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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 받은 왼손잡이

사사기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858 추천 수 0 2013.08.09 19: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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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삿3:12-30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13.7.22 http://www.john316.or.kr 

쓰임 받은 왼손잡이 (사사기 3장 12-30절)

 

< 마음의 키를 키우십시오 >

 몇 년 전에 한 여대생이 방송에 나와 키 180센티미터도 안 되는 남자는 루저(loser)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인천의 한 전문대생은 “키가 작으면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좀 더 알기 전에는 그런 얘기를 쉽게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힘이 지배하는 정글 사회입니다. 키가 크면 힘이 있게 보여서 마음이 끌리지만 ‘힘이 있게 보이는 것’과 ‘실제 힘이 있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왜 사람은 나이가 들고 세상을 겪으면서 키에 대한 집착이 줄어듭니까? 힘 앞에서 키가 고개를 숙이는 세상을 체험하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결혼하면 육신의 키보다 마음의 키가 큰 것이 중요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도 가끔 두 딸에게 키는 보지 말라고 진지하게 말합니다.

 키가 작다면 성격, 매너, 능력 등 다른 장점으로 승부를 걸면 됩니다. 책임감과 자신감도 마음을 끄는 매력 포인트입니다. 깊은 인간관계는 외모 이상의 것으로 형성됩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매력과 장점을 살리면 얼마든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콤플렉스로 여기는 것을 남들은 그것이 콤플렉스가 아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역설적으로 말하면 적절한 콤플렉스도 필요합니다. 그 콤플렉스 때문에 자기 발전을 도모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는 저보다 키가 큽니다. 처음 만날 때 그 점에 신경을 썼습니다. “혹시 창피해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결혼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키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끔 아내는 말합니다. “우리 목사님은 영적인 키는 커요?” 사실 키가 작기에 다른 면에서 더 크게 되려고 노력했기에 결국 키가 작은 것이 제게는 오히려 자기 절제, 자기 성찰, 자기 열정의 불을 지피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여자가 남자의 경제적 능력과 키를 중시하고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중시한다면 그런 취향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왜 그런 시각을 가지느냐?”고 화내며 따지지 마십시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취향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물론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루저다! 오만정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비하하면 그것은 인격과 성격 문제입니다.

 사람은 쉽게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특히 콤플렉스에 잘못 빠지면 성숙함이 늦어지고 성공해도 잘못된 결과를 낳는 성공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콤플렉스를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자세입니다. 콤플렉스를 발판으로 삼아 지혜와 창조성과 능력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비하하며 자폭 테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이 내 인생을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생각과 시선과 말에 자신을 고정시키지 마십시오.

 역사적으로 보면 키 작은 위인들도 많습니다. 조선시대의 양반의 덕목 중의 하나는 키가 작은 것이었습니다. 늘 글을 보니까 잠도 적고 식욕도 없어서 키가 클 틈이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G8 정상회담에 참석한 각국 대통령의 키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때 러시아와 프랑스와 이탈리아 대통령이 다 170센티가 안 되었습니다. 콤플렉스로 생기는 정신적인 에너지를 창조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키면 얼마든지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작은 사례들입니다.

 그때 여대생의 루저 발언과 오만정 발언으로 흥분한 일부 남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한 동안 그 여대생들을 무섭게 공격했습니다. 그처럼 지나친 대응으로 자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부정적인 일에 소모할 필요가 없습니다. 육신의 키는 작아도 마음의 키를 키우면 얼마든지 위너(winner)와 캡(cap)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에도 그처럼 핸디캡(handicap)을 극복하고 진짜 캡(cap)이 된 사람이 나옵니다. 그가 바로 왼손잡이 에훗입니다.

< 제 2대 사사 에훗의 사적 >

 어느 날,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을 모압 왕 에글론이 암몬 및 아말렉과 동맹을 맺고 쳐들어와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했습니다(13절). 모압은 롯과 그의 첫딸 사이에 태어난 모압의 후손이고 암몬은 롯과 그의 둘째딸 사이에 태어난 암몬의 후손으로 모압과 암몬은 형제국입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후손입니다. 종려나무 성읍은 여리고성을 뜻합니다. 그처럼 모압과 암몬과 아말렉 연합군이 여리고 성을 점령하면서 그때부터 이스라엘은 모압 왕 에글론을 18년 동안 섬겼습니다(14절).

 그 압제의 고통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이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을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15절). 에훗이 베냐민 출신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에글론이 점령한 여리고성이 바로 베냐민지파의 성읍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훗은 왼손잡이였는데 오른 손을 못 쓰는 불구자라기보다는 오른손보다 왼손이 발달된 왼손잡이 혹은 양손잡이였을 것입니다.

 당시 에훗은 모압에게 공물 바치는 일을 관리했는데 왕에게 공물을 바칠 때 그는 길이가 한 규빗(45센티) 되는 칼을 자신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찼습니다(16절). 그리고 공물을 바친 후 모압 왕 에글론에게 은밀한 일을 아뢰겠다고 요청하자 왕이 주위 신하들을 다 물리쳤습니다(17-19절). 그만큼 에글론은 에훗을 신뢰했고 또한 은밀한 어떤 정보를 듣고 싶은 호기심 때문에 아무런 경계심 없이 주위 신하들을 물리친 것입니다.

 그때 에훗이 다락방에 홀로 앉은 왕에게 아뢸 일이 있다고 하자 왕이 귀를 기울려 들으려고 좌석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에훗이 왼손을 뻗쳐 오른쪽 허벅지에 찬 칼을 빼서 왕을 세차게 찔렀습니다(20-21절). 그러자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칼을 몸에서 빼내지 않아 기름이 칼날에 엉겨 붙었습니다(22절). 그 후에 현관으로 나와 다락문들을 뒤에서 닫아 잠갔습니다(23절).

 에훗이 나간 후 신하들이 와서 다락문들이 잠긴 것을 보고 “왕이 서늘한 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고 말했습니다(24절). “발을 가리우신다.”는 표현은 ‘용변 보다, 잠자다, 휴식을 취하다.’란 의미가 있는데 그때 신하들은 ‘잠자다’란 뜻으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도록 왕이 나오지 않자 신하들은 열쇠로 문을 열어보고 왕이 죽은 것을 발견했습니다(25절).

 그 동안 에훗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거기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때 많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따르자 그들을 이끌고 모압 맞은편 요단 강 나루를 장악한 후 한 명도 건너지 못하게 해서 그때 모압 용사 약 만 명을 죽였습니다(26-29절). 그때 모압을 굴복시키고 사사시대에 가장 길었던 80년의 평화시대를 펼쳤습니다(30절). 한때 열등감을 가졌던 왼손잡이 에훗에 의해 위대한 반전의 역사가 펼쳐진 것입니다.  

< 승리를 위해 바꿔야 할 것 >

 사사들을 보면 인생 역전의 주인공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그런 역사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처럼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되려면 바꿔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생각을 바꾸십시오

 생각만 바꿔도 인생은 많이 달라집니다. 때로는 자기의 상식적인 생각이 틀릴 때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흔히 또래 학생이 많은 교회로 자녀를 보내면 자녀의 신앙이 잘 자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래와 어울리면 신앙생활에 재미는 있겠지만 오히려 의미는 적어질 수 있습니다. 또래 친구는 세상에서 사귀면 됩니다. 교회에서까지 친구 때문에 강남 가는 식으로 교회생활을 하면 신앙과 축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획일적인 또래 공동체가 아니라 다양한 몸 공동체입니다. 건강한 몸이 되려면 머리, 가슴, 배, 다리가 다채롭게 섞여 있어야 합니다. 다 가슴만 있으면 안 됩니다. 즉 다양한 연령층과 어울려야 복된 신앙생활이 됩니다. 또래끼리 어울리면 재밌을 때도 있지만 경쟁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반면에 어른들과 함께 하면 경쟁 대신에 어른들로부터 기도와 사랑의 후원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즉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하고 함께 어울리면서 어르신들의 인정과 축복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면 그 청년이 얼마나 복된 청년이 되겠습니까?

 성령의 지혜를 통해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복된 삶도 펼쳐집니다. 나이 문제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합니다. “지금 일흔이다. 이제 끝났다. 희망이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꾸십시오. “지금 일흔이다. 연륜으로 보아 상당한 지혜와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지금이 오히려 절정기다.” 그처럼 생각을 좋게 바꾸고 찬란한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가면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됩니다.

 저는 가끔 악몽을 꾸면 깨어나서 항상 생각합니다. “나쁜 꿈은 반대대로 돼!” 반대로 좋은 꿈을 꾸면 깨어나서 항상 생각합니다. “좋은 꿈은 꿈대로 돼!” 어떤 사람은 악몽을 꾸면 이상하게도 그날 항상 나쁜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나쁜 생각이 나쁜 상황을 부르는 것입니다. 인생은 ‘꾸는 꿈’보다 ‘품은 꿈’대로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늘 좋은 꿈을 품고 좋게 생각하는 습관을 체질화시키십시오.

2. 태도를 바꾸십시오

 생각과 함께 태도도 바꿔야 합니다. 긍정적인 태도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출신, 학력, 배경, 자원 등이 부족해도 얼마든지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여기고 결코 자신감을 잃지 마십시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학력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 학력이 한 가지 필요한 요소는 되지만 생각만큼 핵심요소는 아닙니다. 성공한 사람 중에 자본과 배경이 없이 자수성가한 사람도 많고 학력이 부족한 사람도 많습니다.

 지난 세기 후반에 한국 교회의 중흥의 때를 선도했던 목사님들을 보면 대개 학력이 그저 그랬습니다. 옛날에 신학대학에 간 학생들이 세상적인 학력은 뛰어나지 못했지만 30년쯤 지난 뒤에는 어떻습니까? 신학대 출신 목자 밑에서 명문대 출신들이 다 양떼로 있습니다. 그처럼 학력이 성공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는 높이지만 생각만큼 크게 성공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학력보다 오히려 소명감을 가진 태도가 중요합니다.

 옛날에 신학대에 들어가면 “나는 신학생이야...”란 의식을 가지면서 자부심이 넘쳐서 행동하고 태도도 반듯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영적인 교만을 가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런 자부심이 넘치는 태도는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축복의 질도 높입니다. 결국 그 자부심대로 나중에 보면 사회적인 위치도 높아질 때가 많습니다. 그처럼 어떤 의식과 태도를 가지느냐 하는 것은 세상적인 실력보다 더욱 강력한 승리의 원천이 됩니다.

3. 말을 바꾸십시오

 흔히 말이 씨가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말한 대로 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능력이 지식과 정보의 축적을 낳아 문명을 지금처럼 발전시킨 것입니다. 말은 문명을 꽃피게도 하지만 개인의 삶을 꽃피게도 합니다.

 얼마 전에 야구의 류현진 선수가 활약하는 LA 다저스 팀이 계속 지니까 어떤 한국 팬은 팀 이름부터 바꾸라고 했습니다. LA 다저스(Dodgers)란 팀 이름의 뜻은 ‘LA 날쌘돌이들’이란 뜻인데 그 영문 발음이 한국말로 “다 졌어!”란 말과 비슷하니까 그 이름 때문에 다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새는 이길 때가 더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을 이름 바꾸는 것을 상당히 중시하지만 이름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3년 전 새벽에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깊은 감동 중의 저희 교회의 표어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믿고 인물이 되라!”는 표어입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3년 동안 큼만 나면 “예수 믿고 인물이 되라!”고 설교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매주 몇 천 명의 목사님들이 저의 설교를 열람하니까 지금은 한국 교회에 그 표어가 이한규 목사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그 날도 “예수 믿고 인물이 되라!”고 설교했는데 설교 후에 한 연로하신 권사님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80이 된 저희들이 무슨 인물입니까? 이제 저희들은 끝났어요.” 그 말을 듣고 그 주간 내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인물이 되라는 비전이 연로하신 권사님들에게는 너무 먼 비전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연로하신 분들과 꿈과 비전을 공유할 수 있을까요?” 그때 하나님이 주신 보조 표어가 “예수 믿고 인물을 만들라!”는 표어였습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예수 믿고 인물이 되라! 예수 믿고 인물을 만들라!”고 선포하니까 그 입술의 고백대로 앞으로 저희 교회에 인물이 나오게 될 줄 믿습니다. 인물이 되십시오. 아니면 사랑과 기도와 물질로 누군가를 밀어줌으로 인물을 만드십시오. 앞으로 천국에 갈 때까지 “인물이 되든지! 인물을 만들든지!” 둘 중의 하나는 꼭 하십시오.

4. 얼굴을 바꾸십시오
 얼굴은 ‘얼(정신)이 담긴 굴’입니다. 그래서 얼굴에는 대개 자신의 마음과 정신 상태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상태가 얼굴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얼굴 상태가 마음을 조절하기도 합니다. 힘들어도 기쁜 얼굴을 하면 점차 마음도 기뻐집니다. 그리고 그런 훈련을 계속하다 보면 기뻐하는 인상이 형성됩니다.

 얼굴은 존재의 발자취입니다. 얼굴만 봐도 그가 지나온 삶이 대략 파악됩니다. 자세히 보면 얼굴이 잘생긴 것보다 인상이 좋은 것이 훨씬 호감을 주고 인간관계를 견고하게 만듭니다. 결국 인상이 인생을 규정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 찌든 얼굴을 버리고 세월의 흐름을 극복한 작품 얼굴을 만들어 가십시오. 기품과 품격과 품위를 지키려고 하다 보면 점차 작품 얼굴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화가들이 그린 성자의 얼굴을 보면 그림만 봐도 기품이 느껴집니다. 어떻게 그런 얼굴을 만듭니까? ‘기쁨’이 넘치는 얼굴이 ‘기품’이 넘치는 얼굴을 만듭니다. 작고한 코미디언 이주일 씨는 자주 말했습니다.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못 생긴 것은 죄송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상이 나쁜 것은 죄송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얼굴에 기쁨과 감사와 평화가 넘치게 하십시오. 그러면 삶에도 기쁨과 감사와 평화가 넘치게 됩니다. 얼굴에는 과거와 현재의 인생도 그려져 있지만 미래의 인생도 그려져 있습니다. 인상이 바뀌면 인생도 바뀝니다.

< 역전 인생을 꿈꾸십시오 >

 이제 생각과 태도와 말과 얼굴을 바꿔서 인생을 바꿔 가십시오. 멋진 역전 인생을 꿈꾸십시오. 지금부터 생각과 태도와 말과 얼굴을 좋게 바꾸면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진짜 캡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고난과 시험의 과정에서 지치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구절에서 “포기하지 아니하면”이란 말은 “지치지 않으면”이란 뜻입니다. 지치면 지지만 미치면 미칩니다. 즉 열매가 없고 고난만 계속된다고 하면서 지친 마음을 가지면 정말로 지지만 열매가 눈앞에 없어도 미친 듯이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나가면 마침내 목표에 미치게(도달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 저의 아버님은 왼손잡이인 저에게 오른손을 쓰라고 교육했습니다. 오른손을 쓰는 것을 틀리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왼손잡이가 오른손을 쓰니까 행동양식에 여러 가지 혼선이 생겼습니다. 글씨를 쓸 때도 혼선이 생겼습니다. 특히 작문을 할 때나 논문식 시험을 칠 때는 자꾸 손에 신경이 쓰이니까 스트레스가 되고 머리에서는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표현이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창의적인 글을 쓰게 된 것은 연필을 손에서 놓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쓸 때부터입니다. 그때부터 머리에서 나온 생각대로 편하게 자판을 양손으로 쳐서 글을 쓰니까 손에 집중하지 않고 생각에만 집중해서 창의적인 표현들이 술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 자판이 글 쓰는 분야에서 역전의 역사를 만들어준 것입니다.

 저는 대중 앞에 서는 것을 싫어합니다. 특히 마이크를 손에 들고 말하는 것이나 손으로 제스처를 하는 것은 더 싫어합니다. 자연스럽지 못한 저의 제스처를 하면 보는 사람도 더 불안합니다. 왜 자연스럽지 못할까요? 마이크를 손으로 들 때나 손으로 제스처를 취할 때 어느 쪽 손을 써야 할지 매번 혼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몸의 선천적인 행동 프로그램은 왼쪽을 써야 편하게 되어 있는데 왼손을 쓰면 틀렸다는 생각에 오른손을 쓰려고 하다 보니까 고정된 틀이 생기지 않고 늘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선천적인 것을 인위적으로 고치면 행동양식에 혼선이 생깁니다. 물론 선천적인 것을 그대로 다 놔둘 수는 없습니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저도 손으로 글을 쓸 때는 오른손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성과 선천성의 존중도 중요하지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쓰는 현재의 문장 체계에서 왼손으로 글을 쓰면 어색하고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동양식에 혼란이 생겨도 후천적으로 바꿔야 할 것은 바꿀 필요도 있습니다.

 물론 후천적으로 바꾸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런 상황이 가져다주는 유익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천적인 왼손잡이가 오른손을 많이 쓰다 보면 한손 메커니즘보다 양손 메커니즘이 작동하니까 행동을 주관하는 소뇌가 더 발달되고 소뇌의 활성화는 대뇌의 활성화를 자극해서 창의성이 좋아진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인가를 손해 보면 그 손해 본 것을 통해 반드시 어떤 유익도 주십니다. 그래서 단점을 잘 극복하려고 하면 그 과정을 통해 역전 인생의 가능성도 커집니다.

 성경을 보면 ‘왼손잡이’란 표현이 오직 사사기에만 딱 두 번 나옵니다. 왜 사사기 기자는 에훗이 왼손잡이란 말을 굳이 기록했을까요? 그 기록에는 당시에도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장벽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런 장벽을 극복하고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된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왼손잡이란 표현에는 어떤 장벽도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 일에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서양 문화는 동양의 유교 문화와는 달리 왼손잡이에게 관대한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서양 사람의 왼손잡이 비율은 동양 사람보다 훨씬 높고 왼손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나 빌 게이츠도 왼손으로 글을 씁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서양도 왼손을 쓰는 것을 개인의 특성으로 좋게만 보아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어만 봐도 그렇습니다. 한국말에서 오른쪽의 ‘오른’이란 말과 옳다고 할 때 ‘옳은’이란 말은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오른쪽을 옳게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에서도 right이란 단어는 오른쪽을 뜻하는 ‘오른’이란 뜻도 있지만 옳음을 뜻하는 ‘옳은’이란 뜻도 있습니다. 영어 문화권에서도 오른쪽을 옳게 여겼고 왼쪽을 틀리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사상이 중시되면서 ‘왼쪽을 틀리게 여기는 사고’가 ‘왼쪽을 다르게 여기는 사고’로 발전한 것입니다.

 ‘다른 인생’은 ‘틀린 인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수평적인 비교의식을 버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고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남들이 보기에는 틀린 인생 같지만 그런 인생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멋진 일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현재 자신에게 주신 것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멋진 작품 인생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처럼 자신이 현재 가진 장점을 잘 살려서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를 이루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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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11 골로새서 하나님을 아십시오 골1:9-12  이한규 목사  2013-08-09 2122
9610 골로새서 오직 예수!”가 해답입니다 골1:1-8  이한규 목사  2013-08-09 2896
» 사사기 쓰임 받은 왼손잡이 삿3:12-30  이한규 목사  2013-08-09 2858
9608 사사기 남은 자 인생과 나머지 인생 삿21:13-25  이한규 목사  2013-08-09 2815
9607 사사기 말로 축복을 선도하십시오 삿21:1-12  이한규 목사  2013-08-09 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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