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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http://blog.daum.net/kjeddh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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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영성훈련, 그리고 제자도
1. 영혼이라는 것
인간의 영혼은 자체의 고유한 본질과 관계들을 지닌 별개의 실체이다. 이는 영혼이 자기 특유의 속성과 성향을 지닌 개체적 존재이고 시간과 변화를 견디어내며, 다른 것들(특히 인격)과 더불어 인과적인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이런 영혼이 인간의 인격과 삶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지만 근본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영혼은 본질상 인격의 한 요소이며 인격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인격이 영혼 없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인격은 특정한 종류의 생명을 지닌 살아있는 존재이며, 영혼은 인격의 존재이며, 한 인격의 삶의 제반 요소들을 하나의 삶으로 통합하는 존재인 것이다.
영혼은 全人의 한 요소, 즉 인간의 모든 역량과 차원을 조정하고 그 상호작용을 개발하여 한 개인의 삶을 형성하는 그 요소이다(영혼은 생명의 근원이고 조정원리이다). Plato나 Aristotle, 그리고 성경의 저자들도 영혼을 별개의 실체요, 개인 안에 있는 생명의 근원이자, 동시에 그 생명을 주관하는 원리로 보았다. 컴퓨터로 치면, 영혼은 인간 시스템의 모든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관하고 조정하며, 그리하여 그것들을 운영하는 것이다. 영혼에는 자체적인 성질, 부품, 속성, 내적인 관계와 외적인 관계가 있다.
영혼은 인격과 따로 떨어져 있다(시 42:5;103:1;119:167;눅 1:47 등 ‘영혼아’ 3인칭). 깊은 곳에 따로 떨어져 있다는 점이 영혼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그래서 영혼을 ‘자아의 깊은 부분’이라고 한다(Thomas Moore). 때로 영혼이 생명의 근원이고 연합체라는 이유로 ‘사람’과 동의어로 쓰이지만(시 57:4;히 10:39) 사람과 영혼은 동일하지 않다. 사람에게는 영혼 외의 많은 것들이 있으며, 망가지고 타락한 영혼을 재구성할 수 있는 희망이 거기에 있다.
2. 죄, 심리적인 실체
인간의 전형적인 사람의 형태를 묘사하면, 인간의 내적인 자원들은 약해졌거나 죽었고, 인간 삶의 요소들은 원래의 본질과 기능대로 상호관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수 ‘죄’로 표현되며, 행위가 아닌 상태이다. 우리 내면의 요소들이 더 이상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배선이 엉키고 뒤틀린 것이다. 우리 생각, 감정, 신체적인 성향 자체가 결함이 있고 삶 전체와 잘못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의지(마음, 심령)에서 극에 달한다. 허물과 죄로 죽었고(엡 2:1), 원치 않는 악만 행한다(롬 7:19). 더 이상 반역이 아니라 병이다. 악을 행하도록 준비되고 갖추어져 있어서 생각 없이 언제라도 악을 행할 수 있다. 사고는 혼란과 무지와 인식착오에 빠졌고, 감정들은 성격을 지배하며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몸과 사회적 환경은 잘못된 행동의 일정한 틀에 찌들어 있어 끊임없이 못된 일을 하려는 쪽으로 기운다. 지성은 악이 선이고 선이 악인 이유를 찾는다(롬 1:32). 사고는 이성에서 합리화로 둔갑한다. 미친 것이다.
3. 복음의 빛
기독교의 회심 내지 회복의 전통적인 방식은 전체 인간 시스템의 바깥에서 오는 새로운 생각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 생각은 새로운 감정으로 이어지고, 의지의 새로운 행동을 가능케 한다. 이 새로운 생각이 복음 정보의 내용이다. 이 새로운 생각으로서의 복음은 영적인 죽음의 수의를 초자연적인 힘으로 찢는다. 그러면서 새로운 감정을 가져온다. 그 망가진 영혼 안에 하나의 움직이는 힘이 일기 시작한다.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감정이 주어졌고 거기에 은혜까지 수반되니 능히 새로운 선택(의지)을 내릴 수 있다. 생각과 한편이 되고 감정과 한편이 될 수 있다. 망가진 영혼과 삶의 어둠 속으로 내미신 하나님의 손을 작은 힘으로 붙잡으면 그분도 손을 붙잡는다. 이것이 위에서 난 새 생명의 실체이다. 나의 사고와 감정과 의지, 그리고 몸을 입은 사회적 자아는 하나님의 생명의 임재를 두루 느끼기 시작한다. 망가지고 타락한 영혼은 자기의 능력을 개혁하기 시작한다. 나는 빛과 온전함을 향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4. 영적훈련
이제 영적 성장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아무것도 않으면 주를 떠난 것이다(요 15:5). 은혜 아래서 이루어지는 영성 개발과정에서 수동성은 능동성을 배제하지 않고 능동성은 수동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위에서 난 생명이 인격 속에 침투하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 자체로는 영혼이 본래 창조된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인격이 변화되려면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움직여야 할 책임을 배우고 받아들여야 한다. 망가진 영혼의 자가당착을 벗고 쉬운 순종과 실천을 입으려면, 내가 지식을 바탕으로 변화의 계획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곧 영성훈련이다. 영혼의 총체적인 상태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안에서부터 전인이 새롭게 되도록, 외적으로 전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 생각, 감정, 성품의 변화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영혼의 기능이 변화되도록, 그리스도의 내면의 성품을 지닌 사람이 되도록 지식과 균형과 끈기를 겸비한 다양한 훈련이 필요하다.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복음의 말씀과 삶속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훈련으로 대체하지 못하며, 복음과 성령이 없이는 훈련의 성과도 있을 수 없다.
5. 제자도
피나는 훈련만으로는 힘들어서 몇 걸음 떼다가 주저앉고 말기 십상이다. 이를 버티고 나가다보면 영락없이 율법주의에 빠지고 만다. 그 쉽고 가벼운 주님의 멍에라는 것이(마 11:29) 터덕거리는 짐이 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의 영성훈련을 하려면 그리스도의 도제로 살겠다는 근본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는 법을 항상 주님으로부터 배울 수가 있다. 그것도 기쁨으로 말이다. 이것을 제자도 신앙이라고 한다. 제자도가 아니면 안 된다. 제자도가 항상 선점해야 한다. 또한 그래야 영성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을 잊지 않고 수행해 나갈 수 있다. 훈련의 목적은 제자 되고 제자 삼는 일을 하되, 구원받은 자들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연합되게 하여, 그들에게 주의 말씀으로 가르쳐 지키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들이 제자도를 지속하는 것이 필히 전제되어야 한다. 사실, 제자를 삼으라는 것 외에 주님의 할 일이 무엇인가? 이에 비할 것이 세상 또 있는가? 그것이 가능하도록 제자도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주님이 가르치기라도 했단 말인가? 제자도가 있는 영성훈련이어야 지상명령이 살아 있는 가장 효율적인 훈련이 된다. 제자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심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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