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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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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장우 목사 |
참고 : | 2001. 6. 10 늘푸른교회(창원시) http://evergreen17.80port.net/ |
출11장 1-10
마지막 경고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찌라 그가 너희를 보낼 때에는 여기서 정녕 다 쫓아 내리니 2백성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들에게 은, 금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3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국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에게 심히 크게 뵈었더라 4○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5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찌라 6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7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8왕의 이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서 내게 절하며 이르기를 너와 너를 좇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 하고 심히 노하여 바로에게서 나오니라 9○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찌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기사를 더하리라 하셨고 10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사를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바로에게 마지막 경고를 내립니다. 그 동안 아홉번의 경고와 재앙 속에서 바로만이 항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신하들과 백성들은 모두 모세를 두려워하고 모세가 증거한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일 마지막의 재앙은 바로의 장자까지 치시는 재앙인 것입니다. 장자란 자신의 기력의 시작이기에 자신을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로 인하여 애굽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게 되는데 어느 정도로 보내는가 하면 금과 은의 패물을 주면서 쫓아 내듯이 보내는 것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가야 한다는 것을 가지 못하게 막은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의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경고에서는 장자의 죽음입니다. 이러한 죽음앞에서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재물까지 주어가면서 빨리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바로의 강퍅함이란 마지막 재앙의 경고로도 돌이킬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퍅함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진노의 그릇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장자는 살아남습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장자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의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어떤 것은 진노의 그릇이고 어떤 것은 긍휼의 그릇인 것입니다. 이 두가지 뿐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담아내는 그릇이 있고,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진노의 그릇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당장 하나님이 부당하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어떻게 어떤 인간은 날 때부터 진노의 그릇이고, 어떤 인간은 긍휼의 그릇인가하는 질문입니다.
지난 주간에 공개신앙상담란에 질문이 올라온 것 중에 '유대인의 억울함'이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답을 하려고 다시 열어보니 지워 버렸습디다. 유대인이 억울하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면 왜 그 예수님을 죽인 욕을 유대인들이 들어야 하는가 하는 그런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시면 유대인만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 아니라 로마와 합동으로 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합동으로 죽인 것이기에 모든 인류가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자신들의 욕심으로 죽여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을 드러낸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심판중에서 어떤 자들은 진노의 그릇을 삼으시고 어떤 자들은 긍휼의 그룻으로 삼으시는 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무엇이라고 왈가왈부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할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을 죄인이 아니라고 가정할때만 그렇겠지만 이미 죄의 권세아래 있는 인간입니다.
마치 바로의 권세아래 있는 애굽인들과 같은 것입니다. 개인적으로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좋게 대할 수 있다고 하여도 바로의 권세아래 있기에 불가능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재앙은 바로의 권세를 직접적으로 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로를 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구별하여 내시고 바로의 권세 아래 있던 자라도 이스라엘에 편입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경고에 이은 마지막 재앙이란 장자의 죽음을 통하여 도장을 찍듯이 구별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지막 재앙은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심판이십니다. 아홉번 까지의 재앙도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재앙이지만 자연물을 가지고 재앙을 내리신 것이지만 마지막 재앙은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시러 오시는 것입니다. 4절을 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으로 내려가리라" 하나님께서 밤중에 애굽으로 내려 가리라는 것입니다. 밤중에 나온 이스라엘입니다. 유대인의 절기중 밤에 일어난 유일한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캄캄한 애굽에서 출애굽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출발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나온 것도 역시 죄와 사망이라는 캄캄함 속에서 구출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밤에 친히 하나님께서 애굽에 가셔서 장자를 죽이신다는 것입니다.
5-6절입니다. 바로의 장자로부터 멧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 그리고 모든 짐승의 처음 난 것이 죽을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애굽 전역에 전무후무한 곡성이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을 학대할 때에 그들은 잔치 하였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탄식과 한숨소리가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니 잔치소리는 통곡소리로 바뀌고 통곡소리를 잔치 소리로 바뀌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사람이나 짐승에게 어느 누구도 입도 벙긋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절대 안전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하는 줄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고이었고 이 경고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세상도 하나님께서 경고의 나팔을 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들이 계속하여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라면 역시 이 세상에 대하여 경고를 하는 자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마치 요나가 니느웨 성으로 가서 이 성이 망한다고 외친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경고의 나팔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을 믿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경고의 나팔을 불겠습니까?
사도행전 10:42-43절입니다.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서 증거한 내용입니다. 누가 산자와 죽은자의 재판장이라고 증거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심판이 아니라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 하는 고백을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 있는 자와 이미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것도 되지만, 예수님을 기준으로 산 자와 죽은 자가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산 자요, 예수님밖에 있으면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출애굽의 말씀에서 여호와께서 친히 애굽에 들어가셔서 애굽인과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애굽인에게는 죽음이요, 이스라엘에게는 개도 감히 짓지 못하는 안전입니다. 이러한 구별이 물론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구별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사는냐 죽느냐의 구별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행하신 그 심판의 권세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할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심으로 여호와의 권세를 가지고 일하시는 분이 지금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께서 앞으로 이 세상에 심판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에 통곡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고 기뻐 찬송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이미 출애굽기를 통하여 계시 하셨고 또한 선지자들이 증거하였으며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그 제자들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주님께서 자기의 종들을 통하여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 말씀을 거절하는 바로- 모세의 분노, 8절)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승리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승리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리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1:2-3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인들에게 은과 금패물을 구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의 400년 동안의 노동의 대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예가 무슨 대가가 있겠습니까? 죽도록 고생하고도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인으로부터 패물을 받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와 여호와의 전쟁에서 바로가 진 것입니다. 모세가 증거한 여호와를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데 하다가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심으로 인하여 주어지는 전리품으로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승리의 모습을 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사람에게서 호감을 가지도록 하나님께서 조치를 하시고 또한 모세가 바로의 신하와 백성들에게 심히 크게 보인 것입니다. 처음에 모세가 바로앞에 섰을때에는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 할수록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니 이스라엘의 백성뿐만이 아니라 애굽의 신하와 백성까지 두려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애굽이 진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로 패물을 가지고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더 근원적으로 보자면 이미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창세기 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로 나오리라"
이러한 은, 금이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고 그 승리의 진리품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 졌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어떻게 사용 하였습니까? 두가지로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는 금송아지를 만드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성전을 만드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볼 때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은 것입니다. 영생을 선물로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에베소서4:7-16절입니다. 7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그러므로 이르기를 衁)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1)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2)사랑 안에서 3)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바로의 권세에 붙들려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내셨듯이 사망의 권세아래 있던 자들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이꿀어 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에게 모든 것들을 은사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은사로 모든 것을 주심은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의 가진 것들을 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들자는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은사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날마다 주님의 은혜안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도움을 입어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또한 모든 것을 은사로 허락하심으로 지금도 주님께서 자기의 몸을 돌보시고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 가지 아픔과 고난이 따릅니다. 성장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고 확실하게 주님의 머리되심을 인하여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금송아지를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소명이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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