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3.8.24(토)

동행  인우

장소  대청호반길4-1 신선바위길, 4-2고봉산성길

 

기독교인들에게 주일은 어차피 교회에서 보내기 때문에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휴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격주로 한 달에 두 번 쉬는 놀토는 그야말로 황금같은 날이지요. 주 5일제가 적용되어 매주 토요일마다 쉬는 공무원들은 '쉬는 날이 남아 돌아간다'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지만, 실제 매주 토요일마다 쉬는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은 아내가 토요일 하루 쉬는 황금같은 날입니다. 남부지방에 폭우가 내린다고 하는데 우리동네는 걷기에 적당한 날씨여서 점심을 먹고 차로 대청호수길 4-1코스 출발지인 신상동주차장으로 갔습니다. 4-1, 4-2코스를 모두 합쳐 9km 정도 되는 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갔습니다.
옛날 경부고속도로인데 옆으로 새 길을 내면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폐도로에 주차장이 있고 거기서부터 출발입니다. 대청호수를 바라보며 강아지풀이 우거진 방죽길 위를 1.5km 정도 걸은 다음 야트막한 산길을 걸어 신선바위까지 올라가면 4-1코스가 끝나고 다시 내려오면서 길을 따라 금성마을 정류소에서부터 4-2코스가 시작됩니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상촌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왼쪽 마을길로 올라가 쭉 쭉 쭉 올라가고 또 올라가... 고봉산성 안내판 앞까지는 차가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고봉산 정상까지 500m라고 가리키는 표지판 하나 달랑 있고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한 20m 올라가니 갑자기 길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여긴가? 저긴가? 길을 찾지 못하고 근처에게 30분 정도를 뺑뺑 돌다가 결국 발에 상처만 입고 그냥 내려왔습니다.
지금까지 대청호수길을 모두 7코스 돌면서 3번을 길을 잃고 헤맸습니다. 길을 걸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길만 만들어놓고 관리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번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길을 내면서 다녀야 했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 만든 길이 잘 관리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즐길텐데 말입니다.  ⓒ최용우 2013.8.24

 2. 트랭글gps로 찍은 경로 -오른쪽 호수 물 위로 쭉 뻗은 직선은 방조제 위를 걸은 것입니다. 지도에는 제방 표시가 안 되어있네요.

 3.12:42   신상동 주차장 나무 그늘 밑에 차를 세워놓고 안내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드디어 출발입니다. 2

 4.오늘 걸을 길은 4-1길과 4-2길입니다. 갔다가 되돌아오는 코스입니다.

 5.도로 오른쪽으로 진입 차량은 진입금지?

 6.8월의 열기가 아직 다 빠지지 않은 날이라 약간 햇볕이 따가운 날씨입니다.

 7.12:47 100m 정도 걸어 나가면 호수가 보이고 4코스와 5코스 갈림길이 나옵니다. 오늘은 4코스 신선바위 방향으로...   .

 8.평소에 물에 잠겨있을 때가 많은데 이렇게 풀이 자랄 정도면 올해 많이 가문게 맞군요. 푸른 풀밭을 뛰어가며 영화 찍고 싶어집니다^^ 

 9.멀리 오늘 올라갈 고봉산이 보입니다.

 10.한장 찍고 가자니깐요. 오늘의 모델 "인"

 11.호수가에 학과 오리들이 많이 있었는데 사진으로는 잘 안찍히네요. 핸드폰 카메라의 한계입니다. 

 12.강아지풀이 우거진 제방을 따라 걷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걷기에 좋은 길입니다. 

 13."사진을 찍겠습니다" 하면 걷다가 그냥 뒤돌아서는 오늘의 모델 .. 그냥 아무 생각도 표정도 없군요.

 14.뒷모습 -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5. 방조제 길만 따로 찍어 보았습니다.

 16. 길을 걷는 사람의 노고와 길을 만든 사람의 노고는 절대로 같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항상 길을 만든 사람보다 길을 걷는 사람이 더 많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이외수

 17. 하늘과 호수와 사람...

      이보다 더 한가롭고 아름답고 행복할 수가 없구나.

      이렇게 좋은 시간에 머리속에 복잡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18.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 내 마음도 잔잔히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19.강아지풀 - 머리가 강아지 꼬리를 닮아서 복실복하다고 해서 '강아지풀'이라 부릅니다. 

 20.옹기재 - 방조제 끝부분의 지명이 '옹기재'인데 왜 옹기재일까? 옛날 옹기를 만들던 곳이거나, 모양이 옹기를 닮았거나...  

 21.01:02 방조제 길이 끝나고 드디어 산길로 접어드는데 길이 안 보일 정도로 풀이 우거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안 다녔다는 뜻이며, 우리는 풀을 치우며 길을 만들어 가며 앞으로 전진했습니다.

 22.환삼덩굴 -살갖에 스치기만 해도 피가 나오는 온통 환삼덩굴 세상입니다. 다행히 아내는 긴 바지와 긴 소매옷을 입고 왔지만...나는ㅠㅠ .

 23. 이질꽃 -이질(복통 설사 장티프스와 비슷한 증상)이라는 병에 특효약으로 쓰이는 풀꽃입니다.

 24.풀밭을 빠져 나가면 바로 키가 큰 참나무 숲을 지나가게 됩니다. 

 25.오래된 버드나무숲길 - 물을 정화시킨다는 버드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습니다.    

 26. 버드나무 주변에 팔뚝만한 잉어가 여러마리 죽어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27.금성마을길로 올라 타 왼쪽 위쪽으로 올라갑니다. 금성마을 길 좌우로 큰 포플러나무와 벚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산 전체가 50여년쯤 되는 벚나무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봄에 벚꽃이 필 때는 대전지역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벚꽃단지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습한지역이라 나무마다 이끼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28. 금성마을 입구의 키가 큰 50년생 느티나무 - 여기서 오른쪽 차단막으로 막아놓은 좁은 길로 들어섭니다.

     자세히 보니 신선바위 가는 길 알림표지판이 떨어져 바닥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29. 홍단딱정벌레 한마리가 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우리앞을 가로질러 갑니다.

 30. 똥벼락이라는 분은 인터넷에서 매우 유명한 분이다. 여기서 태그를 보다니...

      지난번에는 대둘 1코스에 애인이랑 걸었던 흔적을 남겼던데 여기도 애인이랑 함께 왔을까?

 31.01:38분 드디어 4-1코스 종점인 신선바위입니다.

▼ 비교적, 분석력이 돋보이는 참조카페를 인용합니다(대전동방문화진흥회)

대청동 비룡리 비룡봉(혹 신선봉)에 있는 신선바위다. 올해가 임진년 흑룡의 해이므로 비룡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는 뜻에서다. 이곳은 과거 역학자로 이름난 야산(也山) 이달(李達)선생의 자취가 서린 곳이다. 비룡마을에서 추동리 가기 전 언덕으로 오르는 길옆에 신선봉 유적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걸어서 10분도 되지 않는 곳, 산 정상 조금 아래에 역시 ‘신선봉유적지(기념물 제32호)’로 표시한 간판이 세워져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소롯길에도 휴식할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고, 대청호반길임을 알리는 표지들도 부착되어 있다. 과거에 이곳을 찾느라 헤맸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드디어 정상을 오르니 신선바위가 우리를 반기듯 했다. 산꼭대기에 세워져 있는 큰 바위는 그대로 집 모양이다. 판석(板石)형태의 거대한 바위가 지붕처럼 올려져 있고, 석축 내 중앙부위는 절반이 갈라져 겨우 한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통로가 만들어져 있다.

고색창연한 집채만한 바위들이며 주변의 경관을 보면서, 회원들은 마치 신선이 사는 곳에 온 것 같다며 탄성을 자아낸다. 사실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신선바위라 불렀고, 바위의 영험함 때문에 사람들은 기자(祈子)나 구복(求福) 목적으로 기도를 올리며 신성시 여기고 있다.

통로 가운데 한쪽 면에는 ‘佛(불)’자가 크게 주서(朱書)되어 있고, 맞은 편에는 흘려 쓴 ‘호신발(號神發)’과 그 옆에 해서체로 ‘惺惺主人翁 皇皇上帝位(성성주인옹 황황상제위)’라 음각되어 있다.

범상치 않은 이 명문(銘文)의 제작자에 대해서 세간에 억측이 구구하지만 오래전부터 야산선생의 제자들은 이곳을 성지로 삼고 출입해 왔었다.

‘호신발’은 야산선생의 필체고, 옆의 각자는 송대오재(宋大悟齋)선생을 지칭한 것이다. 두 분은 사돈지간이 되는데, 대오재선생은 이름이 을규(乙奎)로 은진송씨며 추파공 후손이다. 필자가 야산선생의 제자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바위에 새겨진 글은 대오재선생이 제안하고 야산선생이 새겼다 한다. 이곳 비룡마을은 대오재선생의 고향이고, 비룡봉을 포함해서 주변이 송씨 문중의 소유지인 관계로 야산선생은 이곳에 ‘호신발’이라는 글자를 刻印(각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오재선생을 두고 당시 사람들은 심성이기(心性理氣)를 통한 사람이라 말했다. 그는 구한말 지리산 청학동에 거주하였던 문도사의 수제자라 하는데, 문도사는 구한말 4대 기인[문화재, 김일부, 강증산, 박만수]중의 한 사람으로 지리산 청학동의 선맥을 이은 사람이다.

‘성성주인옹’이 바로 대오재의 별호가 되니, ‘주인옹’은 이 몸의 주인이 되는 본래의 마음을 가리킨 것이고, ‘성성’은 깨달음의 뜻이다. ‘성성주인옹’ 옆에 ‘황황상제위’라 쓴 글에 대해서는 표현하신 분의 경지를 감히 엿볼 수 없지만 아마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이룬 뜻에서 대귀로서 표현한 것이리라. 하여간 당시 사람들은 선생을 ‘성성주인옹’이라 불렀고, 선생의 집앞 현판에 ‘성성주인옹 황황상제위’라는 글이 걸려 있었다고 하는 바, 선생의 별호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호신발’은 언제 새긴 것일까? 필자는 이 글을 야산선생이 새겼다는 말만 들었을 뿐,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다만 선생의 문집(文集)을 보면 호신발에 관련한 시가 두 편 있는데 모두가 이 바위에 새겨진 ‘호신발’과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 중 ‘井田付食水盆(정전부식수분)’이라는 제하(題下)에 쓴 시를 소개하면,

「一簣石井作崑崙(일궤석정작곤륜) 한 삼태기 돌우물에 곤륜산을 지었는데

天遺黃河水滿盆(천견황하수만분) 하늘이 보낸 황하수 동이에 가득하네

若待飛龍神號發(약대비룡신호발) 만약 비룡신이 호령 발하기를 기다린다면

爲雲爲雨入仙門(위운위우입선문) 구름 되고 비가 되어 선문에 들어가리 」

이 시는 6.25사변(음5월 10일)이 일어나기 한 달 전(음4월8일)에 지은 시다. 안면도 개락금(開洛金:정당리)이라는 곳의 집 앞 우물 안에 물동이와 그 속에 촛불을 켜놓고 선생은 고천(告天)한 적이 있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작시한 것이다. 생각건대, 정전(井田)이란 오덕지(五德地)를 말하니 5.10의 의미가 있다. 음력 5월 10일은 전쟁이 일어난 날이니 첫 구절의 돌우물(石井)은 전쟁이 일어날 것임을 예견한 것이고, 둘째구절의 동이에 물이 가득 찼다는 것은 세상을 살려야 될 때가 무르익었다는 뜻이겠고, 셋째구절은 전쟁기간을 잘 참고 때오기를 기다리라는 내용 같고, 넷째구절은 후천선경의 태평시대가 되리라는 뜻이리라. 뜻이 이러하다면 이 시에서 나오는 ‘신호발’은 전쟁과 관련해서 지으신 것 같다. 다른 시에서 나오는 ‘號神一發(호신일발)’의 글도 전쟁 중에 지은 시에서 나온 것이다.

혹시 이 시에서 ‘비룡’은 비룡산을 가리키고 ‘신호발’은 바위에 새긴 호신발을 지적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신선바위에 새긴 ‘호신발’은 6.25동란의 전후에 즈음해서 새긴 것이 아닐까? 그리고 ‘호신발’ 속에 동란을 무사히 넘길 수 있는 비책(秘策)을 담지는 않았을까? 우둔한 필자로서는 억측아닌 억측으로 이리저리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꼭 전쟁에 한정해서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되겠고 아마도 ‘호신발’ 세 글자 속에는 무궁한 뜻이 담겨 있으리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주역』에 ‘음양불측(陰陽不測)’을 신(神)이라 표현했다. 두 분의 신도세계(神道世界)를 우리 같은 범인이 어찌 짐작하랴!  

 32. 카메라를 자동 타이머로 맞추어 놓고 10초 안에 저 위까지 올라가야 한다. 첫번째 시도는 실패.

 33. 나무꾼은 다섯번 시도 끝에 10초 안에 달려가서 신선같은 아내 옆에 앉는데 성공했다는 전설입니다. ㅋㅋㅋ

 34. 신선바위 위에서 바라본 대청호

 35. 신선바위 뒤쪽에는 이런 바위도 있습니다.

 36. "호신발" 하고 외치며 통과해야 한다는 바위 틈새기...

      뚱뚱한 사람은 낑겨서 지나가지 못한다지만 아직까지 저는 충분합니다. 

 37. 바위에 난 이 둥근 구멍은 무슨 용도로 사용했는지 궁금합니다.

 38. 신선바위 뒤쪽에는 이런 잘생긴 바위도 있습니다.

 39.신선바위를 배경으로 아내가 한장 찍어 주데요ㅎㅎ ...  

 40. 신선바위에서 다시 금성마을로 왔던길 되돌아 내려가야 하는데 우리는 반대편에 새로 난 좋은길을 따라 큰길로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면서 찍은 칡꽃. 향기가 너무 좋습니다.

 41.02:14분 드디어 큰길까지 내려왔습니다. 이제 이 길을 따라 금성마을 정류장까지 가야 합니다.

 42. 아내의 걷는 뒷 모습을 찍어봤시용

 43. 길 가에 불두화(佛頭花)가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수국을 닳았지만 수국이 아닙니다.

 44. 02:25  금성마을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대청호수길4-2코스 시작입니다. 다시 도로를 따라 500미터 정도를 걸어 내려가 주산동 방향 왼쪽길로 들어갑니다.

     마을회관 앞까지 갑니다. 마을회관 주차장에서 개구멍(?)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산으로 향하는 임도가 나타납니다.   

 45. 칡꽃

 46. 콘크리이트 길 한 가운데 벌어진 틈에서 자라는 쑥. 정말 대단한 생명력이지요? 차 바퀴가 양쪽으로 지나가면 이 쑥은 차 밑으로 들어갑니다. 얼마나 많은 차들이 저 쑥 위로 지나다녔을까요? 정말 절묘한 위치에서 자라는군요.

 47.사위질빵꽃은 사연이 있는 꽃입니다.

    덩쿨 식물중에 사위질빵꽃, 인동넝쿨, 할미멜빵꽃 등은 등짐을 메는 줄로 사용할수있는데 그중에 사위질빵꽃이 좀 약한편입니다.

    옛날 데릴 사위로 데려온 사위가 등짐을 짊어질때 힘들어 하는것이 안쓰러워 사위질빵의 줄기로 줄을 엮어 많은 짐을 질수 없도록 배려한

    장모의 사위사랑이 묻어나는 꽃입니다. 우리의 야생화에는 해학적이고 웃음이 배어나는 사연들이 많지요. 

 48. 칡넝쿨이 우거진 임도를 따라 쭉 올라갑니다.

 49.밤나무 밤송이

 50. 03:16 고봉산성 안내 표지판이 있는 곳까지 차가 올라가는 임도가 나 있고.. 여기서부터 500미터 정도 고봉산성까지 걸어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는지 길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여기 저기 30분을 찾아 봐도 길을 도무지 찾을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냥 하산하였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여러 사람들이 이곳에서 길을 잃었다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길을 못 찾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양동 임도를 따라 고봉산성에 도착한 사람도 주산동 방향으로 하산하면서 길을 못찾아 무조건 멀리 보이는 도로를 바라보며 아래로 아래로 헤치고 내려왔다고 하는 글도 보이네요.ㅠㅠ

 51. 왕고들빼기

 52. 04:01분  주산동에서-금성마을 정류장-금성마을-방조제까지 걸었던 길을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53. 길을 걷다보면, 길을 잃고 해매기도 하고,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하고, 길이 아닌것 같은데 그곳이 길이었을때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길을 만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일일히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흐르다 보면 결국 이렇게 처음으로 되돌아옵니다.

 54. 저 맑은 물에 풍덩 빠지면 안 되것죠?

 55. 대전 사람들이 먹는 물입니다. 

 56.호수 건너편 흥진이마을이 그림처럼 평화로워 보입니다. 

 57. 04:30 오늘의 대청호반길 걷기 9km를 무사히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