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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1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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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3.6.30 주일설교 |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야훼께로부터 나오느니라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 잠언 16장 1, 9절
일의 성취와 결과는 항상 하나님께 달려있어
무슨 계획과 문제든지 주께 간절히 부르짖으면
우리 대신하여 일해주시고 복과 은혜 예비하셔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모든 삶의 일에 있어서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과 결정을 자기 뜻대로 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시든지 관계없습니다. 마치 자기가 하나님이 된 것처럼 착각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계획하고 노력해도 일의 성취와 결과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인생의 문이 닫힐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꿈꾸는 일이 막혀 버려 캄캄한 벽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1. 자기의 판단으로 하나님을 거역한 요나
일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에 대해, 반드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우리의 마음과 뜻대로 다 해놓고 나중에 실패하여 낭패와 실망을 당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은 진정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27편 1절에서 2절은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야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기록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적국 앗수르의 압력을 받고 고통을 당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심판을 내리겠다고 선지자 요나에게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앗수르는 그 당시에 세계 초강대국으로 주변에 있는 나라들를 침범해 모두 속국으로 삼았으며 이스라엘도 그들의 침략을 받아서 속국이 되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 후에 멸망당하여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계시를 주셨고,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파탄에 이르게 하겠다”고 외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요나는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에 뛸 듯이 기뻤습니다. 적국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멸망한다니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러므로 요나는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그들이 회개치 않아서 멸망하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의 반대편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므로 요나 1장 3절에 보면 “그러나 요나가 야훼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야훼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심판에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사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미리 경고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심판받아 멸망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 분은 늘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경고를 할 때도 진정으로 심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고 생명 주시기 위해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니느웨 성에 가서 임박한 진노의 심판을 경고하고 회개를 외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의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행 배를 타고 떠나버렸습니다.
사실 요나는 자기의 생각과 판단에서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로 반드시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적국인 앗수르가 망하는데 내가 그들을 회개시켜 도와줄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경고의 외침을 주시는데도 그는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기대를 가지고 요나에게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그가 불순종한 것입니다. 니느웨로 가라고 한 사람이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출발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해도 듣지 않을 요량으로 배의 맨 밑바닥에 내려가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께 과연 그 배를 중지시킬 능력이 없으시겠습니까?
2. 하나님의 심판과 요나의 회개
요나를 태운 그 배는 얼마 못가 큰 풍파로 파선할 지경에 이르러 아주 처참한 지경에 도달했습니다. 배의 사공들과 선원들은 이제 실어놓은 상품만 잃어버릴 뿐 아니라 배마저 잃고 생명까지 뺏길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과연 누구 때문에 이런 화가 임했는지 제비를 뽑았는데, 공교롭게도 요나가 딱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요나가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가서 40일 이전에 회개하지 않으면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고 알려주고 회개케 하라고 했지만 나는 니느웨가 심판 받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반대 방향으로 다시스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로 인해 이 배가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나를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면 잠잠해 질 것이라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 배에 있던 사람들은 요나를 살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지만 도저히 감당이 안됩니다. 파도에 배가 일렁거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잘못만나면 큰 풍파가 생깁니다. 사람도 복 있는 사람이 오면 복을 같이 가져오지만, 화를 가지고 오는 사람이 오면 같이 화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풍랑을 잠잠하게 하기 위해서는 요나를 배에서 던져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요나를 물에 던져 버리자 풍랑도 잠잠해졌습니다. 물에 던져진 요나는 죽어도 좋다고 눈을 딱 감았는데 숨을 쉬니 숨이 쉬어지고 죽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옆의 벽을 두들겨 보니, 그가 있는 곳은 물고기 뱃속이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사흘 동안 있었으니 참 기가 막힙니다. 그렇지만 요나는 회개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자가 있습니까? 사흘 동안 버티다가 더 이상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요나가 회개했습니다. 요나 2장 1절에서 2절을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야훼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라고 기록합니다. 너무 괴로워서 주님께 회개하고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회개하고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고난속에서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고난이 바로 진정한 회개를 위한 첩경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한 요나를 지켜주셨는데, 요나 때문에 소화도 잘 안돼 사흘 동안 고생했던 물고기가 요나를 해변가에 토했습니다. 그 길로 요나는 니느웨로 갔습니다.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는 사흘 길을 걸어야 모두 돌아볼 수 있는 큰 성입니다. 요나는 하룻길을 걸으면서 외쳐 말하기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 이후에 이 성이 무너진다.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제발 회개하지 말고 하나님께 멸망 당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요나 3장 1절에서 5절 말씀에 “야훼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가 야훼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고 기록된 것처럼, 요나가 외칠 때 그의 말을 듣고 니느웨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다 입고 통회하고 자복한 것입니다. 그러자 거대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흥 주시기로 약속하시면 어찌하든지 부흥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멸하기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달랐습니다. 요나 4장 1절에서 2절은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야훼께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라고 기록된 것처럼 요나는 니느웨 성이 회개치 않고 멸망 받아 박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입으로는 “회개하고 변화받으라”고 외쳐놓고 속으로는 망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기다렸던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화가 나고 실망한 요나는 니느웨 성읍 길 가의 한 구석에 앉아 자기를 위해 초막 하나를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늘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밤새 큰 잎사귀 가진 박넝쿨이 생겨나게 해서 그를 덮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자고나니까 박넝쿨이 시들어버렸습니다. 벌레 한 마리가 와서 박넝쿨의 줄기를 갉아 먹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요나가 탄식하며 불평하였습니다. 그러자 요나 4장 10절에서 11절에 하나님께서는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고 말씀하시며 요나를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깨달음과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보다 앞서 일을 하면 하나님의 일에 오히려 훼방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시킬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 생각에 맞지않고 싫더라도 따라야 됩니다. 하나님은 큰 일만 예비하신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일도 예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예비해 놓으신 일은 큰 일을 예비하신 것이지요. 그러나 그를 위해 박넝쿨을 예비한 것은 보잘 것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벌레를 예비해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는 것은 더 작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크던 작던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해 깨닫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살아가는 일을 하나님께 맡겨 놓으면 하나님이 예비한대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1절하고 9절을 보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야훼께로부터 나오느니라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고 말씀하며, 잠언 19장 21절에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야훼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으로 계획을 잘 세워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가 뜻하시는 것을 이뤄주시지 사람의 마음대로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전도서 12장 13절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기록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일의 결론을 내리시지 우리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며, 우리가 아무리 수고해도 수고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업을 하려고 온갖 계획을 세워도 일이 되고 안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어떤 계획이나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될 것은 길을 열어 주시고 안 될 것은 미리 막아 주십니다. 그렇게 기도해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일을 성취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우리가 스스로 일을 계획해도 그것이 성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3.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33장 1절로 3절은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 아무 일도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 엎드려 기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아 주셔서 일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가 나가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일의 주인은 우리가 아닙니다. 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지으셨고 그것을 유지하시고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하라고 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역사를 이뤄 주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장 2절로 3절에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들 개인의 일도 다 이루셨고,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도 다 이뤄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이 허물어지고 안 되는 것 같아도 주님께 기도하고 맡겨 놓으면 주께서 이뤄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귀하고 귀하게 여기셔서 오늘 이곳에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인 우리가 세상에서 잘못되면 하나님의 영광에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 모든 것을 모두 내어 맡기고 우리가 스스로 일을 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일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믿고 감사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3절에 “너의 행사를 야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며, 시편 37편 5절에서 6절까지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라고 기록합니다. 또한 시편 55편 22절은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성경이 “하나님께 맡기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모든 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홀로 걸머질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 일을 맡기면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소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뜻은 우리의 소원을 통해 이뤄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예비하는 사람들은 홀로 자신의 힘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와 교제하시고, 우리가 성령충만하여 기도할 때 마음의 소원을 통해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사시면서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당하고 괴로움을 당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우리의 삶이 좋아지고 풍요로워지는 것처럼,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좋은 일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마음속에 가득 채우고 바라보고 고백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기쁜 일이 일어나고 승리하는 일이 일어나고 축복이 일어난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꿈을 꾸고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꼭 이뤄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무엇이든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마치 요나의 박넝쿨 같은 것을 우리 위해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를 깨닫게 하고 교육하기 위해 필요하면 벌레도 예비해 놓으십니다.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야훼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좋은 하나님께서 모든 결과를 좋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걱정하지 말고 우리를 대신하여 일을 행해 주시고 짐을 짊어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마음에 기쁨과 담대함을 가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일을 책임져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소망이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짐을 짊어지고 가는 미련하고 힘든 삶을 살지 않게 하여주시고, 항상 기도와 감사와 찬양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바라보고 고백하는 삶을 살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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