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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티일기429】저도 간첩은 무섭습니다
산길을 홀로 걷다보면 정말 무시무시한 사람을 가끔 만납니다. 대전에서 '보만식계'를 성공했다고 하면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됩니다. 대전에는 보문산-만인산-식장산-계족산을 연결하는 실제거리 약 60km 되는 등산로가 있습니다. 빨리 걸어도 완주에는 20시간 정도 걸리며, 보통 저녁 10시쯤에 시작해서 밤새 걷고 다음날 오후 6시 정도에 끝내는 것이 정석입니다. 크고작은 봉우리 150개를 무박2일로 넘는 강행군입니다.
실제로 '보만식계'중인 사람을 봤는데 첫 인상이 딱 '간첩'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아침에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간첩'일지 모르니 113으로 신고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간첩 한 마리당 천만원인가 얼마인가 로또복권 당첨금 만큼 많은 돈을 준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말투가 어눌한 사람에게도 "너 간첩같다"라고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간첩'이야기는 추억 속의 이야기처럼 아스라해졌습니다. 지금은 새벽에 산에서 내려와도 누가 간첩이라고 신고하지는 않습니다. 간첩이 새벽에 산에서 내려와야 될 이유도 없지요. 그런데 요즘 신문지상에 등장하는 '간첩'이라는 단어를 보고 갑자기 무서워졌습니다. '간첩'이란 단어를 보자마자 갑자기 온 몸이 굳어지는 게 저도 트라우마가 있나봐요.
트라우마(trauma)란 신체적인 손상과 생명의 위협을 받은 어떤 충격적인 사건 이후에 나타나는 '정신적 외상'을 말합니다.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 50대 이후의 분들은 집단적으로 '간첩'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한때 '간첩'이라고 누군가에게 신고를 당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딘가에 잡혀 들어가 죽어서 나오거나 반쯤 병신이 되어 나오곤 했던 시절이 있었지요. 정말 무시무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최용우 2013.9.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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