽었어. 그래서 누가 볼까 싶어서 얼른 모래밭에 묻었지.
그래, 이제 나중에 그 일로 인해서 미디안으로 도망을 갔지요? 미디안에 가가지고 하나님께서 불렀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애굽으로 가서 너희 백성을 인도해 내라’ 그러니까 ‘예’ 하며 어깨를 의싸 의쌰 하면서 기꺼이 간다고 그랬어요, 안 간다고 그랬어요. 안 간다고 그랬거든. 말주변도 없고 가면 잡힐 것 같거든.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습니다’ 한 거지요.
신학교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 돼야지’ 하고 들어갑니까? ‘나는 신학교 안 들어가려고 그랬는데 사람 만들어 주려고 하나님께서 들어가게 하셨다’ 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어떤 사람이 많지요?
거의가 보면 하나님께서 종이 되란다고 그래서 신학교 들어가고, ‘빨리 졸업해서 안수 받아가지고 어디 가서 개척교회 해서 빨리 사람을 끌어 모아서 세계 제일의 부흥강사, 이름 날리는 목사가 돼야지’ 해서 신학교에 들어가지요. 나는 그런 마음으로 들어간 건 아니에요.
내가 신학교 졸업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날 보고 “어디 가서 빨리 개척교회 해가지고 목사안수 받아야지. 목사는 마지막에 축도하니까 빨리 안수 받아서 ‘찌어다’ 해야지‘” 거의가 그럽디다. 저는 그런 생각 없었어요.
모세가 처음에는 ‘내가 합니다’ 이렇게 했다가 실패를 했지. 실패하고 도망을 가가지고 하나님이 부르니까 ‘아, 이제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중요한 게 뭔가 하니 ‘내가 누구에게 등용되느냐’ 이게 문제란 말이요. 이게 참 큽니다. 누구에게 등용이 되느냐? 하나님에게 등용이 되느냐, 아니면 악령에게 사단 마귀에게 등용이 되느냐?
교회에서 충성봉사를 해도 어느 교회에 등용이 되느냐? 세상을 가르쳐주는 그런 교회에 등용이 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교회에 등용이 되느냐? 이게 큰 문제란 말이요.
아무 교회에 가나 교회는 다 똑같다? 천만에요. 병원도 다 똑같은 병원이니까 아무 병원이나 가면 되는 겁니까? 전문적인 병원으로 찾아가야지요. 그렇지 않아요?
자, 그러면 이스라엘의 해방은 누구 방법대로 해야지요? 하나님 방법대로. 하나님 방법대로 해야 되는 겁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방법대로 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갔단 말이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러 왔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야, 이 꼬불꼬불한 지팡이를 던져라’ 해서 던지니까 뭐가 되지요? 사람 무는 뱀이 됐지요. 능구렁이가 됐는지 독사가 됐는지? 그러니까 애굽의 술객들이 던진 지팡이도 뱀이 됐어. 그런데 모세가 던진 지팡이의 그 뱀이 그걸 다 잡아먹었지. 그러니까 뱀이 뱀을 잡아먹은 걸 보니까 모세가 던진 뱀이 아마 능구렁이 같아. 허허허. 능구렁이가 뱀을 잡아 먹는다면서? 몰라?
능구렁이인지 독사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종이라 그러면서 지팡이를 던져가지고 뱀을 만들어. 이게 신기해요, 신기 안 해요? 신기하지요?
여러분들, 무당이나 차력사들을 보면 작두 위로 걸어간다든지 칼을 손아귀에 넣고 꼭꼭 묵어가지고 싹 잡아 빼면 손바닥이 죄다 잘려서 피가 날 것 같은데 피도 안 나지. 이게 신기해요, 신기 안 해요? 자기가 못하는 걸 하니까 신기하지. 여러분들도 한 번 해 봐요. 큰일 나지. 머리를 가지고 큰 돌을 깨는 거 보면 신기하지요? 그런데 난 아직 그건 못 봤는데 지팡이를 탁 던지면 뱀이 돼서 기어 다니는 거 봤어요? 못 봤지?
그런데 난 그게 참 신기해. 왜 이렇게 하니까 비둘기가 착착 나오더라고. 설령 비둘기가 마술사의 주머니에 있었더라도 끄집어내는 속도가 있을 거고, 이 옷 술 안에 집어넣더라도 비둘기가 푸드득 거릴 텐데 이렇게 해가지고 여러 마리의 비둘기를 끄집어내는 것을 보면 ‘저게 진짜 비둘기냐, 요술로 만들어진 비둘기냐, 내 눈에 날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보이게 하는 건가?’ 진짜 비둘기요?
이런 게 일반적으로 보면 신기하지요. 신기해요. 그러나 그거는 유치해요.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가지고 뱀을 척 만드니까 안 믿는 사람들 보기엔 안 유치하지만 믿는 사람이 보기엔 그 얼마나 유치하냔 말이요. 지팡이 던져서 뱀이 된 후에 모세가 ‘너 이래도 안 믿겠니? 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이다. 이래도 안 믿겠어?’ 하고 있으니 얼마나 유치하냔 말이요. 유치한 거야.
그래, 그 방법이 유치하게 보여도, 또 일이 서툴러도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일에 있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확실히 믿어지면 순종을 해야 한다. 알겠어요? 얼마나 안 믿었으면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던져가지고 뱀을 만드는 그런 유치한 일을 하겠느냐 그 말이요. 그렇지 않아요? 얼마나 안 믿어졌으면.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느냐 그 말이요.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그 방법밖에는 없느냐?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요.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전처럼 인간 모세의 방법대로 할 것 같으면 눈앞의 바로 왕을 해치우면 될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이제 모세는 그렇게 하지를 않고 지팡이를 던져서 뱀을 만들어 가지고 ‘나를 하나님께서 보내셨다. 내 백성을 보내라’ 한단 말이요.
하나님 방법대로 하니까 몇 가지까지 올라갔지요? 열 가지. 처음이 뭐지요? 열 가지라 그럴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열 가지지? 물이 피가 되는 거? 그게 첫 번째냐? 그래, 그 앞에는 뭐요? 뱀이야? 그러면 그거 다 합치면 몇 가지야? 한 열두 가지 이상 될 거예요.
그래, 하나님께서 시키는 방법대로 다섯 가지 여섯 가지 자꾸 했는데 그 방법도 유치하지. 지팡이를 날리니 이가 되고 파리가 되고 황충이도 되고. 그렇게 해도 이스라엘 해방이 안 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안 되는 그걸 자꾸 하라고 하시니 이 모세가 얼마나 성질이 날까? 그럼에도 모세가 계속 하나님이 명령대로 하는 걸 보면 모세의 성질도 어지간히 죽었지.
우리 같으면 어떨까? 한두 가지 시켜서 했는데도 안 되면 아마 금방 툴툴거릴 거야. 목사님이 몇 번만 시켜놓으면 안 나와 버릴 걸?
‘파리를 만들어봐라. 개구리를 만들어봐라. 이를 만들어봐라.’ 하나님 방법대로 계속 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이 안 되는 것 같아. 그래, 일이 안 되어도, 방법 면에서 틀린 것 같아도 해방은 누가 시키마? 하나님 내가 시키마. 그러니 너는 뭐만 하라? 순종만 하라. 이렇게 되어나가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되는 방법이라 그 말이요.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일이 안 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참 많아요. 예수 믿으면 다 잘된다고 그러면 안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걸? 예수 믿으면 다 부자 되고 건강하고 돈 많고 다 장 자리에 앉고 그런다면 안 믿을 사람이 누가 있어? 그런데 노력 것 믿어도, 충성스럽게 믿어도 가난한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지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믿음을 그런 데다 갖다 붙이면 안 되지요.
예수 믿는 효력이 뭐냐? 하나님 성품이 닮아지는 것, 하나님처럼 지혜지식자가 되는 거, 하나님처럼 기능자가 되고 지능자가 되는 것. 그렇게 되면 성경은 어떻게 된다고 하느냐? 이 짧디 짧은 세상에서가 아니라 죽음의 선을 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실 때에 내 마음껏 쓸 수 있는, 활용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그 실력을 내가 얻게 되는 거지요. 천국에는 나에게 줄 것이 종류 종별적으로 얼마나 많은지? 천국은 날마다 새 것이라고 그랬단 말이요. 도대체 얼마나 많기에 날마다 새 것이야?
그런 무한한 천국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 나라를 하나님처럼 효력적으로 통치하고 다스리고 느끼게 살 수 있도록 하려고 나를 하나님처럼(존재적이 아닌 성품적으로) 만들어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 마음도 기쁘고.
이 세상에서는 크고 작은 일을 다 만납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그래요. 이럴 때 올라갈 때는 좋지요. 그러나 우리의 삶이 아주 불행해질 때, 내려갈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나님을 닮은 지혜지식에서, 성품에서 나온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렇게 된 사람은 세상 살기가 참 쉽지. 다른 사람은 올라가는 것만 좋아하다가 하나님께서 탁 쳐버리면 밑으로 뚝 떨어져서 ‘아이고, 못 살겠습니다’ 하게 됩니다.
세상에 살다보면 별의 별 사건을 다 만나요. 이런 가운데서 예수 바로 믿어 예수님처럼 만들어지면 세상 살기가 얼마나 편하겠어. 이런 사람은 부자가 돼도 그 부자를 잡고 푹 빠지지 않고, 가난해져도 가난하다고 원망하지를 않고. 그 얼마나 살기가 편하냔 말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건 환경을 주신 것인데 왜 줬느냐? 만들어지라고 줬어. 그러면 우리는 그런 사건 환경을 통과하면서 사람이 만들어져야지. 인격의 완성자. 하나님 성품의 온전자가 돼야 된다. 그게 예수 믿는 거다. 그게 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다. 인간은 살면서 그렇게 돼야 된다. 알겠어요? 그렇게 안 되면 저만 고통이야.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무디고 둔탁하고 죄 많은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불러주시고, 귀하고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깨닫아서 만들어져 갈 수 있도록 저희들을 보살펴 주시고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날 이후로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가 바로 만들어지고 인격의 온전자 완전자가 되어서 어떤 사건 환경이 부딪히더라도 원망불평 없이 그 사건 환경 속에서 옳은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잘 만들어져 갈 수 있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궁하고 확실한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충만하심이 당신의 백성들 머리 위에 영원히 함께 할지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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