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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36: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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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10-11-21 http://www.yullin.org |
바다를 지나게 하신 하나님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3-14).
I. 본문해설
시편 136편은 시편 가운데 가장 즐겨 암송되는 감사시 중 하나입니다. 13-14절에서 볼 수 있듯이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로 찬송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회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II. 홍해를 기르신 하나님
특별히 시인은 이스라엘 역사상 한 가지 사건 즉,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물 가운데를 건넜던 사건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급기야 애굽의 모든 초태생이 죽임을 당하는 무서운 심판까지 더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을 탈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깊고 넓은 홍해가 그들을 가로막았습니다. 바로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준 것을 후회하여, 병거 600승을 명령하여 추격할 것을 명령했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막으시고, 어두움을 드리우시지 아니하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작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기적을 보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결치는 홍해의 파도 앞에서 두려워 떨며 모세를 원망했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III. 바다를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홍해 바다를 가르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자연 과학으로 설명하며 축소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셨고, 좌우에 바닷물이 벽같이 섰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이로 난 땅을 건너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A. 갈라진 바다 사이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이 없고, 모세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데도 이런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당연히 신앙생활에서 믿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음에 그렇게 위대한 능력이 있는 것도 하나님이 그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겠다는 우리와의 언약 관계가 토대가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들이 믿음으로 간구하지 않았을 때도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심으로 믿음의 근거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십니다. 그와 같이 불신앙으로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눈앞에서 하나님께서 보란 듯이 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바다 가운데로 난 마른 땅으로 행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 기적의 갈라진 바다 사이를 지났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가리켜 신약의 교회가 받을 세례를 예표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오늘날 신약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라진 바다를 통과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찢기신 육체 사이를 지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B. 견고한 땅을 밟고 지나게 하심
아무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바다는 벽처럼 높이 서 있고 그 사이로 난 땅을 지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유히 홍해를 건넜지만, 뒤쫓아 오던 애굽의 군사들은 감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할 수 없었습니다. 출애굽기에는 하나님이 바다를 가르신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신 바다 밑의 육지의 길이 ‘마른 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백 만 명은 족히 넘었을 백성들이 함께 대열을 지어서 걸어가는 길이었으니 그 하중이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바다를 갈랐어도 바다 밑바닥이 진흙이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의 물기둥 사이에서 매장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벽하게 일하셨습니다. 바다는 벽처럼 세우시고 땅은 마른 땅이 되게 하셔서 수백만의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안전하게 건너도록 하셨습니다.
도대체 역사상 어느 백성들이 이런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였습니까? 도대체 왜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선대하셨습니까? 이 모든 구원의 은혜는 언약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은총이 구속으로부터 왔듯이, 그들이 받은 모든 은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언약 관계를 통하여 온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당신의 품으로 불러 주시는 크고 놀라운 은총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실 의무가 없으셨지만, 기쁨으로 언약을 맺으셔서 당신 자신을 의무로 묶으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한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온갖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면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래전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언약을 받은 이후로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변덕을 부리며 배반의 삶을 되풀이 하였지만 하나님은 시종일관 변함없이 언약적 성실하심으로, 자비하심과 선하심으로 이끄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이 위대한 기적은 바로 그렇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난관 앞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크고 위대하신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순간이 아로 새겨지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만나는 어려움과 환란의 때마다 과거를 회고하며 능히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서 일어난 놀라운 기적을 회상하듯이, 지난날을 회고해 보십시오. 주님도 모르고, 선과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죄악된 물을 먹고 마시며 살던 짐승과 같은 인간이 아니었던 사람이 우리 중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본 모습을 잊어버리고, 표독하고 모질게 주님을 대적하고 보란 듯이 악을 행하며 모든 사상에 주님이 없다고 부르짖으며 용감하게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찾기 위해 간절히 매달릴 때 우리에게 복음이 들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싫은데도 주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고, 우리는 마음에 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사람들을 통해, 복음의 말씀을 통해, 목회자를 통해, 심지어는 환경을 통해서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믿고 중생하고 회심한 이후에 비로소 그 은혜가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힘 주셔서 예수 믿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친히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끔 만들어 주셨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친히 당신의 위대한 역사를 우리 마음 안에 행하심으로 우리는 단지 아무 것도 보탠 것 없는 수혜자가 된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갈라 우리로 주님의 사랑으로 돌아오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 목적은 죄인인 우리를 감동시켜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죄와 불순종으로 손해를 입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는 그 모든 명예와 손해를 보상해 드리고 아버지의 마음을 풀어드리셨습니다. 그리하여 어찌하든지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이 아들의 피 흘리심을 통해 당신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그 마음이 화목케 되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께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진 바다 사이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났던 것처럼 우리는 갈라진 주님의 육체 사이로 난 새롭고 산 핏길을 걸어-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찢어진 휘장을 지나-거룩하신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의나 교육, 선행이나 사상, 우리의 공로로 건널 수 없는 그 깊은 수렁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건널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만난 누구나 쓸모없는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크고 넓으신 사랑을 알고, 벌레 같은 인간이 이미 만세 전부터 주님의 언약 안에 있는 백성들이었음을 깨달았기에 주님을 찬송하고 또 경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C. 모든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
오늘 설교를 듣는 여러분 가운데는 주님을 믿고 살아오는 길이 설교자가 말하는 것처럼 항상 행복한 길은 아니었다고 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사실입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후에 마냥 평탄한 길을 걷기만 했던 것이 아니듯, 기적적으로 바다를 지나 세례를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된 이후 우리 앞에 펼쳐진 순례의 길도 만만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이 있다면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선한 뜻을 세웠는데, 세상은 아직 악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이 당한 고난, 혹은 우리가 신실하지 못하여 하나님을 배반하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 품으로 돌아오도록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시기 위해서 때리신 회초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양쪽 모두 언약 백성들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니 하나님 앞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위해 고난이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줄 아십니까?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일백 번 주님을 위해 죽고 싶다고 고백해도 주님은 그런 목숨을 취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 뜻대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자기를 구원받게 하시고 이 세상에 살게 하시는 주님의 그 은혜의 깊이와 넓이를 알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소명에 사로잡힌 사람들만이 허락받을 수 있는 그 고난에 여러분들을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옥 속에 갇힌 바울이 일생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예함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모하던 그 영광스러운 일들을 허락해 주셨기에 사도들은 핍박을 당하고 매질을 당할 때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고난을 견뎠습니다.
과연 죽을 때에 사도바울처럼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 얼마나 될까요? 그런데 주님을 위해 고난 받은 사람들은 바로 주님이 이런 흔적을 아로 새겨 주기 위해서 특별히 부르셔서 당신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교회와 잃어버린 영혼들, 병든 영혼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게 하셨으니 이 어찌 감사의 제목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만약 고난과 시련이 우리의 불순종과 죄 때문에 당한 것이라면 우리는 더욱 많이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버리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면 우리가 주님을 거스를 때에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권고하시겠습니까? 불순종하는 우리에게 그래도 사랑의 회초리를 들어 모질게 때리심으로 마음을 변화시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주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당신 없이 고통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차마 보실 수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치시고, 목회자에게 탄식과 애원하는 마음으로 마음에 호소하시고, 사랑하는 지체들과의 교제를 통해 끊임없이 양심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그들의 사랑이 너무 크고 자기의 위업을 구하는 사심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도록 귀먹고, 볼 수 없도록 눈먼 자들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만약에 그런 자들을 편하게 내버려 두셨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당하는 고난과 끔찍한 시련은 주님의 신실하심의 또 다른 표현이요, 사랑의 또 다른 나타남입니다. 게다가 한 해를 돌아보면 주님이 때리신 것은 정말 아팠지만 때리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어루만지시는 위로는 때리실 때 맞은 상처보다 항상 컸습니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주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하며 방황하는 지체들이여, 오늘 이 시간에 갈라진 홍해를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금식하며 매달릴 때도 아니었고, 눈물로 회개한 때도 아니었는데 주님은 그들이 도망칠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제껏 여러분들을 인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찬송하고 그분께 순종할 때만 선대해 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할 때도, 심지어 주님을 원망할 때도 우리를 입히고 마시게 하시고 먹이셨습니다. 자기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모두 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만약 안 주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당장 필요치 않아서고, 이미 주셨는데도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불신앙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불만족스럽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에게 눈을 들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IV. 결론: 감사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받으실 최고의 추수 감사절 제물은 아름드리 곡식 단이 아니라 흩어져 버려진 것 같은 여러분의 마음을 이삭처럼 주워서 주님께 다시 드리는 것입니다. 1년 동안 일어난 모든 좋은 일은 주님의 은혜 때문에 일어났고, 나쁘고 가슴 아픈 일들은 모두 자신의 악함 때문이었다고 고백하며, ‘주님은 과연 의로우시다’고 찬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주님을 멀리 떠나지 않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시인처럼 ‘주께 가까이 함이 나의 복입니다.’라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주님만이 제 곁에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나쁜 일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언제나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다 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선한 길로 이끌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속으로 주님을 기뻐하지 않고 미워하였습니다. 그러니 욕망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베푸신 그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영혼과 육체를 돌보아 주신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모두 묶어 우리 주님 앞에 드리고 ‘이제 나의 참된 행복은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새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0-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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