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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65: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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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3.7.7 주일설교 참사랑교회 http://charmsarang.onmam.com |
넘치는 하나님의 은총
시 65:1~1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매일 우리를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불러주셔서 신령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 만물을 통해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풍성하게 공급해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수록 우리는 행복해지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시온에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다윗은 이 시에서 하나님의 넘치는 은총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시온의 은총(1-4절), 둘째는 창조와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5-8절), 셋째는 소산(토지의 소산과 목축의 소산)의 은총(9-13절)입니다. 이 중에서 시온의 은총이 단연 귀하고 복됩니다.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1절) 시온은 원래 예루살렘에 있는 언덕 이름이었습니다. 이곳에는 본래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었는데, 다윗이 점령하여 이곳에 언약궤를 옮겼습니다. 솔로몬은 이곳에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 후로 이 언덕은 시온산으로 불렸습니다. 시온은 여호와의 성읍인 예루살렘과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이스라엘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시온은 하나님의 성소를 가리킵니다. 이 시온은 여호와의 말씀이 나오는 곳이며, 궁핍하고 억압받는 자를 위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께 찬송하며 경배 드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기 위해 예배당에 모여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이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예배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아멘’하고 받고자 열망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청을 받아 그의 집에 갔을 때, 고넬료는 그의 집안사람들과 친척, 친구들을 모아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었습ㄴ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10:33)
오늘 우리는 이런 면에서 많이 미흡합니다. 성도들은 예배가 시작되기 최소한 10분 전까지는 자리에 앉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예배가 시작된 후에 들어오는 성도들도 꽤 있는데 당장 고쳐야 합니다. 이렇게 앉아서 하나님을 갈망하며,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아멘으로 받기로 작정하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온전한 예배를 드리게 되며,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풍성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받아야 우리가 하나님 백성의 거룩하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하며 주실 은혜를 사모함으로 기다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뜨겁게 감사하며 하나님께 충성하기를 서원해야 합니다.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1하) 다윗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특별한 은총을 감사하며, 이전에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이렇게 다짐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1절에서 ‘시온에 계시는 하나님’을 부른 시인은 2절에서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을 부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2절) 시온에 계시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기도, 특히 연약한 자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며, 풍성하게 응답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기쁘게 들으신다는 것은 얼마나 복되고 귀한 일입니까?
시온에서 복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와 기도를 통해 은혜를 힘입을 수 있다는 것보다 더 귀하고 복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자신의 죄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거룩하심을 깊이 느낄수록, 우리는 자신의 죄를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사유하심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 없이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3절) 이 구절은 죄에 대한 자신의 무능력을 깨달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와 사죄의 은총을 간구하여 사함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자주 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통회하며 회개할 때 얼마든지 사해주십니다(요일1:9). 죄 용서를 받아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친밀한 교제가 가능해집니다.
4절은 성전에서 받는 하나님의 은총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이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은혜를 힘입게 됩니다. 4절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총을 힘입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뜻에 살게 하신”(4상)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은 내 선택과 의지와 힘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 죄를 사해주셨으며, 우리를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오게 해주셨습니다. ‘주의 뜰’은 제사장이 아닌 일반 백성들이 들어갈 수 있었던 성전의 한 구역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주의 뜰에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런 성도는 이제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주는 것은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헛되고 덧없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누리는 신령한 은혜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만족하게 하며 행복하게 해줍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온 당신에게 이러한 은혜를 충만하게 부어주시기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함
두 번째 단락인 5-8절에서는 창조와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온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이제 ‘땅 끝’까지를 바라봅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5절)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이방인들의 구원자도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엄위한 일’은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놀라운 초자연적 기적들을 가리킵니다. 그 대표적인 일은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엄위하신 일들은 교회의 역사에, 그리고 우리 각 개인의 인생여정에 가득합니다. 이렇게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구원자 하나님은 또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모든 것을 절대주권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6절) 시인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 가운데서 대표적으로 ‘산을 세우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산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원성과 불변성, 그리고 견고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의 띠를 띠셨다’고 한 것은 용사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시며, 원수들과 대적들을 제압하시며 진멸하시는 용사이십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하는 성도는 담대하고 평안합니다. 얼마나 든든합니까?
역사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찬양함
6절에서 ‘산을 세우신’ 창조의 역사는 7절에 와서 ‘바다를 다스리시는’ 역사로 이어집니다.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7절) 여기서는 ‘바다의 설렘’과 ‘만민의 소요’가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의 바다를 창조하셨고, 그것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인류에게 바다는 통제가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은 태풍이 지나가는 바다의 모습, 또는 쓰나미가 밀려드는 무서운 바다의 기세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놀라운 문명과 과학기술을 발달시켜온 인류가 이러한 바다의 기세에 얼마나 무력한지를 똑똑히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섭고 엄청난 바다의 거센 기세도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간단하게 제압하십니다. 우리는 말씀 한 마디로 바다와 바람을 잔잔케 하시던 주님의 모습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7절 상반절이 자연계에 대한 하나님의 통제력을 보여준다면, 하반절은 인간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줍니다. ‘만민의 소요’는 하나님께 대한 주제넘고 건방진 반역을 가리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오만하게 반역하며 범죄한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하며, 자기 맘대로 행하여 하나님을 대적해왔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인간들을 심판하시고 주관하셨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온 자연계와 인류 역사를 온전히 통치하십니다.
8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통치와 은총이 미치는 범위를 땅 끝까지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땅 끝에 사는 자’란 팔레스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 곧 미지의 땅에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도 ‘주의 징조’, 즉 만물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신성과 권능을 느끼며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사실 인생은 얼마나 곤고하고 허무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아침마다 힘겹고 고통스러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고된 몸을 이끌고 근심과 허무 가운데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특히 어려운 문제와 갈등과 질병 가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며, 이것이 아침마다 새롭다고 고백했습니다(렘애3:22-23).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신 하나님께서 매일 순간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야 할 감격적인 이유와 목적을 주십니다. 이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는 성도는 아침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부어주시는 은혜로 기뻐하며, 저녁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은총으로 감사하며 행복해합니다.
단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
마지막 단락인 9-13절에서는 풍년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9절은 하나님을 마치 농부처럼 땅을 돌보시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마치 농부가 땅에 물을 대어 논과 밭을 부드럽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단비를 내리셔서 오곡이 풍성하게 하십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이제 밭고랑과 이랑을 돌보십니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하게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10절) 팔레스틴은 특히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물이 귀하고 강수량도 적습니다. 그래서 황량한 광야가 많습니다.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이 귀한 땅에서 농사는 전적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틴에서는 5월과 10월이 우기이며 농사철입니다. 그 때 비가 충분히 내리면 풍년이 됩니다. 이 비는 농부가 줄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를 적당하게 내리셔서 사람들에게 양식을 주십니다.
본래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며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신이 비를 내려주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고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배우면서 우상숭배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비를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비를 내리시며, 우리가 먹을 양식을 주십니다.
풍성한 소산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고 신령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만물과 인류를 통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풍성하게 공급해주십니다.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11절) 시인은 한 해를 찬란하고 아름다운 보석으로 단장한 여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해 가을에 풍년이 들게 하셔서 풍성한 곡식으로 들을 아름답게 장식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또 하나님께서 들을 익은 곡식으로 덮으신 것을 하나님께서 지나가신 흔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 모습입니까? 당신은 우리 인생을 이렇게 풍성하고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기뻐 찬송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소출은 논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들과 광야에도 풍성합니다.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12절) 광야는 비가 잘 오지 않기 때문에 나무나 풀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비를 흡족하게 내려주시면 목축에 적합한 초장이 됩니다. 이렇게 비가 내린 후 광야가 푸른 초장이 되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결과입니다.
논밭에 떨어진 기름방울이 들에도 떨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나가신 흔적, 즉 은혜를 베푸신 결과입니다. 그 결과 온 땅은 풍성한 소출로 충만해집니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13절) 하나님께서는 양떼만이 아니라 모든 풍성한 소출로,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시인은 이러한 풍년을 하나님께서 장식하신 아름다운 여왕으로 묘사했고, 하나님께서 지나가신 발자취로 묘사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풍성한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격적으로 아름답게 찬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이렇게 복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이렇게 풍성한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그리고 저녁마다 행복해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순종하며 충성 다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온 땅에 충만하여, 만물이 소생하며 풍성하게 열매 맺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풍성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까? 당신의 삶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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