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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애3: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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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박노열 목사 |
| 참고 : | http://www.koabbey.com/24318 |
관상설교란? - 하나님께서 하시는 설교이다. 설교자는 하나님 면전에서 전하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 관상설교란 이유는 설교자가 "관상상태"를 유지하면서 하는 설교이기 때문에 다른 설교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부를 이름이 없어 "관상설교"라 스스로 이름 붙였다. 좀 교만한 생각이 아닌가 하면서도 꼭 "관상설교"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누가 무어라 하든지 그것이 "관상적 설교"라고 나는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물론 온전한 관상상태 속에서 설교는 어렵지만 지향하고 노력하고 있다. 본문 묵상과 자료 수집하고 기도(관상기도)하면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 대하여 질문해 본다. 그리고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부탁한다. 설교 전에 준비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성령께서 온전히 사용하실 수 있도록 마음과 생각을 비운다. 예배전 관상기도를 통하여 성령께서 하나 되어 주심을 최대한 유지한다. (주님 나와 전인적으로 하나되시어 아버지의 뜻대로 말씀 하소서...) 그리고 전 예배 인도를 성령께 맡긴다. 설교 시간에는 더욱 나(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까지)를 믿음으로 주께 맡긴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내 속에서 한없이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을 들는 그대로 전한다. 체면이나 미움도 사랑도 계획도 의욕도 다 버린다. 하나님 면전에서이기 때문이다. 영감을 주는 대로 다시 말해서 성령이 말씀하시는 대로 전한다. (때로는 마음 속으로 이것이 아닌데 싶더라도 그대로 전한다) 하나님의 평가가 있으시기 때문이다.(보시고 들으시기 때문이다)- 고려수도원 박노열 목사
애 3:19~39 잠잠히 기다림이 좋다 주제:46. 소망. 2008. 10. 5.
◎ 서론 :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참담한 심정을 생생한 비유와 탄식을 쏟아놓던 선지자가 미래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나타내고 있다.
※ 현제의 상황만 본다면 아무런 소망도 가질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눈을 돌리자 소망이 마음속 깊은데서 솟아나게 된다. 본문에는 회복에 대한 소망 5가지를 서술한다.
1.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심 (19~23)
1). 절망 : 하나님께 자신이 당한 괴로움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한다.(19~20)
2). 소망 : 현실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을 깊이 묵상했고, 새로운 소망을 발견한다.(21)
※ 예레미야가 절망을 딛고 소망을 가진 것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이다.(22)
※ 유다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을 받았고 열방 중에 흩어졌으나 이것이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섭리가 아님을 인식한 것이다.
* 하나님께서 심판 당한 유다를 여전히 붙들고 계시고, 그 무한하신 인자와 긍휼을 베푸실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 선택된 유다의 심판은 진멸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들을 깨우치고 정화시켜 회복시키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엡 1:7; 요일 1:9, 2:1~2; 시 78:38, 86:15; 렘 12:15, 애 3:22,32; 호 11:4; 욜 2:13)
3). 찬송 :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로 인해 새로운 확신을 갖게 된다. (23)
※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날마다 만나를 공급하신 것처럼 인자와 긍휼은 택한 백성에게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베풀 것이다.
(신 7:9; 민 23:19; 시 89:33~37; 왕상 8:5~6; ............... )
2. 기다리는 자에게 선을 베푸심 (24~26)
1) 다짐 : 하나님께 모든 소망을 두기로 다짐한다 (24)
※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하심이 무한하시다는 사실을 깨달은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모든 소망을 두기로 다짐한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은 스스로 굳게 다짐했다는 말이다.
2) 확신 : 기다리거나 구하는 자에게 선을 베푸심을 확신한다. (25)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기업이시므로 선지자는 끝까지 그분을 바라고 의지하면 반드시 선한 일이 이루어지리 라 확신했다.
3) 선지자의 일 :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6)
※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린다”는 것은 모든 소망의 근거를 그분께만 두고 조용히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시 28:7, 33:20, 40:7, 42:5, 46:1, 63:7, 70:5, 94:17, 115:9, ....사 30:7; 애 41:7)
3. 영원히 버리지 않으심 (27~32)
※ 소망을 가진 예레미야는 유다백성들이 당한 고난(멸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1). 고난이 주는 유익을 깨달았다. (27~28)
※ 사람이 젊은 날에 멍애를 지는 것은 전체적인 결과를 볼 때 좋은 일이므로 잠잠히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 “멍애를 맨다”는 고난을 짊어지고 감사한다는 의미이다.
2).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라 (29)
※ “입을 티끌에 된다”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는 것을 가리킨다.
※ 고난의 멍애를 멜 때에 억지로 메지 말고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복종하는 것을 말한다.
※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모든 상황을 담담히 견딜 수 있을 것이다.
3) 멍애를 메는 자세 : 기꺼이 감수하라 (30)
※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감수하는 자세를 말한다.
※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이유는 그 고난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31~32)
※ 하나님께서 고난의 멍애를 메게 하실 때, 믿는 자들은 기꺼이 그리고 겸손히 고난을 받아들여야 한다.
4.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본심 (33~36)
1). 하나님의 본심을 깨달음 (33)
※ 선지자의 또 하나의 소망은 하나님의 본심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스라엘의 징벌이 결코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하나님의 본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그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고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 (34~36)
① 갇힌 자를 발로 밟는 것
* 불의한 세상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들로, 힘 있고 가진자가 연약하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이런 불의에 대해 반드시 보응한다.
②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
*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시는 분으로서 재판관이 부당한 판결을 내리는 것을 묵과하지 않으신다.
③ 사람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것
* 가진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은 너무 자주 억울함을 당한다. 그들은 법에 호소해도 해결 받지를 못한다. 하나님은 이런 현상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5. 화와 복이 하나님 입에서 나옴 (37~39)
1). 소망 :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37)
2). 강조 : 화든 복이든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38)
3). 인정 :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39)
(마 16:27; 요 15:2; 고전 11:32; 고후 5:10; 히 12:5~7...........)
※ 영적 각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교훈이다
* 고난은 축복의 통로이며 따라서 기꺼이 고난을 받아들일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사실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일어나는 영적인 각성이며 놀라운 은혜의 경험이 다.
◎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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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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