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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위하여 기도할 때

마태복음 김남준 목사............... 조회 수 1985 추천 수 0 2013.08.20 17: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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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44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10-08-29 http://www.yullin.org 

원수를 위하여 기도할 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I. 본문해설

 

본문 말씀은 넓게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이르는 산상수훈에 속해 있고, 좁게는 팔복 이후에 전개되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삶에 대한 첫 번째 강론 부분에 실려 있는 말씀입니다. 특히 이 마태복음 5장은 이신칭의의 교리를 주장하는 개신교도들에게 적잖은 시험거리가 되어왔습니다. 왜냐하면 5장뿐만 아니라 6, 7장 여러 곳에서 마치 행위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같은 암시들이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은 5장은 천국백성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강론하고 있습니다. 팔복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의 정체성은 내면의 세계가 변화된 사람들이고,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은 곧 빛이요, 소금이며,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이 세상 속에서 이러저러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와 화해하고 용서하는 문제도 나오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마음으로 이미 간음하였다는 새로운 율법의 제시들도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당신이 구원을 이루신 이후에 신약 시대에 전개될 율법의 시현은 구약 시대나 혹은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지키던 그 율법과는 다른 종류의 새로운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즉, 외적으로 이런저런 율법을 지킴으로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율법의 성취가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영적인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한 자가 될 때에 그는 심령이 가난한 자이고, 그는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애통하는 자이며, 심지어 자기의 원수를 향해서라도 마음에 온유함을 유지하는 사람, 또 이 세상에서 먹고 입을 것과 세상의 지위가 주어져도 그것으로 배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면에 변화된 질이 그의 인격에 영향을 미치고, 그의 인격에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삶이 바로 예수님이 천국 시민의 생활이 이러해야 된다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제시한 내용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당신이 이 세상에 새로운 율법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오셨는데 그 새 율법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변화된 삶의 질로부터 흘러나오는 착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때문에 믿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유익을 누리게 되어서 그의 선행에 참여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영향이 미치게 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5장의 내용입니다. 위와 같이 천국 시민의 생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 중에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II. 삶에 묶이는 기도

 

기도의 문제가 실제적인 삶의 윤리 문제와 관련되어서 우리에게 제시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삶에 묶이는 기도생활을 보게 됩니다. 본문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이 말씀은 문학적인 구조로서 병행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이나 잠언에 많이 쓰인 문학적인 기법입니다. 즉 원수가 A라면, 핍박하는 자는 A'이고 사랑하라가 B라면 기도하라는 B'가 됩니다. 이처럼 시어적인 묘사로서 제시된 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는 말씀은 사실상 동일한 말씀의 반복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서 원수는 바로 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변화를 받아서 영적으로 새로운 삶의 질을 유지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를 박해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A. 기도는 마음의 활동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기도와 짝을 이루어 원수를 사랑하라는 간곡한 권면을 하고 계실까요? 그것은 기도가 마음의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미움과 사랑, 분노와 감동과 같은 모든 정신작용은 마음을 자리로 해서 깃들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올리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의 기도는 항상 매우 힘들게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말씀 묵상이나 경건서적 읽기, 은혜로운 찬양, 혹은 성도의 교제를 통해 마음을 하나님 사랑의 정서로 따뜻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제야 우리의 기도는 훨씬 순발력이 있고, 간절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더불어 생각할 것은 무엇이 우리의 마음에서 기도의 은혜를 빼앗아 가버리는지 찾고, 그것을 마음에서 물리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정화되고 흘러갈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이렇게 흘러갈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런데 장애물이 생겨서 기도할 수 없게 되면, 그것들이 우리 마음에 걸리게 되고, 전에는 기도를 안 해서 능력이 모자랐는데, 이제는 기도를 할 수 없게 되니까, 마음에 각종 악과 욕망들이 솟아나서 그 자체가 커다란 힘이 되어 마음과 삶 자체를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

 

교회에서 이 일 저일로 열심히 봉사하던 사람이 어느 날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주저앉을 때, 어떤 사람들은 갑자기 그런다고 하지만, 그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이미 마음 안에서 기도가 사라지면서 그를 밀어낼 수 있는 강한 힘들이 형성되어 간신히 버티고 있던 그리스도인의 삶의 형식까지 붕괴시킨 것입니다. 급기야 교회도 안 나오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도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것들을 치우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가 마음의 활동이라면 마음지킴이 우리의 기도생활을 풍성하게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지침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마음은 누가 지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우리입니까? 성경은 이상하게도 이것을 둘 다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네 마음을 지켜라.”고 명령합니다.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선택은 어떠한 경우라도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더 넓은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보면 그 선택도 결국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영향을 받는 것이지만, 인간은 어떤 경우에나 누구에게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선이든지 악이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선한 일의 선택은 내가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실행할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가 옳은 것을 선택하고 선한 일을 했다면 그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과 은혜를 주신 하나님 때문에 그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악한 것을 선택했다면 그 선택은 우리에게 전적으로 자유로운 것이고, 그리고 그 악한 일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이 우리가 자신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그 악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어떠한 비난도 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율법에 알맞은 의로운 행동을 하고도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기도를 해야 한다는 선택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실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여러 가지 장애가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는 곧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는 일에 방해를 받으시면서 기도라는 마음의 활동도 활발히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B. 기도는 사랑의 흐름

 

기도가 마음의 활동이라면 기도는 또한 사랑의 흐름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들의 기도가 오를 때에 가장 활발하고 아름답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참되고 진실하게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참되고 진실하게 사랑하는 그 뜨거운 마음속에서 기도는 날개를 달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영혼에 맞닿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육체와 이 물질 세계에 맞닿아 있습니다. 이 마음은 영혼의 기능입니다. 이 마음 안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결단하는 일들을 수행하게 됩니다. 또 우리의 육체를 통해 듣고, 냄새 맡고, 보고, 그리고 맛보고 또 접촉하는 것으로 많은 사물의 정보들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것들을 보면서 우리들은 분노, 사랑, 기쁨, 미움, 비참함 이런 감정들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에 대한 반복적인 경험은 영혼에까지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영혼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경향을 가지고 있을 때 마음은 모든 사물들을 하나님을 위하여, 위하는 방향으로 해석을 하게 됩니다. 성경과 학문, 교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끊임없이 감동을 받게 된다면 그런 반복된 사랑의 정동, 감동의 경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갖게 하고 영혼에 하나님 사랑의 성향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 마음은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기 쉽게 되고. 모든 만나는 사람과 사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려고 하는 성향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좋은 줄 알고 자꾸 쫓고 감동을 받게 되면 영혼은 악한 성향을 띄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이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관계하는 사람과 사물들에게도 악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경험주의자들은 바로 여기에서 멈췄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놀라운 창조적인 작용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육체로 보는 것이 없어도 마음 안에서 기억을 더듬어 우리에게 끊임없는 정동들을 일으켜 창조적인 연상을 하게 만듭니다. 묵상의 중요성도 여기에 근거합니다. 아직 성경을 읽고 있지 않아도 성경을 잘 외우고 있다면, 또 설교를 다 듣지 못해도 어떤 내용이 기억 속에 있다면 그것을 끌어내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은혜의 고결함을 상상하게 될 때에 우리의 마음속에는 마치 오늘 우리 주님을 만나는 것처럼 생생한 주님과의 만남이 경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묵상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마음이 끊임없이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언제든지 기도하기에 적합한 마음을 유지하게 됩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랑의 교통을 이룰 이때에 가장 기도의 움직임은 활발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이 마음이나 삶으로 하나님의 자기 회기적인 사랑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 동안에는 기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모든 것들이 소비되는 최종적인 목적이 우리에게 있다면 이것은 자신을 우상화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통해서 이웃을 향해 흘러가고 이웃을 휘돌아서 마지막에는 하나님 자신 속으로 회귀하여 어느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고, 커다란 하나님의 축복의 흐름 속에 있을 때에 우리는 그 속에서 당신 자신이 복된 하나님이 되시기 위한 한 통로가 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기쁨입니다. 바로 이 사랑은 그런 하나님의 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흐르게 하고 마지막에는 그도 나도 저도 함께 하나님 안에 있음을 실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은 일체입니다. 기도의 영은 신자가 하나님 사랑의 영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 가장 풍부하게 역사합니다. 왜냐하면 두 영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곧 사랑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도 사랑의 영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성령은 또한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사랑하게 하시는 성령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을 보면 ‘사랑하라’, ‘아가파테’라는 명령이 ‘기도하라’는 명령보다 앞에 나옵니다. 여기서 ‘사랑하라’는 여러분이 잘 아는 아가페 명사의 변형입니다. 인간들 사이에 흐르는 육욕적인 사랑이 아니라 순수한 아가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여기서 말하는 그 이웃은 바로 원수입니다. ‘에크도로스’로 되어 있는데 ‘원수들’이라는 복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부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원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원수는 한 사람을 속속들이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상대방이 어떻더라도 무조건 미워합니다. 그것이 원수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고 오셔도 속속들이 싫어하던 사람들이 우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때 하나님 앞에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원수에 대한 감정이 성경에서 미움이라는 단어로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움을 살인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속속들이 미워하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해 주랴?”하고 물어도 대답은 하나입니다. “내가 없으면 돼.” 그런데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 그를 없애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내가 가진 힘으로 그를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유일한 방법이 바로 살인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기도 자체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다리이고, 교각들이 그 물속으로 내려져 있습니다. 영적인 뿌리들입니다. 물이 흘러가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복과 은혜들이 흘러들어 갑니다. 이렇게 우리를 통해서 상류에 모인 물들이 하류로 내려가면서 고기들을 살게 하고, 생태계를 살게 하고 마을 아낙네들이 와서 거기에서 소라도 줍고, 빨래도 하면서 마을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막히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복이 우리를 밀어버리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서 솟아나는 악의 힘이 우리 자신을 확 밀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골격을 무너뜨려버리고 마지막에 상판처럼 얹혀 있는 그 다리를 붕괴시킵니다. 그래서 우리 삶 자체를 무너뜨리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한 사람이 이웃에 대해서 악을 행할 때 악을 행하는 그 사람은 악을 당한 이웃보다 더 나쁜 것을 이미 그 마음속에 당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폭행하거나, 누군가에게 폭언을 퍼붓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속이거나, 이웃에게 이웃의 행복을 짓밟는 어떤 일을 했을 때 최대의 피해자는 그것을 행한 자기 자신입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그의 영혼과 마음이 부서지고 짓이겨지는 피해를 이미 본 것입니다. 똑같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웃에게 선을 행할 때 그 선의 최고의 수혜자는 선한 행실을 제공받은 이웃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악을 행하고 큰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합니다. 어느 날 찾아가서 “내가 너를 미워했던 것, 잘못됐다는 것을 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에게 용서를 빌고 나도 너를 용서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당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의 안에서 끊임없이 마음의 활동을 하는 동안 망가진 많은 것들을 치유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적의를 품은 사람들을 용서하라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용서는 사랑이 흐르게 하고 사랑은 기도가 흘러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III. 기도에 묶이는 삶 : 미움을 버리라

 

우리는 결국 기도에 묶이는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있는 미움,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원수 된 감정들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원수를 미워할 때 우리의 마음 안에 일어날 그 재앙을 아시는 주님이 우리가 그렇게 미움 속에서 우리의 기도의 영이 마르고, 은혜의 영이 소멸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충고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알았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방법은 주님이 돈을 많이 주시고, 출세시켜 주셨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큰 죄에서 그들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의 경험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무한한 깊이와 끝없는 넓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마음으로 깊이 미워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용서하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아주 표독스럽게 항의하던 것들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는 조금 주시고 왜 나보고만 죽으라고 하십니까?’ 내 원수를 주님이 나보다 더 사랑하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나중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고 나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의 원수를 나보다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를 훨씬 더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속을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더러 ‘져라.’고 명령하시고, ‘꺾으라.’ 고 명령하시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방식이 어떤 방식입니까?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펑펑 울면서 회개했더니 하나님이 ‘용서’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서를 했다가 미워했다가 그러신 분이시겠습니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택되었을 때 이미 하나님은 영원 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등질 것도, 용서할 것도 주님이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사랑하고 계셨음에도 그 사랑을 모르다가 우리가 회개를 하게 되니까 비로소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 예전부터 사랑했다는 것이 커다란 감격으로 경험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감격적인 복음의 사실을 로마서 5장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말입니다.

 

마음으로 깊이 용서하고 사랑해 주십시오. 그때 우리의 기도는 흐르게 됩니다. 사랑의 통로가 막힐 때 기도도 함께 막힙니다. 이런 것을 해결하지 않고 아무리 기도하려고 몸부림쳐도 기도는 허공을 치는 것 같고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것 같은 차가운 거절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가 하나님 사랑의 통로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또 그래서 우리의 삶이 기도와 나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 혹은 우리가 옳은데도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먼저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우리의 원수들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 큰 사랑을 경험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IV. 결론 : 기도하기 위하여

 

결론적으로 우리는 기도하기 위하여 우리와 우리의 원수들조차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미워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핍박할 수밖에 없는 저들을 변화시켜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닫힌 기도의 문을 열 때 제일 먼저 마음에 이런 원수와 미움들을 품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악을 행하거나 미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마음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고, 그때에 여러분들의 닫혔던 기도의 문도 열려 하나님의 사랑이 기도와 함께 흐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해서 기도생활을 회복하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01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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