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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들을 이기게 한 용서

시편 김남준 목사............... 조회 수 1462 추천 수 0 2013.07.16 22: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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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6:10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09-12-06 http://www.yullin.org 

대적들을 이기게 한 용서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시 6:10).

 

I. 본문해설

 

시인은 본문으로 이 참회의 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첫 시작부터 우울하고 고통스러웠던 시편 6편의 기조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해 주시는 결정적인 계기를 통해 기쁨과 확신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영광스러운 시의 마지막을 본문으로 장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시 6:10). 이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성경이 가리키는 그리스도인의 세상에서의 삶은 본질적으로 영적 전쟁입니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이어져 가는 삶인 듯 보여도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쓴 편지에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삶으로서의 전투적 특성을 다음처럼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II. 그리스도인의 삶과 대적들

 

시인은 범죄한 가운데 깊은 고통 속에서 또 하나님 앞에서 수많은 대적들과의 투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대적은 반드시 이런 죄 가운데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A. 거룩한 목표를 향할 때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목표를 향할 때 삶은 많은 대적들로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스러져 가는 연약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 할 때 그는 거룩한 목표를 가진 사람인데, 이렇게 선한 일을 굳게 결심하면 그 결심을 이행하지 못하게 하는 많은 요소들이 정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내 안의 싫증과 게으름은 물론, 그 목표를 향해 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환경과 여견, 사람들과의 관계들이 그렇습니다. 뜻을 세우고 목표를 정하기까지는 그리고 목표를 향해 온 마음을 다하여 힘을 내기 전까지는 이런 수많은 난관과 대적들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평생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주신 구원의 도리를 따라 살아가려한다면 얼마나 많은 대적들을 만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의 위대한 영적인 인물들에게는 하나같이 남이 알지 못하는 극한 투쟁이 있었던 것입니다. 회심했을 때도 회심한 후에도 그들은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을 지났습니다. 무명의 시절에는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었지만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하나님을 위해 일을 감당해 나갈 때는 수많은 시기와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이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바르지 못한 삶 때문에 정당한 비난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언제나 그런 하나님 백성들의 거룩한 목표를 싫어하고, 그들은 불경건한 자들에게 버거운 존재일 뿐입니다.

 

사실 하나님께도 사랑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것이 우리의 바라는 바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에게도 동시에 영광을 받는 것이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의 소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자주 가르치셨습니다. 넓은 길과 좁은 길을 선택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간 대표적인 분이셨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분을 사랑하며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룩한 목표 때문에 멸시와 욕을 당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 받는 생애를 사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러한 영적 전쟁이 현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향하여 살면서 이러한 대적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거나 이상한 일처럼 여긴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계산을 잘못한 것입니다.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눅 14:31)라고 반문하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며 “우리는 정말 죄인이고, 십자가 사랑이 전부입니다.”라고 고백하였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좇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소유하고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스르는 이 세상에서 거룩한 목표를 가지고 산다는 것 자체가 무한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네가 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의 가치를 깨달았다면 이제는 그것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너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무한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신자가 주님이 나를 위해 버리신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 고마워서 주님을 위해 온전한 삶을 살려고 할 때 그의 순수한 마음이 고난의 크기를 감하여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하나님을 향해 순전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고난의 불에 내어 주셨습니다. 왜 당신을 위해 살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의 영광과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삶의 목표와 함께 가지지 못하게 하시고 오히려 고난과 시련의 불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 그리고 주님 앞에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더 단련하시고 단련하셔서 정결하게 하시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가치가 없는 것은 연단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이 세상에서 많은 대적에게 에워싸이게 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을 가게 하심으로 의지할 분이 오로지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고난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많은 은혜와 재능, 자연적인 능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이 자기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절박한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그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도록 수많은 대적들에게 시달리도록 허락을 하시는 것입니다.

 

시인이 바로 그 인생의 길을 절실히 걸어온 사람이었습니다. 죄를 지은 후에는 죄 때문에 시련을 당했다고 하지만 죄를 짓기 전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찬송하고 주님을 사랑하던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까? 한 번도 이스라엘의 권력자가 되기를 꿈꾼 적이 없건만 주권적으로 하나님께서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지만 사울에게 끊임없이 쫓기며 멸시와 욕을 당하였고 매일의 삶을 확신할 수 없는 정처 없는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수많은 대적들에게 그 순수한 사랑을 에워싸이게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이 시인을 아주 훌륭하게 사용하시기 전에 철저히 인생의 행운이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나 심지어 자기가 가진 신앙도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시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우러러 보는데 있어서 가장 간절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훈련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궁창에 이르기까지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지만 그는 스스로 깨닫지 못한 자라고 하나님 앞에 자신이 무지한 자라고 고백하였고, 나라와 모든 영광을 주셨지만 하나님 앞에 자신은 노예일 뿐이라고 매달리도록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분과 연합을 이루고 그분과 온전히 동행하는 삶을 사는 그것이 그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하는 삶을 살았고, 역사 속에서 스러질 왕국보다는 영원토록 있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더 사모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며 사는 인생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괴로운 삶, 도처에서 일어난 대적과 안팎의 시험과 환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뜻을 가지고 살 때 부딪힐 시련과 환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담대하게 거룩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며 대적들에게 에워싸일 때마다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의지하게 하시는 그의 경륜 안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함으로써 하나님 이외에 우리가 의지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은 이 세상을 위해 사용하시지만, 우리의 바람과 꿈은 하늘나라에 두고 그 대적들과 싸우며 인생길을 걸어갈 때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삶과 자비로운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B. 죄로부터 각성할 때

 

신자에게 대적들이 많음을 발견하게 되는 또 한 번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로부터 각성할 때였습니다. 오늘 시인이 보여주는 수많은 대적들에게 에워싸인 경험이 바로 이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가 범죄하고 죄악을 즐기고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많은 대적들이 자기를 에워싸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죄에 대해 각성할 때 수많은 대적들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자기 안에서 율법을 통하여 양심이 정죄하고 끊임없이 송사하여 더 이상 희망 없는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며 어떻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려고 하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차가운 거절감이 양심의 정죄와 송사를 지지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혼의 깊음은 시편 130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환경의 깊음도 동반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 가운데 있을 때는 고개도 들지 못하던 수많은 대적들이 이번에는 삶의 깊음을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환경 속에서 대적들은 고개를 들어 시인의 권위에 도전하고 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비웃고 그를 저주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를 쓸 때도 아마 그는 많은 대적들에게 에워싸였던 것 같습니다.

 

죄는 대개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우리를 협박합니다. 하나는 그 죄를 버리고 나서 전개될 미래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홀로 살 것 같으냐?”는 속삭임으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또 하나는 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죄를 떠나지 못하도록 위협하고 협박하는 것입니다. 이때 자기 안에 죄를 사랑하는 대적들과 하나님께 돌아가고자 하는 양심의 송사와 율법의 정죄, 바깥에서 일어나는 환경의 모든 어려움들이 일제히 궐기하여 신자를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그때 그는 수많은 대적들에게 포위당한 힘없는 군사와 같은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시인의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 이 모든 대적들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III. 대적들을 이기게 한 용서

 

자기 안에서 너는 이미 끝났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하는 자포자기 하는 마음과 양심의 송사와 율법의 정죄가 있었습니다. 또한 반란을 일으키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사람들은 상당수는 한때 시인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었고, 친구였습니다. 자신이 약해지고 가련한 처지가 되자 자기 이익을 위하여 대적들로 돌변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처지 속에서 시인은 더욱 이 세상에서 의지할 곳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두려울수록 자포자기 하는 대신 하나님께 파고들었고 고통스러울수록 도망치는 대신 자기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 한 분 앞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그리하여 그는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우고 요를 적셨습니다. 이미 이전에 하나님 앞에 회개한 죄였지만 다시 한 번 자기 삶속에 일어난 모든 고통스러운 상황들이 자신의 죄 때문임을 깨달으며,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복수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지혜로 하나님께서 연단을 통해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실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마치 믿음의 선배 욥이 그 큰 고난을 당하며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고백했던 것처럼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 앞에 자기를 포기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시인이 자신의 모든 죄와 그 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모든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어린아이처럼 그분의 품에 피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고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도달할 수 없었을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세계로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모든 죄를 용서받는 경험을 현재적으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는 모든 대적을 죽이는 하나님의 화살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끊임없는 영적 침체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우리는 속히 정직하게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밖이 아니라 안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온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 같은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을 오히려 범죄 안에서 깨달았습니다. 나도 버리고 싶은 나를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죄를 용서하시는 큰 사죄의 은혜 가운데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양심이 갈 길을 가로막고 율법이 가시울타리를 쌓아 하나님께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없고, 구원이 오직 그분에게서만 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IV. 결론 : 하나님께 돌아오라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은 큰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하여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큰 용서를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일평생 가정도 없이 아내도 자녀도 없이 죽기 까지 주를 위해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자기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죄인이었음을 인식하는 자각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어떤 삶을 허락하셔도 그것은 과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를 당신의 자녀라고 불러주시고 사도라고 불러주시고 이방을 위한 택한 그릇이라 불러주셨지만 그는 스스로 고백하기를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약점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강하심을 자랑할 수 있고, 자신의 검고 검은 죄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붉은 십자가의 보혈의 용서를 노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짧지 않은 6장의 강해를 마치면서 그리스도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운 분이시며 당신의 품으로 피하는 모든 죄인을 추호도 멸시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속히 그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들이 죄를 통해서라도 그 죄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찬란한 사랑을 깨닫고 예전에는 교만할 수 있었던 여러분들이 그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되어서 일평생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자기를 다 버리고 살아도 그렇게 산 자기를 자랑할 마음이 없이 그 무한한 죄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만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려고 오늘도 여러분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볼 때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성도들, 주님의 교회에 기둥 같은 일꾼들 그리고 주님 가까이에서 사랑을 받으며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한때는 죄의 어두운 밤을 지났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모두 회개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돌아가 그분의 평안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0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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