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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blog.daum.net/kjeddh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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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어떻게 할 것인가?
마귀에게서 까지 온다는 조급함을 잠재우고 신학적 은총으로 해석되는 묵상은 재창조의 침묵이요 깊은 세계로의 진중한 탐험입니다. 그 속에서 만물의 창조주요 우리 구세주이며, 신성한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와의 교제를 나누십니다. 좀 더 깊고 본질적인 세계로의 침잠과 발견을 위한 묵상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묵상의 정의
성경에서 사용하는 묵상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행위를 되풀이하여 말하며 하나님의 법을 반추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자체에 대하여 깊고 넓고 충분히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이지요(시 119:97,101,102).
2. 묵상의 목적
묵상할 때 예수님과 친한 친구 관계의 상태로 들어갑니다(토마스 아 캠피스).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 속으로 들어가 그 자세를 편히 즐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편재)는 개인적인 찬란한 현실이 되며,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온 존재를 던져 교감하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때로 그 빛에 압도되어 한마디 말도 못할 수도 있고(계1:7), 영적 공간을 만들어서 그리스도를 마음속의 성소로 모실 수도 있으며, 그 속에서 영원한 성찬을 나누게 됩니다(계 3:20). 이것은 생명력 넘치는 현실을 삶 전체에서 실행하는 것이며, 움직이는 성소로서의 성품과 행위가 진척됩니다. 거기서 속사람이 신령하게 변화되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만끽합니다(롬 14:11).
3. 묵상의 특징
동양의 묵상은 마음을 비우기 위한 노력이지만, 기독교의 묵상은 마음을 채우기 위한 시도입니다. 동시에 성경적 묵상은 사색의 안식입니다(피터). 그 안에서 초연합니다. 그리고 초연을 넘어 집착으로 나아갑니다. 주위로부터의 초연은 하나님께 대해 더 집착하게 해줍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나님께 드리는 필요한 내적인 완전함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그렇다고 전문가들이나 밟아야 할 특별한 영역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가장 깊은 묵상의 세계를 한 사람은 그것이 대단히 단순하며, 노하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토마스 머튼). 정교한 기술을 요한다기보다는 정교한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묵상이 기독교인의 삶에 비현실적일 것이라고 보는 것은 기독교가 잊고 살아온 신앙 유산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묵상이 불건전한 도피의 형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건강하고 활발한 사회생활(공동체 생활)에 활력과 분별력을 제공하는 단초가 됩니다. 참된 경건은 사람을 세상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더 잘 살면서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묵상은 아주 실제적이며, 아주 세속적인 통찰을 낳습니다. 보다 훌륭한 시각과 균형을 가지고 평범한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묵상을 종교적인 형태의 심리학적 조종으로 보는 사람들은 인격자이신 하나님과 인격자인 하나님 자녀 간의 교통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오해를 낳게 됩니다. 묵상은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 들어가게 하며, 우리가 발견한 그 분 안에 거하며,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가까이 계시는,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분과의 만남입니다. 누군가를 통한 간접적 메시지를 받는 것보다(삼상 8:7) 하나님과 직접 말씀을 나누며, 하나님의 보편적인 제사장이 되어 모두가 지성소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의 일에 개입하신다면,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현재의 스승과 예언자로 아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묵상되는 자, 즉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불붙게 됩니다(앨버트).
4. 묵상을 위한 도구
우리는 상상력을 통하여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상상력은 그리스도인의 심상이라는 신성한 직분과 화려한 봉사를 하기 때문이다(알렉산더 화이트). 우리의 외관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존전에 나가는 것은 예수 자신이 보여주신 교육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명철만을 가지고는 숙고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궁리하며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아빌라 테레사). 상상은 우리의 생각을 고정시키고 주의를 집중시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지성을 취하여 거룩하게 하신 후에 그의 선하신 뜻을 위해 사용하듯이, 상상도 거룩하게 하신 후에 그의 선하신 뜻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상상은 하나님의 형상 중의 하나이며, 그리스도 구속의 영역은 상상까지 포함합니다. 지나친 상상이나 허망한 생각을 통제하면서 하나님을 좇아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앞에서 즐거워하고, 그의 진리와 길을 원하며, 이런 삶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력을 그의 뜻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맞도록 적응시키고 육화하셔서, 우리가 알고 이해하는 상상을 이용하여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르치십니다.
5. 묵상을 위한 준비
묵상은 실제로 묵상을 함으로써 배울 수 있습니다.
1) 묵상을 위한 적절한 시간
어느 정도 숙달된 경지에 도달하면 어떤 장소나 환경이나 시간대에도 묵상이 가능합니다(브라더 로렌스, 토마스 켈리). 그러나 하루의 일정한 시간을 공식적인 묵상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그렇다고 어떤 종교적 행위가 묵상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묵상은 우리 생활 전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묵상은 하루 24시간 일이며(살전 5:17) 하나의 생활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일을 하면서 마음을 빼앗기면 묵상의 준비가 되지 않습니다. 소위 거룩한 여가(Otium Sanctum)를 가짐으로, 즉 생활의 균형을 유지함으로, 하루의 활동 중 평화로울 수 있는 능력, 쉬면서 아름다움을 관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능력, 그리고 자기 자신의 보조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묵상하는 일에 성공을 거두려면 하루하루의 생활 일정에 대해 단호한 결심을 가지고 거룩한 여가를 추구해야 합니다.
2) 묵상을 위한 장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조용한 장소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전화기가 없고,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일정한 장소라면 정해 놓고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3) 묵상을 위한 자세
어디서나, 어느 때에나, 어떤 자세로도 기도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마음과 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즉 외적 자세가 내부 상태를 반영할 뿐 아니라 기도의 내적 태도를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편안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편안하고 주의를 산만하지 않게 하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앉은 자세는 가장 편하고 마음도 가장 힘이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등을 바르게 세우고 두 발은 바닥에 놓는 자세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을 펴서 받는 자세를 취합니다. 산만함을 없애기 위해 그리고 살아계신 그리스도께 주의를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는 것이 좋습니다. 때로 주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든지, 혹은 아름다운 나무나 어떤 식물을 내다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어떤 자세를 취하든지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고후 4:6)에 몸과 마음과 감정과 정신을 주의 집중하는데 둡니다.
6. 묵상의 방식들
기독교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창조주와 교제하고, 주님과 올바른 체험을 하는 방법을 추구해 왔습니다.
1) 성경에 대한 묵상(mditatio Scripturarum)
가장 표준적인 묵상의 방식으로서, 성경의 본문을 내면화하고 개별화하는데 중점을 두는 방법입니다. 기록된 말씀이 자신에게 말하는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전문적인 연구나 분석 및 자료를 얻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자신에게 전해지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분석하지 않고 받아들이듯이 마리아처럼 마음에 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본 회퍼).
본문을 피상적으로 넘기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자신의 내적 상태가 되도록, 한 본문을 갖고 일주일 전체를 묵상하기도 하고, 한 사건이나 한 비유, 또는 몇 구절이나 단어를 택해서 파고드는 것입니다. 이 때 오관(오감)을 사용하는 체험이 더 큰 도움이 됩니다(이그나티우스 로욜라). 즉 본문 속의 바다 냄새를 맡고, 해변의 소리를 듣고, 무리들을 보고, 머리 위의 태양과 뱃속의 굶주림을 느끼고, 공기 속의 소금기를 맛보고, 옷자락을 만져보는 것입니다. 상상을 통하여 그 현장에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되고, 그의 발아래 앉습니다(감정이입과 상상력). 말씀하신 상황으로 들어가서 그 속에 갇히고, 흡수되고, 몰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잊고 그 상황이나 말씀(구절, 단어)의 행위가 내부에서 저절로 흘러나올 때까지 합니다. 수동적인 구경꾼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로 이야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은 상상력을 가지고 성경을 펴서 세리가 되고, 탕자가 되고, 마리아가 되고 베드로가 됩니다. 그리하여 성경전체가 모두 자신의 자서전이 되는 것입니다(알렉산더 화이트).
2) 회상 혹은 전념
가만히 있으면서 재창조의 침묵으로 들어가 우리 생각의 단련들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개인이 갖고 있는 모든 염려, 분노, 두려움, 고민, 좌절감 등을 ‘손바닥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얼마 후에는 ‘손바닥을 위로’하여 주의 평안, 인내, 기쁨 등 필요한 것들을 보냅니다.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주님과 온전히 교제하고 사랑하도록 합니다. 어떤 암시가 오면 좋지만 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3) 창조에 대한 묵상
피조계를 통한 하나님 발견의 시간이라고도 합니다. 주의를 피조된 세계로 돌려서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꽃이며 나무의 아름다움과 대칭과 원근구도와 색감과 질감 등을 보고 느낍니다. 새소리와 바람과 동물들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 자연 속의 일부로 자신을 그곳에 놓고 조화를 이룹니다. 하찮은 행동 같지만 큰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전 11:7).
4) 시대에 대한 묵상
선지자적 관점을 얻기 위하여 우리 시대의 일어나는 사건들의 내적 의미를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이 형태는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갖고 있을 때 가장 잘 할 수 있습니다. 피상적이고 편향적인 마음을 버리고 이 시대의 사건들을 하나님 앞에 갖고 나아가 이들의 추이에 대한 선지자적 통찰을 구하도록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영적인 삶은 점진적으로 발전합니다. 영혼의 에베레스트 산에 도전하기 위해 인내함으로 한 가지씩 도전해 보면 가능하게 됩니다. 이러한 도전은 엄청나게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묵상은 생활방식입니다. 내적 깊이를 더함에 따라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게 됩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현재 어떤 종류의 묵상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2. 묵상의 범위와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 어떤 변화를 추구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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