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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영성훈련

영성묵상훈련 김재은 목사............... 조회 수 2459 추천 수 0 2013.07.21 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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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daum.net/kjeddh1/57 

바울의 영성훈련


 영성훈련은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데 참된 의미가 있다(딤전 4:7). 바울은 주님의 모범을 따라 주님을 따르기 위해 실제로 그렇게 했다. 바울의 삶과 신앙과 사역과 훈련의 심장은 자기부인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중심적 신앙 고백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이다(갈 2:20). 이 고백이 그답게 만들고, 바울이 되게 한 정신적 실체였다. 그리고 이 고백의 근원은 진정한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무리들에게 하신 주님의 요청에서 찾을 수 있다(If anyone desires to be My disciple).

 

 그는 주님의 말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마 16:24;막 8:34)에서 자기 삶의 바탕을 마련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것으로 표현되었고 바울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진정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이 역설은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로 그 가치와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원한 영광의 때에 얻게 될 분명한 보상의 비전으로 제시되었다(마 16:25-29;막 8:35-38;눅 9:24-27). 그렇게 되고 그렇게 산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사실적으로 이해되고 수용되고 실행되어야 하는 고되지만 값진 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바울은 이를 잃거나 빼앗기지 않으려고(눅 9:35) 실제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스스로를 못 박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자기도 함께 죽었다. 믿어 구원받은 십자가 위에 죽기 위해 올라갔다. 그래서 자기는 실제로 죽은 채로 지냈다. 그리스도만 살아 있었다. 그 그리스도는 자기를 위하고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셨다. 그래서 그 넘치는 사랑은 계속 경험되었다(갈 2:20). 그가 사는 내내 그 사건은 현실이요 실재가 되어서 작용했다. 그는 실제로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죽었다(고전 15:31). 항상 죽어가는 상태(dying)로 살았다(고후 4:10).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있었다(딤후 2:11,12). 그는 실컷,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육체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들어차도록 받아들였다(골 1:24). 결국 몸(flesh)과 함께 정(passions)과 욕심(appetites and desire)도 함께 못 박혀 죽게 되었다(갈 5:24).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은 흔적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갈 5:17).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을 실행하며 경험하는 것이었다. 죄가, 죽을 자신의 몸을 왕 노릇하지 못하도록 몸의 사욕을 순종하지 않으려했다. 지체 하나하나를 의의 병기로 용기 있고 과감하게 드렸다. 그 결과 죄가 주관하지 못하는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을 맛보아 갔다(롬 6:12-14).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서 복음에 참여하기 위하여 목표를 세우고 절제하며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일에 열심이었다(고전 9:24-27). 몸은 그렇게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길들여졌다. 또한 수도 없이 갈등하는 육과 영의 투쟁의 마당에서 육체의 일을 성령으로 밀어내는 것이 그의 삶의 연속이었다. 그러자 그의 인격에서 아름다운 열매들이 알알이 맺혀져 갔다(갈 5:16-25). 그는 자신의 몸속에 깊이 배어있는 육체의 일들을 죽이는데도 전력했다. 마치 땅에 있는 지체를 적으로 간주하고 일일이 소탕해야만 했다(골 3:5-17). 이런 일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야 하는 삶의 구원이요 생활의 구원으로 간주되었다(빌 2:12). 여기서 실패하면 몸의 구속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놓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체육관(gymnasium은 훈련이라는 gymnaze에서 나옴) 에서 운동으로 연단하는 것처럼 갈고 닦았다(딤전 4:7). 육체의 능력을 확립하고 유지하고 증대하기 위하여 특별한 행동을 해야 하듯이, 영적인 능력을 확립하고 증대하기 위하여 행해야 할 구체적인 활동범주에서 지혜롭고 강력하게 실행했던 것이다.

 

 그는 특히 독거와 침묵과 금식을 즐겨 실행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의존하고 있던 타인과의 상호관계를 차단하고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생명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내적 고독과 침묵을 영혼의 날개로 삼아 깊이 있는 적막한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전에도 이미 율법에 흠이 없을 정도로(빌 3:6) 지나치게 유대교에 열심이었던(갈 1;14) 그는 금식에도 이력이 나 있었다. 주님을 만나자마자 했던 금식이 이를 대변해준다(행 9:9,11). 회심 후에도 큰 자제력과 훈련은 몸에 배어 있었다(딛 1,2장). 아라비아 사막에서 혼자 지내며 사막의 은둔자로서 살기도 했다(41,42년경). 그곳에는 지금도 ‘사울의 굴’이 있을 정도이다. 아마도 여기서 주님의 환상과 계시를 보고 들었을 것이라고 믿어진다(고후 12:1-14). 그가 실행했다고 여겨지는 훈련은 이외에도 정례적 기도, 성경읽기, 다양한 봉사, 예배, 근검절약, 영적 교제, 복종 등이 더 있다. 거기서 연단된 경건의 힘으로 자기희생과 단순성과 검소함을 익혔다(고전 9:5,12). 그리고 모든 사람의 종으로 섬겼다(마 20:26,27;고전 9:19). 그의 삶은 모범 자체였다(행 20:18,19;살전 2:8,9;살후 3:8,9). 이런 바울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고전 11:1;빌 4:9).

 

 바울은 그리스도의 쉬운 멍에를 메고(마 11:27) 승리의 삶을 살아갈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의 실체에 있다. 그는 주님의 총체적인 삶의 방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리함으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을 경험했다. 바울이 연약함과 실수와 인격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처럼 되는 일에 전력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울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게 의탁하기 위해 자신을 훈련하셨듯이, 바울은 자신의 전인격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의탁하도록 연단했던 다양한 활동들과 삶의 방식을 통해서였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심오한 질서에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고 생활을 한 것이다.

 

 바울은 구속을 육체와 정신의 변화를 낳은 일련의 점진적인 인간적, 신적인 행동과 사건들로 이해했다. 개종자의 습관이 전과 동일하면 그 습관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을 거의 실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몸과 그 지체들이 죄의 습관을 의의 습관으로 바꿈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롬 6,7장). 하나님과 상호교통에 의해,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우리 습관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롬 6:13). 이를 개인의 구속의 세 단계로 현실적, 심리학적 과정에 입각하여 지적한다.

 

제 1단계는 그리스도로 세례 받는 것이다.

 

 로마서 6장에 들어서면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죄를 더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동시에 죄에 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세례를 받았고, 그분과 체험적인 연합을 이루었다. 그분이 체험하신 것을 지금 여기서 그분과의 교제를 통하여 체험하는 것으로써, 이것은 또한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죄의 세력에 대해서 죽으신 그분의 죽음에 우리가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의 세력은 그분을 지배하지 못했듯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우리는 새 생명의 양식(樣式,) 곧 예수 안에 있고, 육체적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새 생명의 양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런 새 생명은 우리 자아에 새 능력을 부여할 뿐 아니라, 우리가 성장하는 동안 육체적 자아의 본성적인 충동 등을 위한 지침과 구조의 새로운 중심을 제공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죄가 죽었다’는 것은 자연적 욕망이 제거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본성적인 충동의 지침과 동기가 되는 죄 및 세상의 죄의 체계에 대항하는 현실적인 대책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새 생명 속에 들어가면 우리의 선택에 따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죄에 대해 애착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전히 범죄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혐오스러운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스도의 새 생명에 참예함으로서 우리가 견지하는 심리적 상태(심리적 실체)는 우리가 육체적 실존의 동기, 조직, 그리고 관리를 위해 옛사람을 초월하는 것을 허용한다. 우리 안에 은혜가 자라감에 따라 선과 의를 행하는데 점차 쉽고 자연스럽게 상식적인 일이 되어간다.

 

제 2단계는 ‘헤아림’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갖는 것이다.

 

 개인의 완전한 구속 과정의 다음 단계는 특수한 행위가 발전하여 지속적인 태도가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지위 안에서 ‘헤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의식적으로 단호하게 자신을 예수와 함께 연합하여 하나님에 대하여는 살고 죄에 대하여는 죽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롬 6:11). 옛 사람을 우리 마음 앞에서 세우고 단호한 의식을 갖고 그 옛 사람과 결별해야 한다. 그리고 여전히 내 안에 거하는 죄의 잔재들(악을 행하고 악하게 느끼는 자동적 성향 등, 내 속에 있는 죄의 법- 롬 7:23)에 관련해서,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롬 7:11)임을 인식해야한다. 인간 자아 속에 역사하는 모든 세력들이 전적으로 의식적 의지의 표현은 아니라는 것이며, 효과적으로 죄의 성향으로부터 자신을 차단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나아가 순결함과 온전함에 대한 소망을 건전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새로운 생명에 대한 비전이 있으므로, 세상의 죄악된 동기 체계를 무가치하고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가 세상의 가치체계와는 상관없이 살 수 있게 해 준다. 이때 비로소 세상에 대해서 죽을 수 있다. 이 논리는 우리가 악한 생각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물리치는 능력, 그 생각을 우리 자아에서 분리시키고, 그럼으로써 은혜로 그것들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제 3 단계는 우리의 지체를 의에 복종시키는 것이다.

 

 과거에 자동적으로 죄를 섬겼던 육체를 자동적으로 의를 섬기게 만들어 줄 확실한 방법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육체를 의의 행위 및 의로운 행위를 위한 모든 합당한 준비에 드릴 때에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면, 죄는 없어도 되는 것, 재미없는 것, 불쾌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행위와 태도가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소원과 즐거움도 변화한다. 이러한 훈련은 우리 육체와 지체들을 위해 복종시키는 것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 몸을 의에 복종시킬 때, 내 몸을 하나님의 활동을 위한 처소로 제공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실천은 깊은 생각과 의미 있는 계획에 의해서 더 잘 될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영성생활의 표현이다. 자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유형을(금식, 고독, 침묵, 성경연구, 희생 등)반드시 감당해야 한다. 적절한 훈련을 통해 나의 행동을 복종시키지 않으면 심리학적으로, 건강한 방법으로 능력 있고 고귀한 새 생명에 들어가지 못한다. 엄격한 훈련이 쉬운 멍에와 그리스도의 충만한 기쁨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며 자신을 복종시켜야 한다. 이제 그 새 생명은 새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능력은 구속받은 사람, 즉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 거하게 되는 것을 머잖아 알게 되는 기쁨 속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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