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마1:18-25 |
---|---|
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 kr |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1:18-25
2009. 12. 20, 오전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이때쯤 되면 워싱톤 D.C.에 있는 중앙우체국에서 산타클로스에게 보내는 편지가 전국에 있는 어린이들에게서부터 수천 수만 통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대개가 “금년 크리스마스 때 좋은 선물을 많이 보내 주세요” 하는 어린이들의 소원이 담긴 내용의 편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체국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 전 미국에 있는 교회와 유지들에게 그 편지들을 보내서 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내도록 도움을 청한다고 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유지들은 비록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지마는 정성껏 선물을 준비해서 크리스마스 때 받을 수 있게 보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우체국 당국자들이 하는 말은, 몇 달이 지나도 “선물을 주셔서 고맙습니다”하는 감사의 편지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선물을 보내 주세요”하는 편지는 수천 수만 통 오는데, “선물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편지는 거의 안온다고 합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이지만 이번은 왠지 오랜만에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멋진 선물을 주실 것 같아 가슴 설레입니다. 지금부터 감사의 마음을 키워나가야겠습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우리나라는 국론이 갈수록 분열되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가고 청년들의 일자리는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드는 우울한 날들을 보내왔습니다. 서민경제 위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는 좀처럼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의 사정 또한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동방의 한국교회를 종말시대에 크게 쓰시려고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제반 여건을 준비하고 계심이 틀림없습니다. 북한의 핵 문제나 한반도의 통일 문제도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순적히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슴을 활짝 열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위대한 과업을 기대하며 세계선교의 기치를 높이 세워야 할 것입니다.
강림절기에 예수께서 2천년 전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의 모습을 돌아보며, 당시 요셉과 마리아가 갓 태어난 아기에게 붙인 “예수” 라는 이름을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탄생 기사가 청년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 사이의 어떠한 이야기도 없이 대뜸 엄청난 문제 제기로 시작됩니다.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약혼자 마리아가 자신과 부부관계를 맺기도 전에 임신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범한 마리아이지만 이를 드러내어 마리아를 곤경에 빠뜨리기를 원치 아니하고 조용히 해결하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꿈에 나타나 메시지를 전합니다.
20, 21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로써 요셉은 모든 두려움과 분노를 완전히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데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25절=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예수” 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이름입니다. 이 이름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이 이름 안에 기독교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이름과 함께 하는 신앙입니다.
“예수” 이름의 기원과 의미, 그리고 중요성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예수 이름의 기원 (구약의 여호수아)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여기 “이름을 예수라 하라” 는 문자적 해석을 하면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가 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의 이름을 짓는 권한은 아버지에게 있어왔습니다(창 4:25).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아기의 이름을 직접 지시하심으로 친부권(親父權)을 행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의 법적 아버지 요셉을 아기의 양부(養父)로 임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태어날 아들의 이름 “예수”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이름입니다. 헬라어로 표기된 ‘예수’(예수스)는 그 원형이 히브리어 ‘예호슈아’(출 24:13) 내지는 짧은 형태의 ‘예슈아’(느 7:7)입니다. 그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라’ 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이름을 주신 것은 예수께서 오신 목적이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종말론적인 구원을 베푸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구약 시대에 이미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수 1-12장), 예수의 조상 스룹바벨(스 2:2), 대제사장 여호수아(슥 6:11-13) 등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모든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예수님을 보여주고 계시지만, 때로는 음운적으로 같은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광야의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가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한 명씩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케 한 자들 중에 이 이름이 있습니다.
민 13:8=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
민 13:16=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칭하였더라”
여기 히브리말로 “호세아”는 ‘구원’(salvation)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의 “여호수아”(=예호슈아)는 신약성경의 “예수”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그리스도 오시기 1,500년 전에 이미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과연 여호수아는 예수님의 모형이요 그림자입니다. 그는 노예로 태어났고, 줄곧 하인의 일을 하던 자였지만,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로 높아진 자입니다.
그는 모세의 시대를 계승한 인물입니다. 마치 모세로 상징되는 율법의 시대를 이어 은혜의 시대를 연 것과 같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7). 그런 의미에서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습니다. 인도하되 요단강을 성공적으로 건넜고, 자기 앞에 놓인 거대한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마치 예수께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가로막혔던 담을 허신 것과 같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 2:14).
여호수아는 자기 백성을 마침내 승리로 이끌어 가나안 땅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했습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믿는 자들을 대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천국에까지 이르도록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사를 통하여 요셉 부부에게 아기의 이름을 정해주신 하나님은 이미 구약의 여호수아의 일생을 통하여 장차 오실 분이 어떤 분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역사의 벽을 뛰어 넘어 일찍이 주님 오시기 1,500년 전의 모세와 여호수아 안에서 역사하셨고, 주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후 2,000년을 훌쩍 넘어 오늘의 참 종들 안에서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2. 그 이름이 그리스도에게 붙여짐 (적용적 해석: 구원자 그리스도)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것 중의 하나는 “예수”라는 이름이 당시에는 매우 평범한 이름이었다는 점입니다. 유명한 장군이요 지도자였던 여호수아를 흠모하여 그의 이름의 헬라어 음역(音譯)인 “예수” 라는 이름을 자식에게 붙여주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이름이 메시야(=그리스도)에게 붙여지면서, 이 이름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사용하던 평범한 이름 “예수”는 단지 ‘구원’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에 불과했지만, 이 이름이 아기로 태어나신 그리스도에게 붙여진 시간부터 “예수”라는 이름은 전혀 다른 의미의 권세 있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라는 이름은 역사적 사명적 명칭인 ‘예수’와 직능적 명칭인 ‘그리스도’가 결합된 공식적 호칭입니다. 이것은 ‘예수야말로 구약의 예언에 따라 오신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고백을 담은 말이기도 합니다.
21절=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그는 자기 백성들을 죄의 권세로부터 건져 내실 분이고,
믿는 자들을 죄의 결박으로부터 자유케 하실 분이시고,
죄로부터 나오는 온갖 나쁜 결과들(= 죄의 저주, 죄의 오염, 질병들)을 회개하는 자들의 삶에서 제거해 주실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하여 “예수” 이름은 들에서 양 치던 목자들에게 실제로 구원을 가져오는 이름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이름이었던 “예수” 이름은 이제 도움 받을 길 없는 병자들에게 치유를 가져오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믿음으로 외치던 소경의 눈이 뜨이고, 나병이 떠나가고, 닫혔던 귀가 열려졌습니다.
이 이름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약자들에게 위로와 평강을 가져오는 사랑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예수” 이름은 마귀와 귀신들에게는 멸망을 안겨주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수” 이름이 믿음으로 외쳐지는 곳곳마다 귀신이 쫓겨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붙여진 이 “예수” 이름은 죽은 자에게 부활을 약속하는 생명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오직 예수! 우리는 예수 이름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더욱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크리스마스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명절의 의미가 점차 상업적으로 변모하면서, 지금의 크리스마스는 예수 성탄의 본래적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입니다. 아무런 성경적 근거도 없는 여러 가지 문화적 전통이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썰매를 타고 오는 산타클로스, 양말을 걸어놓고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 루돌프 사슴코, 거리와 집안을 수놓은 크리스마스 츄리와 반짝이들, 우리의 귓전을 괴롭히는 국적 불명의 크리스마스 캐롤들...
여러분, 이 모든 것들로부터 성탄의 숭고한 진리를 지켜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그는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대망해 왔던 구원자 이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온 우주의 왕으로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셔서 이땅에 위대한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3. 그 이름의 미래적 중요성 (재림 예수)
예수 이름은 종말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다가오는 성도의 부활과 심판, 그리고 미래의 모든 사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름입니다.
☆ 살전 4:13=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처럼 예수 믿고 죽은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 시에 부활되어 들림받고 주님과 함께 지상으로 강림하게 될 것입니다.
☆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우주의 모든 생물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엄청난 모습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만물의 심판주이십니다.
☆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예수님은 종말에 이루어질 모든 사건들을 주의 종들에게 알리셔서 교회를 인도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은 우리의 최대 최고의 소망입니다. 참 성도라면 누구나 장차 오실 예수 그분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밀 브루너는 “폐에 산소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찰스 웨슬리는 7,000개의 찬송가를 썼는데 그 중 5,000개의 찬송가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내용으로 담았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주관했던 켄터베리 대주교는 왕관을 여왕의 머리 위에 얹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오, 여왕 전하, 제가 이 왕관을 드리오니 마땅히 쓸 권리를 가지신 분이 돌아오실 때까지 전하께서 쓰시옵소서.”
그러나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세상에 대하여 한 유명한 칼럼니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세상은 무질서하고 위험하며, 통제할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누가 질서를 회복시킬 것입니까? 누가 핵 위험을 막아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에이즈와 우리 시대의 다른 전염병을 박멸시킬 수 있습니까? 누가 홀로 세상을 통치할 수 있을 것입니까? 그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약속하셨고 이제 곧 완전히 그의 통치 아래 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믿음의 사람들이 해방되고 그들의 억울함이 신원될 것입니다. 그때에 믿지 않는 자들은 왜 진실한 성도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 이름은 오늘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의 이름입니다. 누구든지, 무슨 문제이든지, 예수 이름으로 못할 일이 없고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종말의 때입니다. 앞으로의 모든 사건들은 예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따라서 예수 이름으로 무장한 주의 백성들이 종말의 주인공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라는 이름은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 육신을 입고 아기로 오신 그리스도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정해주신 이름입니다. 왜 그 아기의 이름이 “예수”로 불려져야 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하니라”(21절).
예수 그리스도는 33년의 삶을 사시면서 인류 구원을 위한 모든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피를 뿌려 우리의 죄를 속해주셨고, 무덤을 깨치고 부활하심으로 사망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주님은 이제 예수 이름의 권세를 우리 믿는 자들에게 남김없이 주십니다. 이 이름 속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충만합니다.
이 이름이 저와 여러분의 죄로부터 우리 각자를 구원해 냅니다.
이 이름을 통하여 마귀를 대적하는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이 이름에 치유와 위로와 소망이 있습니다.
이 이름을 소유한 자에게 하나님은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예수 이름의 축복이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