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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15:3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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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2013.4.7주일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8)―처음보다 나중이 좋았던 조력자 마가
행15:36-41
인생은 만남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를 만나고, 인물이 되려면 인물을 만나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집니다.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버드 대학생을 통해 추적 조사를 해 보았답니다. 하버드대 생 268명을 72년간 종단 연구를 하였답니다. 1937년 당시 미국 하버드대 2학년인 남학생 268명이 인생사례 연구를 위해 선발된 것입니다. 연구는 "잘 사는 삶에 일정한 공식이 있을까"라는 기본적인 의문에서 출발했답니다. 이 연구를 주도해온 하버드 의대 정신과의 조지 베일런트(Vaillant) 교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지었답니다. 47세 무렵까지 형성돼 있는 인간관계가 이후 생애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고 합니다. 성공적인 노후로 이끄는 열쇠는 지성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적성, 즉 인간관계였다고 합니다. 65세에 잘 살고 있는 사람의 93%가 이전에 형제· 자매와 원만하게 지낸 사람들이었답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MBA 과정에서 유수 기업 CEO들을 상대로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조사했답니다. 그 결과 응답자의 85퍼센트가 '원만한 인간관계 및 다른 사람과의 공감 능력'을 꼽았습니다. 美브리검영대 연구진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먼저 죽을 확률이 50% 낮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줄리안 홀트-룬스타드 교수는 "대인관계가 부족한 것은 하루에 담배를 15개비 피는 것과 같다"며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답니다. 지금은 무엇을 아느냐(Know What), 어떻게 아느냐(Know how)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Know Who)가 더욱 중요한 시대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8번째 시리즈로 예수님 만난 마가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오늘 성경에 마가와 바울 바나바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마가는 한 때 실패했지만 바나바와 바울, 베드로와 함께 조력자로 사역하면서 후에는 마가복음을 기록하여 한 시대에 귀하게 쓰임 받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우리도 한 시대 예수님 만나 전반전보다 후반전이 더 좋아지는 인생으로 쓰임 받을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예수님 만나 신앙 생활할 때 모든 실패를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마가의 모습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선교 여행을 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신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었습니다(39). 이유가 무엇입니까? 37-3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반대하였습니다. 왜 바울이 그를 선교 여행에 데리고 가지 말자고 했습니까? 38절을 다시 보십시오. 제1차 선교 여행 중 밤빌리아 지방에 도착했는데 마가 요한이 더 이상 자기는 갈 수 없다고 중간에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 버린 것입니다. 중도하차한 것입니다. 중도 포기한 것입니다.
마가는 '비추이다'는 뜻의 로마식 이름이고 요한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의 유대식 이름입니다. 부모가 그렇게 살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이름과는 달리 중도하차 하였습니다. 그가 왜 중간에 선교를 계속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고 떠났는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학자들은 추측해 봅니다. 어떤 사람은 밤빌리아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는 토로스 산길(약200km의 험한 산길)이 너무 험준하여 부자 집 아들 마가가 미리 겁먹고 떠났을 것으로 추측을 합니다. 어떤 이는 마가 요한은 본래부터 밤빌리아 버가까지가 그의 목표 여정이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도 여행의 도상에서 겪기 시작한 박해와 환난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바울이 그와 같이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정당치 못한 이유로 선교를 그만둔 것은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포기해 버린 사역에 실패자입니다. 남이 분노와 원성을 살만큼 비굴한 방법으로 사역을 그만둔 사람입니다사업을 하다 어려우니까 접어버린 것이고, 자녀를 기르다 고난이 다가 오니까 포기해 버린 것이고, 교회에서 신앙적 사명을 감당하다가 자신에게 불이익이 다가오니까 도피한 것이며, 결혼 생활하다 환란이 다가오니까 도피한 것이고,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생을 살다가 힘겨운 일이 다가오니까 인생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예루살렘 마리아의 아들(행 12:12)입니다. 바나바 생질(골 4:10)이었습니다. 지중해 구브로 섬 출신으로 예루살렘에서 성장한 부유한 레위 족속입니다.
그의 집에서 120명이 모일 정도로 재정적인 여유가 있었던 가정입니다. 그의 부모는 자신의 집의 다락방을 교회 모임으로 제공할 만큼의 헌신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고난에 대한 인내력이 부족하고, 심지가 약해 어려운 일이 다가오면 포기하였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유하게 자란 사람은 고난이 다가오면 그것을 극복하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던 날도 몰래 예수를 따르다가 발각되자 겉옷을 벗은 몸으로 도망한 일이 있었습니다.(막14:51,52). 만약 마가의 인생이 이 단계에서 끝나버렸다면 그는 예수님을 만난 가룟 유다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으로 끝나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다시 재기하여 마가복음을 기록했고,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혔고 베드로의 영적 아들로 활동하였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실패를 끝으로 끝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실패를 과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성공적 삶을 위한 발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조금 어렵고 힘들면 그것으로 다 끝났다고 비관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사 중인 건물은 비난받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한 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내지 않고 실패를 과정으로 만들었습니다. 모세도 살인자가 되어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딛고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윗도 간음하여 실패했지만 그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 성군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삶은 실패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일어나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바울도 한 때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누가 실패자라고 말하겠습니까? 바울은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후 11:30)”라고 말씀합니다.
마이클 조던도 고등학교 때는 학교 대표 팀에서 탈락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그는 지금의 자리까지 왔던 것입니다. 루이스 라모르는 100편이 넘는 서부 소설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그는 첫 원고의 출판을 하기 까지 350번이나 거절당했던 사람입니다. 세계적인 명작『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는 실패를 달고 다녔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스물네 살 때는 참전했다 왼팔에 부상을 입고 불구의 몸이 되었습니다. 스물여덟 살 때에는 말레이의 포로가 되어 5년간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네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서른여덟 살 때, 처녀작 「갈라테아」를 비롯한 여러 편의 희곡을 발표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 징수원이 되어 지방을 돌아다녔는데, 실수로 영수증을 잘못 발행하는 바람에 또다시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옥중에서『돈키호테』를 썼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 쉰여덟이었답니다.
텍사스 격언에 "젖소를 잃어버리지 않은 한, 우유를 얼마나 많이 쏟았는지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생 동안 계속적인 실패를 경험했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FC)의 창시자 커널 샌더스는 매월 나오는 105달러의 연금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 사업을 시작하여 88세가 되던 해, 마침내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대통령이었던 투루먼은 서른여덟 살이던 1922년에 많은 빚을 지고 실업자가 되었지만 1945년에 미국에서 가장 높은 직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죠지 워싱턴은 그가 치룬 전쟁 중에서 2/3는 패배했으나 마침내 전쟁을 이기므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마케팅 전문기관 미국 AC 닐슨의 현지법인인 한국 닐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94년 출시한 751개의 신제품 가운데 11.1%인 83개만이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신제품 중 살아 남는 것은 10개 중 1개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차 1대 개발 때마다 200여대 부순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매년 3만개 이상의 소비재 관련 신제품이 쏟아지지만 이 중 80% 이상이 실패한다고 합니다. 홈런 왕 베이브 루스는 714개의 홈런을 치기까지는 1,330번의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했다고 합니다. 링컨은 사업가로서 2번 실패했으며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주 선거 및 전국 선거에서 6번이나 낙선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실패 없이 성공만 하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넘어지지 않고 걷기를 배울 수 없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 수영을 배울 수 없습니다. 실패했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입니다. 실패로 축복을 유통시킬 것인가 저주를 유통시킬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아이가 혼자서 걷기 위해서는 2-3000번을 넘어진다고 합니다.「뿌리」를 쓴 알렉스 헤일리는 8년 동안 1백 번이 넘는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일어나 55세가 되던 해에 세계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우리는 어떤 실패라도 그 실패가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우리는 예수님 만나 신앙 생활할 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지지하는 신앙인과 함께 다시 일어나는 자기 효능감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보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두려워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지막이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과거의 실패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피해를 준 사람은 자신을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고 다시는 같이 사역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습니다. 다시 인생을 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나를 반대하는 사람은 항상 있습니다. 특히 한 번 실수하면 끝까지 물고 들어지는 편집성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를 넘어뜨리기 위해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처럼 매사 험을 잡고 충분한 근거도 없이 의심하고 평생 잊지 않고 공격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여기에 집착하면 인생은 실패합니다. 여기에 집착하면 자기 효능감이 떨어집니다. 자기효능감이란 특정한 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나 기대감을 말합니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강한 사람은 어떤 상황 변화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은 인간 행동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이것이 높아지려면 성취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대리 경험을 해야 합니다.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언어적 설득 즉 다른 사람의 칭찬 격려 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 자기 효능감이 떨어져 무기력해 지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지해 주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도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 주고 다시 기회를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동역자와 함께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오늘 성경에 보십시오. 바울은 포기했습니다. 그렇게도 자신을 세워주고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자신을 소개해 주고 지지해주었던 바나바였지만 마가 문제를 용납할 수 없어 다투고 헤어질 정도로 마가를 불쾌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일 중심으로 사역하는 바울의 독특한 성격입니다. 사명을 중요시하는 바울의 성향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어떻게 합니까? 그는 일보다는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부자였던 사람입니다.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사도 바울을 싫어할 때도 그를 용납하고 용서하면서 사도들에게 소개하여 사도 바울을 사역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를 포기했지만 바나바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조카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바울조차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지만 바나바만큼은 마가를 믿어 주었습니다. 그를 대리고 자신의 고향인 구브로로 갔습니다. 후일 바나바와 마가의 전도로 이 구브로(싸이피러스)섬은 완전 복음화된 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어진 사역을 감당할 때 인간관계 때문에 도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곳은 공동묘지 밖에 없습니다.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 때 다윗은 사울과 맞붙어 싸우지 않습니다. 그가 사울과 싸우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면 그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역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를 생명처럼 사랑한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구원받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지지해 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하나님처럼 받드는 형 아론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아무도 없이 홀로 사역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 적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왕상 19:18)” 너의 지지자 7천명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안티가 생기면 그것을 전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으로 생각해 버리고 실의에 빠지고 포기하고 자살을 합니다. 일부를 전부로 생각하고 일시적인 것을 영구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특수한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힘겨운 상대를 만났을 대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사명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게리 윌스가 쓴 "시대를 움직인 16인의 리더"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와 실패한 지도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를 질문합니다. 저자는 리더십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추종자'와 '목표'라고 말합니다. 목표가 있으면 추종자를 보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 결국 일어서지 못합니다. 교회 생활하면서, 직장생활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집요하게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명을 이루는데 힘겨울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탁월한 인물이었지만 아내로 인해 힘겨운 생활을 했습니다. 47세에 바질 부인을 만났지만 매사 원망이 심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에게 온 편지를 다 뜯어보기까지 하면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편을 괴롭혔습니다. 남편이 전도 여행을 떠난 동안에는 집에 있기를 싫어했으며 남편과 동행하면 불평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여인의 분노는 가다가 폭행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가출해 버렸습니다. 싸우디는 그 여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그는 남편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만 섬기며 복종하기를 원한 것이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안될 때는 온갖 방법을 다 써서 그 남편을 번거롭게만 하였다. 그의 난폭한 투기심과 악독한 성품은 소크라테스의 아내나 욥의 아내와 비등하니 이 세 여인은 역사상 최고의 악처로 손꼽힐 것이다"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에게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구두수선공이었던 무디가 놀라운 부흥 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토레이와 생키같은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찰스 피니에게는 동역자 파더 노아가 있었습니다. 빌리 그래함 그에게는 동역자 R. C. 워레이가 있었습니다. 루터에게는 신실한 동역자 루터 부인이 있었습니다.
3. 우리는 예수님 만나 신앙 생활할 때 마침내는 유익한 존재로 평가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가 요한은 마침내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성경에 그의 삶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우리에게 그의 삶에 대하여 충분히 짐작하게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골로새서 4장 10절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골 4:10)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골 4:11)”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마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도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의 곁에 다가와 함께 옥살이를 하며 바울을 시중들게 됩니다. 사람이 한 번 선입견을 갖고 찍으면 끝까지 원수가 되고, 끝까지 그를 정죄하고 용납하지 않는데 바울은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마가가 바울이 받아들일 정도의 삶으로 변화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마가와 같은 사람이 자신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레몬서에서는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몬1:24)”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노년이 되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도망을 갔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습니다. 이 때 누가만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때 디모데에게 바울은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라고 말합니다. 마지막까지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으로 산 것입니다. 사형에 직면한 바울이 함께 있기를 원할 정도로 충성되고 헌신된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마가를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벧전5:13) 신실한 신앙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제 고난 앞에 변덕쟁이가 아니라 누구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유익한 존재, 하나님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입니다. 수제자 베드로에게 아들처럼 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마가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증언하기에 가장 합당한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 집 다락방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을 목격한 제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집 다락방에서 역사적인 성령 강림을 목격한 제자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이 되어 예수님에 대하여 소상이 들었고, 바울의 말년에 누구보다도 그 곁을 지킨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조력자 수행원이었습니다(행13:5). 바나바의 수종자였습니다. 베드로의 수종자였습니다. 조력자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조력자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전하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록하여 예수께서 많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비천하고 험난한 종으로서의 삶을 사셨음을 소개함으로써 고난 가운데 처한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의 행적을 직접 동행하며 목격한 자로서 초대 교회역사의 산 증인이 된 것입니다.
누구나 한 때 실수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는 승리자로 일어나야 합니다. 빌게이츠도 어린 11살 때 가정의 골칫덩어리였다고 합니다. 그는 방 정리, 저녁 식사 시간 지키기 등을 제일 싫어했고 연필을 자주 깨물어 이를 말리는 어머니와 자주 다투었다고 합니다. 그의 누이는 그가 성질이 더러웠다고 회고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였는데 12살이 된 어느 날 식탁자리에서 어머니와 심한 언쟁을 벌이자 아버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컵에 든 찬물을 그의 얼굴에 끼얹고 말았습니다. 그는 "샤워 시켜주셔서 고맙네요"라고 말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답니다. 그날부터 아무 말도 안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조용히 식사만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곤 했답니다. 부모는 그를 결국 치료 전문가에게 데리고 갔는데 상담사에게 그는 자신은 고장 난 사람이 아니라, 부모와 전쟁 중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는 학교 공부보다는 백과사전 등을 탐독하고 컴퓨터에만 열중했답니다. 미국의 최고의 명문 대학에 입학하지만 학교를 그만 두고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에 물 잔을 퍼부은 것을 크게 뉘우치고 늘 "아들아, 난 너를 믿는다."라고 말하며 아들을 믿어 주었답니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 중퇴생이었지만 그는 2007년 6월 7일 하버드대 명예 졸업장을 받고(중퇴한지 32년만에) 졸업식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는 이런 말로 연설을 시작했답니다. "저는 저의 아빠에게 난 언젠가 학교에 돌아갈 것이고 졸업장을 받을 거라고 항상 말해 왔는데 이 말을 이루기 위해 지난 30년 이상을 기다려 왔습니다. 이제 저는 대학 졸업장을 받고 동시에 내년부터는 저의 직업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그는 세계 최대의 자선 재단을 출범했을 때 그는 이 재단의 모든 관리를 아버지에게 맡겼습니다. 마지막 결론이 좋아야 합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유다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울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대부분의 왕들이 끝이 안 좋습니다. 일부 연예인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화려하게 결혼을 시작합니까? 그런데 끝이 안 좋은 연예인들을 언론을 통해 봅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한결같이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국민적 영웅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이나 미국으로 망명을 가야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꿈꾸다가 부인도 자신도 총에 맞아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은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음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폭력으로 정권을 잡기 잡았지만 임기가 끝나자 감옥에서 가야 했고 장남은 1995년 부친의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도 역시 감옥에 갔어야 했고 딸은 92년 외화 밀반출 혐의로 법정에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IMF라는 치욕을 남겼고 차남 현철씨는 97년 이권 청탁과 관련 66억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받긴 했지만 그의 핵심 참모들이 구속되었고 두 아들이 각종 이권 청탁에 관련되어 구속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로 마감을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마지막 평가입니다. 마지막 주님 앞에 설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라는 말을 들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 만나 시작도 좋아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끝이 좋아야 합니다. 점점 더 좋아지는 인생살이가 되어야 합니다. 점점 더 나빠지는 인생살이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점점 더 신앙이 좋아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베드로처럼, 요셉처럼, 욥처럼, 바울처럼 점점 더 좋아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만나 신앙 생활할 때 모든 실패를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만나 신앙 생활할 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지지하는 신앙인과 함께 다시 일어나는 자기 효능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만나 신앙 생활할 때 마침내는 유익한 존재로 평가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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